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의 장(6)
11.
다음 날, 우리는 출전을 위해 일찍부터 항구를 찾아야 했다.
수많은 인부가 보여, 그들은 우리가 탈 예정인 대형 상선에 짐을 싣고 있었다.
겉포장은 동방과 무역을 위해 고서나 조각상같은 골동품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화기를 비롯한 무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심록의 마녀와 싸우는 동지들의 물자지원도 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구만. 그거 아냐, 후배? 이번 임무에 투입되는 배가 무려 두 척이라는 거? 하나는 우리 일행과 짐이 탈 배고, 나머지 하나는 용병들이 오를 거라고 하더라.”
“놀랍군. 우리 조직은 돈이 썩어 넘치는 모양이다.”
“야야, 말을 좀 곱게 할 수 없냐? 아이라 아가씨가 들으면 서운해 할 걸. 이 모든 게 전부 크로이 가문의 은혜라고.”
몰락했다곤 하나, 아직 아이라의 가문의 제력은 상당한 듯 보였다.
로이드가 말해준 설명에 의하면 크로이 상단의 영향력은 이 항구 도시 전역에 미칠 정도라고 했다.
“마을 구석진 곳에 지하 비밀 기지를 만들어놓은 것도 그렇고, 장거리 여행에서도 언제든 풍족한 지원을 해주지. 그들 덕분에 우리 마녀 사냥꾼들이 마음을 놓고 싸울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냐.”
여담으로, 아이라의 대장장이 행세는 거의 취미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장비상을 통째로 사들여, 작정하고 무기고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라 아가씨 말이야, 굉장하지 않냐? 명문가 출신인데도 별로 티도 안내고.”
“그런가?”
“쇳물을 다뤄서 그런지 손목까지 화상투성이더라. 그 젊은 나이에 장인이라고 불릴 정도면 보통이 아닌 거지. 크, 전부 마와 싸우는 우리들을 위해 실력을 단련한 거야. 눈물 나는 사연이지 않냐?”
“흠.”
그 부분에 대해선 아이라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나도 새 무기를 얻을 수 있었지.’
아이라는 비싸게 구했다는 도끼를 박살내버린 나를 질책하지도 않고, 곧장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었다.
이번 것은 자루의 철심이 보강되어 더욱 무겁게 만들어졌어, 날도 보다 크고 견고한 물건이었다.
‘부디 조심해서 써주세요.’
아이라는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던 쇠사슬까지 다시 손질해주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건 무기를 소중히 다루라는 덕담 같은 게 아니었다.
‘강철로 만든 물건이 이 지경이 될 정도라면··· 아마 싸움에서 빅터 씨의 몸은 더 큰 부담이 걸렸을 게 뻔해요. 좀 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세요. 무기는 얼마든지 고치고, 새로 구할 수 있지만··· 빅터 씨의 몸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노력해 보지.
그렇게 말하며 아이라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는 모른다.
더욱 강한 적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전력을 다 해서 상대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 사실은, 염려하는 아이라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격려하며 무사히 돌아오길 염원했다.
아이라가 내게 건네준 무기는, 그녀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전선에 나가 싸우지 못하는 자의 한인가?’
아이라의 혈족들이 겪은 기구한 운명을 생각해보면, 우리 이상으로 마에 대한 증오가 깊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칼을 들지 않아, 굳이 협력자의 위치를 고집한다.
‘그에 대해선 대스승께서 이야길 했었지.’
크로이 가문이 자금과 후방 지원에만 힘을 쓰는 이유를.
어째서 그들이 마녀 사냥꾼이 되려 하지 않는 지를.
그것은 저주 탓이었다.
일종의 알러지라고도 할 수 있었다.
깊은 사정은 모르나, 크로이 가문의 인간들은 모두 마기에 취약하여··· 선천적으로 이븐 가지의 분말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이식과 기술을 익혀 우리의 등 뒤를 지켜주었을 것이었다.
“거기다 크로이 가문에는 그런 전설이 있지. 부와 명예 이상으로 도리를 다 하는 진정한 귀족의 일대기가 정말 감동이···.”
로이드 녀석은 내가 만사에 무지할 줄 안다.
이미 아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려하는군.
“미안하지만 옛날이야기엔 관심 없다.”
“지금부터가 진짜 재미있는 부분인데.”
“나중에 해라.”
“인정머리 없는 놈 같으니.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이러는 거 아니냐?”
“···.”
“그래. 가라, 가. 동방으로 떠나버려.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무서운 여자한테서 살아날 궁리나 하고 있을 테니까. 제길, 도리스··· 그 건 절대 말동무로 못 삼을 여자라니까.”
사내자식이 돼서 몇 마디를 막았다고 어지간히도 섭섭해 하는군.
하지만 나라고 녀석의 상대를 해주기 싫은 것은 아니다.
평소라면 뻔한 이야기라도 지껄이라며 그냥 내버려뒀을 것이다.
내가 녀석의 말을 끊은 까닭은, 지금 막 부두를 따라 인파가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저 무리가 그 용병들인가?’
그 수는 스무 명 남짓···.
적의는 느껴지지 않지만, 하나같이 날붙이를 들고 있군.
그들은 무장한 것을 숨기지도 않은 채 우리가 대기 중인 부두로 다가왔다.
“안녕하쇼.”
놈들 중 하나가 넉살좋게 인사를 건넸다.
건강한 빛깔의 갈색 피부, 전반적으로 몸이 마르고 작은 녀석이었다.
셔츠에 조끼 차림새는 조촐하지만, 양팔에 착용한 가죽 건틀렛이 특이했다.
거기다 놀랍게도 자기 거의 자신의 키만한 칼집을 등에 지고 있었다.
“어디보자··· 내가 맞춰볼까? 댁들이 우리의 고용주 맞지?”
두건으로 머리칼을 덮어둔 상태였지만 앳된 얼굴만큼은 가릴 수 없다.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모양인지, 목소리가 꽤 가늘었다.
“하! 항구에서 사냥꾼 복을 입은 괴짜들을 찾으라 하길래 뭔 소린가 했더니, 이렇게 알아보기 쉬울 줄은 또 몰랐네!”
생긴 것도 곱상한 것을 보니 스무 살도 채 안된 놈이다.
허나 그런 것치곤 소년의 인상은 사나운 편이었다.
눈빛부터가 평범치가 않아.
뺨에 그어진 세로의 일직선, 그리고 코를 가로지르는 가로의 흉터가 거친 인생을 살아왔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하필 대스승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선금은 잘 받았어. 덕분에 오랜 만에 식구들끼리 뱃속에 기름칠 할 수 있었지.”
“그거 잘 됐구나.”
“그런데 할배, 정말 낼 수 있는 거야? 한 사람당 시세의 네 배라니? 이렇게 되면 도펠죌트너가 아니라 퓌어죌트너viersöldner라고 불러야 할 판이라고?”
“물론이다. 약속은 지키지.”
“헹, 아무리 봐도 수상한 양반들이네. ···뭐, 상관없어. 정체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용주이기도 하고. 씀씀이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더라? 그런데 말이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노인네, 기왕이면 좀 더 당겨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머지는 계약한 대로, 다시 돌아와서 지급하도록 하지.”
“아니, 우린 지금 원해. 기왕이면 전부 다.”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놈들이 웃음보를 터뜨린다.
아무래도, 상황을 봐서 털어먹을 생각이군.
이건 조금 위험하군.
소년의 도발과 함께 부두에 모인 놈들까지 나설 준비를 한다.
이런 노골적인 도적질을 내버려 둘 수야 없지.
나는 놈들의 앞을 가로 막았다.
“멈춰라.”
그리곤 도끼를 꺼내든다.
인간을 상대로 무기를 휘두르고 싶진 않지만···.
“형씨, 이 머릿수가 안 보이나?”
“돌은 거 아냐? 혼자서 우릴 상대해보겠다고?”
내가 살기 띈 눈을 부라려도, 놈들은 숫자를 믿고 앞으로 기어 나왔다.
“그거 좋지. 얼마든지 와봐라.”
“앙?”
“누구든 맨 먼저 나오는 놈은 반드시 죽을 테니.”
나는 필요 이상으로 위협을 가했다.
놈들이 얕볼 수 없도록 인상까지 팍 썼다.
‘언젠가 타지에서 온 도적을 상대해 본 적이 있어서 안다.’
때때로, 정말로 무서운 것은 산짐승 따위가 아니란 걸.
탐욕에 절여진 인간의 무리, 악의를 품은 낯선 사람이야말로···.
어쩌면 마물보다 무서운 존재일지 모른다.
“워워, 진정하라고 이봐들. 공정하게 계약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면 용병단의 명성이 떨어지지 않아? 이건 신뢰의 문제라고?”
이어서 로이드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녀석은 익살스럽게 정론을 펼쳤지만, 그건 약탈자에겐 통하지 않는 논리였다.
“너 바보 아냐? 너흴 전부 죽여 버리면 그만이야. 그럼 목격자가 없지? 다시 말해 우리 평판도 그대로일 걸?”
대스승의 앞에서 건방진 태도를 유지하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벌써부터 세상 물정에 진득하게 물든 악당이로군.
헌데 대스승은 그런 소년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싹수가 노란 놈일세. 건방지지만 기개가 느껴진다.”
“아무렴. 요즘 애들은 거칠게 크거든. 전장에서는 더욱 사납게.”
“그러나 사람을 보는 눈은 없는 게로구나. 관록이 부족한 탓이겠지.”
“핫하, 그건 살 날도 얼마 안 남은 양반이 보기엔 누구나 그렇겠지?”
“호오?”
“어리다고 얕보지 마셔. 돈 많은 고용주라고 무사할 거라곤 생각하면 피를 볼 거야.”
“그거 듬직하군.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겐가?”
“말조심해, 노인네. 그렇게 날 무시했다가 힘줄이 잘려서 평생 포크도 쥐지 못하게 된 놈들이 수두룩하지.”
그 말이 사실인지 허풍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놈은 객기를 부릴 상대를 잘못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애송이 놈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레이가 이미 녀석의 배후에 서 있었다.
“내 앞에서 감히 대스승을 모욕해?”
그제야 건방진 꼬맹이가 뒤를 돌아봤다.
“뭐, 뭐야? 언제?!”
녀석은 오른손을 들어, 어깨 너머의 검 손잡이를 쥐었다.
그러나 칼을 꺼내려드는 찰나, 레이가 녀석의 움직임을 막았다.
“요즘 도펠죌트너들은 배가 불렀나 봐? 돈을 내는 고용주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네.”
“이, 익!”
“날뛰지 마시지? 그 같잖은 손가락을 뭉개버리기 전에.”
레이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대스승에게 무례하게 대한 자를 용서치 않으니까.
하지만 아직 소년은 기가 죽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해보셔!”
녀석은 기지를 발휘했다.
레이에게 붙잡힌 오른팔을 축으로 이용해, 뜀박질로 몸을 튕겼다.
그리곤 대담하게도 레이의 얼굴을 노리고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상대가 나쁘다.
그까짓 어설픈 체술이 레이에게 통할 리 없었다.
맨손의 공방이라면, 내가 아는 한 그녀를 따를 사람이 없으니까.
“흥.”
“우, 우아악!”
어디서 본 광경이다.
허공에서 발차기를 낚아챈 도리스의 모습이 겹쳐졌다.
소년의 발목을 레이가 잡아버린 것이다.
단, 부러뜨리진 않았다.
레이는 소년을 동행한 용병단이 있는 방향으로 던져버렸다.
와르르, 칼집에 박힌 검이 꽤나 무게가 나갔던지··· 소년의 몸을 받아낸 전면의 행렬이 뒤로 나자빠졌다.
“어때, 더 해볼까?”
레이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용병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들은 멈칫했다.
조금 전에 보여준 절도 있는 싸움으로, 레이가 보통 상대가 아님을 눈치 챈 모양이다.
이 시점에서 분을 참지 못한 것은 소년뿐이었다.
“이, 이게··· 감히 날 날려버렸겠다? 이 망할 년··· 오냐, 오늘 기어코 피를 보자!”
허나 그 발악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쯤해라, 니엘.”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용병의 무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짙은 갈색 머리칼을 가진, 훤칠한 키에 가죽갑옷으로 무장한 사내였다.
수염투성이의 얼굴은 험상 굳고 각이 져 있어,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니, 니코 형?”
“장난질은 거기까지다. 이 이상 고용주들을 기만하지 마라. 언제까지 이딴 우스운 연극을 할 셈이냐?”
“하, 하지만 니코 형!”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앗!”
남자는 팔을 뻗어 소년이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을 억지로 벗겨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 뭐야? 여자애였어?”
맨 먼저 입을 연 것은 로이드였다.
녀석이 말한 것처럼, 두건 속에 싸매고 있던 것은 소년이라면 결코 손질할 리 없을 장발의 고동색의 머리카락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건방진 행태의 소년은, 순식간에 왈가닥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동생의 무례를 사과하겠소.”
“혀, 형!”
“넌 조용히 하고 있어라.”
남자는 소년··· 아니 소녀의 머리를 억지로 누르며, 자신의 고개도 대스승의 앞에서 숙여보였다.
“죄송합니다. 이건 전부 고용주의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더군. 젊은 용병이여, 이럴 필요까지 있었는가?”
“···우리 목숨을 걸고 나갈 전장입니다. 거기가 어딘지 구체적으로 알 수도 없는데, 지휘관이 어떤 작자인지 정도는 파악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나왔으면 어쩔 뻔 했나?”
“그 전에 제가 막았을 겁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어린 동생의 목숨이 걸렸다 해도 말인가?”
“녀석도 용병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각오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거든, 형?! 난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었···.”
“니엘.”
“···어, 물론 각오했지.”
그 대답에 대스승은 뭐가 기분이 좋은 지 씩 웃어보였다.
“마음에 들어. 우리와 동행하려면 그 정도의 담력은 있어야겠지.”
“노익장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세간에 불리는 너희 용병단의 이름은 무엇인가?”
“별로 내놓을 만큼 자랑스러운 명칭은 아닙니다.”
“이쪽도 큰돈을 들여 고용한 자들에 대해선 알 권리가 있을 텐데?”
“···검을 맞대본 적이 있는 적들은 우릴더러 돈에 미친 괴물, 혹은 추악한 도깨비라 부르며 멀찍이서 조롱하더군요.”
“호오?”
“헌데 멸칭은 어느새 자리를 잡아, 어느 시점부터 우리 용병단을 가리키는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죠. 그래서 그 당당히 이름을 써먹기로 했습니다.”
“유례가 흥미롭군. 이제 말해주겠나?”
“바로···.”
대스승의 물음에 니코라는 남자가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담담히 말을 이었다.
“고블린즈Goblins, 그게 바로 우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