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의 장(2)
2.
유성이 가속한다.
지면에 소리가 채 닿기도 전에, 단죄의 창이 보이지 않는 공기의 벽을 갈랐다.
순전히 질량과 높이에만 의지한 원시적인 공습···.
하지만 지상을 향해 내리박힌 그것은, 재앙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투콰아아아아앙!
유성이 또 한 번 거대한 구덩이를 대지에 새긴다.
가공할 폭풍에 마녀의 결계가 순식간에 찢겨졌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레기오네스급 중합체의 3분의 1 이상이 본체에서 분리되었다.
인간의 내장을 닮은 줄기와 잎사귀들이 높게 튀어 올라, 십 수초 뒤에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 다들 무사한가?”
대스승 베누다의 부름에, 우리들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놀랄 일이 끊이질 않는군.
지형이 변할 정도의 대충돌이었을 터인데, 유성의 내부는 별다른 타격이 없다.
거짓말 같아, 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이란 말인가?
접촉과 동시에 선체가 살짝 흔들린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충격이 분산된 것처럼 보였다.
“좋아, 다들 멀쩡해 보이는군. 그렇다면 얼른 움직여라. 별의 공주님이 최후의 기력을 짜내서 우리에게 활로를 열어주었으니.”
남은 것은 바깥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본래 우리의 목적을 실행하면 되지.
바로 ‘심록’의 토벌을···.
<칙, 치직···.>
유성에서 이탈할 방법을 물으려 했지만, 표류자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정말로 그녀는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내게 전달된 것은, 단지 표류자가 남긴 지식의 편린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왼팔을 들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유성은 나의 응답을 받아주었다.
쩌적···.
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흡사 사람의 흉곽을 닮은 지붕이었다.
이제 하늘에 거림직한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선의 뼈가 젖혀지며 전장으로의 길이 열린다.
유성이 완전히 펼쳐지자, 유성이 만들어낸 창공의 궤적으로부터 빛이 흘러 들어왔다.
“자, 가자. 애송이들아.”
하지만 그의 지시가 내려오기도 전에, 나는 이미 한 발자국을 내딛고 있었다.
“건방진 놈 같으니, 날 재치고 맨 먼저 앞장설 생각이냐?”
“···.”
“시험해보고 싶은 모양이로군? 그 유성의 파편을···.”
성격이 비슷한 탓일까?
대스승 베누다는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허나 그 뿐만은 아니야, 나는 표류자의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 지상에서 어떤 이변이 벌어지는 걸 목격했다.
표적은 분명 지네의 중합체였다.
그러나 이 주변에는 그것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숨은 것이다.
유성이 낙하하기 직전까지, 센티피디아는 몸의 반신을 희생할 각오로 땅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대로···.
쿠오오오···!
“네놈···들!”
비참한 꼬라지다.
절반 이상의 꼬리가 도려 나가진 상태···.
이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다리가 짓뭉개진 채였지만, 그래도 지네의 마물의 아직 건재했다.
여전히 위협적인 두 앞발을 휘두르며, 녀석은 본성을 드러냈다.
“용서 못해··· 우리의 보금자리를, 그분께서 내려주신 나의 영토에 이런 끔찍한 짓을 하다니!”
사람의 흉내를 내는 건 그만둔 모양이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 거죽을 사정없이 찢어버리더니, 그 속에 감쳐진 추악한 몰골을 보였다.
“죽일 테야··· 다른 아이들에게 넘기지 않아, 너희의 고기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거야! 뼛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씹어먹어 주마!”
가로로 갈라진 벌레의 얼굴.
붉게 충혈된 겹눈과 가로로 돌출된 턱에서 흉물스런 아가리.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그것이 반가웠다.
차라리 잘 되었다.
왜냐하면···.
괴물이라면 괜찮으니까.
적어도 이형으로 뒤틀려있다면, 나는 한 순간이나마 놈들을 베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기에.
‘어설프게 인간을 닮아선 곤란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 미숙하다.
대스승들이나 레이처럼 완전히 마음을 차단하지 못한다.
프라이케르 가이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자아는, 사회에서 소외당한 약자들이기에···.
그들의 비극적인 인생을 일체화되어 목격한다면, 그 누구라도 진심으로 미워하지 못할 것이다.
이성이 현실을 간파해낸다.
엄밀히 나쁜 것은 이들이 아니라는 걸··· 무의식적이 떠올리고 만다.
책임을 문다면, 그것은 마녀의 탓이다.
죽음의 운명에서 구원해주었단 명목으로, 이들의 생명은 취한 자의 잘못이지.
···빌어먹을, 외면하고만 싶다.
도덕과 윤리를 내다버리고, 그저 눈앞의 모든 것들을 도륙해버리길 바란다.
그런데도 자꾸만 마음 한 구석에서 적들에 대한 동정마저 끓어올랐다.
표류자에게 넘겨받은 유산이, 나의 ‘정신감응’을 평소의 수십 배 이상 증폭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와라.”
나는 도끼를 쥐었다.
“너 혼자서 할 수 있겠느냐?”
망할 늙은이···.
도와줄 생각도 없으면서, 날 시험해볼 셈이다.
대스승 베누다는 팔짱을 낀 채 내 뒷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게 내 대답은 필요 없었다.
직후 센티피디아의 앞발이 내 머리를 노리며 날아왔기 때문에.
콰앙!
하지만 공격은 빗나갔다.
미숙하게나마 대스승 알베르트을 따라한 기술이 통한 덕분이었다.
아무리 대지를 양단하는 거대한 칼날이라 할 지 라도, 비현실의 경계까지 넘진 못하지.
그림자에 녹아들면, 한순간만큼은 어떤 파괴력이라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아니꼬운 자식 같으니, 흘리기까지 터득하고 있었나?”
대스승 베누다는 감탄하듯 말했지만, 거기 담긴 본의는 칭찬 같은 게 아니었다.
가루의 세밀한 조절이 어려워, 나는 과할 정도의 양을 흩뿌리고 말았다.
그 결과, 몸은 무사했지만 입고 있던 코트의 옷깃이 너덜너덜해졌다.
부우웅!
이어서 내 모자가 토막이 난 채 날아갔다.
지네 마물의 연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그림자를 두르고 공격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해, 위험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앞발은 몸을 날려 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너도, 그 노인도! 어떻게 그 작은 몸으로 내 힘을 버텨낼 수 있는 거야?”
“···.”
“죽어, 죽어버려! 루우 라는 바쁘단 말이야! 널 죽인 다음, 기기 오라버니를 괴롭히고 날 따돌린 쥐새끼같은 늙은이까지 처리해야 된다고! 그러니까, 어서!”
그런가?
아직 대스승 알베르트는 무사한 모양이었다.
역시 이따위 정박아 중합체에게 당할 그가 아니지.
···헌데, 어울리지도 않게 기술 따윌 써서 오히려 성가시게 되었군.
벌써부터 몸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대스승 알베르트의 ‘흘리기’란 그만큼 가루와 정신력을 소모하는 것이었다.
“흠!”
나는 오른팔에 유성의 파편을, 왼팔에 아이라의 도끼를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순차대로 휘둘렀다.
빠각!
유성의 파편이 놈의 외골격에 박혔다.
이어서 그 뒷목에 아이라의 도끼를 꽂아 넣자···.
콰지직!
사방에 파편이 튀며, 지네의 참격이 역방향으로 튕겨나가졌다.
“캬악!”
이 괴물 놈···.
앞발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는데, 되받아쳐도 충격이 없는 건가?
···아니, 그렇진 않다.
단지 발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거대 거미 중합체보다 성가시다.
물론 녀석은 멍청하지.
아무리 봐도 지혜나 계략으로 덮쳐오는 적은 아니다.
궤도도 뻔히 보이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 패턴이지만···.
한 번의 휘두를 마다 분명한 살의와 집념이 느껴진다.
이것은 감정 없이 움직이던 중합체와는 달라, 본래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힘을 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녀석은 필사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적도 한계였던 것이다.
유성에 받는 데미지는 물론, 육체가 견딜 수 있는 부하를 한참 전에 넘어서고 있었다.
“죽어줘, 어서··· 제발 죽어달란 말이야!”
애원하지마라.
내 앞에서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로 울부짖지 마라.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네 녀석에게 씹어 먹힌 이들이 비명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런데 뭐가 억울한 거지?
너도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빼앗아갔지 않은가?
“아, 아아! 아아아아!”
허무한 결말이군.
지네의 마물의 육체가 허물어진다.
외골격이 깨지고 내부에 드러난 근육이 끊어졌군.
더 이상 균형을 유지하지 못해, 센티피디아의 육중한 몸이 기울어졌다.
“싫어··· 도와줘. 누가··· 누군가 날 구해줘.”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중합체의 육체가 녹아내린다.
여인의 상반신은 양팔로 땅을 기기 시작했다.
고깃덩이로 변해가는 벌레의 주검에서 이탈하려 부단히 애를 쓰는군.
놀랍게도 배꼽 아래, 다리까지 분리되고 있어.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녀석은 지네의 몸통에서 완전히 떨어져서 생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마물은 인간이던 시절에도 다리가 없었지.
게다가···.
“오지 마! 나한테 다가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아아아!”
나는 그걸 잠자코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비로소 죽음을 예감했다.
“···남길 말은 있나?”
“엄마···.”
“뭐?”
“엄마는 거짓말쟁이··· 새로운 몸을 얻는 나는 무적이라고··· 아무도 나한텐 이길 수 없다고 했었으면서···.”
아이의 음성.
양 옆으로 쪼개진 지네의 입 안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궁지에 몰리자 유아퇴행이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모습이 전부 강한 척하던 위장에 불과했던가?
나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충동적으로 도끼날을 휘둘러, 당장 녀석의 목을 날려버렸다.
높은 순도를 가진 유성의 파편이 가진 힘 때문인지···.
도끼의 표면에 닿자마자 그것의 몸은 그대로 말라붙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 튄 핏물마저도, 그대로 검게 변하더니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졌다.
···뿌득!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분노가 끓어오른다.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에, 지네의 마물은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평범한 가족에게서 태어나, 남들이 누리는 지극히 당연한 삶을 살길 바랐지.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미소 가득한 행복을 소망했다.
···누구냐?
어떤 빌어먹을 것이···.
이 불행한 어린애의 정신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 거지?
심록···.
나는 아직 만난 적도 없지만, 벌써부터 놈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무식한 싸움 방식이군.”
어느새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져,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대스승 베누다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더니.
“10점 만점에 1점이다. 마음에 동요가 넘치는군. 기술은 허술해. 육체는 힘만 넘칠 뿐 다룰 줄을 몰라.”
원치도 않는데 거침없는 평가를 시작했다.
“뭐, 그래도 잘 했다. 승리만큼은 칭찬해주지. 이긴 건 이긴 거니까.”
하지만 그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주변에는 마기로 가득하다.
유성이 떨어져서 생긴 구덩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 요마들이 들끓는다.
처음 레이와 내가 쓰러뜨렸던 눈 없는 개구리를 닮은 사역마들의 무리부터···.
아직 몸이 온전한 레기오네스급 중합체, 즉 마계의 숲 그 자체도 마수를 뻗어오고 있었다.
아직도 증식하고 있는 그 수는 눈짐작으로도 200마리 이상···.
빈틈없이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군.
‘제기랄···.’
다리가 후들거린다.
공포 때문이 아니라, 가루를 지나치게 소비한 후유증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이 상태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허나 내 몸에 어떤 부하가 걸렸던 간에, 대스승 베누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나를 닦달했다.
“근성이다, 애송이. 아직 갈 길이 멀다.”
입으로 뱉어내는 것과 진심이 다르잖아, 이 개 같은 영감···.
당연하게도, 그는 나 혼자만 싸우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마녀에게 원한을 가진 사냥꾼이 여덟 명이나 더 있었으니까.
“자, 다들 몸을 풀어라. 이 얼빠진
애송이 놈만 활약하게 둘 순 없지 않나!”
칫, 레이가 이를 악문 채 내려온다.
커틀러스, 팔시온, 매서가 관절을 뺀 몸으로 전투를 준비했다.
툴루이라 불리던 마른 남자는 장창長槍을.
휘룡이란 이름의 수염 난 사내는 훅이 달린 서양식 폴암polearm을 들었다.
“실컷 날뛰도록. 전원··· 그림자를 두르는 것을 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