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장(1)
1.
정신감응 능력에 익숙해지면서 알게 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떤 인간이라도 항상 일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고.
오히려 이 힘이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게 두 번째였다.
‘나는 대스승 알베르트를 오판했다.’
일견, 첫인상만 보고 점잖은 노학자라고 생각하고 말았지.
동방의 역사와 요녀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넋이 나가버렸다.
뿐만 아니라, 대스승 크레이그에게 내가 품고 있던 존경심도 한몫 했으리라.
같은 대스승인 그였기에 당연히 믿을만할 것이라고 말이다.
허나 그의 사상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에 있었다.
‘의술에 평생을 바친 자가 마도魔道에 빠지면 이렇게 되고 마는가?’
지금, 그의 세 제자는 늘어진 관절을 스스로 재조립하며 앞장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대스승 알베르트가 지시한 경계와 피치 못할 상황을 대비한 방패막이 임무를 그대로 수행하는 중이었다.
‘저 놈들도 마냥 정상은 아니다.’
살점 밖으로 튀어나온 뼛조각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역방향으로 뒤집어진 손가락을 맞추는 꼴을 보고 있자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다 아플 지경이야, 저만큼 몸뚱이가 뒤틀렸는데 멀쩡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지.
그러나 그들에게서 전해져오는 감정의 파동은 지극히 안정적이다.
고통의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엿볼 수 있는 건 기묘할 정도로 증폭된 사명감과 의지뿐이었다.
그 한 가지만 보았다면, 저 삼인방의 정신력은 레이 사저를 상회할 정도였다.
대체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것일까?
그에 대해서 대스승 알베르트는 으스대듯 짧게 설명했다.
커틀러스, 팔시온, 매서의 신경에는 특수한 마취가 항상 동반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었네. 딸아이가 받은 축복을 내 제자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고 말이야.”
무통증을 축복이라 부르는 시점에서 대스승 알베르트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망가진 듯 보였다.
되물을 필요조차 없어,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쯤에서 확신했다.
도리스의 이상성은 결코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걸.
그녀가 내비치던 비정상적인 가학성은 틀림없이 대스승 알베르트에게 책임이 있었다.
이런 인간 밑에서 제대로 된 양육이 가능할 리가 없지.
젊은 마녀 사냥꾼들을 지도하는 자로서의 입지는 완고할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기랄, 새삼스럽게 도리스가 동정이 갈 정도다.’
물론 그녀에게 남은 응어리는 그대로다.
그러나 정신 나간 년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친부가 저 모양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아가씨로 자랐을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과연 누구의 탓인가?’
그는 마녀에게 대체 얼마나 격한 증오를 품고 있기에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만 것일까?
나는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 또한 나긋한 인상 너머로 범상치 않은 분노를 오래도록 담아온 자라는 걸.
그는 애써 입 꼬리를 올려 다정한 대스승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은근히 풍기는 증오의 향취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이처럼···.
마녀 사냥꾼들은 각자 추구하는 방식이 다소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마녀와 어둠에 대한 증오만큼은 정말로 순수했던 것이다.
“덩치.”
내가 대스승 알베르트 일행의 뒤를 쫒으며 이를 갈고 있자, 레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네가 지금 어떤 기분인진 알아.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
“레이 사저.”
“하지만 지금은 잠시 접어두도록 해. 대스승 알베르트를 고발하는 건 이 싸움이 끝난 다음에도 늦지 않으니까.”
“···알겠다.”
레이는 그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긴장을 유치한 채 허리춤의 검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
한 차례 싸움이 끝났다곤 하나, 아직 우리는 위험 지대에 머물고 있었기에.
“잠깐.”
그때였다.
갑자기 선두의 세 사람이 멈춰선 것은.
그들은 대스승 알베르트의 읊조림에 주목했다.
레이는 당장 그에게 다가가 상황을 물었다.
“길을 찾으셨습니까?”
“아니, 그건 아무리 나라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구나.”
“마기 탐지의 최고 권위자인 대스승 알베르트께서도 모른다고 하시면···.”
“날 추켜 세워봐야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단다, 검희여. 이곳은 육망성급의 마녀가 펼친 결계다. 마계, 그 자체라고 생각해도 좋다. 여기서 기존의 상식이나 지식이 무의미하다. 보거라, 거대한 마기의 방향이 세 군대에 걸쳐서 움직이고 있다. 그것들이 시시각각 공간을 흩뜨리면서 더욱 꼬아놓는군. 여전히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뭐가 그리도 흥미로운 지 킬킬 웃었다.
“하지만 덕분에 가로막힌 곳도 확실히 부각되는구나.”
무슨 소리지?
그는 손가락을 뻗어, 마기가 보이는 방향과는 정 반대쪽을 가리켰다.
“흥미롭지 않느냐?”
앗, 하고 레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뭔가를 눈치 챈 걸까?
나도 서둘러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호오, 자네도 볼 수 있는가? 이 변화를 감지하려면 꽤나 육체의 발현도가 높아야 하거늘. 역시 기대가 되는 재능이구나, 빅터.”
“대스승 알베르트, 저것은···.”
“보이는 그대로다.”
저 멀리, 격류와도 같은 마기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구간이 있었다.
마기가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곳만은 이상하게도 검은 기운이 완전히 차단되고 있어, 잘려나간 듯 말끔한 상태였다.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을 그대로 뱉어냈다.
“···벽?”
“괜찮은 표현이구나. 앞으로 그렇게 부르도록 하지.”
이것은 대스승 알베르트조차 모르는 개념이었던가?
그는 턱을 오른손으로 턱을 괴더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뻥 뚫린 구역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느냐? 재미있는 가설이 하나 떠올랐는데, 어디 들어보겠나?”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마기는 본래 이쪽 세계의 것이 아니다. 아스트랄의 매개체가 되는 마녀가 만들어내는 저 너머의 연기이지. 그렇기에 마기는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다. 인지할 수 없는 정신이 작용하지 못한다면 아니라면 만지는 것조차 무리다. 그 정도는 너희도 잘 알고 있겠지.”
그래.
그것은 익히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현상은 그 가르침과 상반된다.
레이도 그 사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것이 영향을 받는 건 절대···.”
“그런데 그것을 막아내는 투명한 ‘벽’이 있다고 한다면?”
“···저희는 짐작조차 못하겠습니다.”
“대스승 크레이그의 애제자, 검희 레이여. 영특한 자네라면 이미 알고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예?”
“그분의 가르침을 돌이켜 보거라. 모든 마기를 물리치는 신비한 힘을 지닌 이계의 물질을.”
“설마!”
“바로 그 설마다.”
그가 내놓은 추리에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유성의 파편···!”
그것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하하,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대스승 베누다가 주둔하고 있는 이 곳 동방에서라면 발각될 것이 뻔한데, 총력전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심록이 모습을 드러냈던 이유를 알았어.”
대스승 알베르트는 모자를 눌러쓰며 표정을 가렸다.
하지만 아래로 드러난 턱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러나 바라보는 사람이 불쾌해지는 미소였다.
분명한 악의가 스며있었기에.
“어지간히도 숨기고 싶었던 모양이지. 차마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게로군. 어리석은 계집같으니··· 휘하의 모든 프라이케르 가이스트와 사역마를 풀어놓고 우리 시선을 감추면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러더니 대스승 알베르트는 ‘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네들에겐 미안하지만 일행과의 합류는 조금 미루도록 합세. 아니, 지금쯤이라면 그 분께서도 이변을 눈치 채고 있을 테니··· 차라리 우리가 한 발 앞서 저기로 향하는 게 현명하겠지.”
어찌 보면 발상의 전환이군.
마기가 흘러오는 방향을 쫒아서 추격해오던 우리가, 이제는 마기가 없는 구역으로 집결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대스승 알베르트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니 발을 내딛을 때마다 연신 떠들었다.
“하하하, 보거라. 결계 속의 짙은 마기를 전부 지워버리는 저 영역··· 터무니없는 범위를! 분명 거대한 별똥별이겠지. 계획에 없었던 수확이다. 회수할 수 있는 유성의 파편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구나! 먼저 간 선봉대의 희생이 결코 아깝지 않을 정도로!”
죽은 동료들에 대해서 애도의 감정조차 없는건가?
하지만 나는 대스승 알베르트의 들뜬 기분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나는 앞서 ‘유성의 파편’이 가진 위력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니까.
그저 손바닥에 찔린 것만으로도 몸속의 피가 역류하고 즉각 힘이 빠져나갔었지.
그것이 아주 미량···.
커다란 운석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사금 가루 수준으로 긁어모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만일 그게 덩어리로 존재한다고 하면?
모든 사냥꾼들에게까진 무리라도, 많은 수의 무구를 재련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후, 역시 그냥 내버려둘 생각은 없는가?”
대기에 흐르는 마기의 유속이 빨라졌다.
그것은 대놓고 우리의 발밑을 맴돌고 있었다.
“커틀러스, 팔시온, 매서.”
“예, 대스승.”
“삼지창의 진이다. 준비해라.”
가면의 삼인방은 마기가 뻗어오는 경로에 나란히 서서 검을 꺼내들었다.
앞을 겨누는 형상이 정말 세 갈래의 어구처럼 보였다.
“덩치.”
“알고 있다.”
레이가 언질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도끼를 휘두를 만전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긴장을 풀 수가 없군.
저 마기의 농도는··· 아까 쓰러뜨린 그 꼽추의 것보다 훨씬 더 어둡고 흉흉하다.
마녀에게서 부여받은 마기의 양에 따라 사역마의 강함이 결정된다는 건, 중합체와 힘을 겨루면서 충분히 배웠다.
오거급이 뿜어대던 검은 연기는 장난이 아니었지.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접근해오는 저 무시무시한 기운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즉, 최소한 오거급의 적이라는 이야기겠지.
“놀랍군. 벌써 저것까지 동원할 줄이야. 심록 녀석도 필사적이구나.”
대스승 알베르트는 뭔가 아는 눈치였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지워졌어, 더는 농담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가?
머지않아, 나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쿠구구궁!
약진이 일었다.
지면이 흔들리더니, 가뜩이나 점성을 지닌 바닥에서 기포가 생겨났다.
이어서 저 멀리서 거목 몇 개가 기울어지는 것이 보였다.
피어오르는 흙먼지에 몸을 감춘 무엇인가가 우리에게로 점점 다가온다.
엄청난 속도야.
무시무시한 기세를 가진 마물이 일직선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짓뭉개며 최단거리로 뛰어들었다.
약 300걸음 정도까지 접근하자, 겨우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여러 개의 거대한 붉은 기둥이 땅에 파고들어 꿈틀거린다.
그 수는 눈짐작으로도 스무 개 이상···.
격렬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은 흡사···.
‘지네?’
그랬다.
그것은 주홍빛 외골격과 무수한 마디의 다리를 지닌 징그러운 벌레를··· 몇 천, 아니 몇 만 배나 확대한 형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에서 이질적인 모순을 발견하고 말았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면 적어도 미와 흉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형異形의 불협화음을 느끼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앞에 나타난 거충의 대가리에는···.
보란 듯이 아리따운 미녀의 상반신이 붙어있었기에.
물결치는 화려한 녹발 아래로 순진무구한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어쩌면 이토록 맑은 빛깔이 지옥의 적색과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단 말인가?
끔찍한 꼬라지다.
참으로 불경한 피조물이 아닐 수 없었다.
녀석은 높은 곳에서 우리를 표독스런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빌어먹게도, 미모에 어울리는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기의··· 원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