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55화 (55/186)

재회의 장(6)

11.

“여러분은 운이 좋습니다. 당신들의 목숨만은 살려드리도록 하죠. 그 대가로, 저와 함께 지적인 대화를 나누도록 합시다. 아니, 엄밀히는 가르침이군요. 그래요. 저는 당신들에게 지혜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요청이었다.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별개로 내용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잠깐, 수 초 동안 우리는 사고가 멈췄다.

허나 놈은 우리의 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을 계속 이었다.

“저와 대면한 것이 어지간히도 놀라운 모양이군요. 하긴, 갑자기 일방적인 친절을 베푸는 것도 사정을 모르는 이에겐 예의가 아니겠지요. 허나 여의치 마시길, 이건 제 나름의 성의이자 보답입니다. 저는 당신들의 대화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이 세계의 신비한 일면에 직면하고서도 의심을 풀지 말라! 오오, 이 얼마나 이성적인 접근인가! 그 고결한 사상은 혹시 이 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철학입니까? 아니면 제가 이 자리에서 새로운 기류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역시 이 자리에서 빼앗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생명이로다.”

부끄러운 지도 모르고 과장된 어투로 지껄인다.

물론 눈앞의 노신사가 인간이 아님은 확실해, 하지만 아무리 정안을 집중해도 놈의 본래 모습이 관측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클라르테에게도 놈은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설마, 마녀가 아닌 마법사 같은 것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아니, 방금 놈은 도플갱어와 동족이라고 했었다. 그 게 사실이라면 앞뒤가 안 맞아. 허나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대체 어느 쪽이지?’

정체를 모른다고 해서 움츠려 들 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 움직일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꺼내든 나의 도끼도, 어느새 은사를 풀어헤친 로이드도···.

‘이건 또 무슨 마귀의 술법이란 말인가?’

우리는 경계하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몸이 굳어버렸던 것이다.

“이거이거이거이거, 실례합니다. 언질을 하기도 전에 달려들 것만 같이 너무 살기가 등등해서 말이죠. 잠깐 두 여러분의 자유를 구속했습니다. 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는 풀어두었으니 사양하지 마시지요.”

“어, 어째서 제 몸이···.”

첫 질문을 던진 것은 클라르테였다.

그러나 그녀는 가녀린 어깨를 떨어가며 정체불명의 노인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이런 요사스러운 현상을 몸소 경험하는 것은 처음인 듯 보였으니까.

그러나 상대가 순순히 거기에 답해줄까?

묻는다고 알겠습니다, 하며 넙죽 받아들일 리가···.

“하필 그게 궁금하신가요? 알겠습니다. 알려드리죠.”

“이 새끼···.”

“아, 거기 당신은 잠깐 조용해 주시길. 순서를 지킵시다. 그쪽의 질문은 이 아가씨 다음에 받겠습니다. 당신들의 시간은 유한하고, 이 순간도 자칫 무의미하게 소모될지 모릅니다. 저는 이 기회를 그냥 버리고 싶지 않군요.”

이어서 노신사는 클라르테 쪽을 바라보더니.

“어째서인지 몸을 자유롭게 가눌 수 없다···라? 뭐, 좋습니다. 현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육체를 가진 생명체라면 당연히 먼저 떠올릴 법한 의문이군요.”

“뭐에요, 이게 대체?!”

“제 감각으로 비유하자면, 공간의 일부를 약간 비틀었습니다. 여러분이 몸만을 이쪽 차원에서 잠시 분리시킨 거지요. 그 원리는··· 아이고, 이런이런이런이런! 하필 이 시대의 귀하들이 받아들이기엔 시기상조인 지식이로군! 대략 수십 년 정도를 들인다면 설명을 못할 것은 아니나, 꽤나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겁니다. 이건 저에게나, 아가씨에게나 양쪽 모두 재미가 없겠죠.”

“···네?”

“그냥 마법인 걸로 합시다. 이 시간대를 살아가는 당신네 지적 생물체들이 흔히들 가벼이 말하는 것 처럼요. 아니면 역시 이성적인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저기 마른 사내가 말했었죠? 알 수 없지만 뭔가 수상쩍은 속임수가 있는 것이라고.”

납득을 할 수 없어, 클라르테는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노신사는 이번에 그녀의 입을 닫았다.

“질문은 한 명당 한 번씩 돌아가며 하도록 하죠. 기회는 공평해야 합니다. 자, 다음은 당신입니다.”

바톤이 넘어온 것은 나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했지만,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아래가 미동도 없었다.

공간이니 뭐니 어려운 것은 모른다.

이 정도로 초월적인 암시가 가능한 건가?

나는 이를 갈며 놈에게 물었다.

“대체 정체가 뭐냐?”

“그러고 보니 당신은 아까도 그걸 물었었죠. 그건 저라는 개체에 대한 물음입니까?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일단 ‘마공작 올비우스’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도록 하지요. 이 세계에선 대충 그런 설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겉치레보단, 제 본질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저 숙녀 분과 같이 특이한 개성을 가진 개체입니다. 다시 말해, 탐구하는 자이죠. 당신들의 용어에 따르면 모험가, 학자··· 대충 그런 성질에 가깝지요.”

웃기지도 않는다.

괴물 주제에 학자라고?

“네놈의 자기소개 따윈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너희가 뭐냔 말이다!”

“세상에, 그 쪽이군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다니!”

“당장 말해!”

“···아아, 어쩔 수 없군요. 하여간 어느 시간대든 당신네들 호모 사피엔스란, 아니··· 이 시대의 인간에겐 그런 분류법이나 학명조차도 붙여지지 않았지.”

“뭘 횡설수설하는 거지?”

“크으, 혼란스럽군요. 어떻게 접근해야··· 한참 지적수준이 떨어지는 생물에게 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알아듣게 말하란 말이다!”

“아니아니아니아니, 자칫하면 미쳐버리고 마니까요. 그래서 가능한 현지 생물과 접촉하는 걸 망설였던 겁니다. 음, 하지만 상관없나? 당신들은 충분히 우릴 받아들일 만큼 이성적이고 용기 있는 자들이니 말입니다.”

“잡소리는 이제 됐단 말이다!”

“악마, 마물, 악귀, 귀신··· 이미 우릴 부르는 명칭이야 십 수개가 넘어가지만···.”

그래.

사실은 알고 있다.

놈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괴물이다.

‘하지만 엄밀히는 모른다. 마물의 본질도, 놈이 사용하는 이 기이한 힘의 정체도···.’

나는 놈이 머뭇거리는 사이의 빈틈을 노리려 했다.

그리고 그건 로이드도 마찬가지였지.

그러나 노신사가 망설이든 말든, 주박은 풀릴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의 말이 사실이었나?

죽이니 살리니 어쩌고 했던 것처럼, 우리의 생사여탈권은 놈에게 있단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그건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

여차하면 혀라도 깨물고 죽어버리리라.

하지만 순순히 당하진 않으리.

적어도 내 의지로 마무리할 것이다.

몸은 멈춰있지만, 가슴 언저리에서 이븐 가지의 분말만큼은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까.

아주 한 순간···.

그림자를 두를 잠깐의 틈만 있다면!

“좋습니다. 우선 우리가 무엇인지 이해시켜 드려야겠군요. 그런데 그러려면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이 있죠.”

“그게 뭐지?”

“그건 바로 우리가 당신들과 달리 본디 육체가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그 모습은 뭐지?”

“일단은 위장입니다. 써먹기 좋은 피와 살을 빌렸지요. 우리에게도 이쪽 차원을 여행하려면 나름대로 조건이 필요하거든요. 편의상 필요한 행색입니다. 제 본래 얼굴이 궁금하신 모양인데, 아무리 눈을 부릅떠봐야 소용없습니다. 몽마 따위의 저급한 눈으로는 그보다 상위 계급인 저를 확인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제가 스스로의 의지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영영 우리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뭘 원하는 거지?”

“이런이런이런이런, 질문은 한 번에 하나씩입니다. 이제 와서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시길.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자비와 배려로 생긴 우연한 기회에 불과합니다.”

“···.”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조금 전 여러분의 대화를 들어서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과연, 이치와 섭리를 위해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자세라니! 이 시간대의 하찮은 지성체들에게까지 놀라운 이성의 은혜가 머물 줄이야! 매우 놀랍더군요. 그만 제가 직접 개입해서 이처럼 질의응답 시간을 만들 정도의···.”

“수다는 됐다. 시간 낭비를 싫어한다며? 그래서, 네놈이 뭐란 말이냐?”

“아차, 그렇군요. 너무 흥분했습니다. 그건 나중에 차차 알려드리죠. 우선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비에 쌓인 괴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댁들이 육체에 본바탕을 둔 생물인 것과 같이··· 우리는 정신에 그 기반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정신··· 이라고?”

“고차원의 에너지 생명체라고 하면 알겠습니까? 어디보자, 에너지Energy··· 아니, 당신에겐 에네르게이아Ενέργεια라고 해야 이해하기 쉽겠습니까?”

“···어느 쪽이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런이런이런이런,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성숙하기에 다식한 개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그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평균적인 당신 종의 사고수준과 비교한다면,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해야 할 지···.”

“날 놀리는 거냐?”

“칭찬입니다. 그 야만적인 부분은 조금 흠으로 보이지만.”

“이 새끼···.”

“오,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를 그저 도플갱어 따위라 불러도 좋으나, 생각해보니 보다 알기 쉬운 용어가 있군요.”

노신사는 흡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엑조틱Exotic.”

“엑조··· 뭐?”

“외부의 존재이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우리 종족의 이름은 댁들의 발성기관으론 흉내조차 못 낼 테니, 가능하면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부디 그렇게 불러주시지요.”

빌어먹을!

그 생소한 단어에, 나는 그만 순간 마녀들이 섬기는 존재를 떠올랐다.

“그러니까 네놈은 아스트랄과 같은 족속이란 건가?”

그래서 무심코 놈의 앞에서 그 이름을 뱉어내고 말았다.

“아스트랄? 아스, 트랄이라고오오오오?”

노신사의 얼굴을 한 마물의 안면 가죽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표정을 지운 채, 놈은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심지어 모가지를 올빼미처럼 180도로 꺾더니.

“감히! 그 역겨운 것들과 우리의 동포들을 비교하다니!”

눈알이 분열하기 시작한다.

마치 거품처럼 안구 속에서 무수한 시선이 나를 비추었다.

동시에 턱이 찢어져 이등분된 아가리에서 날카로운 이빨들이 촘촘하게 돋아난다.

알기 쉬운 분풀이군.

놈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감정이 있는가?

하지만 나는 모른다.

놈이 말하는 것의 차이를···.

내가 아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대스승이 알려준 ‘보이는 놈’과 ‘보이지 않는 놈’의 구분뿐이었다.

“···뭐, 좋습니다. 무지한 당신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제 잘못이지요. 여기서 격노해봐야 제 품격만 의심될 뿐이니.”

그러면서 놈은 다시 평범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직도 사람 좋은 신사의 흉내를 내기 시작할 셈이군.

차라리 본색을 드러낸 쪽이 더 자연스럽다.

“마물 따위에게 품격 같은 게 있나?”

“감정 전환이 빠른 것이 고등한 지적 생물의 자격인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뻔히 보이는 저급한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지요. 이제 충분하시겠지요?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에겐 충분히 답을 드린 것 같으니, 다음은···.”

녀석은 나의 입을 막고, 이번엔 로이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녀석은 겨우 답답한 숨을 토해냈다.

그 누구보다도 수다쟁이인 로이드에게, 이 강제된 침묵은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로이드는 미리 질문을 생각해두었는지 바로 입을 열었다.

“···이봐, 엑조틱 양반.”

“오오, 역시 좋은 울림입니다. 어휘를 궁리한 값어치가 있군요. 자, 얼마든지 물어 보시지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쪽이 그랬지? 우리의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물론물론물론물론, 그렇습니다. 그건 약속드리죠. 당신들은 가치 있는 목숨이라 제가 인정드립니다. 아니, 그런데 그게 질문입니까? 제 의도를 의심하고 확인하는 게?”

“당연히 아니지. 그걸 묻는 게 아냐.”

“그렇다면?”

“우리의 대화에 감동을 느껴서 봐준다는 건 충분히 알아들었어. 맥락상 우리‘만’을 제외한 사람들을 죽이겠단 것도 잘 알겠다! 하지만 뜬금없이 왜···.”

“아하, 그건··· 복합적인 질문이군요.”

그런 것치곤 노신사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 듯이.

“이유야 많습니다. 굳이 하나 뽑는다면, 기다릴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거기다 슬슬 시시해지던 참이었죠. 인내심이 깊은 저와는 다르게 제 동족들은 금방 질리는 어린애들과 같거든요. 그래서 평소의 유희를 끝내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저는 몰라도, 우리 중의 저급한 놈들을 볼 수 있는 자들이 성가시게 굴면 곤란해지니까요.”

“영문을 모르겠다고!”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당신들이 동족을 하나 죽였기 때문이죠. 그 희멀건 눈으로 우리의 놀이를 방해할 것 아닙니까?”

놈은 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딱히 원한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 물론 유감은 없습니다. 저로서는 좀 더 느긋하게 사태를 관찰하고 싶었으나, 우리 동족은 기본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그딴 걸로 납득할 거 같으냐?”

“왜 그렇게 악을 씁니까?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았나요?”

“대화가 통한다면 제대로 말을 하란 말이야! 고풍스럽게 마냥 길게 말한다고 있어 보이는 줄 아나? 웃기지 마라! 왜 마을 사람 모두를 죽이겠다는 거냐고!?”

“이런이런이런이런, 당신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그런데, 여기서 노신사는 고개를 저었다.

놈은 담담한 목소리로.

“전부 죽인다고까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아무리 불가시의 존재인 우리라도 금방 이목을 끌게 될 테니 말이죠.”

“그, 그럼···?”

“우리에게도 기준은 있습니다. 나름의 선별이지요.”

“선···별?”

“그건 댁들이 짜놓은 규칙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관측한 결과에 의하면, 인간들은 자기네 무리에서 언제든 소모해도 상관없는 다수의 개체에게 미리 선을 긋고 있더군요.”

“무슨··· 지금 대체 뭔 말 같잖은 이야길 하는 거야? 소모? 죽어도 되는 사람을 정해둔다고?”

“그런 의미에서 당신들은 우수합니다. 특별하지요. 남자인 두 사람은 육체를 극도로 달련했군요. 양쪽 다 평균을 훨씬 웃도는 근육양입니다. 양질의 수컷이지요. 그리고 아가씨 쪽도 놀랍습니다. 그 나이의 그 식견과 호기심··· 먼 미래가 기대되는군요. 하지만 이 썩은 거리의 인간들은 글렀죠.”

“···설마!”

“그것들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우린 단지 무리에서 제외당한 낙오자들의 골수를 조금 빨아먹는 것뿐입니다. 공포라는 이름의 양념을 조금 첨가한 뒤에.”

“미친,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

로이드의 분노에는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는 녀석이 빈민가의 사람들을 돌봐줄 때, 약간이지만 그의 일부 감정을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분명 그리움이나 막연한 슬픔이 동시에 스며들어 있었지.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어쩌면 로이드에게 뒷골목의 세계란, 일종의 추억이나 애환이 공존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허나, 이토록 강렬한 감정의 발산에도 불구하고 그걸 듣는 노신사에겐 인간의 마음이 없었다.

“모욕은 거기까지, 질문에 대한 답은 입을 닫고 듣기만 하시지요. 우리가 왜 도플갱어란 이름으로 불리며 이곳에 머물고 있었는가?”

말문이 막힌 로이드에게서 숨길 수 없는 동요의 기색이 떠올랐다.

제기랄, 나도 둘의 대화에서 경악스런 진실을 눈치 채고 말았다.

놈이 말하는 선별이란, 그것은···.

“이 도태된 빈민가는 그야말로 우리가 머물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언제 어느 때 사라져도 상관없는 자들이 여기저기 넘쳐흐르니까 말이죠. 가난한 자, 병마에 시달리는 자, 늙은 자··· 정말 하나같이 이 시대의 인간은 항상 어둠과 미지를 두려워하니, 공포의 엑기스가 넘칩니다. 저도 그 동안 질리도록 맛보았죠. 하지만 이제 하찮은 이들의 궁핍한 상상력에는 질렸습니다. 거기다 당신들 같은 ‘볼 수 있는 자’에게 들켰으니, 우리는 이쯤에서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뒤처리는 확실히 해두고서···.”

“아, 안···돼.”

“···호오, 그 주박에서 자력으로 입을 열다니? 당신은 저를 여러 번 놀라게 만드는 군요.”

“끄으, 으··· 그건··· 그런 일은!”

그때였다.

모두가 분노로 치를 떨었지만, 우리 중에서 놈이 건 침묵의 술법을 깨고 움직인 자가 있었다.

우선 나는 아니다.

로이드도 여전히 굳은 채였다.

비명을 지른 것은 다름 아닌 클라르테였다.

“나는··· 절대로!”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는···.

지금껏 본 적 없는 고농도의 마기, 아니 이븐 가지의 가루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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