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의 장(3)
5.
로이드의 비명 소리는 분명 술집 바깥까지 울려 퍼졌으리라.
“댁이 왜 여기에 있는데?!”
“후후, 제가 집결지에 있는 게 뭐가 이상하죠? 어디까지나 저도 마녀 사냥꾼의 일원인걸요.”
“다, 다다다다당신은 이식자잖아?!”
“그건 잠시 쉬기로 했어요. 막 이식을 끝마친 환자가 있어서 경과를 좀 지켜보고 싶었거든요. 그렇죠, 빅터 씨?”
“···.”
눈치를 보아, 그것은 맞장구를 쳐 달라기 보단 끼어들지 말라는 엄포에 가까웠다.
“그런데 로이드 씨, 왠지 말이 좀 짧으시네요. 이렇게 보여도 저는 당신의 지도담당인 빌헬미나 양과 같은 세대의 선배인 걸요.”
“윽···.”
“교육이 다시 필요하려나? 한쪽 눈만으론 부족한가요? 하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안뿐이니까요. 그렇다면 나머지 왼눈은 적출해도 괜찮겠죠? 어차피 선배도 못 알아보는 그딴 안구는 필요 없을 테니까요. 네?”
“이, 이 아가씨 농담은 항상 오싹하다니까. 안 그래, 후배?”
갑자기 예전에 배운 사냥의 노하우 하나가 떠올랐다.
그건··· 절대 맹수를 앞에 두고서 시선을 돌려선 안 된다는 숲의 지혜였다.
지금 막, 로이드는 그런 실수를 범한 것이다.
“농담?”
도리스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변했다.
아주 살짝이지만 미간도 찌푸려졌다.
“저는 농담은 싫어하는데요?”
로이드는 도리스의 눈 밖에 제대로 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인의 진실된 반응에 집착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도리스에게 있어서···.
녀석의 만성적인 허세와 같잖은 거짓말은 고까움을 넘어서 아주 혐오스럽게 비춰졌을 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에 도리스가 구금당하고 있었던 것이 로이드에겐 행운이었다.’
순간, 도리스는 자신의 코트 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분명 흉흉한 뭔가를 꺼내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반응이 늦었어, 도리스는 이미 코앞까지 로이드에게 붙은 상태였다.
이 시점에서 나는 로이드 자식의 명복을 빌 수밖에 없었다.
“그쯤 해 둬.”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최소한 이 자리에도 말릴 사람은 있었으니까.
레이는 도리스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 손목을 잡은 것이었다.
“괜히 약한 녀석 괴롭히지 마.”
그 발언에 로이드가 ‘야, 약하다고?’ 라며 말을 더듬은 건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레이가 입었던 심한 부상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준 장본인이 그녀의 눈앞에 있다.
하지만 레이는 당차게도 도리스에게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며 상대를 도발하는 것이 아닌가?
“스트레스가 쌓인 거라면 내가 또 상대해주지.”
“어머나, 정말요?”
“당장이라도 상관없어.”
이에 답하는 도리스의 반응도 놀라운 것이었다.
“···후후, 하지만 거절할게요. 저도 레이가 상대라면 불만은 없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다음 즐거움은 천천히···.”
의외로 도리스는 상대의 시비를 담담히 받아넘겼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이번에는 그녀의 관심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럼, 오랜만에 빅터 씨와 대화를 나눠볼까요?”
“···부디 거절하고 싶군.”
“어쩜, 여전히 솔직하시네요.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경과가 궁금한 걸요. 이식 직후의 몸 상태는 어때요? 위화감이나 통증은 없던가요?”
정말로 그뿐일까?
그러나 단순 진료라는 언질과는 달리 도리스의 눈빛은 의미심장했다.
내 팔을 더듬는 손짓이 묘하게 야릇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작작 좀 하시지?”
이번에도 레이가 나서주었다.
그녀는 도리스가 나에게 치근덕거리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지, 사나운 태도로 끼어들었다.
“넌 우리 문하도 아니면서, 왜 네가 나보다 먼저 덩치랑 이야길 나누는 건데? 그보다 넌 우선해야 할 볼일이 있을 텐데?”
“아, 그랬죠. 성가시게도. 중요한 손님맞이도 못하는 어느 누구 탓에 말이에요. 대스승 크레이그께서도 제가 더 적임자라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난 대스승의 판단을 믿을 뿐이야.”
“후후, 표정에서 분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걸요? 예의 면에선 제가 우수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걸로 칠게요.”
“난 너처럼 누구 비위를 맞추는 법은 모르거든. 나는 존경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만 예우를 갖추니까.”
“그래요. 솔직담백한 성격. 그게 레이의 매력이죠.”
거짓을 고하지 않는 것이 도리스의 장점이라면, 그 나름대로 진심으로 레이를 칭찬하는 것이리라.
한 번은 서로를 거의 죽일 뻔 할 정도의 혈투를 벌인 사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군.
“할 말은 그것뿐이야?”
반면, 이제 그녀를 대하는 레이의 태도에 여유마저 느껴졌다.
“얼른 꺼져. 네가 있어봐야 여기 분위기만 나빠질 뿐이니까.”
“네, 네. 아쉽지만 빅터 씨는 양보해드릴게요. 있죠, 레이는 은근히 외로움을 많이 탔답니다. 당신의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할 정도로요.”
“아, 진짜! 그만 좀 가라고!”
내가 임무를 위해 밖을 나돈 사이에 대체 이 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도리스가 문을 열고 나자서 마자, 대스승이 입을 열었다.
“모두 자네가 도리스를 데려온 덕분일세.”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물론, 레이의 설욕전이 있었지.”
나의 벙 찐 표정이 그렇게도 알기 쉬웠던가?
대스승은 바로 그 의문을 바로 풀어주었다.
“빅터, 자네가 그 싸움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군. 분명 많은 것을 배울 기회였을 텐데 말일세.”
“설욕전이라니··· 대스승, 설마 레이 사저가 한 번 더 맞붙었단 말입니까?”
“다리가 완치되자마자 당장 도리스와의 재 대련을 요청하더군.”
큭큭, 그는 기쁜 듯 웃었다.
어울리지 않게도 그 미소에는 왠지 모르게 자랑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맥락상, 결과는 레이의 승리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완승이었네. 복수전에서 레이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도리스를 제압해보였지.”
“정말 입니까?”
“내가 참관하고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하겠지만 말일세.”
그러면서 대스승은 두 여인의 공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약이 뒤따랐다고.
“우리끼리 목숨을 건 싸움은 인력의 낭비일 뿐이야. 그래서 치명적인 공격을 금하고, 타격 직전에 주먹을 멈추는 것을 조건을 규칙으로 했지. 정도를 모르는 도리스에겐 그게 족쇄가 되었을 수도 있네. 하지만 동등한 조건에서 레이는 정정당당히 승리했지. 도리스도 그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네.”
전면전에서 레이가 밀리지 않으리란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이전처럼 도리스의 당수와 찌르기를 맨손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승부에서 달랐던 점은, 레이가 도리스의 기이한 관절 기술에 전부 대응했단 사실이었다.
“동양의 무도에도 비슷한 게 있다고 했던가? 용케도 그 짧은 시간에 간파했더군. 레이가 어지간히도 병상에서 꽤나 이를 갈았던 모양이야. ···물론 다 큰 처자들끼리 맨살의 팔과 다리를 잡고 뒹구는 모습이 지켜보기에 남사스러웠지만 말이지.”
“와우우. 그거 참··· 망측했겠군요.”
여기서 로이드 자식이 수상한 기침을 내뱉었지만, 레이의 노려봄이 놈의 허튼 상상을 막을 수 있었다.
“못 볼꼴을 보여 부끄럽습니다, 대스승.”
“아니다. 나는 지금 너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니. 레이여, 네가 그때 도리스에게 패배했던 건, 아마 빅터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들뜬 상태였기 때문이겠지. 쓸데없는 호승심 탓이야. 화려한 기술로 보란 듯이 이기는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야.”
“대, 대스승··· 그건!”
“내가 틀렸단 말이냐, 레이 엔쯔이여?”
대스승의 되물음에 레이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마지못해서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허나 보다시피 빅터, 자네의 사제에게 한 번의 패배는 의미가 없네. 실패를 해도 언제나 거기서 성장할 계기를 만들어내지.”
이어서 대스승은 몇 마디를 덧붙였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기회로 삼는다.
그것은 유독 무술만이 아니라, 배우는 입장에 놓인 모든 이들의 자세일 것이라고.
“덕분에 우리 레이는 자신감을 되찾았지. 예상외의 긍정적인 효과일세. 도리스를 곁에 둔 것만으로도 향상심이 유지되는 게야. 서로의 성장을 돕는 호적수란 이토록 중요한 것일세.”
대스승의 말씀은 나에게 있어선 인상 깊은 가르침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장본인인 레이에게 그것은 낯 뜨거운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녀는 얼른 상황을 무마해 넘기고 싶었는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이제 충분히 다 들었지? 두 애송이들, 너희는 이틈에 얼른 쉬러 가 봐. 괜히 여기 있다가 그 미친 계집애한테 또 시비 걸리면, 이번엔 나도 그냥 내버려둘 테니까.”
“아이고, 이거 고맙습니다. 누님 덕분에 살았슴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네 누님이냐니까?”
지하실 쪽으로 달아나듯 사라지는 로이드의 뒷모습을 보여, 레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빌헬미나도 골치가 장난이 아니었겠네. 야, 덩치. 너 저런 거랑 여태 어떻게 같이 다닌 거야?”
“지내다보면 익숙해지더군.”
“···너도 은근히 비위가 강한가보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진 않다.”
“그래?”
“놈의 수다를 한 쪽 귀로 흘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테니까.”
“너도 싱거운 소릴 할 수 있었구나? 그만큼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네. 뭐,네 활약상은 나중에 들어줄게. ···빌헬미나의 최후에 대해서도.”
“음.”
역시나 레이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어쩌면 대스승과 나눈 대화를 들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는 떠들썩한 분위기를 유지할 셈이었다.
전해지는 감정에는 배려가 스며있어, 평소보다 살갑게 나를 대해주었다.
“그런데 너··· 지금 보니까 코트 상태가 엉망이네. 원래부터 가죽이 상해있긴 했지만, 지금은 완전 넝마 직전이잖아? 며칠간에 대체 얼마나 구른 거야?”
돌이켜보면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그에 대해선 해줄 말이 많아, 하지만 이야기꾼의 역할은 로이드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녀석이라면 적어도 무뚝뚝한 나보다 맛깔나게 설명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레이는 한참 나를 보더니.
“잠깐 벗어봐.”
“아니···.”
“괜찮으니까 얼른.”
거의 억지에 가깝게 코트를 빼앗아든다.
그러자 레이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안감은 더 지독하네.”
그렇겠지.
최근에 새 옷을 사 입은 기억은 없으니 말이다.
레이는 내 셔츠를 벗기려 시도했지만, 곧 그게 조각으로 찢겨져버리자 한숨부터 쉬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상의를 탈의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 계집애 앞에서 이런 굴욕적인 꼴이 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뭐야, 이 흉터는? 상처가 더 늘었잖아, 이 멍청아! 무식하게 덩치만 커가지고···.”
레이는 내 우락부락한 몸에 난 수많은 생채기들에 불만이 많은 듯 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혀까지 찬다.
“솔직히 말해. 너 평소처럼 앞뒤 안 가리고 모든 걸 힘을 받아쳤지? 그렇지? 피하면서 친다고 몇 번을 말했냐고!”
그게 무릎으로 내 엉덩이를 차면서 할 소리는 아닐 텐데.
“···됐어. 이건 내가 손질해놓을 테니까 넌 얼른 들어가. 씻고 잠이나 자라고.”
도리스와의 신경전 때문에 바로 잠을 청할 상태도 아니건만.
당장 대스승의 도움을 구할 순 없을 것 같다.
“레이여. 후배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것도 좋으나, 자칫 도가 지나치면 그가 사내로 느껴지게 될 지도 모르겠구나.”
“그, 그런 게 아닙니다! 단지 이 덩치가 몸을 막 다루는 꼴이 너무···.”
“좋을 때로다.”
“대스승?!”
그는 이런 레이의 모습을 마냥 흐뭇하게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얼핏 엄격한 사제지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멋대로인 팔불출 가족이란 걸.’
어둠의 마수와 처절하게 싸우는 마녀 사냥꾼들의 진면목이 이렇다는 걸, 만에 하나 그들의 숙적이 알게 된다면···.
이건 꽤나 우스운 모양새가 나올지도 몰랐다.
“···알았다, 레이 사저. 순순히 들어갈 테니 어수선 떨지 말고 진정해라.”
나는 마지못해서 레이의 등쌀에 밀려, 로이드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지하실로 향하는 문을 잡아당긴 그 순간···.
레이가 돌아선 채 읊조렸다.
“···하여튼, 목은 붙어 있어서 다행이네.”
예상치 못한 다정한 속삭임이었다.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하는군.
혹시나 내게 들렸단 걸 들키면, 또 한바탕 난리를 피우겠지.
나는 못들은 척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필 그 앞에 로이드 자식이 미심쩍은 얼굴로 서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로이드, 뭘 하고 있나?”
“아니, 저 누님이랑 네 사이가 참 재미있게 돌아가는 거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먼저 자리를 비켜준 건데, 역시나 흥미로운 장면이 나와 주시는 구만?”
“···.”
“너, 임마! 여자한텐 관심 없다는 얼굴로 그러는 거 아니다. 가뜩이나 클라리스 아가씨랑 그 뭐시냐··· 미묘한 감정선을 만들어 놓고선, 본부에 저런 이국적인 미인이랑 그렇고 그런···.”
“닥쳐. 네가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부끄러운 거 다 알아. 하지만 남자라면 언젠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다. 네가 무슨 제국의 황태자가 아니라면 말이야. 양손의 꽃이란 너무 무책임하고 양심 없는 짓이라고.”
“···오냐, 명심하지.”
“이 자식아, 아직 내 이야기 안 끝났어. 자고로 남녀사이라 하면 말이야.”
내가 독방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놈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어느 시점에서 로이드 녀석에게 도리스의 상대를 맡기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