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77화 (77/186)

인계의 장(1)

1.

“세상에,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군!”

바깥을 비추는 창을 보며 턱을 괴더니.

“흠, 학자 나부랭이가 아닌 나조차 감탄할만한 기술이군. 숙련된 목수는 나무만 있다면 뭐든 흉내내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엄두가 안날 정도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오래 전 대스승 베누다는 한 때마나 장인으로서 살았었기에.

“한심한 애송이로군. 또 그 이상한 힘에 취해있나?”

“대스승 베누다, 지금 뭐라고···.”

“흥, 시치미 땔 것 없다. 네가 사람의 감정을 일부 읽는 힘이 있단 건 짐작하고 있었다. 지령을 통해서 크레이그 놈이 말해주더군.”

“역시··· 그랬습니까?”

“그래서 나에겐 뭐가 보이지?”

“···집, 오두막. 그리고 끌을 잡고 나무를 다듬는 건장한 남자.”

“오호, 젊었을 때의 내 모습인가?”

“아주 일부입니다.”

“용하다. 그래서 공주님이 너를 선택한 건가?”

“아마도··· 표류자는 저만이 유산을 건네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절묘하게 들이 맞았군.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번 임무에서 크레이그 자식이 너를 무리하게 동행시킨 게 정답이었단 말인가?”

대스승 베누다가 유쾌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호쾌함과는 달리··· 이 무리에 휘말리고만 레이와 가면의 삼형제, 그리고 세 명의 제자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실은 나도 그랬다.

모든 것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다.

특별히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에는···.

제아무리 몸이 가벼운 새라도 날갯짓을 멈추는 순간 지면으로 곤두박질친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이윽고 강물로 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세상만물은 그 이치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떠오른다.

나선의 형상을 한 외계의 배가 땅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그것은 천장의 토벽을 가르며 부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운 입자도 흘겨버린다.

어떤 무거운 바위도 튕겨낸다.

내부에서도 바깥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는 신비한 창문이 그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무시무시한 광경···.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가슴 속에서 끌어 오르는 이 묘한 고양감은?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마법··· 따위가 아니다.>

그래.

표류자가 강조하는 말의 요지는 충분히 알겠다.

별을 건너는 나선 형태의 배···.

그 어떤 작용도 보이지 않는데도 허공으로 떠오르는 신묘한 기술.

이 모든 게 고도의 과학이란 말이지.

엄밀히는 우리가 농사를 위해 지렛대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단 이야기로군?

하지만 나는 가벼이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정말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과거 표류자의 동족들이 맹목적으로 숭배 받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실감이 없어.

언젠가 우리들 인간도 이 영역에 도달한다니, 그런 꿈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틀···림없다. 나는 보았으니.>

무얼 말이지?

<···강철로 된 새가 하늘을 지배하고, 말없이 움직···이는 마차가 길이 이어진 지상의··· 모든 도시를 이어준다. 그것이 본디 너희 인류가 도달···했어야 할 진짜··· 미래다.>

표류자, 당신의 말은 너무 어려워.

하지만 나는 알고 싶다.

그쪽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지운 기억들이··· 너무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표류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아직 허락되지 않은 지식이라고 했지만···.

이 원리를 알게 된다면, 많은 것이 변할 지도 몰랐다.

<미안···하다. 하지만 수많은 금기를 저지른 우리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원칙은 있···다. 너희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지. 그러니··· 너무 안달하···지 말지니. 나를 믿어···다오. 언젠가 꼭 도래한다. 너희의 기술···은 먼 훗날에 이 경지까지 오를··· 것이다.>

뭔가를 가르치는 이들은 모두 닮은 면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내 호기심을 타이르는 표류자의 목소리에서, 어쩐지 대스승 크레이그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우리가 들어온 마녀의 결계는 이런 모습이었던가?’

어느새, 우리들이 탄 유성의 배는 지상의 풍경이 전부 내려다보일 정도로 하늘 높이 올라있었다.

움직이는 그림을 통해 주변의 상황이 드러나는군.

동서남북, 사방에서 거대한 무리가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마치 청록빛 파도 같다.

어마어마하군.

유성이 만들어낸 장막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지만, 그래도 굉장히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숲이 움직이고 있었다.

“왜 그러지, 애송이? 레기오네스Legiones급 중합체가 그렇게 신기한가?”

“레기···오?”

“죄악의 결정체지. 빌어먹을 정도로 오래 산 마녀 중엔 드물게 자신의 결계를 통째로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사역마를 부리기도 한다.”

“···.”

“이제 알겠나? 저만큼 부피가 될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수의 제물이 희생되었는지 말이야!”

지금까지 나는 마녀에게 동정을 품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건 마음을 가진 사역마인 프라이케르 가이스트에게도 마찬가지였지.

모두 사람이던 시절의 애절한 사연이 있단 건 알겠다.

그들이 인간을 향해 얼마나 깊은 증오를 품고 있는 지도 이해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적을, 마녀와 그 부하들을 내버려둘 수 없다.

왜냐하면, 놈들을 방치하면 앞으로도 과거와 같은 끔찍한 비극이 계속해서 일어날 터이니.

‘표류자에게 전달받은 뭔가가··· 내 능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가공할 슬픔과 원한이 흘러들어온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이미 죽은 이들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표류자는 그것을 사념이라고 말했다.

“잠깐, 애송이··· 네놈!”

대스승 베누다는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뭔가 끔찍한 것을 본 것처럼질겁을 했다.

“···빌어먹을! 이 몸은 운명 따윈 믿지 않는다. 그걸 인정해버리면, 나의 자식들과 부족이 놈들에게 찢겨진 것이 당연한 섭리란 걸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마니까! 즉··· 이것은 필연이다. 단지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사악한 계획의 일부라는 것 일뿐!”

이어서 그는 내 멱살을 잡았다.

그리곤 다른 한 손으로 내 오른팔까지 낚아챘다.

나는 여전히 자루를 든 상태였기에, 도끼의 날이 그의 얼굴과 가까운 위치까지 올라갔다.

“···역시 물들어가기 시작했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애송이, 너는 아직 네 몰골이 어떤지 모르는 눈치구나.”

대스승 베누다는 그것의 각도를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번쩍이는 푸른색 날에 내 얼굴이 비춰졌다.

“자, 봐라. 이식을 받지 않았던 네놈의 다른 쪽 눈을!”

···이 면상은 뭐란 말인가?

마치 흉악한 마물의 꼴.

그곳에는 흰자가 남아있지 않은 시커먼 표면만이 보였다.

“그것은 이미 암안暗眼이다. 심연을 오래도록 바라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경지··· 정안조차도 간파할 수 없는 어둠 너머의 것까지 비추는, 인간이 보아선 안 되는 세계를 엿보는 눈이지. 애송이 주제에··· 네놈은 미숙한 채로 아스트랄과 대면할 수 있게 되고만 것이다!”

말 그대로였다.

정안이 없던 눈동자의 색깔이 반전되어 있어, 어둡게 칠해진 공막 안에 탁해진 홍채만이 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쪽 눈의 정안만큼은 무사하다니···.”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과거에도 너 같은 사례는 없었다. 오래도록 대스승의 입장에 있던 나조차 처음 접해보는 일이지. ···제길, 확신을 가질 수가 없군. 네가 이렇게 변한 것은 내 실책인가? 코앞에서 소중한 인재를 망가뜨린 것이냐? 아니면··· 음험한 크레이그 자식이 말했던 것처럼, 애송이··· 네가 우리의 미래를 바꿀 무언가란 말인가?”

겨우 대스승 베누다는 손을 거두었다.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건지··· 크레이그 자식은 너의 성장에 기대했다. 거기 작당하고 있던 알베르트도 네 능력의 비밀을 풀고자 했지. 그래서 였을까, 두 놈은 다소 너를 조심히 다루기로 한 모양이더군. 모르는 척하면서 뒤에선 망할 꿍꿍이를 꾸민 거지.”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해져오는 감정은 그가 가진 다른 두 대스승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나에게 품은 안타까움과 염려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걱정은 진심이었다.

“대스승 크레이그가 나에게 뭔갈 숨기고 있었단 말입니까?”

“정황상 그렇다고 봐야겠지. 놈들은 이미 알았을 것이다. 네가 유성과 접촉하면 어떻게 될 지를···.”

“잠깐, 대스승 베누다! 그건 오해입니다! 대스승 크레이그께선 덩치를 생각해서···.”

레이가 불쑥 나와 대스승 베누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녀는 급히 내 눈치를 살폈다.

당황한 얼굴이 그대로 보여, 오해를 풀고자 필사적이었다.

“믿어줘, 덩치. 결단코 그런 게 아니니까. 우리는 단지···.”

“닥쳐라, 연희! 이제 와서 크레이그 놈을 편 들다니, 네 녀석도 한패인 것이냐?”

“들어주십시오! 이건 대스승 크레이그도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덩치··· 빅터는 저의 복수를 통해서 보다 심心의 원리에 가까워졌어야 했습니다. 정안의 능력이 한 단계 더 발현될 수는 있을 거라 여겼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빠르게 도달할 거라곤···.”

“역시 뭔가 알고 있었던 것이군.”

“···비밀로 했기에 대스승 베누다께선 모르시겠지만, 대스승 크레이그께선 과거에 또 다른 유성의 주인과 접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막 이식을 받았을 무렵이었죠.”

“···뭐라?”

“그 유성은 파손이 심했기에, 지금과 같은 경험은 할 수 없었지만··· 별의 방문자가 뭘 바라는 지는 들을 수 있었지요. 지금처럼··· 그들은 ‘그릇’의 자격이 있는 믿을만한 인간을 원했습니다. 대스승 크레이그는 그 존재와 교감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의 저는 어렸기에 그게 뭘 의미 하는 지도 몰랐지만···.”

“크레이그, 이 망할 자식이···.”

그래서였나?

이 안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레이가 묘하게 평정심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되면 나도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레이 사저,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지?”

“···아직은 때가 아닐 거라 생각했어. 이번 임무에서 유성의 파편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한 마디를 꺼낼 때마다 레이는 내게 깊은 죄책감을 품는다.

그녀가 날 속일 리는 없어, 결국 대스승 크레이그의 진심을 알아내려면···.

당장 이 모든 사태를 내 손으로 끝마치는 수밖에.

<···대, 화···는 충···분히 했···는가?>

잠깐 사이, 표류자의 목소리는 이제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고도··· 계속해서 상···승···.>

유성의 높이가 더욱 올라간다.

지상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구름보다 위에 까지 도달했다.

<돌,격 형태로 전···환···.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도록. 벽, 에 매달···려. 떨어···지지 말···라고.>

나는 이 다음에 표류자가 무엇을 할지를 깨달았다.

메다꽂을 셈이다.

지면에 뾰족한 나선의 뱃머리를···.

적에게 가장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구간으로.

···이어서 표류자의 목표물이 떠오른다.

움직이는 그림 속에서 확대되는 풍경이, 저 멀리 구석진 곳의 새빨간 점을 향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앞서 상대했던 어떤 마물이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바로 무수한 거대한 붉은 기둥을 가진 지네 여인···.

센티피디아 였다.

<안심, 하라··· 무사할, 것이···니. 그대··· 이 배에 머무는 너희, 모두···. 나는 지켜··· 내겠다. ···놈, 들이 빼앗으려는··· 이 별의 모든··· 생···명을!>

표류자의 목소리는 이제 현재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그 의식은 아주 오래 전···

그들의 동족이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의 순수한 각오 그대로였다.

이윽고··· 표류자는 애정하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미래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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