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66화 (66/186)

교구의 장(3)

4.

“이 앞이 심록의 영역입니다. 대스승, 크레이그.”

“예전 생각이 나는구나, 알베르트.”

“이미 30년 전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땐 우리 둘 다 젊었지.”

“그랬었죠. 그런데 이건··· 이전보다 훨씬 지독하군요.”

“큭큭, 광인도 그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정신이 더욱 망가지는 법이다.”

대스승께선 결계 안에서 드러나는 풍경이야말로, 마녀의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했다.

오래되고 영악한 마녀가 펼친 것일수록 기괴하고 끔찍하다.

그것은 일종의 연출이지.

제물로 바칠 인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미치게 만드는 장난이란, 악마의 지혜와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토벌하기 위해 대륙 너머의 적···.

‘심록의 마녀’는 정말이지 중증의 미치광이일 것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소굴은 악몽의 숲 그 자체였기에.

‘식물의 잎사귀를 문드러진 인간의 눈으로 교체하고, 줄기를 말라붙은 힘줄로 바꾼 것인가?’

사방에 나락의 꽃이 만개해 있었다.

차라리 붉은 빛깔을 띠었다면 다행이리라.

그 색채는 지저분할 정도로 우중충하고, 초록보다는 군청이 더 많이 섞인 듯 보였다.

한 없이 깊고 어두운 녹색.

이것은 마치···.

‘그 이름 그대로 심록深綠이 아닌가?’

상하 좌우, 눈앞의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문드러져있다.

심지어 하늘마저 고름이 터진 듯 녹아내린다.

가라앉은 공기에선 썩은 내가 진동하며, 바닥은 늪처럼 질척거렸다.

그 때문에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졌어, 우리는 말에서 내려야만 했다.

“빅터여, 마기의 흐름이 짙다. 사역마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경계하도록 해라.”

“예, 대스승.”

“레이여, 너는 그의 등 뒤를 지켜주도록. 좋은 기회이니, 빅터에게 감지술의 시범을 보여주려무나.”

“알겠습니다, 대스승.”

그러나 레이가 뭔가를 채 알려주기도 전에, 소란이 일어났다.

“세상에!”

“태, 태양이 짓이겨져 있다니!”

“여긴 마계인가? 아니면 지옥?!”

이어서 불만은 품은 무리의 고함이 들려왔다.

공포를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 대체 우릴 어디로 데려온 거야?!”

이 앳되고 소란스런 울림은 분명 니엘의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고용된 도펠죌트너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설명해주시죠.”

용병단의 리더, 니코가 우리가 선 마차의 뒤에서 나타났다.

팔짱을 낀 채 얼굴에 감정을 지운 상태였지만, 그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불안한 상태였다.

“이 이상 부하들을 말리는 건 무리입니다. 우린 지금까지 충분히 참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진 상세히 말해주지 않겠다는··· 부조리한 조건까지 지키면서요.”

니코가 이렇게 나오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스승 알베르트가 난색을 표했다.

“이런! 설마하니 용병들에게 아직 사정을 설명하지 않으셨던 겁니까?”

“그랬지.”

“중요한 이야기를 끝까지 숨기시는 버릇은 여전하시군요. 대스승 크레이그···.”

“나는 저들이 겁쟁이가 아니기에 바랐을 뿐이네. 혹여 사전에 도망치기라도 했다간 더욱 곤란해 졌을 테니 말이야.”

대스승의 대꾸에 니코는 눈동자를 부릅떴다.

이미 그의 오른손을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에 향해있었다.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고용주를 베기라도 할 셈인가?”

“그건 대답 여하에 따라 다르지.”

“···빅터, 레이. 나서지 마라.”

나와 레이가 반응하자, 대스승은 손을 뻗어 서둘러 우리를 말렸다.

“단장이여, 자네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부하들을 집결시키고 전투를 준비시키도록 하게.”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듣기 전까진 그럴 수 없소.”

“간략한 정보는 중개인을 통해서 출발 전에 알려준 걸로 기억하네. 혹시 그 사이에 잊어버리기라도 했나?”

“예. 거기까진 압니다. 전원이 반년 간 놀고먹을 수 있는 대량의 금화를 보수로, 동방의 괴물을 퇴치하러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하지 않나?”

“이쪽은 기껏해야 검은 대륙에 사는··· 코가 밧줄처럼 길고 덩치 큰 짐승이나, 전설 속의 천둥새 같은 걸 잡으러 온 거라 생각했단 말입니다!”

“안이한 예상이 빗나간 건 유감일세. 허나 자네들의 상상력이 빈곤한 것이 내 잘못은 아닐 터.”

“···이딴 불경한 장소로 동료들을 데려올 줄 알았다면, 애초에 동의하지 않았을 거요.”

“호오, 수도에 이름난 도펠죌트너, 고블린즈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나?”

“겁먹은 게 아니오. 앞서 수지타산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지.”

“사정이 이러하니 말일세. 상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까닭을 이해해주게.”

“이건 명백히 우릴 속인 겁니다.”

“자네들의 용맹함을 믿었다고 해주겠나?”

“···개 같은 늙은이, 이 이상 우릴 우롱하지 마라.”

“아니면 어쩔 텐가? 어느 쪽이든 이제 자네들에게 선택지는 없네. 마녀의 결계는 보이지 않는 미로지. 평범한 인간은 빠져나갈 수 없어. 길을 잃고 객사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야.”

“이번엔 마녀라고? 젠장, 무슨 농담을···.”

니코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수염 아래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대스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 모두가 침묵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들이 터무니없는 원정에 동참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미치겠군. 부하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달라지는 건 없으니 평소대로 하시게.”

“뭣이?”

“실력과 목숨 값에 걸 맞는 보수를 받으며 싸운다. 그것이 자네들의 가치 아니었던가? 대략적인 역할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야. 배에 실어온 화기와 날붙이는 장식이 아닐세. 우리가 가리키는 적을 향해 조준하고, 검으로 베고, 창을 세워 찌르게나.”

“···.”

“단, 이번엔 그 상대가 사람이 아니란 것만 각오하도록.”

니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용병으로서 거친 인생을 살아왔을 그에게도, 분명 이 어둠의 세계는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도록 하겠다. 물론 살아서 돌아간다면 말일세. 사망자들의 몫까지, 생존한 용병에게 지급하겠다는 우리의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아니, 한 가지 빼먹은 게 있지 않습니까?”

“호오?”

“우리가 전원 목숨을 잃는다 해도, 크로이 상단이 책임을 지고 용병단의 가족들에게 모든 보수를 넘기겠다고.”

“그거 말이로군. 물론일세. 약속은 지키도록 하지.”

대스승이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니코는 겨우 단검에서 손을 땠다.

그리곤 잠시 후, 자신의 용병단을 향해 소리를 쳤다.

“니엘, 내 검을 다오!”

“···잠깐, 니코 형?! 이런 곳에서 뭘 하겠다고?!”

“당장!”

“으, 으으···.”

니엘이 반발했지만 용병단을 이끄는 니코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가 손을 뻗자, 니엘은 마지못해 달려오더니···.

자신이 등에 매고 있던 칼집을 그대로 니코에게 건네주었다.

이어서 니코가 장검을 뽑아들었다.

“전원, 전투태세!”

“우아아아아아!”

“후열은 총을 잡고, 전열은 창을 들어라! 마크, 프래쳇. 방패는 너희에게 맡긴다.”

그 명령만으로, 조금 전까지 흐트러져있던 스무 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늙은이, 우리 고블린즈를 다신 얕보지 마시오.”

“훌륭하군.”

대스승의 감탄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또한 용병단의 당찬 대응에 크게 놀랐다.

‘과연 도펠죌트너라 불릴 만하군. 이런 무시무시한 풍경을 접하고도 싸울 태세를 갖출 수 있을 줄이야···.’

그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나도 곧 뒷짐에서 도끼를 꺼내들었다.

오른팔에 쇠사슬을 휘감고,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덩치, 이쪽이야.”

마침 레이가 손짓한다.

그녀가 뭔가를 감지한 모양이다.

“따라와. 둘러싸이기 전에 우리가 적들을 분산 시킨다.”

그러더니 망설임 없이 어느 방향으로 달려나간다.

나는 서둘러 그 뒤를 쫒았다.

‘마기의 흐름이 빨라졌군.’

내가 제아무리 감지술이나 기척을 느끼는 재주가 없다 해도···.

이렇게까지 눈에 띄게 휘몰아친다면 확실히 알 수 있지.

사방에서 뭔가가 다가온다.

그 수는··· 한 둘이 아니야.

아뿔싸, 우리는 이미 포위당해있었다!

‘마기가 궤도가···.’

부웅!

눈앞에서 뭔가가 날아듬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오른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조금 반응이 늦었다.

“···크윽!”

순간, 도끼의 표면에 불꽃이 튀었다.

뭔가 날카로운 것에 긁혔나?

아니, 그것은 아주 길게 뻗어온 금속질의 창이었다.

‘사역마···!’

어린 아이 정도의 몸집···.

흡사 커다란 두꺼비나 도롱뇽을 닮은 놈이 수풀 사이에 보였다.

눈깔을 찾아볼 수 없는 머리통에서 벌려진 네 갈래의 아가리가 끝이 뾰족하게 뒤틀린 나선의 혓바닥을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놈은 기괴하게 입을 놀리더니, 순식간에 혀를 회수해 다음 발사를 노렸다.

그러나,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딜!”

강철 도끼에 흠집을 낼 정도의 위력은 있는 듯 보이지만. 연사까진 안 되는 모양이지?

나는 땅을 박차며 순식간의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눈으로 쫒아갈 수 없는 속도의 창날이 내 뺨을 스쳤다.

하지만 내 도끼는 이미 지저분하게 뱉어낸 괴물의 혀를 동강내고 있었다.

“게헤엑!”

부웅!

나는 한 번 내지른 도끼의 원심력을 이용해 다시 몸을 튼다.

이번에는 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확실하게 놈의 모가지를 몸통에서 떨어뜨려주었다.

‘아직이다!’

마기의 소용돌이는 이어서 측면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 한 번 기괴한 창이 내 가슴을 노리고 날아든다.

나는 도끼를 방패삼아 그것을 튕겨낸 뒤, 곧장 공격이 들어온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내 다리가 두 번째 사냥감에게 닿기도 전에, 마물은 가슴팍에 깊은 자상이 새겨진 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야,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피하면서 치라고.”

레이였다.

그녀는 신속의 검술로 또 한 마리의 사역마를 토막 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설교를 이어갔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왜 자꾸 정면에서 막고 받아내는 건데?”

실력은 여전하군.

난폭하게 찍어 누르는 나와 다르게, 레이는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었다.

버드나무처럼 휘어지는 그녀의 상체가 사방에서 덮쳐드는 일직선의 공격을 빗겨낸다.

회피는 곧 공격으로 이어지며, 한 순간의 틈만으로도 적의 이마에는 구멍이 뚫려졌다.

“봤지? 아주 간단하다고.”

말은 쉽지.

공격이 단순하니까 몸을 틀어 피하면 된다고?

“···관두련다.”

“야, 덩치!”

“나는 내 식대로 하지.”

마침 뾰족한 혓바닥이 내 발밑으로 내리박혔다.

나는 쇠사슬을 감은 팔로 그것을 튕겨내고, 아직 회수하지 못한 혀의 창을 손으로 잡아당겼다.

이 작아빠진 체구로 내 완력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놈은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내가 노린 것처럼···.

콰직!

마물은 착지지점에 대기하고 있던 도끼날에 머리가 깨부숴졌다.

‘어떠냐, 레이? 이제 나도··· 겨우 네 옆에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반응을 기대하며, 나는 보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레이의 칭찬을 받기엔 아직 멀었던 모양이야, 그녀는 얼굴에서 인상을 지우지 않았다.

“···너 정말 기技랑은 거리가 멀구나? 그 무기를 그딴 식으로 밖에 못 쓰다니, 이 사실을 안다면 아이라 언니가 울 거야.”

“애시 당초 배운 기억도 없다.”

“널 기초부터 가르치려면··· 아니, 됐어. 당장은 대화를 할 때가 아니니까 긴장만 풀지 마.”

레이는 한숨을 쉬면서도, 자신의 배후에서 접근하는 또 한 마리의 사지를 찢어 발겼다.

“흥, 이걸로 네 마리.”

나도 질세라 고목 뒤에 숨은 놈을 끌어내 숨통을 끊어주었다.

“나도 세 마리째다.”

우리는 어느새, 서로 경쟁하듯 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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