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의 장(2)
4.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활발한 아이라마저 마른 침을 삼킬 정도로, 지금 클라르테를 대하는 대스승의 태도는 평소보다 진지했다.
설마, 그녀가 클라리스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그래,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어둠와 싸워온 그라면, 자색에 마녀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러면 내가 품은 이 모호한 의문도 풀어낼 수 있으리라.
“대스승, 그녀는 제가···.”
“잠시만 기다리거라.”
하지만 대스승은 나를 만류했다.
클라르테가 직접 정체를 밝히기를 요구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그녀는 겨우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저는 클라르테라고 합니다. 쿼스롯이라는 상인 마을에서 왔습니다. 며칠 전까진 뒷골목에서 의사를 하고 있었죠.”
“의사라, 젊은 나이에 대단하군. 미모만큼이나 영특한 아가씨셨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부끄럽지만, 저는 이제 사람을 살리는 일은 더 이상···.”
“무슨 사정이 있으셨던 게로군. 그런데 로이드, 빅터···. 너희는 이 집결지에 동지가 아닌 이를 데려온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고 있는가?”
어렴풋이는.
적어도 노출되어선 안 될 장소이기에, 대스승은 그녀가 그만큼 믿을만한 인물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지만, 로이드는 아니었다.
놈은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놀랄 정도로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대스승.”
“책임질 수 있겠나?”
“예. 제가 보증합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입니다.”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로이드여.”
“그, 그렇지만···.”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네. 못된 버릇이라 해도 어쩔 수 없어. 나이를 먹을수록 의심만 더 강해지지.”
대스승은 클라르테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아가씨, 부디 무례를 용서하길.”
“네?”
팟.
순간, 그녀가 입고 있던 로브가 어깨부터 허리까지 갈라졌다.
대스승이 어느새 단검을 꺼내 휘둘렀던 것이다.
아래를 감싸고 있던 살결이 드러나자, 클라르테는 급히 양손을 모아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대, 대스승!”
로이드가 당장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클라르테는 그의 참견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잠깐 놀랐을 뿐이에요.”
그녀는 대스승에게 뭔가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그녀의 담력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반응은 정상이로군. 수치를 느낄 정도는 되는가?”
“···.”
“그렇다면 고통 쪽은 어떨지?”
이상하다.
지금 대스승의 반응은 마치 마녀를 앞에 두었을 때와 같았다.
하필 그가 든 단검은··· 예전에 마녀들을 난도질했던 그 ‘유성의 파편’이었다.
대스승은 그것을 위험한 각도로 내리꽂으려 했다.
푸욱!
이어서 살에 날붙이가 파고드는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흠, 자네마저 이러기인가?”
“덩치, 너!”
나는 끼어 들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로이드 녀석이 쓸데없이 참견하는 꼴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었지.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손바닥을 통해 날카로운 통증이 퍼지고 있었다.
막아버리고 만 것이다.
나조차도 모르게.
클라르테를 향해 찔러 박히는 대스승의 칼부림을···.
“이건··· 아닙니다, 대스승.”
증거가 없다.
클라르테는 클라리스가 아니다.
함부로 죽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그녀가 마녀와 연이 있다고 해도,···.
기적과도 같은 확률로 클라르테가 클라리스와 동일인물이라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그 복수는 나의 것이다.
그녀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만의···.
“이래서는 안 됩니다!”
“빅터여, 너도 꽤나 건방진 소릴 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러나···.”
대스승은 내 손에서 단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그리곤 안타까운 얼굴로 혀를 찼다.
“모처럼 돌아왔는데, 그 상처론 당분간 쉬는 것도 힘들게다.”
무슨 말이지?
이 자체는 별것 아닌 자상이다.
나의 초인적인 몸이라면, 이 정도쯤이야 하루 이틀이면 치유될 수 있을 정도의···.
“커헉!”
젠장, 내가 멍청했다.
완전히 잊고 있었어.
저것이 모든 마기를 봉하는 외계의 금속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이븐 가지의 가루도 마찬가지였다.
“깊이도 찔렸군. 쉽게 몸을 가눌 수 없을 거다. 당장은 숨 쉬기도 힘들겠지. 우리의 육체를 이루는 마의 파편과 더불어, 혈관 속에는 가루가 공존하고 있을 테니.”
“헉, 허억!”
“자네가 무슨 생각으로 여인을 위해 몸을 날렸는지 짐작하지만··· 무모한 짓에 불과하네. 이 유성의 파편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물건이 아니야.”
말 그대로다.
몸속 구석구석까지 뜨거움이 번진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야.
이건 흡사··· 눈을 이식받을 때의 고통과도 맞먹는다.
“잠깐 어리석은 제자가 끼어들었지만, 그럼 다시···.”
올려다 보이는 대스승 뒷모습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돌아선 채였지만, 나는 그의 얼굴이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마녀를 도륙 낼 때, 대스승은 그 어느 때보다 일그러진 광기를 표출했지.
그는 언젠가 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삶의 즐거움이란···.
바로 마녀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는 일뿐이라고.
“대, 스승!”
나는 일어섰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한 번은 얼굴부터 바닥에 처박혔지만, 어떻게든 몸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이까짓 고통쯤, 이를 악물면 어떻게든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 버텨낸 고난이다.
그렇다면 참을 수 있다.
아니, 지금은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다.
“···빅터여, 또 괜한 고집을 피우는구나.”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악을 쓰며 말리려 했지만, 돌아선 대스승의 얼굴은 내가 떠올리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반대로 평소보다 온화하고, 안정된 표정이 아닌가?
“절대 가벼운 아픔이 아닐 것을··· 참으로 우직한 근성이로다. 그만큼 이 아가씨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싶은 게냐?”
“그건···.”
“괜찮다. 오해하지 말거라. 이 몸을 믿어다오. 이것은 단순한 실험에 불과하니.”
그러면서 그는 칼날 끝으로 뻗어 클라르테의 왼쪽 어깨를 살짝 찔렀다.
얼마나 빠른 찌르기인지, 그녀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저, 이건 무슨 일인가요? 왜 저에게···?”
한 동안 그녀를 관찰하더니, 이내 대스승은 모자를 벗었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의사를 표한다.
“실례했소, 아가씨.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는 것이 신사의 도리이겠지. 하지만 이해해주시게. 이것도 꼭 필요한 일이니. 전부 마의 존재를 구분해내기 위한 수단이야. 사냥꾼이 아닌 자가 방문할 때의 확인법일세. 내게 악의가 없다는 것만 알아주시게나.”
대스승은 내 쪽을 바라보더니.
“빅터여, 이제 자네도 알겠지? 만일 마녀라면 이 상처만으로도 자지러졌을 것이다.”
“큭···.”
“우리가 무방비하게 침입자를 들이겠느냐? 과거에 우리들의 적이 은신처를 몇 번이나 노렸을 것 같으냐?”
역시 대스승은 내 태도에서 불안한 뭔가를 감지하고 있었던 건가?
“아가씨에겐 긴 사연이 있을 듯하니, 이제 차근차근히 들어보도록 하지. 아이라, 새 옷을 좀 내주겠느냐?”
“네! 손님,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음, 제 옷이 그쪽에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괜찮아요. 저는 꾸미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까.”
“가슴이 조금 끼실지도··.”
“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가능한 펑퍼짐한 옷을 드려야겠네요. 일단 함께 찾아보도록 해요.”
제기랄···.
아이라의 가벼운 이야기에 순식간에 긴장이 풀려버렸어.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벽에 등을 기대야만 했다.
안방으로 들어서는 직전까지, 클라르테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니, 나는 묘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결국 대스승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몸은 괜찮으냐?”
수분이 지나자, 겨우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신에 맴돌던 통각도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너무 주눅 들지 말거라. 내가 미리 언질을 하지 않았으니, 자네도 오해할 만한 일이었다.”
“···.”
“허나 이건 흥미로워. 선명한 진홍빛 머리칼에 병적인 미모를 가진 젊은 여자···. 마치 전승 속에나 나오는 자색의 마녀가 떠오르는군. 이 아가씨가 그렇게까지 그것과 닮았는가?”
“···눈치 채고 계셨습니까?”
“자네의 속이야 뻔하지. 특히 나만큼이나 오래 살아남은 사냥꾼이라면, 염려하는 사유까지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네. 못 볼 것을 많이 본 눈일수록··· 더 많은 걸 간파할 수 있는 법이지.”
“하지만!”
“분신이거나 그 이상의 속임수를 의심하는 게냐?”
대스승이 말해준 침입자의 판별법에 대해선 충분히 알겠다.
그러나 마음에 걸린다.
아직 한 가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븐 가지의 분말을 만들어냈습니다.”
나는 엑조틱에게 우리가 구속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 순간, 그녀는 분명 고농도의 가루를 내뿜었었지.
그것은 마기의 덩어리다.
그렇다면 유성의 파편에 반응이 있었어야 하지 않은가?
나는 그 현상을 대스승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그런데···.
“빅터여, 너는 나중에 반드시 그녀에게 사과하도록.”
“예?”
“모르겠느냐? 그 정도는 레이가 알려주었을 거라 생각했거늘···.”
“뭘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성장에 비해 정말 무지하구나. 아니, 이건 내가 자네에게 알려주지 못한 탓이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새로운 지식을 말해주도록 할까?”
그러면서 대스승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본디 여성에게선 이븐 가지의 분말이 머문다.”
“무슨···.”
“사내와는 달리, 그녀들은 예외 없이 크던 작던 마음의 가루를 가슴 속에 품고 있다. 어딘가의 난봉꾼들이 난잡하고 음란한 시를 읊을 때도 종종 그러지 않았느냐? 여성은 감정적인 존재라고.”
“···금시초문입니다.”
“그렇겠지. 나도 왜 여자들에게만 그런 특성이 나타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란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같은 마기가 아닙니까?”
“그건 마녀들의 것과 다르다. 심지어 우리가 다루는 가루와도 차이가 있지. 다른 마기와 악의가 섞였을 때, 이븐 가지의 분말은 비로소 초자연적인 힘을 낸다.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없느냐?”
고개를 젓는 나에게, 대스승은 자신의 확신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과 함께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를 불러들인다. 그때, 마물의 속박을 푼 것은 그녀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너희가 그 고립된 공간에 같이 있었기에 발현된 힘인 것이다. 알아두려무나. 평온한 감정의 불순물이 가득할수록 무해하며, 유성의 파편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그런 차이가 있었단 말인가?
복잡하다.
나는 아직 대스승이 설명하는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 한 마디를 더 건네었다.
“그리고 그게 별 세계의 존재들이 오직 여성만을 자신의 권속으로 부리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렇기에 ‘마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사내인 마법사를 본 적이 없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만으론 납득할 수 없어, 무엇보다 나는 내가 싸우는 적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옆에서 멀뚱히 선 로이드에게 시선을 향했다.
“너도 알고 있었나?”
“어, 그야···.”
“로이드!”
“아니, 임마. 왜 갑자기 소리까지 지르고 그러냐? 그건 우리 사냥꾼들의 상식이잖아? 당연한 거라고. 나는 빌헬미나 누님에게 가장 먼저 배웠던 게 바로 그거란 말이야.”
“···.”
“후배, 너는 강해지는 속도에 비해서 상식이 없어. 순서가 엉망진창이라고.”
여기서 대스승은 드물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미안하구나. 내가 신경쓰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알아다오. 그 만큼 빅터··· 자네가 특별한 경우라는 걸 말이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릴 들어봤자 위로가 안 된다.
바보 취급당한 기분이야, 대스승의 격려마저 질 나쁜 농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적어도 내가 마음을 놓을 이유만큼은 알려주었다.
“안심하라. 네가 무엇을 보았든, 그녀가 원수를 얼마나 닮았든 간에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으니까. 마기는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는 법이지. 빙의의 마녀 달리아처럼 특수하게 육체를 갈아탔다고 해도, 절대 이 유성의 파편 앞에선 견딜 수 없다.”
이어서 대스승은 내가 가장 바라던 답을 내놓았다.
“즉, 그 아가씨는 마녀가 아니다.”
“···.”
“그러니 그 마음의 짐을 내려놓거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상대에게서 확답을 들으니, 며칠 동안 가슴 속에 응어리진 뭔가가 순식간에 내려갔다.
허나 그러면서도 허탈했다.
나는 그동안 괜한 헛걱정만 하고 있었던 것인가?
로이드 자식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뭐야, 후배? 너 클라르테 아가씨를 의심하고 있었던 거냐?”
“그래.”
“원수랑 닮았다는 건 무슨 소리냐? 왜 그 중요한 걸 나한테 말하지 않았지? 그렇게 내가 못 미더웠냐?”
“그래.”
“아니, 이 자식이···.”
“들어봐야 재미도 없을 이야기다.”
“그게 함께 사경을 넘긴 선배한테 할 소리냐?”
“대스승의 앞이다. 진정해라, 로이드.”
“나는 신경 쓰지 말거라. 오히려 둘 다 혈기가 넘쳐서 보기 좋군.”
“그렇다고 하시잖냐! 역시 그릇이 크십니다, 대스승 크레이그! 기왕 이렇게 된 거 제 말 좀 들어주시죠! 이 자식이 말입니다. 무뚝뚝한 게 정도가 지나쳐서···.”
“그렇다고 경박하게 언성을 높이라곤 하지 않았거늘.”
“헉!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자식이···.”
“큭큭, 농담일세. 하긴 빅터가 심심한 친구인 걸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
“알아주시는 겁니까!”
내가 사정을 말하지 않은 게 어지간히도 섭섭했는지, 녀석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하지만 입장은 같다.
나도 아직 로이드가 마녀 사냥꾼이 된 사연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니까.
“로이드, 너도 비밀을 숨기고 있지 않나?”
내가 그걸 지적하자, 로이드는 뻔뻔하게도 자기가 할 말만 늘어놓았다.
“하, 그건 언젠가 좋을 시기가 되면 해주지.”
“그러시던가.”
“오냐. 잔뜩 기대하라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니 상관없다.
녀석의 태도를 보아하니, 유쾌한 과거사도 아닐 듯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대스승의 앞에서 소란을 피운 게 마음에 걸린다.
그의 의도를 깊이 믿지 못하고, 또 다시 경솔한 실수를 했으니까.
“···죄송했습니다, 대스승.”
나는 그에게 목례를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하아,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스승께 또 무슨 폐를 끼친 거야?”
익숙하면서도 굳센 목소리.
동시에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당당히 걸어 들어왔다.
어쩐지 들뜬 움직임.
신비한 은발을 가진 동방의 미인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보같은 사제에게 다시 한 번 내가 예의를 가르쳐줘야겠지?”
“레이 사저.”
“흥, 여전히 덩치만 크다니까. 다행히 어디 썰려서 오진 않은 것 같네.”
그녀는 히죽 웃으면서 내 가슴을 주먹으로 툭 하고 쳤다.
“마침 잘 왔어. 오래도록 소식이 없길래 확 죽어버린 거 아닐까 슬슬 생각하던 참이었거든.”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걱정은 쥐뿔···. 뭐, 무사했으면 됐지.”
어설픈 반김이었지만, 레이는 이런 모습이 어울린다.
“이제 다리는 괜찮나?”
“흐응?”
그러자 그녀는 왼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부웅.
시원스런 발차기가 내 옆머리에 닿기 직전에 멈춰졌다.
“어디, 시험해볼래?”
두 다리로 땅을 디디는 모습이 경쾌해 보여, 부러진 발은 다 나은 모양이었다.
건강해보여서 다행이군.
“음, 감동의 상봉이라 눈치 보이긴 하는데 말입니다.”
“응?”
“저도 좀 반겨주면 안 됩니까?”
갑자기 로이드가 끼어들었다.
녀석은 내가 레이와 대화를 나눈 게 묘하게 부러워 보이는 눈치였다.
하긴, 녀석은 자신을 지금까지 인솔하던 스승과 같은 존재가 전사했다.
나와는 달리 이 집결지에서 붕 뜬 입장일 지도 모른다.
녀석이 어른스럽지 못하게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허나 레이가 로이드에게 보인 반응은···.
“넌 누군데?”
“오잉?”
“꼴을 보니 너도 동지인 것 같은데··· 신입이냐?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
“이거 섭섭한 말씀을 하시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수도에서 활약한 곡예사로 이름을 떨친···.”
“긴 말은 필요 없어. 그래서 누구냐고.”
“마, 마술사 로이라고 하시면 아시려나?”
“몰라.”
“하, 하하··· 이 누님 되게 호쾌하시네?”
“난 네 녀석보다 연하인데? 뭘 친한 척 누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아니··· 후배, 너도 내가 소개하는 걸 도와라!”
“귀찮다.”
“야, 임마?!”
“너 혼자 좋을 대로 해라.”
이제 와서 매정하다고 욕하면서 쳐다봐야 소용없다.
떠들썩한 분위기도 좋지만 나는 이만 좀 쉬고 싶어 졌으니까.
대스승의 단검에 찔린 후유증이 적지 않게 남아있기도 하고.
하지만 상황은 그걸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 그 사람이라면 제가 좀 알죠.”
이어서 로이드는 물론,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 나타났기에.
아직 여기에 머물고 있었단 말인가?
“도리스.”
“안녕하세요, 빅터 씨. 그리고 오랜만이네요, 로이드 씨. 일전의 이식 이후론 처음이죠?”
“케, 켁···.”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답니다.”
로이드는 상대를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