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41화 (41/186)

격류의 장(7)

10.

다행히 통성명은 형식적으로 끝났다.

그들은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아보였지만, 내가 해줄 말은 딱히 없었다.

내 의사와는 별개로 이미 소문이 다 퍼져있었던 모양이다.

대스승 크레이그의 새 제자···.

거기다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음 단계를 통과해버린 기대주라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날고 기는 마녀 사냥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왜 다들 나 같은 놈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빌헬미나라는 여자는 나를 곱게 바라보지 않았다.

나와 대면하자 유명세에 비해서 실망이라도 했던 것인가?

오히려 우쭐거리다 일찍 죽지나 말라며 조언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했지.

덧붙여 이상한 격려도 함께.

“지금 이 순간부터 난 네놈 이름을 잊어버릴 거야. 내 입에서 신입이 아니라 다른 말을 듣고 싶다면 알아서 살아남아라. 이번 임무에서 네가 어떤 놈인지를 확실하게 증명해보던가.”

대스승이 나중에 언질해주기론, 원래부터 빌헬미나가 이런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신입들에 대한 태도가 급변한 것은 불과 수 년 사이의 일로, 그 동안 그녀가 지금껏 지나치게 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봐왔기 때문이라 했다.

마녀 사냥꾼들에겐 반드시 그런 시기가 온다.

맹렬하던 증오도 어느 순간엔 마모되어, 가깝게 지내던 동지들의 죽음조차도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대스승은 그만큼 빌헬미나가 지친 상태라며, 다소 험악한 말을 들어도 깊게 생각하지 않길 권장했다.

‘반대로 그 로이드란 자식은···.’

사내놈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관심을 받는 건 피곤한 일이다.

한 달 앞서 마녀 사냥꾼이 된 그는, 내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나 도리스에게 당했던 것이 어지간히도 뇌리에 깊게 박혔는지···.

“그 여자는 정상이 아니었다니까.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어야 한다고 내 두 팔을 뭉갰다니까? 내가 아무리 비위를 맞춰도 전혀 봐주질 않더라고!”

대충 짐작은 간다.

나라도 이 자식의 입을 닫기 위해서라면 정색하고 한 대 패주고 싶어졌으니까.

자칭 마술사 로이, 놈은 수다쟁이였다.

“그런데 후배, 너는 어떻게 해서 마녀 사냥꾼이 되기로 한 거냐? 반년도 채 안 되서 이식을 마음먹었다는 건 진짜냐? 그게 사실이라면 넌 적잖게 미친놈이군. 난 결심하는데 2년이나 걸렸다고.”

도리스에 이어서, 나는 마녀 사냥꾼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만 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특이한 자식도 나오는구나 싶었다.

녀석의 언변은 가벼웠다.

토드가 보이던 위장과는 다른, 진짜 경박함이었다.

“입 닫아, 꺽다리. 병아리 신입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나가서 하든가? 우리가 너 좋으라고 여기 모인 줄 아나?”

“아! 죄송합니다, 누님. 그게··· 보통 이런 기회가 없었잖습니까? 항상 제가 막내였으니 말이죠. 그런데 한 달 차이긴 해도 시험에서 통과한 후배가 이렇게 생기니···.”

“그래, 좋겠네. 알았으니까 그쯤해. 넌 사내놈 주제에 잠깐만 조용히 있으면 뒈지기라도 하냐?”

“그야, 이게 곡예사 시절 버릇이라 말입니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말재주도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야 하니까요. 예전에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이렇게 목청을 높이는 방법을···.”

“아오, 좀 닥치라고!”

로이의 질문 공세는 빌헬미나가 윽박을 지르고서야 겨우 끝이 났다.

정확히는 빌헬미나가 놈의 명치에 날린 묵직한 지르기 한 방이 결정적이었지.

“···못 볼꼴을 보였네요, 대스승 크레이그. 이놈은 제가 밤새 정신교육을 좀 해줘야 할 것 같으니, 그 덩치 큰 놈은 좀 쉬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음, 그렇군. 빅터도 이식이 끝난 지도 얼마 안 돼서 많이 지쳤을 터.”

그랬던가?

생각해 보니, 펜릴의 둥지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 뒤로 거의 쉬지 못했다.

돌아와서도 레이와 도리스의 예기치 못한 싸움을 중재해야만했지.

그럼에도··· 이상하게 몸의 피로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쩐지 눈을 이식한 뒤로 회복력이 더욱 강해진 기분이다.

부러진 레이를 다리를 보면서 대스승이 말했던 것은 일부 사실이었다.

정말로 마녀 사냥꾼의 몸은 보통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11.

다음 날, 아침.

나는 대스승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과 동행했다.

임무의 목적은 고립된 마을의 정찰···.

그리고 미리 현지를 조사하고 있는 다른 베테랑 사냥꾼과 합류하여 돕는 것이었다.

“전처럼 가혹한 일은 아닐 게다, 빅터. 마기의 흔적이 발견됐지만, 마녀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어. 거기다 그곳에는 제리온이라는 강한 녀석이 배치되어 있지.”

나는 의문이 들었다.

마녀가 없는데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한가?

내가 묻자 대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방진 소릴 하기엔 이르다네. 빅터, 자네나 로이드란 친구가 제대로 된 전력이 될 수 있을 거 같은가? 너는 지금 막 눈을 교체한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배워야 할 지식과 익혀야 할 기술이 넘치지. 이번 파견의 요점은 빌헬미나를 통해서 우리의 추적 기술을 익히는 것에 있다.”

“···예, 많이 배우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도록. 나는 아직 자네에게 목숨을 내던지는 방법 같은 건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면서 대스승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그가 애용하는 화승총이었다.

“탄환은 마차에 실어두었다.”

“대스승···.”

“선물이 아니다. 잠시 맡겨두는 것이니, 돌아와서 직접 가져다다오.”

“알겠습니다.”

곧 이어, 나와 빌헬미나는 로이드가 몰고 온 마차에 몸을 실었다.

이륜, 두 마리의 갈색 말이 끄는 고급스런 탈것이었다.

내부도 깔끔하고 안락해, 이번 여정은 조금 편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바람에 불과했다.

그 순간까지도 동행한 이들의 이상성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야, 신입.”

마차가 출발한 지 일각이 조금 지났을 쯤, 빌헬미나가 나를 불렀다.

“뭐라도 지껄여 봐.”

“···뭘 말입니까?”

“네가 아무리 무뚝뚝한 놈이라도 나름 사정은 있을 거 아니냐고.”

“지루할 겁니다.”

“그건 들어봐야 알지.”

“저는 말주변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 네가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그럴 거 같네. 그래도 앞으로 열흘 가까이 함께 보내야 텐데 아무 것도 안 듣는 것보단 났겠지?”

그러자 마부석의 로이드가 입을 열었다.

“누님, 그럼 제가 이야기보따리를 풀도록 할까요? 실은 이래 봐도 한때 음유시인으로 돈까지 받고 공연까지 한 몸이 아닙니까?”

“넌 닥치고 있어. 끝까지 참고 들어봐야 결국 죄다 허풍이라 짜증만 나니까.”

“에이, 말도 안 됩니다. 저는 과장을 하긴 해도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고요?”

“저번엔 뭐라고 했더라··· 음악으로 공작가 출신의 아가씨를 홀려서 밤마다 밀회를 나눴다고? 그런데 그것도 실은 이틀 남짓이고, 실은 말단 하녀였잖아?”

“아니, 그거야 엄밀히는 하녀도 공작가 소속이니까 완전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않···.”

“까불지 마, 임마.”

“그, 그럼 연주라도 할까요? 드디어 제 리라를 꺼낼 기회가 왔군요.”

“넌 말고삐나 잘 붙들고 있어라. 그리고 너, 사실 악기도 엉터리잖아? 들어보니 은근히 같은 구간만 반복하더만? 보통은 그딴 걸 악기를 다룰 줄 안다고 하진 않아.”

“그래도 거짓말은 아닙니다?”

“네가 입 터는 건 진저리가 난다. 실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항상 허세만 부리고 있잖아? 너 솔직히 말해라. 이식을 통과한 것도 뭔가 속임수 같은 게 있었지? 나는 너 같은 놈이 최종단계까지 남았다는 게 마녀들의 술법보다 더 신기할 지경이야.”

“후··· 역시 누님, 거기까지 간파하셨을 줄이야. 그렇다면 이쯤에서···.”

“아니, 1절만 해라. 또 실없는 헛소리겠지. 너랑 이야기하면 얻을 건 하나도 없는데 짜증만 나니까.”

“아, 예에···.”

“그래서, 우리 몸집만 큰 신입은 어디 출신이라고?”

질리지도 않는지, 빌헬미나는 끝끝내 나에게 다시 집중했다.

괜히 말을 돌려봐야 나만 피곤하겠군.

“···로란델 인근.”

“생소한 지명이네. 잔베르그나 홀럼 가까이인가?”

“그보단 훨씬 더 아래에 있었죠.”

“거기에도 도시가 있었던가? 마을 이름은?”

“주민들 수가 적은 촌락이라 그런 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랬지.

그곳은 언제나 ‘우리 마을’로 불렸다.

하지만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진 않아, 나는 표정에서 그리움을 지우고자 노력했다.

“음, 내가 경솔했어. 그 이야긴 기회가 있을 때나 하자.”

빌헬미나는 그런 내 얼굴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갑자기 질문을 멈췄다.

대신, 이번엔 로이드 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뭐야, 후배?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랐었냐? 산골이면 완전 깡촌 아닌가?”

“···그랬지.”

“너는 용케도 그런 시골에서 살았군. 나라면 절대 못 견뎠을 거야.”

“로이드, 넌 입 다물고 있으라니까! 분위기 파악도 못 할거면 차라리 과묵하기라도 해라!”

“아니··· 뭡니까, 누님? 댁이 먼저 물어봐놓고 이제 와서 저한테···.”

“불만이라도 있냐? 아니면 나한테 또 처 맞고 싶은 거지?”

마부석을 향해 구둣발로 차버리는 빌헬미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인간들과 먼 길을 가야한단 게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말들이 날뛸 정도로 한참이나 난리를 친 뒤에서야, 겨우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그런데 이름 없는 마을이라, 우리 목적지랑 같네.”

“거기도 사는 사람이 몇 안 됩니까?”

“글쎄다. 지금 그걸 확인하기 위해 방문하는 거니까.”

“정보도 없이 향하고 있는 겁니까?”

“그게 나도 묘하단 말이야. 그만큼 고립된 곳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는 거지.”

빌헬미나는 팔짱을 끼더니.

“앞서 조사 중인 제리온이라는 자식이 말이야, 우리 중에선 꽤나 실력자거든? 마기를 감지하고 분석하는 수준만큼은 대스승들을 능가할 만큼이나 전문적이야. 그는 평생 동안을 마기를 연구하는데 바쳤으니까. 그러니 너희를 동행시켜 가르침을 구할 생각이었지.”

“그렇군요.”

“근데 그게 좀 이상하단 말이야.”

“예?”

“본래라면 대스승의 판단 하에 파견을 보내지. 적절한 선배가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신입들을 보내서 교육시키는 식으로. 헌데, 이번엔 제리온이 먼저 요청해왔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 마기 전문가 제리온이, 직접 후배들을 키워주겠다고 알려온 거지.”

드문 일인건가?

빌헬미나는 뭔가 탐탁지 않은 듯.

“제리온 자식··· 평소부터 특이한 구석이 있긴 했어. 연구를 명목으로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들고 사람을 오라 가라 휘둘렀지. 반년 전에는 무슨 화석을 발굴했다고 지원을 요청하더라고.”

“아! 그거 말이지요, 누님? 저도 무진장 고생했었습니다. 끝도 없이 땅을 파고 돌덩이를 나르고, 그땐 아직 이식도 받지 못한 때라 정말··· 아아, 이번엔 또 무슨 쓸데없는 일에 인원을 동원하려는 지···.”

나는 마녀 사냥꾼의 교육 체계를 모른다.

그건 제리온이라는 사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

단지 대스승께서 뭔가 이유가 있기에 보낸 거라 추측할 뿐이다.

“그만 징징거려라, 로이. 그래도 너희 세대는 복 받은 거야. 3년 전까지만 해도 파란 만장했다고. 거의 한달 주기로 마녀를 토벌하러 다녔으니까. 애들은 나랑 레이 정도였고. 후, 생각해보니까 신입 사냥꾼들이 이렇게 짧은 주기로 여럿 나온 건 또 오랜만이네. 드디어 세대교체인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새로운 시대의 물결이 흘러들어오는구나.”

제 딴엔 농담을 하는 건가?

신입이라해도 나나 로이드 정도일 것을, 빌헬미나의 말투는 어쩐지 요란하게 느껴졌다.

“고작 두 사람으로 세대교차를 논하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마부석에서 로이드가 돌아보며 웃었다.

“미안하지만 우리 위로는 작년에 마녀 사냥꾼이 된 선배들이 아직 더 있거든.”

그런가?

아직 나는 만나지 못한 동지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왠지 마음이 든든해, 마녀와 함께 싸워줄 이들이 이토록이나···.

‘아니, 그게 아니다.’

순간, 나는 착각에 빠질 뻔했다.

마녀 사냥꾼들이 늘어난다는 건··· 다시 말해서 마녀에게 복수를 맹세한 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니까.

나와 같은 재앙을 입은 이들이···.

“아무튼 우리 때는 말이야···.”

잠깐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 빌헬미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내가 수다를 떨지 않고 맞장구도 치지 않으니까 오히려 자신이 이야기꾼이 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로이드가···.

“누님이야말로 참아주시면 안됩니까? 그거 나이 지긋한 늙은이들이 어린애들한테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너 임마, 그럼 내가 늙은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예? 아니, 그건 그냥 비유잖습니까? 이래서 무식한 변방 사람은···.”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앙?!”

“짐칸을 발로 차지 좀 마세요! 이거 비싼 돈 주고 빌린 거란 말입니다!”

“내려, 이 자식아! 아무리 갈 길이 멀어도 넌 한 방 후려 줘야겠어!”

“···.”

···시끄러운 이인조다.

토드와 함께 했을 때는 그가 나를 배려해주어서 조용히 지낼 수 있었지.

도리스의 경우엔 내가 경계하느라 딱히 대화할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라, 원치 않게 굉장히 떠들썩할 것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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