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68화 (68/186)

교구의 장(5)

6.

적은 마냥 지켜보고만 있진 않았다.

내가 한 발자국 내딛음과 동시에 아래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없다.

내 뒤에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 버티고 있으니.

“치잇!”

내가 기대할 대로, 레이는 나의 위기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날카로운 뿌리가 내 몸에 닿기도 전에 화려한 검격으로 날려버린다.

레이가 그것들을 전부 베어냈을 때, 나는 이미 적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뒈져라···!”

부웅.

도끼가 묵직하게 바람을 가른다.

그것은 외눈박이 꼽추의 머리를 향해 내리박혔다.

그러나···.

“큭!”

날이 파고들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아, 이것은 또 무슨 조화지?

이깟 작은 몸집의 마물이 막아냈다고?

아니, 아니다.

자세히 관찰하니, 머리카락 굵기만큼의 얇고 투명한 막이 눈앞에 있다.

수 겹쯤 되어 보이는 미세한 균열이 일렁이는군.

내 공격이 닿기 직전에 놈이 어떤 요사스런 마법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놀랍군. 굉장한 기세로구나, 새끼 늑대여. 하지만 소용없다. 하찮은 인간의 완력으로는 내게 닿지 못할지니.”

“그렇게 보이나?”

“네놈, 지금 웃은 것이냐?”

소용이 없어?

닿지 못한다고?

가당치도 않은 소릴 하고 자빠졌군.

“착각하지마라, 이건 내 힘이 부족했던 게 아니니까.”

“뭣···이?”

단지 내가 요령이 없었을 뿐이다.

아직 그림자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온전히 써먹지 못했던 것이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제야 제대로 감을 잡았으니.

“인간 주제에 무슨 허세를···.”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받아 내봐라!”

나는 보란 듯이 놈의 앞에서 도끼를 뒤로 뺐다.

그리고 양손으로 자루를 쥐었다.

그림자를 영역을 손아귀로, 그리고 나아가서 도끼까지 넓힌다.

그 수 초 사이, 나는 어떤 가능성을 생각했다.

‘내 공격을 막아낸 저 보호막은 십중팔구 마기로 만들어낸 장난질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할 행동은 정해져있다.

눈에는 눈.

주먹에는 주먹.

날붙이에는 날붙이.

즉···.

‘마기에는 마기다!’

콰지지지직!

오거급 중합체와 맞서던 그 감각을 떠올리며, 나는 전력을 다해 도끼를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돌풍이 인다.

외눈박이 꼽추가 서 있던 지면이 움푹 파이며 균열이 생긴다.

순간, 푸른 섬광과 놈이 자신만만하게 쳐둔 마법의 장막이 유리처럼 깨뜨려졌다.

“그··· 그, 그오아악!?”

어깨 깊숙이 도끼날이 박히자, 드디어 놈은 어설픈 인간의 흉내를 그만두었다.

우스꽝스런 비명을 토해낸 것이다.

“이··· 이 노오오옴!”

그러나 적의 발악도 만만찮았다.

어느새 나는 주박에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둘렀던 그림자마저 풀려버렸다.

“찌푸려져라, 새끼 늑대야!”

꼽추는 뒤로 나자빠지면서도 한손을 움켜쥔다.

내가 서있는 공간에 기이한 술법을 걸 셈이었다.

공기를 통해 가공할 압력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반응이 늦었어, 겨우 발을 땠지만 피하기엔 반 박자 늦는다.

이대로라면 나는 죽은 목숨이다.

꼼짝 없이 놈의 생각대로 됐으리라.

내가 혼자였다면 말이다.

“물러서!”

레이의 오른팔이 내 어깨를 뒤로 잡아끌었다.

그 반동으로, 나는 곧장 그 자리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내가 빠지자, 조금 전까지 서있던 바닥에 폭발이 일어났다.

아슬아슬했군.

“한 눈 팔지 마, 멍청아!”

거칠게 말하곤 있지만 레이의 진심은 달랐다.

절반은 기막힘···.

나머지는 의외의 흥분이었다.

내가 놈에게 치명상을 먹인 게 꽤나 시원했던 지, 그녀는 드물게 알기 쉬운 감정을 드러냈다.

그 찰나의 순간, ‘정신감응’을 통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했어, 덩치!’

이어서 레이의 몸이 공중에서 선회하며 마물에게 돌진한다.

이 모습은 예전에 본 기억이 있다.

레이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필살의 검법···.

나에게 억지로 파쇄권을 가르쳐주면서, 그와 같이 동방에서 유례한 것이라며 자신 있게 으스대곤 했었지.

그 기술의 이름은···.

‘유성검 미리내··· 소나기!’

두 번, 네 번, 여덟 번, 열여섯 번···.

섬광이 눈을 깜빡할 때마다 배로 늘어난다.

내 정안으로도 쫓을 수 없는 초고속 베기가 순식간에 마물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레이의 참격이 스칠 때마다, 적이 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깎여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레이는 이미 알았다.

내가 시행착오를 통해 해낸, 가루를 무기에 실어서 날리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옷, 고오오옷!”

위기감이라도 느낀 것인가?

마물은 인간의 목소리를 내뱉는 것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조금만 더···!’

허나 안타깝게도 레이의 검은 끝내 결정타를 내지 못했다.

콰과과과!

신변의 위협을 느낀 마물이, 자기 발아래까지 가시투성이로 만들어가면서까지 레이를 품에서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에.

“후욱, 후우욱! 너희, 네놈들은··· 대체!”

하지만 효과가 있다.

과연 자아를 가진 사역마로군.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던 방어막이 깨진 게 충격이 큰 모양이다.

놈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어, 우리의 협공이 하나 뿐인 눈깔이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이냐? 아직 덜 여문 새끼 늑대들이, 이토록 예리한 송곳니를 가지고 있을 줄은!”

여전히 과장된 말투.

억지로 인간의 배우를 흉내 내기라도 하듯 꾸며낸 어조다.

죽어가면서도 입만 살았군.

사실, 나는 이 시점까지만 해도 상대를 얕보고 있었다.

레이가 말하는 사역마를 지나치게 경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차라리 일반 사역마나 중합체 쪽이 더 힘겨운 상대가 아닌가?

적어도 그 괴물들은 나를 상대로 겁을 집어먹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안이한 판단이었다.

“고오오오! 위험한 네놈들을 그분의 곁으로 가게 둘 순 없다!”

괴물 주제에, 놈은 어떤 각오를 품었다.

거기엔 두려움조차 떨쳐낼 수 있을 만큼의 저력이 담겨져 있었다.

“비록 내 몸이 산산조각 나는 한이 있더라도!”

어째서 였을까?

놈은 필사적이었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감정을 끓어 올리는 게 느껴졌다.

“오, 오오오··· 주인이시여. 이 절름발이 기기는 먼저 갑니다. 음지에서 태어나, 사람의 무리에서 살아가지 못한 이 미천한 자를 거두어주신 은혜, 비로소 지금에야 갚겠나이다!”

기분이 나빠졌다.

왜냐하면, 누가 보아도 마물이나 다름없는 저 외눈의 꼽추가···.

마치 사람인 것처럼 눈물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몸은 본디 당신께서 주인 것이니, 오직 그대만을 위해 바치겠나이다!”

마물은 몸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그러자 놈의 추악한 몸의 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눈알아래 숨구멍 대신 삼각형으로 배치된 이빨들이 보인다.

꼽추라고 생각했던 구부정한 허리는 사실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골격에 억지로 내장을 채워놓은 것이었다.

골반은 넓적한 그릇처럼 생긴 반쪽짜리 대롱에··· 아래로 삐져나온 앙상한 다리만이 유일하게 사람의 것을 닮아있었다.

어떻게 살아있는 지조차 의심이 되는 구조다.

놈은 고기로 된··· 살아있는 화초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저절로 욕지거리가 나온다.

하지만 그건 놈의 흉측한 외형 때문이 아니야, 단지 놈의 내면세계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물에게 저 나름의 사연 따위가 있어선 안 된다.

동정, 그것은 사냥꾼의 금기다.

숲에서 매번 사냥감의 목숨을 끊을 때마다 감상적인 기분에 빠지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제멋대로 나에게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라비나와 접촉한 이후로 폭주하기 시작한, 이 빌어먹을 ‘정신감응’이···.

‘꺼져, 내 머릿속에서 나가라!’

그러나 영상이 내비친다.

그것은 녀석의 오래된 기억이었다.

마물의 육체를 가졌으면서, 사실은 인간이었단 말인가?

‘놈은 선천적으로 기형의 얼굴로 태어났다.’

놀랍게도 태생은 귀족의 집안.

그러나 같잖은 혈통의 유지를 위해 가까운 친척끼리 교배를 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그렇게 해서 태어난 괴물이었다.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어미는 비명을 질렀군. 날 때부터 코와 입술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 쪽 뿐인 눈은··· 친부가 그를 떨어뜨렸을 때 생긴 충격 때문이었나?’

원래라면 장남으로 태어나 사랑을 받으며, 축복받은 인생을 누렸어야 했을 것을···.

단지 집안의 어리석은 교잡질 탓에 사람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하지만 놈은 악운에도 강했다.

이걸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내던져지고, 얼마 뒤 개울에 버려졌음에도 그것은 그만 살아남고 만 것이다.

숨이 막힌 채, 강물을 떠돌며 체온이 떨어져 죽음만을 기다리는 와중에···.

‘마녀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것이··· 추악한 몸에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역마의 탄생이었다.

“덩치, 뭘 멍 때리고 있어! 집중하라니까!”

“···알고 있다.”

레이 덕분에 가까스로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아를 가진 특수한 마녀의 피조물···.

괴물로 살아왔을 길고 긴 증오의 삶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나는 우리와 같이 마음을 품고 있는 존재의 각오를 너무 우습게보았던 것이다.

“이 순간부터 너희를 새끼 늑대라 여기지 않겠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아!”

내장이 삐져나온 외눈 마물의 몸을 중심으로 주변의 섬뜩한 초목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서로 얽히고 섞이더니 이윽고 기괴한 형상을 갖추었다.

잠깐 사이에 덩치가 눈에 띄게 거대해졌어, 이미 부르트급 중합체와 다르지 않은 크기였다.

“고오오오오!”

이제 놈은 사람의 말을 지껄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

차라리 이편이 났다.

불행한 인간을 죽이는 것보단, 괴물을 퇴치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할 테니···!

“잘 들어, 덩치. 저 놈의 머리가 있던 위치를 잘 기억해 둬. 그곳을 집중적으로 노려야할 테니까.”

“알겠다.”

“열 받지만, 힘 쪽은 네가 한 수 위니까··· 내가 주위를 끌게. 그럼 네가 마무리를 먹이는 거야.”

의외의 요청이었다.

잠깐 사이의 협공으로 나에 대한 평가가 변하기라도 한 것일까?

더 이상 레이는 나를 감싸지 않았다.

돌볼 대상이 아닌, 어느새 나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는 동지로 봐주고 있었다.

“불만 있어?”

“아니, 바라는 바다.”

“그럼···!”

레이는 그대로 땅을 박차려 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시도 직전에 그대로 좌절되었다.

단,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군이 합류했기에.

“구오오! 오아아아!”

곡검을 든 그림자가 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하얀 가면···.

대스승 알베르트의 세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역겨운 줄기로 휘감긴 마물을 교대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소란이 많았던 모양이구나.”

남자치곤 아담한 몸집, 그러나 어쩐지 모르게 우직한 뒷모습의 사냥꾼이 레이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여기는 우리에게 맡겨다오. 검희 레이여.”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어떤 그림자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대스승 알베르트! 무사하셨군요!”

“공교롭게도 다른 일행과는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자네들 덕에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지.”

대스승 알베르트는 모자의 챙을 튕기며 나와 레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허락도 없이 그림자를 두른 자는 누구지?”

“···.”

“역시 자네인가, 빅터?”

“예.”

“주눅들 것 없다. 자네를 나무랄 게 아니니까. 우리는 그 신호에 따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가?

아무래도 그는 마기를 감지하는 기술로 이곳까지 도달한 모양이었다.

“대스승 알베르트, 외람된 말씀이지만··· 당장 저들에게 주의를 주도록 하시지요! 저 사역마는 단순한 중합체가 아닙니다! 지혜를 가진 녀석이···.”

“프라이케르 가이스트일테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내 제자들의 경험을 쌓기엔 딱 좋은 상대지.”

“하지만 협공을 하는 편이···!”

“미안하지만 대스승 크레이그의 애제자여. 넓은 마음으로 후배들을 지켜봐 주거라. 이 또한 저들이 넘어야할 시련이니.”

대스승의 칭호를 가진 만큼 그에겐 뭔가 노림수가 있었던 것일까?

허나 나는 곧 혼란에 빠졌다.

대스승 알베르트의 제자들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상황은 그 반대로 흘러갔기 때문에.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맥없이··· 순식간에 당해버렸다.

콰직!

중합체가 휘두른 일격에 한 명의 몸이 뭉개졌다.

푸우욱!

또 다른 가면이 지면에서 튀어나온 창대에 여지없이 꿰뚫렸다.

유일하게 남은 쪽의 최후도 비참해, 그는 검을 든 쪽의 팔을 마물의 줄기에 잡혀 그대로 찢겨졌다.

‘이건··· 대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저들의 역량이 이렇게까지 부족했을 줄이야.

이런 뻔한 공격에 휘말려서 손도 못쓰고 전멸이라고?

멋들어진 가면까지 깔맞춤하고 자신 있게 뛰어든 주제에··· 이렇게 허무하게 당해버리다니?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레이마저 납득을 못하고 고함을 쳤다.

“대스승 알베르트! 어째서 보고만 계신 겁니까!?”

하지만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대스승 알베르트의 반응이었다.

“하하하, 꼴사납구나. 모처럼 너희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그는 웃고 있었다.

별것 아니라는 듯 입가에 미소를 그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꿍꿍이속이 있었다.

대스승 알베르트는 점잖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느긋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일어나라. 커틀러스, 팔시온, 매서.”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분명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절명했을 가면을 쓴 시체가, 바닥에 축 늘어진 세 명의 주검들이···.

“나는 아직 너희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스승 알베르트의 지시를 받음과 동시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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