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91화 (91/186)

흉리의 장(3)

3.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달관하고 있었다.

희망을 품지 않은지 오래였다.

남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자신만은 평생토록 얻지 못할 세 가지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하나는 사람의 취급.’

누나는 스스로를 증오한다.

그 깊은 원한은 창녀의 삶을 물려주었던 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곁을 떠난 수많은 남자들에게까지 뿌리를 뻗는다.

심지어는 그로 인해 생겨난 결과에 까지 미움이 머무는 것이다.

굶주림이나 가난은 말할 것도 없이···.

세상만물.

모든 것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

심지어 겉으로 애지중지 다루던 아랑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따금씩 술에 취한 누이는 소년을 학대했다.

시덥잖은 이유를 붙여서 멍이 들 때까지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리고 맨 정신이 돌아왔을 때.

다시금 동생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하지만 아랑은 알았다.

그 끊임없는 사과에도 애정은 없다는 것을.

그것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소한의 정은 있을지언정···.

언제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가축에 가까웠으리라.

남은 찌꺼기를 건네는 것으로 재롱을 바라는 개새끼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가여워하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 뿐.

동생을 굳이 곁에 두는 건 단지 자신이 외롭기 때문이었다.

정체모를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인가?

아랑이 성장할수록, 그를 바라보는 누나의 시선에 점차 혐오의 빛이 떠올랐다.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의 그림자를 그대로 아랑에게 투영했어.

어느 날은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적도 있었다.

누나는 영영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에겐 누이 밖에 없다.

그렇기에 언제까지고 같은 날이 반복 될 것이라고···.

‘두 번째는 아버지.’

소년은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가 아는 사내들이란···.

언제나 누이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헉헉거리는 추악한 자들뿐이었으므로.

가정의 책임에 대해 가르쳐줄 존재가 달리 없었기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자유.’

촌장은 외지로의 출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랑도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소작농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 노예와 크게 다를 게 없으리라.

···왜 여태껏 의문을 가지지 못했는가?

그것은 교육 탓이었다.

원래 팔자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항상 주입받아왔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아랑이 받은 유일한 배움이란 순응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누님이나 그 어머니가 창부로 전락했던 요인도, 전부 촌장이 정해준 역할이었는지도.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처음 만난 타지 사람들에게서···.

소년은 십 수 년이나 받지 못한 친절을 경험한 것이다.

“야, 동작 그만!”

어둑한 밤하늘 아래, 불씨가 흩뿌려진다.

모닥불을 앞에 두고서 여자애가 품위도 없이 고함을 쳤다.

“그건 내꺼야!”

어째서 성을 내는가?

그것은 식탐 탓이다.

아랑의 손아귀에 쥐여진 꼬치구이 하나가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 녀석?’

소년은 아래의 나뭇가지와 장작을 본다.

이것만이 유일하게 구워진 게 아니야.

적당히 잘 익은 것들이 넘친다.

그런데도 소녀는 유독 자신이 잡은 물건에 소유권을 주장한다.

누가 들었으면 처음부터 점이라도 찍어놓은 줄 알겠어.

더욱이, 황당하게도 소녀는 지금 막 꼬챙이 하나를 뜯어 마무리 한 상태였기에···.

“···저기 다른 것도 많잖아?”

“내가 잡은 녀석이란 말이야!”

“뭐?”

“이 얼룩 있는 거! 뱀 몸통!”

그러면서 토막 난 덩어리를 가리킨다.

분명 재료는 산에서 잡은 들쥐와 도마뱀 따위의 것···.

하지만 소금을 살짝 뿌려서 간을 한 것을 제외한다면 요리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물건이었다.

다시 말해, 뭘 먹어도 거기서 거기란 소리.

“얼른 내놔!”

하지만 이 ‘리리 리’라는 소녀는 그저 막무가내였다.

아주 달려들어서 빼앗을 기세다.

아랑은 기가 막혀서···.

“앗! 너어어어!”

보란 듯이 입안에 넣고 씹어 삼키자, 소녀는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 천박한 행동을, 그녀의 사부는 좌시하지 않았다.

“시끄럽다, 리리 리. 산짐승들이 놀란다.”

마치 곰을 연상시키는 큰 덩치의 이방인···.

남자의 이름은 빅터라고 했다.

“언제까지 철없게 굴 텐가?”

“그치만 사부···.”

“네가 두 살 위의 누님이 아니냐? 그렇다면 연배에 맞는 체면을 갖추도록.”

사내는 이어서 덧붙인다.

“양보는 미덕이다.”

리리 리라는 여자애는 뭐라고 또 한마디를 하려다, 그의 모습을 보고서 입을 닫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사부가 몸소 그 말을 실천하는 중이었기에.

빅터는 소년와 소녀가 그나마 배를 채우고 있는 와중에도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며칠 동안 그가 입에 넣은 것은 기껏해야 육포 두어 조각과 칡뿌리 정도···.

극단적으로 섭취를 피하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가히 고행에 가까웠다.

“···빅터 사부는 오히려 뭐라도 드시는 게?”

“나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전에도 말했듯, 이식을 받는 자는 많이 먹지 않아도 괜찮게 체질이 변하니까.”

그렇다고 허기가 없는 것도 아닐 것을···.

리리 리는 짐작한다.

어째서인지, 그는 예전부터 고기를 입에 올리는 게 거북한 듯 보였어.

설마하니 암안의 소유자가 읽는 것은 인간의 속내뿐이 아니란 말인가?

어쩌면 빅터는 죽은 지 얼마 않은 걸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흥···.”

허나 끝내 리리 리는 그런 사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분방한 성격.

타고난 성질머리가 조급하기에, 당장 할 수 있는 걸 인내하는 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최대한 그의 가르침만큼은 따르고자 한다.

“어쩔 수 없네. 그 고약한 건 너나 실컷 드셔.”

“···.”

“뭘 하고 있어? 내가 봐줄 테니까 얼른 처먹기나 하라고!”

소년은 생각한다.

기왕이면 말도 좀 곱해주면 좋으련만, 하고.

허나 리리 리가 자신에게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아랑은 이미 알았다.

질투.

알기 쉬운 까닭.

그녀는 자신의 사부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그 사이에 낀 소년에게 약간의 텃세를 부렸을 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마음도 이해가 가.’

빅터.

가공할 힘과 인내를 가진 이방인···.

수 일째 낮과 밤을 함께 보냈음에도 정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소년이 보아왔던 어른들과는 사뭇 달랐다.

가공할 힘과 끝모를 인내심.

거디가 단순히 우직함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백까지···.

‘처음엔 사람이 아닌 작자라고 생각했는데···.’

변방의 사람은 의심이 많다.

그것은 아이인 아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자신을 구해줬다?

단지 그것만으로 외지인을 깊이 신뢰할 순 있을 정도로, 소년은 순진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단순한 정보만 나열해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쇠사슬과 알 수 없는 날붙이를 등에 짊어진 색목인···.

심지어 어린 여자애에게 서국의 남장을 시킨 채 동행한다고?

파탄자 내지 위험인물의 향취가 강하게 풍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아랑은 동경을 품는다.

이는 동시에 그가 오래도록 그려왔던 이상의 꿈이기도 했다.

만일 자신에게 아버지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가정을 돌보고 지키는 책임감 있는 사내여야만 한다고.

바로 이 남자, 빅터와 같이···.

‘그래서 무심코 쫓아오고 말았지. 하지만···.’

소년은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4.

일주일 전.

아랑은 동사한 여동생을 안은 채로 빅터와 리리 리의 뒤를 따랐었다.

충격에 반쯤 정신이 나간 채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강행군의 산길을 견뎌낼 수 있었는 지도 몰랐다.

깊은 절망은 추위마저 잊게끔 만들어.

슬픔에 비하면 무릎의 무거움따윈 시덥잖다.

끊임없이 걷는 와중에도, 아랑은 자신을 이끈 빅터란 사내의 꿍꿍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에겐 안내꾼이 애초부터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산길을 아는 것조차 무의미해.

두 사람은 쭉 아랑보다 앞장선 채 걸음을 옮겼으니까.

그러다 어느새 산기슭을 전부 내려온 시점에서···.

이방인은 소년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면 작은 촌락이 나올 거다.”

물론 그들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야.

빅터는 좀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갈 셈이었다.

“가라. 아기의 장례식은 거기서 해주도록.”

그러면서 은화 몇 닢을 건넨다.

화폐를 자주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정확한 가치를 유추하진 못하나···.

최소한 당분간 배를 곯지 않아도 될 만큼의 액수란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아랑은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빅터는 혀를 찼다.

“현명하게 굴어라.”

어른의 꾸중에 익숙한 소년이었다.

그는 어느 때 고집을 부려야하는 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대로 돈을 들고 낯선 마을로 가봐야 뭐가 변하겠는가?

동생을 묻어주고 배를 채우고 나면 그 다음은···?

“우릴 따라와 봤자 너만 고생이다.”

“상관없어.”

“아이의 시신은 또 어떻게 할 셈이지?”

“끝까지 데리고 갈 거야.”

“그건 짐에 불과하다.”

“···.”

또다.

이걸로 두 번째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유를 물건처럼 취급하는가?

아랑은 울컥한 채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일순간···.

“차가운 주검을 안고 있어봐야 네 손까지 함께 얼어붙을 뿐이야.”

“윽!?”

빼앗겼다.

남자는 힘으로 소년의 품안에서 죽은 아기를 낚아챘다.

“돌려줘!”

“착각하지 마라. 이건 이미 네 동생이 아니다.”

“아유를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

“멍청한 놈. 너야말로 이깟 얼어붙은 살덩이에 그만 집착해라.”

“이···!”

못 이긴다.

한 방 먹이는 것조차도 무리다.

그럼에도 소년은 달려든다.

그것은 아랑이 이 세상에 가진 유일한 것이었기에.

그러나.

“어딜!”

방해꾼이 끼어든다.

리리 리라는 여자애가 아랑의 손목을 낚아챈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시야가 덩치와 지면, 이윽고는 밤하늘로 변해버렸다.

머리부터 지면에 충돌한 것은 불운이었다.

눈앞이 핑 돌아, 소년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지저분한 놈이 어디서 성질이야! 빅터 사부, 이 자식 어떻게 할까요?”

“놓아줘라.”

“아, 당연히 팔 한쪽 정도는 우드득 시켜줘야···.”

“풀어주라고.”

“네에에에? 하지만 보나마나 또 날뛸 텐데요?”

“괜찮다.”

“크, 크으···아!”

“진정해. 너는 지금 뇌가 흔들린 상태다. 머잖아 일어날 수 있게 될 테니, 당장은 머리를 좀 식혀라.”

“아유를··· 돌려, 줘···.”

“···너희 다감은 민족은 토장이나 화장을 주로 하는 모양이지만, 죽은 이의 혼백을 달래는 방법은 또 있다.”

아랑이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어느새 사내는 바닥에 깊은 구덩이를 파놓은 상태였다.

무슨 재주로 그 짧은 순간에 땅을 이만큼이나 뒤집어엎은 것인지는 수수께끼였다.

“내 고향에서는 주로 시신을 묻지. 묘비나 묘석은 필요 없어. 그저 숲이나 산으로 돌려줄 뿐이다.”

“그럼··· 그럼 이리나 여우가 아유를 파먹잖아!”

“그러라고 하는 거다.”

인상을 쓰는 소년에게, 이방인은 시선을 맞춘다.

“나는 영혼을 믿지 않는다.”

“···.”

“따라서 죽음을 기리는 행위도 본질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여기고 있지.”

“날··· 놀리려는 거야?”

“아니, 오해하지 말고 끝까지 듣도록 해라. 우선 네 동생은 살아있다.”

“···뭐?”

“바로 이 속에.”

그는 손가락을 뻗어 소년의 이마에 향했다.

“그리고 여기에도.”

이어서 주먹을 쥐고 소년의 가슴을 가볍게 툭 친다.

의미 불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소년은 대꾸하지 못했다.

왜일까?

덩치가 보여준 일연의 동작들이 어쩐지 뇌리에 깊이 남아.

동시에 가슴 언저리에서 묘한 울림이 맴돌았기에···.

“···우리가 죽으면 이 몸뚱이는 반드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긴 시간에 걸쳐 썩고, 문드러지고, 풍화되어 완전히 가루가 되지.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야. 우릴 이루는 작디작은 인자는 언제까지고 남아있을 테니까.”

사내는 조심스럽게 아유의 시신을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상상해봐라. 너의 일부가 먼 훗날, 다른 짐승의 육체를 이루는 것을.”

“그게··· 뭐야?”

“또는 거목이어도 좋겠지.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 속에서 머물 수도 있다. ···이제 알겠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사내는 그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죽어도 자연으로 돌아간 일부는 여전히 살아있다. 많은 생명들 속에서 존속되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불멸이다. 이 순환은 영원히 계속 된다.”

“영원··· 불멸?”

“남은 건 네가 기억해주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 빈 몸은 다음 생명을 위해 보내주도록 해라.”

소년은 그때 논리나 철학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제야 아랑의 정신은 깨어났다.

이 사내의 말은 마냥 매정한 소리가 아님을 알아챘다.

사실은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무언가다.

자신이 이 부조리한 세계에 태어난 이유···.

그것은 소년이 지금껏 찾아 헤매던 어떤 것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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