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86화 (86/186)

심문의 장(3)

3.

정적이 흐른다.

자신의 언변이 통했다고 확신 했는지,

마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느냐?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말해주마.”

대체 무얼 노리는 거지?

너무 많은 악의가 겹쳐져 있다.

감정을 읽어도 느껴지는 것은 기이하리만치 순수한 장난기와 혼돈뿐이다.

그만큼 이 마녀는 적지 않게 미쳐있었다.

“내 딸은···.”

그러나 심록이 꺼낸 이름정도로 대스승 크레이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보이던 동요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어느새 고요를 되찾았군.

놀라운 의지와 인내력이었다.

그에겐 마녀의 광기에도 지지 않는···.

심지어 나의 능력으로도 엿볼 수 없을 정도의 견고한 마음의 벽이 있었다.

“페티다는 오래 전에 죽었다.”

철컥!

화승총이 또 한 번 반동을 일으킨다.

탄환이 터지자 심록의 왼쪽 머리에 흉측하게 뭉개졌다.

마녀는 반쪽만 남은 얼굴로 혀를 삐죽 내밀어 보였다.

“후후, 역시 통하지 않는가?”

“남길 말은 그것뿐인가?”

“좀 더 나와 어울려 줄 텐가?”

“멍청한 질문이군.”

퍼엉!

그리고 다시 한 발.

마녀의 코와 입이 사라졌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마녀에게, 대스승 크레이그는 유성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그는 마녀의 목 언저리에다 단검을 박아 넣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거라, 레이여. 마지막 단말마만큼은 너에게 주도록 할 테니.”

“아니, 대스승··· 저는···!”

푸욱!

아무렇지도 않게 부츠의 굽으로 손잡이에 무게를 싣는다.

이제 마녀는 비명조차 봉인되었다.

그저 사지를 튕기며 경련할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곤충의 표본과도 같았다.

“흥을 식게 해서 미안하군. 나머진 자네들에게 부탁하지.”

“크레이그 놈, 이제 와서 저주가 무서워지기라도 했나?”

“큭큭, 나도 몸은 사려야 할 것 아닌가?”

“발뺌하기는.” “유감일세, 베누다. 자네라면 저 계집과 나눌 이야기가 있을 지도 모르는데.”

“집어치워. 정신 나간 년과 무슨 대화가 통하겠나?”

대스승 베누다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기괴한 광경이었다.

머리가 뭉개진 알몸의 소녀의 하반신이 들썩인다.

이런 괴물과의 소통 따윈 그저 불쾌할 뿐.

대스승 베누다는 바닥에 널브러진 마녀에게로 침을 뱉었다.

하지만 그는 대스승 크레이그와 달랐다.

냉정을 챙기기엔 너무도 뜨거운 성미를 가졌기에.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건 혼잣말이다. 심록, 너는 일방적으로 듣기만 해라. 그 썩은 귓구멍을 열고서.”

“···.”

“우리는, 특히 나는 네 년의 행방을 오래도록 추적해왔지. 오로지 오늘만을 위해··· 그리고 겨우 나의 염원이 이뤄졌구나. 이렇게 만나게 되어 미치도록 반갑다. 나의 부족과 친족들의 원수··· 망국의 딸 ‘수아란’이여.”

그 부름에, 마녀는 아주 잠깐이지만 몸부림을 멈추었다.

“모를 것 같았느냐? 우리 동방의 역사는 유구하다. 사람이 많은 만큼 보는 눈도 많지. 꽤 분발했던 모양이지만, 네 모든 흔적을 지우기엔 섬세함이 부족했다.”

“···!”

“왜 그러지? 오랜만에 본명으로 불리니까 덜컥 겁이 나는가?”

어째서 였을까?

단지 이름을 불린 것만으로 심록은 눈에 띠게 반응했다.

양손을 움직여 자신의 목에 박힌 단검을 빼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렇겠지. 아스트랄이 부여한 그 잘난 가호도, 결국엔 너의 정체성을 흐리기 위한 장난질일 테니! 그래, 우리도 언령을 안다. 진명이란 너의 혼을 꿰뚫는 것! 바로 너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본질이지!”

그러나 대스승 베누다는 뒤꿈치를 내리박아, 마녀의 손가락을 뭉개고 더욱 깊숙이 고정시켰다.

“착각하지마라. 놀아준 것은 우리였다. 너를 가벼이 죽이면 휘룡과 툴루이에게 면목이 없었으니까! 떨고 있는가? 꼴좋구나, 심록! 그래, 그게 공포다. 진짜 죽음에 직면했을 때 나오는 본성이지!”

이쯤에서 마녀는 유성의 파편을 뽑는 것을 포기 했다.

이제 자신의 목을 집어 뜯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걸 하나 더 알려줄까? 애초에 심록이란 거짓 이름이 널 추적하는 단서가 되었지. 주제도 모르고 세력과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는 숲의 마녀, 너는 유독 탐욕스러운 존재였으니! 네 년이 멸망시킨 나라들은 그 악행을 결코 잊지 않고 기록해두었다! 게다가 네 년이 끝내 제물로 거두지 못했던 한 용기 있는 소녀의 존재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서 대스승 베누다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펴라, 련희여. 모두 네 덕이다. 지금의 승리는 전부··· 10년 전, 마녀에게 길러진 무리의 생존자인 네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결과인 것이다.”

그때, 레이의 마음이 요동쳤다.

지금까지 내게 비치지 않던 그녀의 과거가 순식간에 모습을 보였다.

‘최초의 기억은··· 화제로 허물어지는 동방의 성이 보인다. 레이는 그곳에서 모친과 사별했군.’

큰 전쟁이 있었다.

동국의 한 세력이 침공을 해왔다.

소매가 긴 흰 옷을 즐겨 입던 민족으로 이뤄진 영토로 마수를 뻗친 것이다.

수많은 군세가 바다 쪽으로 돌출된 반도에 몰려들었군.

승산이 없는 싸움.

그만큼 적은 강대했고, 육지에선 레이의 민족에게 달아날 곳이 없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해로 뿐···.

하지만 도망쳐봐야 망망대해를 헤맬 뿐이었으니.

차라리 투항하는 것이 현명했다.

그렇게 해서 레이의 나라는 분열되었다.

반항적이던 사내와 노인은 대부분이 적군에 의해 참살 당했다.

무력한 여자와 아이들은 내륙의 노예로 팔려갔다.

레이가 다섯 살이던 무렵,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창관으로 팔려가고 말았다.

모친은 미모가 특출 났군.

그 탓에 성을 거점으로 둔 귀족의 첩으로 추파를 받았다.

딸을 위해서 어머니는 자신의 정조까지 희생했어.

다행히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생활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정복 전쟁을 이어온 대가가··· 불특정 다수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방화였다.

고향을 잃은 이들에게 있어서, 부유한 자들이 사는 성은 그야말로 미움의 대상이었겠지.

아침이 되었을 때···.

살아남은 것은 레이뿐이었다.

불이 난 것을 확인한 모친이 빠르게 조치한 덕분이었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어린 레이를 피신시켰다.

비록 3층 높이였지만, 적어도 타죽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었지.

다행히 아래엔 나무들의 가지와 낙엽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해서 레이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럴 수가, 그녀는··· 심록에게 주워진 건가?’

그랬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를 가진 동방의 마녀가···.

어린 레이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빌어먹을.

이건 아니다.

이럴 수가 없다.

어째서냐?

왜 심록이 내민 손길에 이토록 애정이 충만한 거지?

그 뿐만이 아니라···.

‘레이 외에도,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마녀는 대륙의 최남단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결계를 치고, 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채로···.

애들이 늘어난다.

열 명, 스무 명까지···.

몇 년이 흐르자, 어린애들로만 이뤄진 하나의 군집이 만들어졌다.

규모만 본다면 어떤 의미에선 촌락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놀고 있군.

분명 뭔가 꿍꿍이속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녀의 본색은 그로부터 다섯 해가 지나고서 드러났다.

‘그 소굴을 세 대스승들께서 찾아낸 거군.’

그러자, 심록은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써먹었다.

그 동안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키도록 세뇌를 한 모양이지.

그래서 어린애들이 방패를 자처하며 사냥을 방해한 것이다.

···죽은 애들의 육신은 곧장 사역마의 피와 살이 되었다.

분별이 있는 사냥꾼일수록 그들의 먹이가 되었다.

어느 정도 광증이 있는 자만이 아이들의 목을 망설임 없이 토막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대스승 크레이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레이.’

그때, 레이는 심록을 대모님이라 부르며 섬기고 있었다.

마녀를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으로 여기며 지키려 하는 중이었다.

“···그만해, 덩치. 더 이상 내 기억을 읽지 말아줘.”

“음.”

“그 다음은 내가 직접 말할 테니까.”

잠자코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심록을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전부터 확인하고 싶었어. 네 년이 우릴 키운 이유를···. 짐작컨대, 프라이케르 가이스트의 재료로 쓰려고 한 거지? 실험에 쓸 순종적인 장난감이 필요했던 거고?”

“···그랬구나. 이제야 알아보겠다. 너는 오래 전에 내가 데려온 계집 중 하나였어.”

놀랍게도, 유성의 칼날이 성대에 그대로 박힌 상태에서도 심록은 입을 열었다.

잘 보니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은 입술 쪽이 아니었다.

들어 올린 손바닥이 갈라져, 그 안에서 또 다른 입이 생겨있었다.

육체의 기관을 다른 부위에 옮겨서 재생한 것인가?

레이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말을 다시 이어갔다.

“하필 같은 민족 출신만을 선별했는지도 대충 짐작이 가. 기록에 의하면, 너는 내가 태어난 나라를 증오하고 있었으니까.”

“후후후, 그건···.”

그러나, 그렇게 해서까지 마녀가 뱉어낸 말은 더욱 역겨운 것이었다.

“바로 정답이니라. 나는 너희가 싫었다. 그래서 반도의 나라가 멸망했단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누구보다 쾌재를 불렀지!”

“어째서지? 수백 년 전이라 하나 너도 나와 같은 출신이었을 터!”

“레이 사저! 마녀의 사정을 묻는 것은 금기다!”

레이답지 않다.

이 행동강령을 가르쳐 준 것은 다름 아닌 너이지 않은가?

제기랄, 마녀의 말처럼 되었다.

지금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다.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규율을 어기고 있었다.

“후후, 괜찮지 않느냐? 별 것 아니니 말해주도록 하마. 내가 마녀가 된 이유라··· 그건 전부 고리타분한 너희 민족의 전통 때문이었느니라.”

“너···.”

“그리고 너의 꽉 막힌 태도를 보아하니, 그 같잖은 혼은 아직도 내려오고 있는 모양이구나.”

여기까진 사실이다.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후후후··· 괜찮겠느냐, 늙은이들아? 너희 사랑스러운 제자가 냉정을 잃을 지도 모르는데?”

허나 여기서는 불안한 기색이 보인다.

마녀는 웃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뭔가를 숨기고 싶어 했다.

입을 여는 것을 거북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대스승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심록이 뭘 꾸미든 지, 빈틈을 내줄 생각이 없었으니.

“멋대로 해보거라.”

대스승 크레이그는 바닥에 늘어진 마녀의 몸에 뭔가를 뿌렸다.

교역선에서 고가에 사들인 고래 기름과 화승총에 들어가는 흑색 화약이었다.

“네 년이 허튼 짓을 하면 이대로 불을 붙여주지. 알고 있나? 마녀를 화형 시키는 변방의 미신이 우리에게서 기인했다는 걸? 그건 이 방법이 가장 유효하기 때문이다. 화염은 네가 몇 번을 재생하더라도 끝까지 몸속을 파고들 것이다. 수아란이여, 너는 잠자코 죽음이나 기다려라.”

“후후, 예나 지금이나 농담이 안 먹히는 노친네야.”

왜 안도하는거지?

태워죽이겠다는 선언을 들은 순간, 심록의 마음이 기쁨의 빛으로 물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레이가 이를 부득 갈았다.

“말해! 대체 어떤 연유로 영혼을 판 것인지!”

그런데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심록의 마녀가 레이의 물음에 순순히 답변을 한 것이다.

“···나는 풍족한 가문의 영애였느니라.”

“뭐?”

“높은 벼슬을 가진 아비와 규수 집안의 어미 덕에, 어릴 적부터 모자람 없이 살았지.”

“뭘 말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항상 부족했느니라.”

아주 조금이지만 마녀의 목소리가 고양되었다.

“처음엔 벌레였다.”

“하?”

“그 다음엔 시궁쥐.”

“자꾸만 무슨···.”

“흥미가 고양이와 개로 발전하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지. 하지만 그마저도 금방 시시해졌단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고작해야 짐승, 반응이 재미가 없었거든.”

“···.”

“그래서 사람을 가지고 놀기로 했느니라.”

일부러다.

마녀는 내게 작정하고 기억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녀가 어린 시종을 뒷간에서 목을 졸랐다.

조금 더 성장한 다음엔 고혹적인 미모로 순진한 하녀를 홀렸다.

으쓱한 곳에서 입을 맞추는 척 하더니, 이내 뱃속에 식칼을 꽂아놓는다.

심지어는 잘라낸 여인의 혀를 빨고 씹어 먹는 추악한 짓거리까지···.

이어서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청년을 뒤에서 급습한다.

이후로는 수법이 더욱 악랄해져선···.

부랑아를 돈으로 꼬아내 약이 든 술을 먹이고 지하실에 가두기 시작했다.

해가 지날수록··· 계속해서 희생자는 늘어만 갔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난 장난이라도 언젠간 질리는 법이지.”

“넌 처음부터 마귀였던 거로구나···.”

“후후, 나는 단지 평범하지 못했던 거야. 만족을 못했을 뿐이니라.”

“만족··· 이라고?”

“나는 단 한 번도 충족되어 본 적이 없었다. 미각이 둔했기에 아무리 진미를 맛보아도 소용이 없었지. 선천적인 불감증은 제아무리 건장한 사내에게 안겨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나마 절세의 미녀와 몸을 겹쳤을 때, 상대의 절정을 보고 작게나마 즐기기는 할 수 있었지. ···후후, 그러고 보니 어린 여인아. 너는 남자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

“이, 입 다물어!”

“뭐, 아무래도 좋지.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 식사나 성교··· 혹은 생명을 탐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무엇하나 하찮았지. 이제 알겠느냐?”

“···내가 아는 건 네가 미친년이라는 것뿐이야. 네 대가리는 썩었어.”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절망했느니라.”

“···.”

“뒤늦게 내가 저지른 일들을 알게 된 부모는 자식의 이상성을 감추려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나를 지하에 구금 시키더군. 더욱 억누르고 제약하려 했지. 밉더군. 안 그래도 무얼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생은 고통뿐이다. 나에게서 자극을 빼앗는 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났지. 그 자포자기가··· 하늘 너머의 그 분을 불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심록의 몸이 불타기 시작한 것은.

그건 대스승 크레이그나 다른 이들이 한 것이 아니었다.

마녀 스스로가···.

최후의 마기를 응집해 대기의 어떤 성질을 건드린 것이다.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속에서, 마녀는 최후의 한 마디를 읊조렸다.

“···이제 슬슬 너희와의 이야기도 질렸다.”

그것은 부끄러운 뭔가를 숨기기 위한 최악의 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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