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74화 (74/186)

유성의 장(5)

6.

겉으로 드러난 유성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여러 개의 층계로 나누어진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유성의 내부에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복도가 존재해, 우리는 그 후로도 몇 분간은 더 길을 찾아야 했다.

전혀 인간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보이지 않건만···.

놀랍게도 이 구조는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오고 갈 수 있게 설계된 것만 같았다.

“겁먹었나, 애송이?”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푸하하하! 진짜 황당한 건 지금부터 일 텐데.”

우리는 계속해서 대스승 베누다의 뒤를 따라 갈라진 균열 사이로 들어섰다.

빛이 차단된 세계, 사방이 어둠 천지다.

정안이 발하는 신비한 힘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분 나쁜 통로 따위···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으리라.

허나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불현 듯 어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빅터, 너는 무엇이 가장 겁나느냐?’

언젠가 아버지는 말하셨다.

나는 거기에 건방지게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서운 것 따윈 없다··· 고 했었지.’

당시 어린 나이였으나 충분히 산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독을 가진 벌레도, 흉포한 산짐승도 충분히 봐왔기에 여의치 않았지.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충분히 배웠다.

더욱이 든든한 아버지가 항상 곁에 머물러주는 유년기의 아이 입장에서는, 놀이터나 다름없는 공간에 스며있는 공포의 그림자를 찾아내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당부했다.

‘산이 두려운 것은··· 그곳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아버지는 숲에서 돌아가시는 걸로 그 말을 직접 증명하셨다.

그리고 수 년 뒤···.

그 가르침이 뇌리 속에서 희미해갈 때쯤, 클라리스가 이어서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가끔 사람은 공포를 이겨내기엔 너무나 무지할 때가 있어. 아는 게 없으니, 자기가 무서워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지. 하지만 그렇기에 그걸 극복하려고 자꾸만 파고들어.’

즉, 탐구는 끝없는 미지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낼지는 모른다.

때론 역사의 혁신을 이끌어내 이바지하고, 또 다른 이면에선 수많은 이를 죽이는 악마의 지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스럽게, 무심코 거기에 이끌리고 만다.

지적 호기심.

그 강렬한 충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학자로 만든다.

과거에 선지자라 불린 이들은 그 극단에 서 있지.

아버지와 클라리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선 대스승의 영향까지 받았던 것일까?

이제는 나또한 그런 성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내 몹쓸 성격 탓이다.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성가신 본능이라도 타고난 모양이지.

‘하지만 클라리스는 나의 이런 면을 칭찬해주었다.’

미지는 공포뿐만이 아니라, 용기를 만들어낼 계기 또한 되는 것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물체···.

유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에게서, 근래 거의 잊고 있었던 심연의 감정을 떠올리고 말았다.

나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애써 대스승 베누다의 어깨와 나란히 걸었다.

‘그런데··· 정말 이것은 뭐란 말인가?’

시퍼런 금속 외피 안에 동물의 내장 같은 검붉은 속살이라니···.

내부를 들여다보자 축축한 습기마저 느껴졌다.

자세히 관찰하니 사방에 돌기와 기분 나쁜 구멍이 나 있어, 나는 무심코 손을 뻗고 말았다.

허나 그 끝이 물체에 채 닿기도 전에, 대스승 베누다는 순식간에 내 팔을 낚아챘다.

“신비에 넋이 나간 얼굴이로군. 처음 보는 물체에 가지는 호기심 쪽이, 두려운 감정 보다 앞서는 건가? 하지만 겁도 없이 맨손을 가져가는 건 그다지 영리한 짓이 아니다.”

그러면서 대스승 베누다는 오히려 자신의 팔을 붉은 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봐라.”

순간 주변이 떨리기 시작했다.

베누다가 짚은 자리에 뭔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무수한 벌레가 북적이는 것 마냥 물결이 일더니, 순식간에 벽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것이다.

“흠!”

콰직!

그것들은 대스승 베누다의 하완을 휘감고 안쪽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알기 쉬운 방어기제다. 자세한 건 몰라도 뭔가가 닿으면 물어뜯게 되어 있는 모양이지.”

몸소 보여줄 필요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의 기지는 놀라웠다.

‘팔뚝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가시가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는군.’

잘 보니 뚫린 것은 피부의 겉면 뿐이었다.

생긴 상처에 비해 출혈양도 얼마 없다.

“뭐, 함정치곤 위력은 고만고만하지만 말이다.”

그가 팔을 잡아당기자, 벽에서 튀어나온 촉수들은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행동에 거침이 없군.

이게 체體의 가르침?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뿐인가?

그렇다면 이건 무모하면서도 터무니없는 묘기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육체에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짓거리였다.

“대스승이시여, 또 그런 위험한 시범을 보이십니까?”

아니다 다를까, 앙리란 여인도 그의 황당한 행동을 지적한다.

허나 대스승 베누다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이.

“흥, 이 멧돼지같은 놈이 예전에 내가 하던 짓을 그대로 하기에 가르쳐준 것뿐이다.”

“혹여 병균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약해빠진 소릴. 나는 잔병에 질 정도로 가벼이 단련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기합과 근성이다.”

그늘에 가려져 육안으로 확인할 순 없었지만, 뒤를 따르는 제자들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게 뻔히 보일 지경이었다.

“언제나 땀내 나는 정신론이지 말입니다···.”

“이런, 젠장! 근성이니 나발이니. 엄밀히 따지면, 그건 심心의 유파나 지껄일 대사 아닙니까?”

“닥쳐라, 애송이들아. 나는 너희에게 그딴 식으로 말대답하라 가르치지 않았다.”

“하여간 망할 꼰대지 말입니다···.”

“내 말이.”

“이 썩을 놈들이··· 잔말 말고 따르기나 해라.”

어차피 감염의 걱정은 없고 알고 있다.

우리의 몸과 일체화된 마물의 기생충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다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이들은 전에도 유성의 내부를 방문해본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굉장히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기운··· 어쩐지 모르게 사람의 감정을 닮아있다.’

사방에서 극도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깊은 절망이,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가라앉은 권태도 함께···.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콕 집어서 말할 순 없다.

적어도 적의나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그런 면에서만큼은 환대에 가까웠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이건 일종의···.’

구원을 바라는 것인가?

어쩌면 구조요청인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곧 그게 얼마나 안이한 생각인지를 깨닫는다.

‘멍청한 소리. 어딘지 모르는 세계의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존재가, 이 별의 인간들에게 도움을 바라는 거라고?’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유성 안에서 풍겨오는 감정의 흐름을 온전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

오히려 속임수가 아닌가?

그렇게 접근하자 막연한 불안감이 든다.

아뿔싸···.

이미 너무 깊게 들어왔어, 빠져나가기엔 늦었을지 모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가 나아온 길을 확인했다.

그러나 입구는 오래 전에 닫힌 모양인지,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레이 사저.”

“왜?”

“나쁜 예감이 든다.”

“뜬금없는 소릴 하네. 세상에서 가장 예민이란 단어랑 어울리지 않는 게 바로 너인데.”

“농담이 아니다.”

“그래. 사실은 나도 영 꺼림칙해. 무슨 악몽을 꾸는 기분이야.”

“···대스승 베누다, 여긴 정말 안전한 겁니까?”

나는 아마 동요를 숨기지 못했으리라.

떨리는 목소리가 내 불안한 본심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대스승 베누다는 앞니가 다 보일 정도로 씨익 웃더니.

“그야 물론 아니지.”

“예?”

“최초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 동행했던 용병대의 얼간이들이 일곱이나 죽었다. 정신없이 사방에 총을 쏘고 검을 휘두르다 가시의 희생양이 되었지.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때도 비슷했어.”

“그런데 왜 우릴 이곳으로···?”

“계속 듣거라. 겨우 일곱 번째 방문에 이르러서야 겨우 접속이 성공했다. 변덕쟁이 공주님이 마음을 열어주었거든. 우리가 불청객이 아니란 걸 알아주었던 게다.”

또 그 소리다.

별세계의 공주라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

“그녀는 어떤 조건을 걸었지. 하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자, 그리고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줄 그릇을 찾아 달라면서.”

“그건 또 무슨···.”

“대변자는 급한 대로 우리 앙리가 맡기로 했다. 저 아이는 오래도록 세계 각지를 돌며 여러 언어를 익혔기에, 우리 중 그 누구보다 어휘가 뛰어났으니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도 나머지 ‘그릇’이란 조건만큼은 아직 모른다.”

“···.”

“아무튼 그 약속만 지킨다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유성의 파편’을 제공한다고 장담하더군.”

이젠 질려버렸다.

나는 애새끼들의 유치한 동화를 듣고 싶은 게 아냐, 나에겐 당장 납득할 만한 해답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일행은 걸음은 이 시점에서 겨우 멈추었다.

“곰 같은 애송이. 지금 소개하도록 하마. 그녀가 바로 이 영역의 주인이다.”

그녀··· 라고?

고개를 들어 올린 나는 대스승 베누다의 소개에 진저리를 쳤다.

이게 어딜 봐서 공주님인가?

대체 어찌하면 감히 이딴 비유를 들 수 있단 말이지?

‘매달려 있는 건가?’

천장에 붙어 축 늘어진 뭔가가 보인다.

그것은 투명한 막에 둘러싸인 채 몸을 말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결코 인간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모습을 엿볼 수가 없다.

달팽이처럼 물렁한 회백색 몸통엔 역겨운 점액이 끊임없이 흐르고, 바닥을 향해 축 늘어진 무수한 촉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얼핏, 촉수 다발이 늘어진 모양새가 산발의 소녀를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악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찾아내려 발악하는 내 뇌리가 만들어낸 거짓 형상에 불과했다.

“마물···!”

그 모습을 보자마자, 레이는 즉각 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단번에 참격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대스승 베누다와 앙리, 그리고 나머지 두 제자가 앞을 막아섰다.

“검을 거두어라, 크레이그의 애제자여.”

“왜 막으십니까, 대스승 베누다? 설명해주십시오! 이 괴물은 대체···.”

“괴물이 아니다. 그건 유성의 주인에게 실례의 말이지.”

“주인···이라고요?”

“그래. 그녀는 아주 고차원적인 존재다. 예상컨대, 이 운석은 도구에 불과하다. 이 별까지 당도하기 위한 거대한 배였을 뿐이니.”

배?

하늘에서 떨어진 이 돌덩이가···.

사실은 별바다를 건너기 위한 금속의 선박이라고?

머리가 혼란스럽다.

정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까지 온 것 같아, 나는 급히 이마를 짚어야만 했다.

아니, 사실은 그 뿐만이 아니라···.

유성 안에서 감돌고 있던 감정의 폭풍이, 순식간에 한 곳으로 응축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또한 마음을 가진 생물체란 말인가?’

말 그대로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사람과 거의 다르지 않은 마음의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한 슬픔과 탄식?

말도 안 된다.

직접 대면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군.

이것은 흡사··· 우리들 마녀 사냥꾼들이나 품을 법한 감정이 아닌가?

“너무 경계할 필요 없다, 애송이. 친구라고 말하진 못해도, 최소한 적은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마기를 중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다. 이용가치가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확실히 재차 확인해도 적개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스승 베누다나 다른 이들은 파악하지 못한, 또 다른 본심만이 드러난다.

‘왜지? 대체 뭘 우리에게 경고하고 싶은 거냐?’

설마하니 내 의문에 답한 것을 아니리라.

하지만 천장의 생물은 하필 그 타이밍에 촉각의 끝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대스승 베누다와 앙리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호오, 이런 반응은 처음이군. 그녀가 스스로 우리에게 의사를 보이다니.”

“대스승이시여. 아무래도 저 분께서 소통을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앙리여. 그녀와 몇 번인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별 세계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나?”

“···약간이지만.”

“괜찮겠느냐? 아주 잠시 동안 접촉한 것만으로도 너는···.”

“괜찮습니다. 저만이 할 수 있는 임무이기에, 마땅히 감내해야할 일입니다.”

“길어봐야 5분, 그 이상을 초과하면 네 목숨도 위험해진다.”

“최대한 견뎌내 보이겠습니다.”

이어서 앙리는 모자를 벗고, 오른손을 자신의 목 뒤로 가져갔다.

길게 뻗어 나온 회색머리칼을 옆으로 쓸어내리더니···.

목뼈와 두개골이 이어진 경계를 주무르더니···.

쩍, 쩌적!

그녀는 뒤통수에서 큼지막한 조각을 하나 후벼 파냈다.

놀랍게도 그것은 후두골의 일부였다.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골에 균열을 만들고, 스스로 구멍을 뚫는 이 앙리라는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벌어진 그녀의 목뒤를 향해, 흐물거리는 이계의 손길이 향했기에···.

“···크, 아··· 아흐윽!”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별세계의 공주란 존재가 뻗은 촉수에서 무수히 많은 얇은 실이 뿜어져 나오더니··· 여지없이 앙리의 머리속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가녀린 그녀의 몸이 경련한다.

대비할 준비도 못한 채, 나는 있는 그대로 그녀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 가공한 아픔은 뇌 깊숙한 곳까지 외계의 존재가 스며들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앙리의 몸은 축 늘어져,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협조에 감사한다. 두 발로 걷는 자들이여.”

부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정신을 잃은 앙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표류자···. 에테르의 망망대해에서 오래도록 그대를 기다려왔다.”

이어서 촉수들의 뭉치가 한쪽을 가리킨다.

주변의 사람들은 무시하고 오로지 나만을···.

“날··· 기다렸다고?”

그녀는 눈에 흰자를 뒤집은 채, 감정이 배제된 음성을 계속해서 뱉어냈다.

“하늘을 보라.”

“···뭐?”

“별을 보라.”

순식간에 사고가 얼어붙었다.

“우주를 보라.”

왜냐하면, 나는 이 대사를···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심지어 이어질 마지막 문구마저도 알고 있었다.

“지혜는 저 너머에서 내려올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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