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50화 (50/186)

재회의 장(1)

1.

뒷수습에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 수수께끼가 남았어, 제리온과 동행했을 또 다른 제자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시체는 찾지 못했지만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거기다 본래 우리의 임무였던 마기의 탐색도 흐지부지 되어 버린 지금···.

바위산 아래의 마을이나, 놈들이 마기를 감추는 방식에 대해서 밝혀낼 방법이 없다.

결국 로이드와 나는 할 수 있는 일에만 주력해야 했다.

그것에는 제리온과 빌헬미나의 묘지를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지.

우리는 그들의 시신을 마차에 실을 순 없었다.

전사한 동지들은 그들이 죽은 대지에 묻어주도록 한다.

그것이 마녀 사냥꾼들의 암묵적인 장례 방법이라고 예전에 대스승이 말했었기 때문이었다.

로이드 녀석은 썩 마음에 안 들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주검이 된 라비나와 부족민들까지 끌어 모아 함께 화장을 시켜주었다.

꼬박 하루가 걸렸지.

둘 다 몸이 만신창이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지 할 수는 있었다.

역시 이식을 통해 강화된 이 몸은 보통 사람의 체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한계는 명백했지.’

해야 할 일을 마쳤다고 스스로 자각한 시점에서 피로가 몰려왔다.

지친다는 건 유독 몸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란 거였지.

결국 우리도 인간에 불과했다.

진심이 담긴 애도란, 그만큼 많은 것이 소모되는 것이었다.

2.

로이드와 나는 전투의 후유증 탓에 집결지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는 것만으로도 이틀 이상을 지체해야만 했다.

그만큼 나와 로이드의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특히 녀석은 손가락이 단 하나도 성한 곳이 없어, 늑골도 여러 개가 부러진 데에다 다리 한 쪽마저 금이 갔다.

이식을 받지 않았다면 발광할 정도의 상처였다.

하지만 오히려 녀석은 내 몸을 염려했다.

나야 당장 오른팔이 불편하긴 했지만, 적어도 두 발로 걸을 수 있긴 했으니 크게 여의지 않았는데···.

정작 로이드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건 이븐 가지의 분말이 가진 부작용이었다.

그것을 전신에 둘렀을 때 일어나는 후폭풍···.

녀석은 말했다.

그림자를 두른다는 것은, 마녀 사냥꾼에게 있어서 최후의 보로와 마찬가지라고.

“빌헬미나 누님이 그랬거든. 곧 죽을 상황이 아니면 절대 전신에다 두르지 말라고. 기껏해야 팔이나 다리 정도에만 써서 위기를 넘기는 정도로나 쓰라고 했지.”

그걸 어기면 어떻게 되냐고 했더니, 또 로이드는 쓸데없이 분위기를 잡았다.

“너도 봤잖냐? 이븐 가지의 분말은 우리의 감정 그 자체라고. 그런데 마음의 힘이란 것도 절대 무한한 건 아니잖아. 자신을 유지하는 정신력을 한도 끝도 없이 끌어 써버리면, 대체 뭐가 남을 것 같아?”

모른다.

나는 여태껏 인간에게 영혼이 있을지 여부조차 의심하고 살았으니까.

그 가르침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클라리스의 논리를 통해 더욱 견고한 사고체계를 가지게 되었지.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결국 혼이란 뇌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화학 작용일 뿐이라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현상들은 단지 우리가 그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정안을 통해서 감정의 형태가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지.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그걸 찾아내지 못했을 뿐···.

“너 임마··· 얼굴은 무슨 산적두목처럼 생긴 주제에. 뭔 철학자들이나 꺼낼 법한 논리를 지껄이는 거냐?”

“이건 내가 생각해 낸 게 아니다.”

“엉? 그러면?”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학자가 가르쳐준 거지.”

“오호라, 그래서 썩 그럴싸하게 들렸던 거구만. 누군진 몰라도 훌륭한 선생님의 말씀 같다. 빌헬미나 누님도 말주변이 없던 나머지 빙빙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결국은 의미가 통한단 말이지.”

시비처럼 말하면서도, 결국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여버리는 모습이 웃겼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건 알아둬. 고통은 자연스러운 거야.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라고. 그게 제대로 안 느껴진다? 그럼 그건 뭔가 잘못된 거야.”

로이드 녀석은 나름대로 진지했다.

내 팔은 그만큼 심하게 상해있었으니까.

조금 과장해서 덧붙이자면, 파쇄권의 반동으로 아주 가루가 되어 있었겠지.

그럼에도 큰 아픔은 없었다.

크게 무리만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처음엔 의외로 부상이 심하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넘겨짚었다.

기술이 너무도 절묘하게 들어갔기에 내게 돌아오는 충격도 적었으리라 짐작했지.

로이드는 그게 이상하다고 했다.

부상당한 녀석을 대신해 마차를 몰아주고 있는 중에도, 나에게 잔소리를 쭉 늘어놓았지.

“난 손가락이 이 모양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정신이 나갈 것 같다고! 이건 엄살이 아니야. 신경이 제대로 이어진 놈이라면 이게 보통이다. 그런데 팔 하나만 놓고 본다면 네 쪽이 훨씬 심각하거든?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냐?”

로이드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빌헬미나가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전의 전투에서 누님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지. 너처럼 오른쪽 팔이었거든? 그때도 누님께서 그림자를 둘렀던 걸로 기억해. 너처럼 전신이 아니라, 잠깐이나마 고통을 잊기 위해 가루를 쓴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됐나?”

“누님은 승리했고, 겨우 기술을 풀었지. 그리곤 멀쩡해졌어. 겉으로는 말이야.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거든. 망가진 육체에다 이븐 가지의 분말을 쓰면, 뼛속까지 그게 스며들어 버리는 거야. 그럼 더 이상 그림자를 두르는 게 아니지. 껍데기는 괜찮아 보여도 뼈나 근육, 신경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놓이게 되어 버려. 당연히 고통을 느끼지 못할 테지.”

“흠.”

“계속 그걸 반복하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다고 하더라? 네가 아무리 무식쟁이라도 이젠 알아먹었겠지? 그게 좋을 리 없다는 걸 말이야.”

물론 이븐 가지의 분말이 가진 초월적인 힘 덕분에, 나의 회복은 순조로웠다.

로이드와는 달리, 불과 나흘 사이에 어느 정도 관절이 제자리를 잡았을 정도였으니까.

허나 로이드는 기어이 내게서 가루를 남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 했다.

난감하더군.

그것은 예전에 레이가 내게 했던 경고와 비슷한 말이기도 했으니.

미덥진 않아도, 역시 로이드는 선배였다.

나는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이번 싸움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끝내 본심까지 전부 말할 순 없었다.

아직 기억 속에 남은 제리온의 기술···.

그것을 응용한다면, 나는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허나 그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오랜 연습이 필요하겠지.

그림자와 실체화를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 요령을 익혀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루를 써야할 지도 몰랐다.

“뭐가 그렇게 급한 진 모르겠지만, 너는 앞으로가 기대된단 말이야. 뭐시기, 우리 마녀 사냥꾼에게 있어서 출세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누가 알아? 이대로 착실하게 수련하면, 너도 미래의 대스승이 될지?”

그 돌발 발언에 나는 아마 웃었으리라.

“대스승 빅터! 썩 어울리지 않냐?”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나는 그렇게까지 오래도록 싸워야하는가?

출세는커녕 끔찍한 말년이군.

‘말이 그렇단 거야. 아무튼 당장 살아야 뭐라도 하지 않겠어? 복수든 뭐든···.’

그것만은 동감한다.

이 목숨에 딱히 여한은 없지만, 적어도 목적을 이루기 전까진 간단히 죽을 수는 없으니까.

“후배, 어깨 좀 펴라. 넌 전설을 만든 거야. 내가 책임지고 소문을 내 주지.”

녀석은 오거급 중합체를 쓰러뜨린 나를 보고 감탄한 모양이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에 내가 상대할 적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그 놈은··· 그 거미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섬의 부족들이 만들어낸 인공의 수호신.

그것은 분명 위협적인 적임에는 틀림없지.

하지만 나는 그보다 무시무시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내 고향을 통째로 집어삼킨 그것···.

바로 클라리스가 다루던 하늘을 찢고, 땅을 가르는 거대한 마물을.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겐 무지도 축복이라 할 수 있는가?’

아무 것도 모르던 시기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기에 공포도 생기지 않지.

겨우 눈으로 본 순간부터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은 여기서 압도당한다.

그래도 그것은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미지의 공포에 패배한 것에 불과했다.

어쩌면 행복한 죽음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그들은, 더 무서운 진실은 따로 있다는 걸 모른 채 눈을 감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것의 초월성을 작게나마 엿보았다.

오거급 중합체와 상대해보고서야 겨우 그걸 깨달을 수 있었다.

자그마치 100명이다.

그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만한 수를 희생해 만든 만큼, 놈의 강함은 장난이 아니었지.

그렇다면 클라리스의 사역마는 얼마나 더···?

‘···힘이 간절하다.’

그 중합체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클라리스에게 내 복수의 송곳니는 닿지 않는다.

더욱 강한 무기가···.

놈들을 상대할 기술이 필요해.

겨우 싸울 수 있는 육체가 생겼어도 초조함만큼은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직 유랑 곡예단에서 지낼 때 말이야···!”

속내를 숨기는 내 앞에서, 로이드는 끊임없이 유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덕분에 순조롭게 시간이 흘러··· 녀석의 입담으로 지루하지 않은 여행길은 일주일째에 들어섰다.

어느새 우리는 드디어 사람들이 오고가는 경유지를 지나게 되었지.

그곳은 항구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잡상인들이 몰리는 번화가였다.

여기서 로이드가 말을 휴식시키길 권했기에, 나는 별 고민 없이 고삐를 내려두었지.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되었다.

하필, 그곳에서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의 인물과 대면하고 말았으니까.

3.

“말들도 많이 지쳤으니, 최소한 반나절 정도는 쉬게 하자고.”

로이드는 동물을 살피는 것에도 안목이 있었다.

말들이 머뭇거리는 것이 뻔히 보인다나?

이대로 강행군을 이어갔다간 우리의 귀환이 더 지체될 수도 있다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지.

“그럼 이 놈들을 마구간에 팔거나 풀어주도록 하지. 그 다음엔 새 말을 사서 보충하는 건 어떤가?”

돈이 없지는 않다.

수도에서 통하는 화폐랍시고 대스승이 건넨 금화가 잔뜩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이드는 극구 거부했다.

“시골뜨기 아니랄까봐 틈만 나면 사치부릴 연구냐? 돈이 썩어 넘치더라도 낭비는 안 된다.”

“의외로군.”

“아앙?”

“너라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흥청망청 써버릴 줄 알았더니.”

“아, 뭐··· 이 몸을 어떻게 보고? 그, 그런 택도 없는 소리를···.”

말투와 행동거지가 수상하다.

이 자식, 속셈이 따로 있군.

“횡령할 셈이었나?”

“뭐?! 아, 아니···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내 앞에선 숨길 필요 없다.”

“아니라니까, 임마!?”

“말 두 필이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 남은 건 모두 네가 가지던가 해라.”

“···저, 정말?”

“···.”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기다?”

“너, 이 자식···.”

나는 냅다 녀석의 멱살을 잡아들었다.

“아, 아니아니··· 농담이다! 농담이라고!”

이 망할 놈이···.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으면 밉지나 않지.

돈은 아무래도 좋으니 면상 한 방 정도는 갈겨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나는 가볍게 후려 줄 생각으로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꺄악!”

하필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번잡한 곳이었다.

옆을 스치던 행인이 내 팔꿈치에 맞고 만 것이다.

나는 로이드를 뿌리치고 당장 쓰러진 사람을 부축했다.

“이런!”

상대는 얼굴과 어깨에 후드를 뒤집어 쓴 여자였다.

깊게 눌러쓰고 있어서 그런지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군.

“이 새끼! 너 눈깔은 장식으로 달고 있냐?”

“이 분이 누군지 알고 이딴 짓을!”

그녀는 옆에 사내들 몇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하나 같이 인상이 험악하군.

하지만 이번 일은 순전히 내 잘못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군. 내 실책이다. 저 아가씨에게도 사과하고 싶은데 좀 비켜주겠나?”

“말이면 다 인 줄 아나? 지금 너 때문에 이분의 시간이 얼마나 지체됐는지···.”

그때였다.

“···그만해요.”

차분하고 점잖은 목소리가 울렸다.

후드를 쓴 여자 쪽에서 남자를 말린 것이었다.

“하지만 선생, 이 자식 태도가 엉망이라고?”

“괜찮습니다. 잠깐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아요.”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이 목소리··· 이상하게 익숙하다.

오래도록 못 들은 것 같으면서, 동시에 그리운 음성이었다.

나는 그것이 착각인 줄만 알았다.

“자, 어서 가자고요. 환자가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어서 갈 길이 바쁘다며, 동행한 남자들을 재촉한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한 번 뒤를 쓱 돌아보더니, 나에게 한마디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당신··· 앞으로 인파가 많은 곳에선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 순간, 절묘하게도 그녀가 쓴 후드가 슬쩍 벗겨졌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홍옥과도 같은 붉은 머리칼을···.

이어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그럴리가 없다.

이런 곳에서···.

아니, 아니다.

녀석이다.

틀림없는 그녀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거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그 이름을 내뱉었다.

“···클라아아아아아리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