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46화 (46/186)

기만의 장(5)

6.

포위당했다.

사방에서 기척이 느껴져, 어느새 녀석들은 우리의 등 뒤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전부 여우 가죽을 쓰고 있지만, 여자가 있는가하면 남자도 드문드문 끼어있다.

그런데 이 숫자는 거의 어지간한 마을의 자경단 수준이다.

마녀는 고립되어 혼자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크, 으윽! 이, 이거 돌겠네. 한 명이 아니었다고?”

“로이드! 무사한가?”

“아니, 당장이라도 죽을 거 같다. 이거 안보이냐? 가슴에 박힌 이 화살이!”

성질까지 내며 입을 터는 걸 보니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흉곽에 화살촉이 박혔는데도 멀쩡할 리가 없을텐데.

“얄궂은 운명이지. 아직 누님이 나더러 죽지 말라는 거 같은데?”

로이드는 코트를 열어 그 안에 든 물건을 보여주었다.

"누님의 채찍이··· 이 뱀의 심장Snake heart이 날 구해줬어.”

그랬었군.

다행히 중요한 내장을 빗겨난 모양이다.

운 좋은 자식 같으니···.

허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우리가 위기 상황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으니.

“이제 어쩔까, 후배? 숫자에 쫄아서 엉덩이 보인 채 튀는 건 폼이 안나겠지만, 좀 더 화살 세례를 받는 걸 각오하고 튀어 봐?”

그것은 내게 보내는 신호였다.

로이드의 속셈은 안다.

다시 한 번 같은 수법을 써먹을 생각이겠지.

우리가 뜀박질을 하자 놈들은 또 다시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궤도가 뻔해, 나는 도끼로 그것들을 모조리 쳐낼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 도화선 장치가 된 비료 더미로 끌어 들여서 한 번 더 폭발을 유도하면···.

“아윽!”

하지만 적들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리는 없었다.

언덕 쪽에 숙련된 활잡이가 있었다.

녀석은 로이드의 허벅지를 향해 또 한 발을 맞춰, 이 자리에 발을 묶어버렸다.

교활한 놈들이야.

이렇게까지 정확히 쏠 수 있다면, 한 번에 머리를 날려버리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로이드를 족쇄로 삼아 나까지 족치려는 게 뻔히 보인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싸움에서 약해진 놈을 집중해 노리는 것은 당연한 전술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 효과적인 건 부상자를 만들어 도주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로이드도 그것을 알았는지 나에게 당장 고함을 쳤다.

“튀어, 후배! 난 내버려두고!”

웃기는 소리.

들을 가치조차 없다.

나는 로이드의 코트 목깃을 낚아채, 그대로 어깨에 짊어졌다.

말라깽이 꺽다리 정도쯤, 얼마든지 들어주마.

오거인지 뭔지 하는 중합체와 맞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나에겐 가벼운 수준이지.

“···칫!”

하지만 화살을 전부 피할 수 있을만큼 빠르게 움직일 순 없다.

도끼의 날을 비스듬히 세워 급소를 보호할 수 있었으나··· 그만 놓쳐버린 몇 개가 내 어깨와 등에 박혀들었다.

“빅터! 날 내버려두라니까!”

“닥치고 있어라, 혀 깨물기 전에.”

“내려놔! 선배의 명령이다!”

“이 상황에 선배는 얼어 죽을···.”

“너만은 살아야 할 거 아니냐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계산적인 주제에 겁쟁이 자식···.

마술인지 나발인지로 남을 놀라게 만드는 짓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이놈은 실속이 없고 마무리가 어설프다.

기어이 위기의 상황에서 짐짝이 되어버렸다.

허나 놈은 화살이 날아오는 그 순간, 망설이지도 않고 나를 밀쳐냈다.

어떤 일말의 계산도 없이···.

오직 나를 구하기 위해서 몸을 날렸다.

마치 빌헬미나처럼.

‘오늘, 나는 이미 한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살아남았다. 이 배짱 있는 놈까지 죽게 만든다면, 저 세상에 있는 빌헬미나를 볼 낯이 없단 말이다!’

로이드와 내가 설치한 세 번째 구간의 함정이 보였다.

마침 뒤에서는 여우 머리의 놈들이 바싹 추격해오고 있었다.

‘그래, 와라. 모두 함께 저세상으로 가버려라!’

비료 더미가 코앞이다.

내 수중에 횃불은 없다.

하지만 화약이라면 아직 있지.

“야, 너 이 자식!?”

나는 로이드의 몸을 온 힘을 다해 저 멀리까지 집어던졌다.

노린 대로, 녀석은 경사로를 굴러서 꽤 먼 거리까지 이탈했다.

‘이걸로 당장은 안전하겠지.’

나는 자리에 멈춰 장전해둔 화승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놈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개조된 총열의 사정거리는 짧다.

기름을 먹인 로프에 쏜다고 해도, 여기서 방아쇠를 당기면 나까지 폭발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재빨리 몸을 날리면 살 수 있을까?

허나 터지는 규모를 생각하면 이탈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젠장··· 방법이 없나?

‘그렇다면 저 놈들을 길동무로 삼을 수밖에···.’

몸을 날려 구해준 로이드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각오를 굳혔다.

놈들이 몰려온다.

나는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졌음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기울이려 했다.

그런데···.

“크··· 아아아악!”

순간, 눈앞에서 거대한 폭풍이 일어났다.

불꽃은 없다.

터진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총을 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눈을 떠보니, 비료더미가 쌓여있던 지면에 큰 구덩이가 생겨있었다.

‘이건 대체?’

곧 그 비밀은 풀렸다.

먼발치에서 나를 노려보는 여우 머리의 여자가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

높은 비명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동시에 저 멀리, 시커먼 연기가 바위산에 내려앉았다.

그때, 나는 하늘로 뻗은 중합체의 기묘한 자세를 보았다.

여러 개의 다리를 꼬아서 쭉 내미는 가 싶더니, 그것은 어느새 하나의 살덩이로 변했다.

마치 대포와 같은 모양···.

그리고 그 끄트머리의 주변이 일그러졌다.

“제길!”

나는 뒤로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했다.

피하지 않았다면 내 몸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바닥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작용해, 또 하나의 균열이 만들어졌으니까.

이게 빌헬미나의 목숨을 앗아간 그 공격인가?

멀리서 공기를 발사해 착탄 시키는 식이라니, 그래서 마기가 보이지 않았던 건가?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더러운 약탈자.”

큰일이다.

등을 잡혔다.

내가 공격에 넋을 잃은 사이, 또 알몸에 여우머리로 얼굴만 가린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내 목에 칼을 겨누는군.

조잡한 무기다.

그러나 예리해 보인다.

마치 검은 유리 같은 뭔가···.

흑요석을 깨뜨려 만든 날붙이인가?

“이방인. 죽이기 전에 묻겠는데, 뭘 노리고 우리 마을에 온 거지?”

“우리··· 라고?”

푸욱!

갑자기 등 뒤의 여자가 내 어깨에 단검을 박았다.

여자는 칼을 뽑아들면서도 싸늘한 목소리로.

“질문은 내가 해.”

“윽!”

“일당이 몇 놈이나 더 있지? 어째서 여기에 온 거냐?”

기세가 등등하시군.

자기가 이겼다고 확신에 찬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신사가 아니야, 이런 상황일수록 상대를 곯려주고 싶어 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우리 머릿수가 궁금한가?”

“말해.”

“글쎄, 대충 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이 새끼···.”

이제 알겠다.

이 여자는 애송이다.

조금 약 올린 것만으로도 이를 부득거리며 감정을 내비치는군.

여우 머리로 표정을 감춘다 해도 다 드러난다.

나는 여자가 팔을 든 손을 들어 올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손목을 낚아채고, 그대로 팔을 뒤로 꺾었다.

“윽! 아아아악!”

“이렇게 가까이 있어선 그 보이지 않는 대포 같은 것도 못쓰겠지.”

“놔, 이거 놔아!”

“얌전히 있어라. 이대로 목뼈를 부러뜨리기 전에.”

입장이 역전되었다.

‘···하지만 어이가 없군. 이렇게 쉽게?’

이렇게 허술할 줄이야, 마녀는 보다 신출귀몰하고 교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딴 수법에 넘어가다니···.

내가 사로잡은 이 여자는 너무 순진하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몰려드는 다른 여우 대가리들도 전부 하나같이 얼이 빠졌다.

“라비나!”

“언니?!”

하지만 인질의 가치는 충분할 지도 모른다.

내가 한 팔로 여자의 목을 휘감자, 그것만으로도 주변 녀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으니까.

창을 들고서, 활로 겨눈 상태임에도 섣불리 다가오지를 못한다.

“라비나 언니를 놓아줘라!”

“비열한 이방인 자식, 저주 받아라!”

그건 네놈들 하기에 달렸지.

나는 여자의 몸을 방패삼아 뒷걸음을 쳤다.

상황이 나쁘다는 걸 알았는지 이제 얌전해졌군.

겁을 먹었나?

내 얼굴을 관찰하듯 빤히 보고 있지만, 적어도 날 뛰지는 않는다.

잘 하면 반격의 기회를 노릴 수도 있을 것 같군.

하지만···.

“···잠깐만. 이방인, 너는··· 역시!”

그때였다.

갑자기 여자가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은.

“모두 물러나! 이 작자는 적이 아니야!”

“라비나, 그게 무슨 정신나간 소리야?! 저 머리칼과 눈을 봐! 저건 늑대라고!”

“들어봐. 이 사내는 우리와 같아!”

“그럴 리 없어! 그 힘은 우리 부족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정말이야! 느껴진다고! 이 남자에겐 그 힘이 있어! 아주 미약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뭐라는 거지?

같다니?

힘?

이 계집은 왜 영문 모를 소릴···.

‘당신에게서 깊은 슬픔이 느껴져.’

그것은 결코 귓가에서 울리는 속삼임이 아니었다.

갑자기 내 뇌리 속으로 뭔가가 흘러들어온 것이다.

나는 그만 여자의 몸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젠장, 이런 실수를···.

왜지?

이것은 대체?

“···내 목소리가 들렸지? 놀랄 것 없어, 이방인.”

나는 도끼를 든 손을 뒤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대로 그 마녀를 찢어발길 생각이었다.

“그 마음, 확실하게 보았어. 틀림없이, 당신은 우리의 동지야.”

“무슨 헛소리냐?!”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여자는 내 품에서 벗어났음에도 달아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우의 머리가죽을 벗더니,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죽을 벗어던지자···.

일전에 강변에서 본 소녀와 닮은 얼굴이 드러났다.

눈의 색깔마저도 같아, 그 둘은 자매였던 모양이다.

“무서워할 것 없어. 이제 우린 적이 아니야. 겁내지 말고 내 손을 잡아.”

왜 갑자기 나를 설득하려는 거지?

어떤 사악한 속셈이 있어서?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라비나의 뜻이 정 그렇다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가 무기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싸울 마음이 없다는 걸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맨손을 들어 펼쳐 보이기까지 했다.

“날 믿어. 만일 내가 조금이라도 딴 짓을 한다면, 그 도끼로 목을 베어도 좋으니까.”

“···.”

“부탁이야. 아니, 부탁이에요. 지금까지의 무례는 사과하겠어요. 부디 제 이야길 들어주세요.”

그렇게까지 하겠다고?

허나 당연하게도, 나는 미심쩍은 기분을 풀진 못했다.

이건 수작에 불과해.

내가 할 일은 복수뿐이다.

이대로 마녀를···.

“불쌍하게도.”

“뭐?”

“그런 적이 없었나요? 이상할 정도로 상대방의 생각이 잘 보일 때가? 단지 상대를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중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은 적은?”

“헛소리는 집어치워!”

“아뇨. 있었을 거예요.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묘하게 확신이 될 때도. 피부가 닿은 정도로 그가 살아온 인생이 어렴풋이 그려진 경험이 있었을 거라고요!”

빌어먹을···.

정말 교묘한 입놀림이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정말로 있었으니까.

드물게, 나는 오래 전부터 그와 비슷한 감각을 느껴왔다.

어째서인지 상대방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진심을 알 수 있었지.

그래서 처음 만나는 인간의 됨됨이를 금방 파악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모두 어느 정도 있지 않은가?

상대의 표정이나 목소리, 행동을 보면 누구나 간단히 알아차릴 터···.

‘아니, 어쩌면···.’

나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어야 했다.

괜히 짐작 가는 것을 떠올리기 전에 도끼를 휘둘렀어야만 했다.

하지만 찾아내고 만다.

동시에 받아들인다.

레이와 동행했던 광산 마을에서 미아라는 이름의 마녀를 죽였을 때부터···.

내 안의 뭔가가 변했다는 것을.

‘그때부터 레이를 바라보는 내 인상이 변했다.’

그때는 단지 그녀가 나로 인해 손가락을 잃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토드의 진지한 본성을 알아차렸다. 도리스의 흉악한 짓거리에도 불과하고 진심으로 그녀를 미워할 수도 없었다. 거기다 빌헬미나의 시신을 만졌을 때 무의식으로 흘러들어온 그것들은···.’

아니, 아니다!

지금 이건 마녀가 나를 홀리기 위해 주술을 건 것이 틀림없다!

“자신에게 솔직해지세요. 그건, 특별한 힘이니까.”

나는 아마 망설였을 것이다.

분명 여우 가면을 벗은 상대를, 그만 인간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아서 아주 잠깐 머뭇거린 거겠지.

그래서 상대가 내 손을 잡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받아들여. 당신을 봐줄 테니, 당신도 우리를 봐 줘.’

머릿속을 파고드는 이 끔찍한 감각, 광산의 마녀가 했던 것과 같다.

그 순간, 나의 의식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주 잠시 동안의,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느꼈다.

이 소녀의 기억 일부를···.

그것은 한 변방의 약소 부족이 겪은··· 이방인으로 인한 치욕과 증오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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