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69화 (69/186)

교구의 장(6)

7.

처절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물러섬이 없었다.

그들은 대스승 알베르트의 손짓과 목소리에 맞춰 꼭두각시마냥 춤을 출 뿐이었다.

“너무 깊이 파고들었다. 발목이다. 측면으로 돌아서 놈의 디딤발을 노려라.”

내게 세 사람 중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만큼의 주의력은 없었지만

아마 맨 먼저 지시를 따른 쪽이 대표자 격이었던 커틀러스였을 것이이라.

그는 창과 다름없는 뿌리의 말단이 목을 비롯한 급소에 매다 꽂혀도 여전히 검을 휘둘렀다.

“다음. 네 차례다, 팔시온. 절대로 놓치지 말거라.”

팔시온이란 이름의 사내도 만만찮았다.

중합체에게 걷어차여 내장이 사방이 튀는 와중에서도 그 발끝에 매달리는가 하면···.

“버티거라, 매서여.”

이어지는 맹공에 휘말린 매서또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몸을 일으킨다.

공처럼 땅을 나뒹굴었음에도, 작살난 갈비뼈가 코트를 뚫고 나온 채인데도 멀쩡하게 자세를 잡았다.

어느 놈이고 제정신이 아니다.

마치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뭉개지고 뒤틀리던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상궤에 너무 어긋나 있어.’

제아무리 마녀 사냥꾼들이 초인적인 단련을 했다고 하나, 그것에는 어디까지나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나는 적어도 심장이 터지거나 머리가 떨어진 채 살아있는 인간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눈앞의 삼인조는 그런 세상의 이치와 거리가 멀었다.

목이 부러져 뒤로 젖힌 상태로도 멀쩡히 걷다니?

심지어 가슴 정중앙에 박힌 날카로운 돌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들더니,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다시 적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젠장···!”

더는 지켜볼 수가 없다.

내가 나선다면···.

한 번에 중합체의 몸을 토막 낼 수 있는 내 힘이라면 이렇게 답답한 싸움을 더 이상 구경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대스승 알베르트는, 내 투지를 정면에서 막아섰다.

“양해를 구하지, 빅터. 조금만 더 지켜보시게.”

“하지만!”

“자네는 방금 충분히 날뛰지 않았는가? 미숙한 자에겐 허락되지 않은 그림자까지 두를 만큼.”

“···.”

망할, 나는 이대로 저 미치광이들이 으깨지는 꼴을 지켜봐야만 한단 말인가?

무모한 대치는 계속되었다.

세 사람은 여전히 거대한 적에게서 물러서지 않았다.

역시 놈들의 움직임에 고통의 기색은 없다.

이 상황에서야 비로소 가장 자연스러울 비명 또한 들려오지 않는다.

이건 이미 인간의 전술이라 부를 수 없다.

나는 이 광경이··· 사냥꾼의 흉내를 내는 인형과, 악에 받친 마물간의 살육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레이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설명해주십시오, 대스승 알베르트! 저들은 대체···.”

경험이 풍부한 그녀조차 놀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스승 알베르트는 이 끔찍한 무대를 펼친 장본인이면서도 지나치게 느긋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느냐? 설마하니, 대스승 크레이그의 애제자가 보기에 저 세 사람의 실력이 눈에 차지 않는 것이냐?”

“그게 아닙니다! 저런 싸움 방식은 인정할 수 없단 말입니다! 너무 무모해, 마치 이미 죽은 자들이나 할 법한···!”

“하하하, 농담이다. 저들을 다른 문하의 제자 앞에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크게 놀랄 만도 하지.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단다.”

“예?”

“커틀러스, 팔시온, 매서. 그들에게 검의 이름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나이니까.”

“외람된 말씀이오나, 대스승 알베르트! 그것은 제 의문에 대한 대답이 되질 않습니다!”

“지켜만 보거라. 그들의 진면목은 아직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레이의 기겁에도 불구하고, 삼인조의 싸움을 마치 철없는 손주들의 재롱을 꾸중하는 어투로 말했다.

“나의 검들이여. 몸 풀기는 이제 적당히 하거라. 이 이상 손상이 심해지면 너희를 수복한 재료를 찾는 것도 번거로워질 테니. 자, 슬슬 속도를 올리도록!”

대스승 알베르트가 건넨 그 몇 마디에 세 사람은 동시에 반응했다.

“톱니바퀴의 진, 위치로!”

그리곤 마치 정신이 하나로 이어진 것만 같이, 정확히 일치된 대답을 내뱉었다.

“···존명!”

나는 의사가 아니다.

인체에 대해 수준 높은 깊이의 지식은 없다.

하지만 인간이 부러진 관절을 어디까지 구동할 수 있는가는 잘 알지.

그래서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얼마나 기이한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적어도 저렇게, 뼈가 없는 것처럼 팔을 휘두를 수는 없을 테니까.

부웅!

마치 살아있는 뱀.

흡사 신축자제의 밧줄 같아, 커틀러스는 검을 들지 않은 쪽의 팔을 채찍처럼 날려서 적의 다리에 매달렸다.

‘이럴 수가, 설마 어깨부터 팔꿈치, 손목의 관절까지 전부 풀어낸 건가?’

나는 온갖 상식과 상상력을 동원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팔이 이만큼이나 늘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의 길이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뿌득!

어찌나 강력한 조임인지, 커틀러스의

팔에 조여든 중합체의 몸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놈에게 달라붙은 채로 오른손에 쥔, 자신의 이름과 같은 곡도를 깊이 찔러 넣었다.

연달아 팔시온과 매셔가 합세한다.

그들은 커틀라스가 매달린 반대쪽 발을 노렸다.

“옳지. 좋은 연계다. 그 연쇄를 기억하라.”

팔시온으로 추정되는 쪽이 자신의 손목을 스스로 꺾더니···.

거기서 나온 뾰족한 뼈의 말뚝을 전개했다.

‘맙소사··· 대체 몸의 구조가 어떻게 되먹은 작자들이란 말인가?’

매서도 그에 질세라, 찢겨진 왼 팔꿈치로부터 상아빛 칼날을 펼쳐들었다.

이어서 일방적인 난도질이 시작되었다.

중합체가 압도되고 있어, 전세가 순식간에 기울었다.

나는 뒤늦게 세 사람의 움직임이 변한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조금 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중합체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왜지?

지금까지 실력을 숨긴 것인가?

내 의문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마침 대스승 알베르트가 점잖게 읊조렸다.

“이제야 좀 봐줄만하게 움직이는군. 하여간 미숙한 친구들이야. 수련이 부족한 나머지, 자력으로 몸속에 박힌 고정 장치조차 풀 수 없다니···.”

고정?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내가 질문을 떠올린 그 시점에서, 승부에 결착이 지어졌다.

커틀러스, 팔시온, 매서는 기어이 중합체의 양 다리를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찢어놓았다.

균형을 잃고 초목의 거인이 쓰러진다.

세 사람은 동시에 달려들어, 그 중심부에 있을 본체에게 칼을 깊이 찔러 넣었다.

“끅!”

외마디 단말마가 울린다.

위로 들어 올린 그들의 기병도 끝에는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중합체의 몸은 부글거리는 피거품과 함께 지면에 녹아들었다.

남은 것은 맥없이 흩뿌려지는 한이 섞인 감정.

그리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외눈박이 꼽추의 유해뿐이었다.

“오래 걸렸구나.”

“···부끄럽습니다.”

커틀라스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지만, 대스승 알베르트는 여전히 나무라는 투였다.

“움직임에 낭비가 심하다. 네 역량이라면 충분히 빗겨 맞으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을.”

“죄송합니다.”

“호흡의 문제인가? 마기의 탁한 공기에 폐가 짓눌리기라도 하였느냐?”

“아닙니다.”

“아니면 최근 조정한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던 것이냐?”

“문제없습니다.”

“내상은?”

“염려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얼핏 제자를 걱정하기에 꺼낸 말인가 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대스승 알베르트는 내게 보였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세 사람을 대하고 있었기에.

“커틀러스, 잊지 말거라. 너희는 어디까지나 소모품이며 도구라는 사실을.”

“예.”

“날이 무뎌진 칼은 필요 없다. 너희를 대신할 수 있는 자들은 차고 넘친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그 말을 끝으로 대스승 알베르트가 손바닥을 보인다.

그것은 주변을 경계하라는 지시가 담긴 제스처였다.

‘너무하는군. 격려의 한 마디조차 없나?’

소모라느니, 어쩌고 하는 발언도 문제다.

막 참혹한 싸움을 끝낸 제자에게 심하다싶을 정도의 태도가 아닌가?

이건, 아무리 사냥꾼의 점정에 있는 대스승이라고 해도···.

“왜 그러지, 빅터?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데.”

“···.”

“괜찮네. 자네는 저들과 달리 우수한 인재니까 말일세. 속 시원히 말하게나.”

다르다?

우수해?

아주 대놓고 말하는군.

이 노인은 노골적으로 나와 자신의 제자들을 비교하며 차별할 셈이었다.

나는 순간 울컥해서 본심을 말해버렸다.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무엇이?”

“저 세 사람의 짓거리도, 당신의 가르침까지 전부···!”

“덩치!”

내 경솔한 지껄임이 일선을 넘었는지, 레이가 급히 끼어들었다.

그녀는 대스승 알베르트의 안색을 살폈지만···.

역시나 태도가 이상하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내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다.

“하하, 물론 나는 대스승 크레이그와는 교육에 대한 견해가 다르네. 자네들은 잘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나와 그 분은 자주 다투기도 했지. 특히나 기技에 대해선 매번 언쟁이 되곤 했을 정도니.”

레이가 인상을 쓴다.

그녀는 뭔가 짐작이 가는 곳이 있는 눈치였다.

“기技? 저 삼인방의 몸 상태가 그걸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씀이죠?”

“이건 본디 마녀의 지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니.”

“···대스승 알베르트, 또 다시 금기를 저지르고 마신 겁니까?”

“레이여, 너는 네 스승을 꼭 닮았다. 그 분이 할 법한 말을 늘어놓는구나.”

“대답해주십시오! 경우에 따라선···.”

“어이쿠, 오해하지 말거라. 나는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정도를 지키고 있으니까.”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맹세코 아니란다. 그럴 셈이었다면 나는 평소보다 더 짓궂게 나왔겠지.”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일까?

대스승 알베르트는 레이의 반응에 쩔쩔매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손녀의 잔소리에 대응하는 평범한 노인네처럼···.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그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슬픔이다.

걱정이었다.

그것은 나나 레이가 아니야, 조금 전에 험한 대우를 했던 세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대스승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담담하면서도 웃음기가 전혀 없는 목소리였다.

“이제 내가 해명할 기회를 주겠나? 검희 레이여.”

갑자기 그가 진중한 분위기로 나오자, 레이는 바로 자세를 낮추었다.

“···아닙니다. 감히 제가 주제를 잊고 실례를···.”

레이는 나에게 눈치를 줬다.

여기선 고개를 숙이라 그 말이겠지.

내가 순순히 그 무언의 요구를 따르자, 대스승 알베르트는 겨우 설명을 이었다.

“레이여, 너는 이미 눈치 챘을 지도 모르지만.”

“···예.”

“커틀러스, 팔시온, 매셔··· 저 셋은 모두 낙오한 자들이다. 하나같이 이식에 실패해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신세였다네. 하지만 우리에겐 동지가 필요해. 긴 세월동안 항상 소수였고, 언제나 인재가 모자랐지. 저 셋은 그런 내 오랜 연구의 결정체일세.”

예상했던 모양인지, 레이가 ‘역시나 그랬군.’ 하고 혀를 찼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저들의 몸에 얼마나 손을 대신 겁니까?”

“후우, 꽤나 많이 건드렸지. 사지에 골각骨角을 장치하고, 내장을 보호하기 위해 늑간 마다 납을 녹여서 덧씌웠네. 그 수가 셋이나 되니 봉합하는데도 애를 먹었어. 그래도 그 결과는··· 보다시피 성공적이었네. 물론 체술만 가지고 중합체와 싸울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말이야. 그리고 또···.”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도 이해나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말문을 열었다.

“대스승 알베르트, 그러니까 당신은··· 저 사내들의 몸을 개조했다는 겁니까?”

도구.

인형.

장난감.

순차적으로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야 겨우 그의 얼굴에서 도리스의 흔적을 보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부정해주길, 식견이 부족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며 그가 반론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대스승 알베르트는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뜬금없이 기이한 지식을 늘어놓았다.

“빅터, 자네는 인간의 몸에 뼈가 몇 개나 있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약 200개 남짓이다. 하지만 저들은 다르지.”

나는 지금껏 대스승 알베르트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른하고 유순한 첫인상에 속아서 그의 본질을 잘못 파악했다.

“커틀러스의 몸은 1200개의 관절로 이루어져있네. 나머지 두 사람은 그에 조금 덜 미치는 수준이고.”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네. 오래 전에 사냥한 마녀들이 남긴 자료들도 큰 도움이 되었어. 사역마를 만들기 위해 생물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기술만 본다면 아주 도에 텄더군. ···뭐, 나머지는 거의 나만의 독자적 연구로 이뤄졌지만 말이야. 어느 날 회중시계의 구조에 영감을 받았지. 용수철이라고 아나? 그것과 뱀의 골격을 응용한 셈이야.”

“···.”

“놀랄 것도 없네. 본래부터 인간의 구조는 머리에서 목뼈부터 지그재그로 충격을 고루 분산 시킬 수 있게 되어 있어. 나는 그걸 보다 더 많이 쪼갠 것뿐이지. 덕분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졌지만, 그건 얻은 것에 비해 큰 문제가 아니야. 조정을 통한 고정 장치로 어떻게든 균형을 추면 그만이었고.”

그는 자기 제자들의 진면목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허나 그 순수한 뽐냄에는··· 어떤 뒤틀린 광기 또한 함께 뒤섞여 있었다.

나는 전에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

그것은 본디 아이라가 자신이 만들어낸 무기들을 으스댈 때의 기분과 비슷했으니까.

다시 말해, 대스승 알베르트는 살아있는 인간에게··· 대장간에서 완성된 도구와 거의 다르지 않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커틀러스.

팔시온.

매셔.

그 이름은 전부 말 그대로의 의미였으니까.

그들은··· 정말로 대스승 알베르트가 벼려낸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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