착종의 장(6)
7.
사내의 등장에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랑과 리리 리를 잡아먹을 듯 쫓아오던 마물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가공할 기백에 전율이 일어나.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마저 사로잡을 만큼의 묵직하고 강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그 든든한 뒷모습에, 아랑은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빅터 사부··· 우릴 찾아내 주셨어!’
하지만 어떻게?
그는 무슨 수로 이 기이한 공간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일까?
“리리 리의 신호를 쫓아왔다.”
놀랍게도 사내는 소년이 의문을 떠올림과 동시에 그에 답했다.
무슨 원리인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아랑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공명.
빅터가 쥔 도끼의 날과 리리 리의 비녀가, 똑같이 푸른빛으로 일렁이고 있었기에.
“많이도 몰렸군.”
그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레이스wraith. 아니, 스팩터Specter인가?”
“네? 스헤···허? 빅터 사부, 그게 뭐죠?”
“귀혼. 다시 말해 원령이다. 자신이 죽었단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놈들이지.”
“히, 히이!? 그, 그럼 저것들이 진짜 귀신이었단 말이에요!?”
리리 리는 뒤늦게 기겁을 한다.
좀 전까지 발차기로 용맹하게 맞서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특이하게도, 동방에서는 육신을 가진 요괴보다 영적인 존재를 더 두려워하는 문화가 있었기에.
무도武道를 중시하던 전통 때문이었을까?
마물의 경우, 적어도 직접 무찌를 수단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물리적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에겐 속수무책이야.
그런 형태의 정신적 세계관이 오랜 전승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즉, 동양에서 나고 자란 리리 리도 마찬가지···.
특히나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의 소녀였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빅터는 말한다.
놈들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겁낼 것 없다, 리리 리. 네가 생각하는 개념의 영혼 따위···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저 놈들은 허깨비다. 우리 머릿속에서 나오는 미약한 전기신호가 어떤 연유로 뭉쳐지고 잔존하게 된 것뿐이지.”
“아, 음··· 저한텐 사부의 말이 너무 어려워요.”
“···아무튼 간에, 저것들은 평소 우리가 맞서는 마의 존재에 비하면 시시하다. 지금처럼 특수한 조건이 아니면 형상화조차 못할 정도로 하찮지.”
“그, 그거 정말이죠?”
“벌써 잊은 거냐? 잘 생각해 보거라. 너는 아까도 한 놈을 보기 좋게 처리했지 않나?”
“···아, 그랬었죠!”
“그리고 봐라. 저것들이 북적이는 걸. 놈들은 약하기 때문에 무리를 짓는 것이다. 살아있는 자를 상대하기엔 너무도 가녀린 존재, 더욱이 우리의 적수는 못된다.”
정말인가?
하지만 상대하기에 결코 적은 수가 아니야.
눈짐작으로도 수백은 되어 보였다.
그 말 인즉···.
이 장소엔 그에 걸맞는 죽음의 사연이 머물고 있단 의미이기도 했다.
“···그랬군. 아주 오래 전, 이 장소는 한 나라의 도읍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역병이 돌았지. 당시의 의술론 치료할 수 없는 고약한 괴질이었어. 이 놈들은 그때 목숨을 잃은 망자들이야.”
“아하! 쟤네가 망할 개미떼만큼 많은 이유가 있었네요!”
“리리 리, 입 조심해라.”
안타까운 사연이기에.
해소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조리한 최후였던 만큼, 원한을 남길 법도 했다.
그러나 빅터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미련을 버리고 사라져라. 오래도록 산 자를 미워한 나머지, 그나마 있던 자아마저 내다버린 잡귀 놈들···!”
그렇게 말하며, 빅터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너희는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렸다.”
과거의 허상따윈 중요치 않아.
그에겐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미래가 훨씬 가치 있는 것이었다.
“뭘 멀뚱히 보고만 있지? 덤비지 않을 텐가? 좋다. 그럼 내가 가지.”
아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관념을 다시 한 번 버려야만 했다.
퇴마란 이런 것인가?
영적인 것을 이겨내는 과정이 이토록 격하고 단순하단 말인가?
그야말로 생기의 투쟁.
앞으로 달려 나간 빅터는 거침없이 눈앞의 마물들을 동강내기 시작했다.
죽은 자의 미련은 맹렬히 타오르는 생명을 이길 수 없는가?
그것을 증명하듯, 빅터의 도끼는 달아나지 못하는 유령들의 몸을 베고 갈랐다.
머리를 부수고.
목을 날리며.
팔 다리가 몸통에서 분리되도록 찢어발겼다.
“역시 빅터 사부! 잘은 몰라도 마기로 실체화된 놈들을 인정사정없이···.”
마치 새끼를 밴 불곰 같아!
···라며, 리리 리는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흉포함을 묘사했다.
단, 이번만큼은 아랑도 동의한다.
지킬 것이 있는 자의 분노는 무시무시해.
진짜 귀신보다도, 악귀의 형상을 한 빅터가 더욱 더 두렵게 비춰졌다.
하지만 그가 날뛰는 이유가 자신들에게 있단 사실이 벅차면서도 기쁘다.
아이를 위해 뭐든지 하는 보호자.
아랑은 언제나 그런 어른을 원해왔기에.
그런데···.
“휘유, 빅터 자식. 어지간히도 화가 났나보네.”
등 뒤에서 또 다른 인기척.
묘하게 가벼운 어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돌아보자, 어느새 로이드가 실실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어, 찻집에 있었던 꺽다리 아저씨?”
동방의 언어로 읊조리는 리리 리에게, 로이드가 시선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이 아가씨야, 더 말썽피우지 말고 여기서 얌전히 있어. 만에 하나라도 네가 다치면, 저 덩치가 내 목을 분지를 지도 모르니까.”
“아? 아아?”
“어차피 못 알아 듣나?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후배가 널 잠깐 맡아달라고 했거든. 그럼···.”
로이드는 양손을 코트 주머니 속으로 깊이 눌러 넣더니.
“나도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보실까?”
자신만만한 목소리와 함께, 곧 두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열 손가락에는 모두 장식 없는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랑은 보았다.
로이드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악기를 조율하는 것 마냥 섬세하게 움직인 것을!
빅터가 무쌍을 펼치는 곳과 반대 방향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은사銀絲.
가늘고 예리한 실선이 허공을 갈랐다.
아름답다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한 오묘한 빛줄기였다.
그러나 그 궤적이 만들어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긱, 기가각!”
“카하악!”
파앗!
원령들의 행렬 사이로 선혈이 튄다.
균열과 토막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 남자도 보통이 아니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도 않고 적을 무찌르다니.
가볍게 잡아당긴 것만으로도 눈앞에 선 서넛 명이 사지를 동강낼 수 있단 말인가?
아랑은 로이드가 펼친 신묘한 마술에 넋을 잃었다.
뒤늦게 어린 관객의 존재를 깨달은 것인지, 짓궂게도 로이드는 자신이 곡예단 출신임을 숨기지 못했다.
“어때, 꼬마 친구. 묘기를 좀 더 보여줄까? 재미있는 건 지금부터인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아랑은 그가 본 실력을 내비칠 셈이란 걸 알았다.
마침 무턱대고 몰려오기 시작한 원령의 무리에게···.
로이드는 품속에서 꺼내든 뭔가를 휘둘렀다.
퍼엉!
바람이 찢기는 소리.
이어서 육편이 튄다.
검은 섬광이 정확히 맨 앞에 뛰어든 귀신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것은 절편.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채찍이었다.
“괜찮지? 내 뱀의 심장Snake Heart은 저 덩치의 무식해빠진 도끼랑 다르게 세련됐으니까.”
기세 등등.
소년은 어쩐지 그 모습이 얄밉게 느껴졌다.
빅터 사부와 굳이 비교하면서까지 스스로를 드높이는 태도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그의 가공할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채찍처럼 다루기 어려운 무기로, 노리는 곳에 정확히 때려 박을 수 있단 것 자체가 숙련의 반증.
로이드는 빅터가 안심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고수였던 것이다.
“쳇, 멀대 아재도 꽤 제법인 걸! 나도 질 수 없지! 얘, 아랑! 우리도 가자!”
“···어?”
“사부의 말처럼 저 귀신들은 약해! 벌벌 떨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거야!”
“뭘 어쩌려고?”
“너도 이번 기회에 활약 좀 해야지?”
히죽.
리리 리가 불길하게 웃었다.
재주가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손버릇이 더럽다고 해야 할지···.
소녀는 로이드가 자뻑하며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사이···.
그의 뒷짐 벨트에 몰래 단검 몇 자루를 빼돌린 상태였던 것이다.
이어서 리리 리는 아랑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소년은 자신의 손에 쥐여진 날붙이를 본다.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
허나 이렇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하여간···.”
소년은 마지못해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살짝 어색하지만 은근히 자세가 갖춰져 있어.
검술이라고 하긴 그래도, 적어도 요 몇 주간 리리 리에게 간단히 다루는 법 정도는 배웠기에.
“전에 가르쳐준 거 잊지 않았지? 이렇게 급소를 노려서··· 에잇!”
그 시범을 리리 리가 직접 보여준다.
망설임 없이 푸른 칼날의 비녀를 뻗어, 로이드가 채 처리하지 못한 원령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일격에 심장을 날려버렸어.
마기로 이뤄진 몸뚱이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이크, 이 꼬마 아가씨가 어느 틈에?”
그제야 로이드는 소녀의 활약을 눈치 챘곤.
“어, 제법이긴 한데··· 좀 가만히 있어 줄래? 너희가 날뛰면 내 활약이 별로 티가 안 나잖아?”
“자, 간단하지? 다음은 네 차례야!”
“···무시하기냐?”
“이제 귀신 따위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러나 역시 로이드의 말은 리리 리에게 닿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이란 그만큼 드높은 것이었기에.
“읏샤! 여기야, 여기!”
리리 리는 일부러 틈을 보였다.
교묘하게 한 마리가 아랑에게 뛰어드는 걸 유도한 것이다.
“···좋아!”
이때, 아랑은 두 가지 면에서 다행이라 여겼다.
하나는 그간 익힌 기술을 겨우 실전에서 쓸 기회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하아아앗!”
처음 칼부림을 하는 상대가 사람의 형상이 아닌 마귀였다는 사실이었다.
푸우우욱!
끔찍한 감촉이 신체 말단을 타고 위로 올라와, 아랑은 그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래도 결과는 성공적이야.
소년이 내지른 단검이 남자 혼령의 눈구멍에 꽂혔다.
힘 조절에 실패해서 살짝 궤도가 틀어졌지만···.
단검의 칼끝은 적의 머릿속을 후벼 파기에 충분한 길이였다.
“멋져! 내가 직접 가르친 보람이 있는 걸? 잘 했어, 아랑!”
칭찬.
비록 그 대상이 배움을 실천한 아랑이 아니었으나···.
지금껏 사랑받지 못한 아이에게 있어선 이마저도 드문 경험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소년은 적지 않게 자신감이 붙었다.
“응!”
의욕이 살아나.
어느새 아랑의 마음은 두려움보다 용기 쪽으로 기울어졌다.
소년과 소녀는 흐름을 타, 이제 앞으로 나서서 마물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이것, 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옆에 선 로이드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골치 아프구만. 가능하면 이 애들까지 전장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제자를 둔다는 게 쉽지가 않구나, 라고 덧붙이면서···.
그는 싸우는 와중에도 등 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빅터는 여전히 사나운 전투를 이어가고 있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순수한 분노를 마의 존재들에게 그대로 풀어내는 중이었다.
‘하,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봐야 해. 빅터, 네가 어린애들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이 장소로 건너오기 조금 전, 로이드는 무뚝뚝하기만 하던 사내가 동요하는 걸 처음으로 목격했다.
그 빅터가···.
완고하고 고지식하기 짝이 없던 그 덩치가, 고작 약속한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소년 소녀를 걱정한 나머지 안절부절 발까지 굴렀던 것이다.
의외의 일면.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이야.
그렇기에 기대를 걸어볼 만 했다.
“···체, 될 대로 되라지.”
로이드의 읊조림은 달관 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희망이나 바람에 가까웠다.
어쩌면, 만에 하나···.
사람으로의 색채를 잃지 않은 빅터가 스승이라면···.
또한 그에게서 사랑과 가르침을 받은 이 아이들이라면···.
비록 처절한 사냥꾼의 삶을 살지라도, 길을 벗어나지 않고···.
언젠가 자신들보다도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8.
십 수분 뒤.
영적 세계에서의 학살은 겨우 끝이 났다.
힘의 차이가 역력해지자 원령의 무리는 퇴각했어.
미로를 만들던 차원의 뒤틀림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별도의 조치를 취할 필요조차 없이, 빅터 일행은 본래의 뒷골목으로 돌아와 있었다.
“휘유, 난리도 아니었어.”
로이드의 휘파람이 승전고를 대신했다.
유쾌한 소리.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아랑이나 리리 리도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꺽다리 아재! 잘난척하는 건 재수 없었지만, 뭐··· 괜찮았어요. 그 실뜨기 하는 거 계집애들 같은데 의외로 쓸 만하네요?”
“···리리 누나, 이럴 땐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는 게 예의 아냐?”
“그런가? 근데 말해도 못 알아들을 걸.”
하지만 로이드의 촉은 보통이 아니다.
그는 은연중에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소년과 소녀의 대화를 짐작했다.
“···이봐, 빅터. 요 꼬맹이들 지금 나 가지고 씹고 있지? 앙?”
“글쎄.”
“제길, 쪼게기는. 너까지 날 놀리기냐? 하여간 스승이고 제자고··· ”
허탈한 한숨.
로이드는 자신이 휘두르던 은빛 실을 회수하면서 꼬마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다.
“후배, 아직 안심하긴 일러. 아직 모든 게 마무리된 게 아니거든?”
“그래. 근본적인 원인부터 규명해야겠지.”
“저 꼬맹이들이 대체 뭔 짓을 한 걸까?”
빅터는 현상에 의문을 가졌다.
아무리 사념이 잔류한다 해도, 원혼들을을 실체화시킬 만큼의 마기가 갑자기 형성될 리는 없어.
그가 항상 되뇌였던 것처럼···.
세상만사엔 모두 원인이 있기 때문에.
“아랑, 리리 리.”
“네, 빅터 사부!”
“너희에게 물을 것이 있다.”
빅터가 암안을 발동시키며 두 사람에게 묻는다.
그 질문은 단순했다.
낯선 것이나 수상한 뭔가를 건들지 않았는가?
즉각적으로 리리 리는 고개를 젓는다.
심지어 단연코 아니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어, 빅터의 능력으로도 거짓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허나, 아랑은 이 시점에서 뭔가를 짐작하고 있었다.
“사부, 사실은···.”
진실을 꿰뚫어보는 빅터의 힘을 알기에···.
소년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여기, 이 안을 봐주세요.”
“앗! 아랑, 그건 우리의···!”
“미안해, 리리 누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우연이 아닌 것 같아.”
아랑은 은화와 동전 더미 안에서 손톱크기의 작은 물체를 집었다.
아까 잠깐 확인했던 새빨간 결정의 돌멩이···.
이게 아니라면 달리 없어.
소년의 의심은 다름 아닌 그것을 향하고 있었다.
빅터가 그것을 한참이나 빤히 보더니.
“루비인가? 아니면 가넷? ···아니야. 오팔이나 토파즈조차 아니군. 이런 건나도 처음 본다.”
“네? 사부께서도 모르는 보석인가요?”
“···물론, 나라고 모든 걸 알진 못하지.”
실망보단 충격.
아랑은 빅터가 만물박사라고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흐음, 하지만 괴한 돌임에는 틀림없군.”
“괴···하다뇨?”
“아무리 봐도 특이할 것 없는 물건인데, 이걸 중심으로 마기가 흘러오고 있다. 아니, 어쩌면 끌어당기고 있는 것인지도? ···로이드!”
빅터가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자, 막 채찍의 손질과 은사의 회수를 마친 로그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맙소사, 제기랄···!”
그가 인상을 구겼다.
뭔가 아는 눈치였다.
“너는 알아보겠나?”
“···그래. 짜증날 만큼 잘 알아.”
“이게 뭐지?”
“빌어먹을 ‘마몬의 적석Mammon's Redstone’이야.”
“···생소한 이름이군.”
“그럴 테지. 이건 겨우 반년 전부터 서역에서 나돌기 시작한 물건이니까!”
“음?”
“젠장, 이게 벌써 동방에 풀리고 있었을 줄이야!”
끔찍한 듯 몸서리치는 로이드의 반응에 빅터의 미간이 실룩인다.
여기에는 보다 깊은 사정이 있는 듯 보였다.
“어느 시점엔가 시장에 자연스럽게 팔리고 있더군. 순식간에 졸부나 귀족들 사이에서 금화 열 냥 이상의 가치가 형성됐지.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의 일종이라 그랬나? 아무튼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사치품이야. 용의 눈이라든지, 심장이라든지? 그딴 이름까지 붙어서 고가에 거래되더니··· 아니,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게 마기를 끌어들이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나?”
“암 있고말고. 왜냐하면···.”
쯧.
로이드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그리곤 이어서 무거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건 마녀가 만든 보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