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65화 (65/186)

교구의 장(2)

3.

일전에 대스승에게 배웠던 지식을 떠올린다.

조직의 이름조차 확립되지 않은 우리 마녀 사냥꾼에게도 어렴풋한 직위의 개념은 존재한다는 걸.

강함과 경험.

지혜와 기술.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불리는 명칭이 나누어지지.

‘우선은···.’

레이와 빌헬미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병아리··· 아니, 참새였던가?

혹은 애송이 등으로도 불렸지만 어느 것이나 입문자란 뜻을 담고 있었지.

이 상태는 재앙에서 살아남아 복수를 다짐하지만, 의욕만 앞섰을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단계이다.

막연한 분노만을 품은 채, 무력한 상태로 세계의 진실을 깨달아가지.

그렇기에 약 1년 반 가량을 숙련된 사냥꾼과 함께 지내며 보호를 받는다.

마의 존재에 대한 지식을 쌓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천천히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물론 드물게 나 같은 예외도 있는 모양이지만, 로이드의 말에 따르면 보통 그런 과정은 순차적으로 거친다고 한다.

‘다음은 이식이다.’

어둠의 존재들을 인지하고, 가혹한 마녀 사냥꾼의 운명을 받아들인 자의 시련···.

그것은 온 몸을 짓이기는 고통을 견뎌내고서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영역을 지나야만, 비로소 한 명의 동지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이식을 마친 이는 마녀 사냥과 마물 토벌에 투입되며, 수년에 걸쳐 경험을 쌓게 되지.

‘나는 어지간히도 억지를 부렸지만···.’

이 과정을 곱씹어보면 내가 얼마나 특별대우를 받았는지 알게 된다.

새삼스럽게 대스승의 배려에 감사하게 된다.

‘이어서 숙련자 단계.’

많은 싸움과 임무를 거친 마녀 사냥꾼은···.

이윽고 심, 기, 체를 단련하여 어느 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 대스승에게 독립해, 어느 순간 베테랑이라 불리며 동지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지.

단독으로 임무를 맡으며, 갓 이식을 한 새내기의 교육담당이 되기도 한다.

‘로이드를 가르치던 빌헬미나나, 제리온이 그 대표적인 경우겠지.’

여기서부터는 적성과 재능이 갈린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서 세계 각지로 배치되지.

보통은 자신의 연고지 주변에서 주둔하게 되지만, 레이처럼 자신의 의지로 은혜를 입은 대스승의 곁에 머무는 사례도 있다.

이 시점에서 사냥꾼들은 대부분 육체의 전성기에 도달하므로, 일생에 가장 강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눈에 띄는 공적을 쌓을 경우, 별명이 따로 붙기도 하지.

그러나···.

‘동시에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때이기도 하다.’

우수한 사냥꾼은, 그만큼 많은 임무에 투입되기 마련이니까.

허나 불행히도 전장에서 무덤을 찾지 못한 자는···.

이윽고 ‘스승’으로 대우받게 된다.

‘은퇴란 허락되지 않아. 지금까지 그 어떤 동지도 전선에서 이탈한 경우는 없다고 했었다.’

서글픈 일이지.

노병이 되어서도, 누가 말리지 않음에도 신념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몸은 노쇠했어도 지혜는 더욱 깊어진다.

그들은 단지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길고 긴 사냥꾼의 역사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인정받는 다섯 명의 스승은, 모든 사냥꾼의 정점에 군림하지.’

대스승.

대대로 이어온 어둠과의 처절한 싸움에 평생 바친 가장 오래된 사냥꾼들.

반세기의 대표자이자, 세대의 상징···.

비록 최강은 아닐지언정, 그것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처럼 세월을 거쳐 정해진 사냥꾼의 계급은··· 하나하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스승 알베르트의 말은 무겁게 다가온다.

스승의 칭호를 가진 자가 셋.

그리고 하나하나가 레이나 빌헬미나 수준의 강함을 가졌을 열다섯의 베테랑들.

단순히 생각해도 역전의 용사나 다름없는 조합이다.

그런데 이 멤버가 당했다고 한다면···.

심록은, 육망성의 마녀란 대체 얼마나 강대한 적이란 말인가?

“도착과 동시에 내가 경솔한 소릴 내뱉었군. 미안하네. 내 배려가 부족했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움직이면서 하도록 하세.”

대스승 알베르트의 재촉으로, 우리는 당장 준비된 마차에 올라야만 했다.

“결례를 용서해주게. 긴 여행이었을 것을, 잠깐이라도 휴식할 시간을 주었어야 했는데···.”

듣는 쪽이 머쓱할 정도로, 대스승 알베르는 우리에게 예우를 차렸다.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그러면서도 대충 사죄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도펠죌트너들과 짐을 실을 말이 서른 필··· 준비가 완벽하군. 여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건가?’

심지어 우리가 탄 마차는 고삐가 물린 말이 여섯이나 될 정도의 대형 사이즈였다.

이만한 사치를 망설이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한 것인가?

‘아니, 그보다 이건 너무 눈에 띈다. 한 번에 이만한 인원이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해.’

가뜩이나 흑발 흑안의 사람들이 사는 이국의 땅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수상한 행색의 이방인에 지나지 않겠지.

그런데 그런 자들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니, 이건 우리가 있던 대륙에서도 가볍게 허용될 일이 아니다.

너무 경솔한 행동이지 않은가?

나는 염려한 것을 대스승에게 여쭈었다.

그러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빅터여, 의외의 사실을 하나 알려주어야 겠구나. 이 동방의 대지는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지.”

“대스승, 무슨 말씀이십니까?”

“못 믿겠다면 지나가는 이에게 손이라도 흔들어 보거라.”

마침 마차의 창밖으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그 모친으로 보이는 여성이 지나친다.

어떨 결에 손을 들어 올리니, 상대방은 놀라울 정도로 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에는 꾸며내지 않은 호의와 환영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어떤가?”

“···나쁘지 않군요.”

“그건 서쪽의 대륙과는 다르게, 동방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불길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

“이들의 신화에서, 은발과 정안 가진 존재는 신성한 자로 취급받는다.”

“신성··· 하다고요?”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거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해도 괜찮겠습니까? 대스승 크레이그.”

“얼마든지 그렇게 하게나, 대스승 알베르트.”

“감사합니다. ···반갑네, 빅터. 자네의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활약성이 눈부시다고 말일세. 나도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지.”

대체 나는 세간에 어떻게 소개되어 있는 것일까?

부담스러운 극찬과 함께 대스승 알베르트가 악수를 건넨다.

나에게 그 친절을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스승 알베르트.”

“편히 대해주게나. 너무 딱딱하게 여기면 내 쪽이 더 난처하니.”

그와 몇 마디를 나눈 것만으로도, 대스승 크레이크와 다른 성격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말투는 친절하고 분위기는 느긋하며, 약간 심약한 성격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일전에 들은 대스승 알베르트의 이미지가, 눈앞의 노신사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에.

‘내 안에서 그는 어떤 변절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리스의 친부이기에 당연히 잔혹 무도한 자일 거라 생각했다.

이식을 하면서 자신을 증오하도록 유도하는 작자가 멀쩡한 인간일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달랐다.

다소 태도가 조심스러울 뿐, 어디까지나 평범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좋은 얼굴이군, 젊은이. 표정에 호기심이 아주 가득한 걸 보아, 탐구하는 자의 소질이 엿보여.”

대스승 알베르트는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기본적으로 의술에 오래도록 전념했지만, 드물게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기도 하지. 당연히 동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컸네. 그래서 이쪽 대륙의 신화와 전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지.”

신화?

전설이라고?

그게 우리가 배척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동방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네. 아주 오래 전, 왕가에 파고든 요녀가 나라를 주무르던 시대가 있었다고 하더군. 온갖 천재지변과 기아가 넘치는 혼세였다지.”

“요녀···.”

“이쪽 대륙 사람들은 마녀를 그렇게 불렀지. 동방을 연구할수록, 역사의 이면에 숨은 어둠의 흔적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네. ···그리고 그 오랜 전승에는 예외 없이 은발과 빛나는 외안을 가진 전사도 함께 등장한다. 고대에도 우리의 선대는 마와 싸우고 있었다는 이야기지.”

“그렇다면, 대스승 알베르트. 그게 오늘 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단 말씀입니까?”

“정확하네. 그래서인지 동방의 민족은 우리를 마주할 때마다 마치 무슨 신선을 본 것 마냥 기도를 하지. 재미있지 않은가? 정작 우리의 고향에선 이단으로 몰리고, 불신자라며 수상쩍게 여겨지고 있는데 말일세.”

“···.”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어쩌면 우리 사냥꾼의 기원은 이 대륙··· 동방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지.”

이어서 대스승 알베르트는 그밖에 다른 전승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어, 그럼에도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래도록 배에 갇혀 지내던 나에겐 그 무엇보다 흥미로운 주제다.

여유가 많았다면, 분명 나는 대스승 알베르트에게 더 많은 것을 질문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보고 드립니다, 대스승 알베르트.”

그 순간, 가면을 쓴 얼굴이 마차의 창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와 동승하지 않았던, 대스승 알베르트의 다른 제자였다.

“그래, 커틀러스. 어디 말해보거라.”

“앞으로 반시진이면 영역에 도달합니다.”

“음, 벌써 그렇게 되었군. 그럼 슬슬 뒤따라오는 용병들에게도 각오를 하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팔시온과 매서에겐 도착과 동시에 왕관 대열을 쭉 유지하도록 하고.”

“존명尊命.”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물으마.”

대스승 알베르트의 태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마치 시간이나 날씨를 묻는 것처럼 무던한 말투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은···.

“그 사이에 몇 놈이나 잡았느냐?”

“···다섯 마리입니다.”

“허나 두 녀석을 놓쳤구나. 그렇다면 위치는 이미 발각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죄송합니다.”

“괜찮다. 어차피 그 계집은 창공의 눈을 통해 오래 전부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을 테니.”

그 대답의 의미를 즉각 파악하지 못한 것은 나뿐이었다.

사실 레이는 오래 전부터 날카롭게 곁눈질을 했었고, 대스승 크레이그도 어째서인지 화승총의 손질을 멈춘 채였지.

자세히 보니···.

커틀러스란 사내의 하얀 가면에는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핏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그는 한 손에 끝이 구부러진 모양의 기병도를 들고 있었고, 칼날에 묻은 진득한 액체를 소매로 닦는 중이었다.

어느새 뭔가를 베어 죽인 것인가?

“좋은 제자를 뒀군, 알베르트.”

“과찬이십니다.”

“아닐세. 잘도 정찰용 사역마를 단 칼에 베어냈지 않은가? 마기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수준이 보통을 넘는군. 슬슬 독립을 생각해도 될 만큼의 실력이야. 우리 레이가 본받아야 할 정도일세.”

“···저라면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레이 엔쯔이여. 후배들의 기를 좀 살려주면 어디가 덧나느냐?”

“···.”

“훌륭한 무예를 보여줬으니 조금 칭찬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예, 대스승. 나쁘진 않았습니다. ···거기, 당신. 커틀라스라고 했지? 기분 나쁘게 듣진 말아줘. 곡도를 다루는 모양새는 제법 괜찮았으니까.”

레이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창밖의 사내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위대한 대스승 크레이그··· 그리고 검희 레이 엔쯔이에게까지 그런 찬사를 들을 줄이야.”

“잘 됐구나, 커틀러스. 하지만 우쭐대는 자에게 향상은 없는 법.”

“명심하겠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가면의 사내가 탄 말이 마차에서 이탈했다.

그러자, 잠시 후··· 레이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너 전혀 눈치도 못 챘지?”

정말이다.

나는 대스승 알베르트의 말을 듣느라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알지 못했다.

“하아, 하여간 우리 문하의 망신이라니까.”

“너무 그러지 말거라, 레이여. 나는 아직 빅터에게 감지법이나 검술을 가르친 기억이 없다.”

“하지만, 대스승···.”

레이는 알베르트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모르는 유파간의 자존심 싸움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정이 그렇다면 레이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나를 두둔해준 것은 대스승 알베르트 쪽이었다.

“괜찮지 않나? 이 친구는 이식을 받은 지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야. 오히려 나는 다른 면에서 더 놀라고 있다네.”

그는 한참이나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빅터, 자네는 체體의 완성도가 매우 높군. 별다른 단련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런데 심心 쪽도 크게 부족한 것도 아니야. 꽤나 성숙한 마음가짐을 하고 있어. 모자란 것은 기껏해야 기技뿐인가? 허나 그마저도 이 이능異能에 비하면···.”

“큭큭, 기어이 눈치 챘는가?”

“대스승 크레이그, 그에게 무리하게 이식을 감행한 이유가 있었군요.”

“절반은 그의 의지이기도 했지. 차마 말릴 수 없었네.”

“하지만 노림수대로 된다면, 그는 우리의···.”

“지금 단계로선 괜한 설레발에 불과하지. 나는 빅터가 온전히 훌륭한 사냥꾼으로 성장하길 바랄 뿐일세.”

분명 두 사람의 대화는 나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뻔히 들으면서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전해지는 감정은 묘한 기대감과 불안, 그리고 신뢰 뿐···.

평소의 대스승 크레이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차가 바퀴를 세울 때까지, 두 명의 대스승이 보내는 기대어린 시선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하늘은 불길한 청록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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