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89화 (89/186)

흉리의 장(1)

1.

겨울.

설산이나 다름없는 언덕 위···.

창공에 거대한 만월이 고개를 내민다.

동방의 소년은 밤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은 앳되었다.

아무리 많아봐야 열다섯 살.

어쩌면 그보다 어릴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또래에 어울리지 않는 독기가 차있다.

죽일 듯이 맹렬한 시선.

그렇게도 달이 싫은가?

이가 부득 갈리는 소리마저 울린다.

바라보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밉다. 네놈이 미워···!’

증오스런 원수.

물론 사정은 있다.

소년에게 있어서 달은 소중한 가족을 몇 번이고 빼앗아간 원흉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더 내게서 빼앗아갈 셈이야?’

그것은 이미 드높은 산등성이가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비웃는 것 마냥.

사람의 표정을 닮은 균열을 얄밉게 들이민다.

···하지만 소년은 알았다.

자연에게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악의 또한 존재치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재앙이다.

인간은 그 예상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단지 소년은 분했다.

무지하고 무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흉측한 월면에 오갈 곳 없는 증오를 보내는 것만이···.

아이의 유일한 화풀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매년 다섯 번째 보름달이 뜰 때마다 동생이 죽어···.’

엄밀히는 동생이 아니다.

나이 차이가 나는 누이가 낳은 사생아.

몸을 팔아서 연명하기에 아버지는 모른다.

허나 그것도 이미 일곱 번째다.

‘왜지? 너는··· 대체 어째서 태어난 거야?’

소년의 품속에서 자그마한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작은 온기를 부여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작은 생명···.

태어난 지 채 반년도 살지 못한 아기.

건강 상태는 좋지 않다.

제대로 돌봐진 적이 없기에 팔과 다리가 말라있다.

분명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았더라면.

한참 젖살이 통통하게 오를 시기이건만···.

“···!”

소년은 다급히 몸을 숙였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과 인기척에 반응한 것이었다.

“···당장 나오지 못해! 이 썩을 놈의 애새끼야!”

“아랑! 일을 더 이상 귀찮게 만들지 마라!”

어른들의 목소리.

산길을 따라 횃불의 일렁임이 보인다.

허나 이것은 숲에서 길을 잃은 미아에게 건넬 법한 말이 아니다.

“가만두지 않겠어. 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빼돌리다니!”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둬라. 너희 누나도 걱정하고 있다! 시시한 장난질은 이쯤하고 얼른···.”

“지금이라도 그만둔다면 곤장 다섯 대로 봐주지!”

신변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몇몇은 살의마저 품고 있다.

‘내놓을까 보냐? 더 이상 죽게 내버려 둘까 보냐고!’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그들에게 모습을 내비칠 생각이 없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제아무리 매섭더라도.

설사 새벽 서리에 얼어 죽는다 할지라도.

결코 아기만은 내놓지 않을 셈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그런 굳은 결의를 품고 마을에서 달아난 것이었기에.

‘너는··· 너만은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 아유!’

그 이름은 소년이 지어준 것이었다.

친모인 누이는 아기에게 일말의 애정조차 건네지 않았기에.

어차피 곧 뒈질 자식.

애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손님들이 질겁한다며···.

차라리 사라지는 편이 났다는 악담까지 퍼부었다.

누이는 말했다.

아이는 또 낳으면 그만이라고.

훗날 사정이 안정되면 그때 애정을 들여서 키우면 된다고.

···그러나 소년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간 먹여살려준 누이에게 은혜를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 비정상적인 모정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마을 사람들의 광기도···.

“시간이 없어! 어서 제물을 제자리로 돌려놔라!”

“더 의식이 지체되면 산신께서 노하신단 말이다!”

“재앙이 무섭지도 않단 말이야, 아랑?!”

의식.

산신.

재앙.

미신을 대표하는 단어들이 나열된다.

특히나 제물이란, 다름 아닌 소년이 품은 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웃기지 마···!’

소년은 속으로 분노의 말을 토해냈다.

어차피 축복받지 못한 아이라고?

누구도 원치 않으니 그대로 산신에게 보내면 된다?

모두 돌아 버렸어.

제정신이 아니다.

있지도 않은 요괴한테 이 아이를 바치게 둘 성 싶으냐?

내 소중한 가족을 그깟 빌어먹을 허깨비 따위에게···.

“아랑!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

“왜 몰라주는 거냐? 예정대로 제물을 내놓지 않으면 마을이 끝장난단 말이다!”

소년, 아랑은 그런 어른들의 사악함에 진저리가 났다.

‘죄 없는 아기를 희생해서까지 살고 싶은 거야? 정 제물이 필요하면 너희들 스스로나 바치면 되잖느냐고!’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걸 원치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반항 없이 순종적인 사냥감뿐이었다.

‘산신 따위가··· 대체 뭐라고!’

그게 정말로 있는 것인진 모른다.

허나 나이가 지긋한 마을의 어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하늘이 녹빛으로 물든다고.

그것은 선조 세대부터 내려오는 전설이었다.

어느 날, 아침이 찾아오지 않게 된다.

몇날 며칠이나 오직 깜깜한 밤만이 계속되지.

그리하면 매일 보이지 않는 괴물이 온갖 가축들이 몰살당하고, 때론 사람마저 찢겨 죽는다.

절대 짐승의 소행이 아냐.

내장이나 살코기는 온데간데없이.

오직 거죽만을 지붕 위에 남기는 맹수 따윈 세상에 존재치 않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는 현상에 불과해.

모든 음식물이 썩고 만다.

양젖은 순식간에 부패하고, 건조시킨 보관식에도 벌레가 들끓는다.

우물에는 미지의 독이 풀려, 목마름을 견디지 못한 자들을 순서대로 집어삼킨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지금 마을의 원로는 그 재앙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다.

당연히 산신을 본 것도 그들뿐.

‘하지만 그건 진짜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어.’

끔찍한 사건이 지나간 지 십 수 년 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시 마을은 번성했다.

선대가 남긴 비옥한 토지.

강물이 있는 환경은 타지의 농부들을 자연스레 끌어당겼어.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했다.

하지만 인구가 약 이백 명을 조금 넘어설 그 쯔음···.

다시금 산에 사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어떤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새해의 다섯째 보름이 도래하는 시기가 오면, 너희 중 가장 쓸모없는 자를 바쳐라.’

처음엔 다들 웃고 넘겼다.

마을에 비축한 식량을 노린 도적이겠거니.

그 도둑놈들이 하찮은 지혜를 동원한 것뿐이라고.

하지만 그 해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돌연 자취를 감춘 시점에서.

산신의 명령은 더는 농담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이어서 다음 해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지.’

다섯 번째 새해가 시작되자, 마을에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고 했어.’

연배에 비해 생기가 넘쳤기에 사람들은 손을 썼다.

죽지 않을 만큼만 손을 봐주고, 도망칠 수 없도록 발목의 힘줄을 끊고 숲에 버렸지.

노인은 행방불명, 그 누구도 찾질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마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다음 해.

마을에서 가장 난폭하기로 소문이 난 주먹패 젊은이가 바쳐졌다.

무작정 싸움을 즐겼기에 원한도 많았던 탓이었다.

‘그리고 계속 또···.’

매년마다 선정되는 기준이 해괴하기 짝이 없었다.

사정을 모르기에 만만한 귀머거리인 소녀.

다리가 불편해서 오래도록 일을 못하던 청년까지···.

또 언제는 농작량이 적은 농부가 뽑히기도 했다.

어느새 무능함과 연약함은 제물의 대상으로 변하고 만다.

허나 그것도 누이가 사생아를 매해 낳기 시작하면서 옛 이야기처럼 되었다.

‘자그마치 6년째야···.’

그 말인즉슨.

아기가 제단에 바쳐진 것도 벌써 여섯 번째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번이 일곱 번째···.

‘···다음은 없어.’

작년까지는 힘이 없어서 대항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

소녀는 작정하고 의식을 망칠 셈이었다.

산신을 기리기 전날.

어른들이 술에 취할 때를 노려서 몰래 동생을 빼돌린 것이다.

···계획은 순조로웠다.

아기를 안고 마을을 벗어나, 제단에서 정 반대 방향까지 도망칠 수 있었기에.

아래 마을까지는 걸어서 수일은 걸리겠지만.

조촐하게나마 식량도 챙겼어.

동생이 마실 산양 젖까지 훔치는 지혜까지 발휘했다.

이제 아랑이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다.

이대로 숲에서 벗어나면 된다.

뒷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할 제물 따위 아무렴 좋지.

누가되어도 그건 마을이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죄값을 치루는 것이 될 뿐이리라.

그런데···.

“꼬마! 네 누이의 사지가 찢겨도 좋으냐?!”

멈칫.

차라리 귀가 나빴으면 좋았으련만.

그 알기 쉬운 협박에 아랑은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행렬의 앞.

횃불을 들지 않은 마른 그림자가 보였다.

풀어 헤친 머리칼.

하얀 소복은 죄인의 복장이었다.

한쪽 눈이 퉁퉁 불어있어.

자세히 보니 한쪽 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열네 살 많은 아랑의 누나.

아미였다.

“아랑···.”

그 애처로운 목소리에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누이에겐 빚이 있어.

남들은 남자를 집에 들이는 음란한 계집이라 손가락질 했지만···.

그 덕에 기근 때도 굶주리지 않을 수 있었기에.

아랑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전부 아미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가족.

그렇기에 절대로 버려선 안 된다.

학식이나 교양이 부족한 아랑이었지만, 누나에게서 받은 그 가르침만큼은 마치 진리와도 같았기에···.

“이제 그만하고 나오렴. 제발··· 못된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해줘!”

아랑은 품속의 아이를 깊이 끌어안았다.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을 찾는다.

자신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칫, 그만하면 됐어! 이 더러운 창녀! 네 동생이란 놈은 널 버린 모양이니까!”

“꺄악!”

“어쩔 수 없지. 그 동안 아랫도리 신세를 많이 졌지만, 이번 제물은 네가 해줘야겠다.”

“자, 잠시만요! 부탁이에요, 저한테 다시 한 번 기회를··· 아악!”

“닥쳐! 곧 새벽이 끝나! 더는 시간이 없단 말이다!”

하지만 이내 흔들린다.

여럿에게서 가족을 학대당하는 모습은 순진한 소년의 마음을 찢어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진짜 아픔은 따로 있었다.

바로 누이의 본성이었다.

“아···랑! 이 은혜도 모르는 쥐새끼!”

아미는 얻어맞으면서도 원망스럽게 욕지거리를 토해냈다.

“역겨운 놈! 불쌍해서 여태껏 키워줬더니, 감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소년은 믿을 수 없었다.

평소의 다정하던 누나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기 때문에.

저 추악한 얼굴이 진정 사랑하던 가족의 실체란 말인가?

“어디 더러운 씨 아니랄까봐! 너 같은게 내 뱃속에서 나왔단 게 토악질이 나와 참을 수가 없구나!”

이어진 누나의 외침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실은 네가 날 누나라고 부를 때마다 마음에 안 들었어··· 하지만 아들이라고 밝히면 손님이 줄어드니까 어쩔 수 없었지. 하지만 쓰레기의 자식은 역시 쓰레기였네?! 결국 네 애비처럼 너도 나를 버리는 떠나는 개자식이라고오오오!”

아아아아아!

끝내 아랑은 견디지 못했다.

화를 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기로에서 소년이 선택한 것은···.

속으로 질러대는 비명이었다.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것만이 아랑이 가진 최후의 발악이었다.

그러나 의미는 없었다.

수풀 사이에 숨어있던 두 아이를, 이미 배후에서 다가온 수색꾼들이 찾아낸 상태였기에.

“드디어 잡았다, 이 버러지 놈···!”

퍼억!

포박은 필요 없다.

어린 아이를 제압하는 데엔 흉포한 주먹으로 충분했기에.

“···크악!”

덜 여문 광대뼈가 작살났지만, 운이 좋았다.

아랑은 바닥을 나뒹굴면서도 필사적으로 아기를 지켜낼 수 있었다.

“자, 어서 넘겨.”

횃불은 든 무리가 다가온다.

여기저기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포위당했어.

더는 달아날 길이 없어보였다.

“멍하게 있지 말고 그걸 내놓으라고!”

“···라고 하지 마.”

“뭐?”

“내 여동생을 그거라고 부르지 말라고!”

“뭐라는 거야? 좀 작작 까불고 순순히 내놔!”

“죽어도··· 싫어!”

아랑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놀랍게도, 아직 마음이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기로에 몰린 그 순간까지 자신의 목숨보다 신념을 택했다.

“그래? 그럼 원하는 대로 뒈지던가!”

상대는 손에 쥐어진 낫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통증.

칼날이 소년의 이마에 사선이 그었다.

오른쪽 뺨까지 내려오는 크고 붉은 상처가 새겨졌다.

···눈을 다치지 않은 건 순전히 요행이었다.

가히 기적이라도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일촉즉발의 순간···.

낫의 주인이 잠깐 한눈을 팔았기 때문에···.

“···어?”

아랑의 목덜미를 타고 오한이 일었다.

그것은 냉기 같은 게 아닌, 보다 불길하고 오싹한 무엇인가였다.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한 자리에 몰렸다.

그곳에는 그늘 속에 암약한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뭐, 뭐야? 너는 웬놈이냐?”

그 부름에 응답이라도 한 것일까?

잠시 후, 우직하고 큰 몸집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이 드리워져 확실히 보이지 않아.

아랑에게 비춰진 것은 흐릿한 잿빛의 색채와 하얗게 빛나는 안광뿐이었다.

‘두 발로 선 늑대? 회색 곰···? 어쩌면, 저건!’

요괴?

도깨비인가?

아니면 이 자가 산신의 정체?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는 단지 짐승이라 착각할 만치 덩치가 큰 사내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선 자였다.

‘색목인?’

그랬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피부가 흰 대륙 너머의 인종.

그런데 그걸 고려해도 상대의 모습은 기이하다.

챙이 긴 모자는 그렇다 치자.

험상 굳은 얼굴도 다소 피로해보이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하지만 월광을 실로 풀어서 짠 것만 같은 은발···.

야수처럼 빛을 발하는 오른쪽 눈동자는 가볍게 형언하기 어렵다.

심지어 입은 복장마저 특이하다.

왼팔에 칭칭 감긴 쇠사슬의 의미는 무엇인가?

뒷짐에 고정한 푸르스름한 금속질의 뭔가는 또 어떤 도구란 말이지?

상대의 모든 것이 생소하다.

무릎까지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온 코트의 행색은, 동방의 소년이 보기에 너무나 신기한 것이었기에.

“이 흰둥이 자식은 또 뭐야?”

“서국 놈이 왜 여길 돌아다니고 있지?”

어른들이 경계하며 다가가자, 서국의 이방인이 슬쩍 입술을 열었다.

“···무례하군. 다감의 민족은 예를 중시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투박하고 거친 목소리.

그러나 알아들을 수 있다.

동방의 언어다.

꽤나 익숙한지 또렷한 발음이었다.

“당신··· 우리말을 할 수 있나?”

“···.”

몹집이 큰 색목인은 답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덩치의 시선은 아기를 끌어안은 소년에게로 향했다.

무거운 침묵.

한 번도 껌뻑이지 않는 눈빛에 위압감이 절로 감돈다.

하지만 소년은 두렵지 않았다.

정체모를 상대, 지금껏 본 적 없는 거구의 사내와 마주보고 있었음에도.

비록 상대의 안광이 밤의 포식자와 한 없이 닮아있을지언정···.

“다 큰 놈들이 어린 애들 데리고 뭐하는 짓이지?”

그에게선 자신의 것과 같은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기 때문에.

“대, 댁 같은 이방인이 상관할 일은 아니오.”

“아윽!”

“이놈은 마을에 아주 큰 잘못을 지은 죄인이니까.”

어른 중 하나가 아랑의 발을 거두어 패대기쳤다.

하던 볼일을 계속 이어나갈 셈이다.

그들은 수가 많아.

애초에 갑자기 나타난 외지 사람 따위에 겁먹을 이유도 없었다.

“죄인? 기껏해야 열 댓 살도 안 된 꼬마가 대체 뭘 했길래?”

“우리에게도 사정이 있어. 어쩌다 이 산에 오른 건진 모르겠지만 이만 물러나쇼.”

“그런가?”

“이 수를 보라고. 이 이상 끼어들면 아무리 서방인이라도 무사하진 못할 거요.”

그러나 그에겐 위협이 무의미했다.

상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녀석이 안고 있는 아이는 또 어떻게 설명할 거지?”

“코쟁이 주제에 같잖게 참견하긴··· 정 궁금하면 알려주마. 이것들은 애비도 모르는 창녀의 새끼다! 댁들처럼 표현하자면, 불신자에 축복도 못 받은 불경한 씨앗이지. 밟아 죽여도 아무 문제없을 잡초들이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발을 들어올렸다.

방금 말한 것을 그대로 실행할 참이었다.

하지만···.

“으, 으악!”

소년을 비롯해 그 자리의 모든 무리가 놀라자빠졌다.

그것은 시도조차 못하고 제압당했기에.

색목인이 뻗은 왼팔이, 순식간에 발돋움을 한 사내의 발목을 낚아챈 것이다.

“···잡초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

이어서 보란 듯이 거꾸로 들어올린다.

한 눈에도 120근이 넘는 장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뒤집다니···.

그야말로 가공할 완력이었다.

“흠!”

“우아아악!”

이내 덩치 큰 이방인은 남자를 집어던진다.

지켜보던 방관자들은 날려 오는 사내를 받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이 사람은···.”

···그때, 난생 처음으로 소년은 보았다.

진짜 어른을.

그것은 타인을 위해서···.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릴 수 있는 진정한 강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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