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34화 (34/186)

각인의 장(7)

11.

내가 비명과 신음을 토해내며 바닥을 구르는 사이, 괴물은 어느새 내 눈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기절하고, 샐 수도 없을 만큼 졸도했지.

그러나 그것도 순간에 불과했다.

고통의 강도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증폭되어갔다.

“어떤가요? 육체를 이루는 최소 단위까지 다른 뭔가로 변해가는 기분이?”

도리스의 말처럼, 놈은 내 몸 안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곤 신경과 이어지기 위해 발광했다.

처음에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이븐 가지의 분말을 들이마셨을 때보다 높은 강도의 두통이었다.

다음엔 내장이 뒤틀리고, 사지를 통해 고통이 퍼졌다.

신체 말단의 혈관이 터지는 감각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도 전신의 근육이 경련하는 것까진 견딜만했지.

문제는 모든 관절이 으스러질 때 찾아왔다.

‘틀림없어, 이 작은 벌레 놈은 잔혹한 마물이다.’

단순히 내 신경만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아예 온 몸을 좀먹으려 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나를 자신이 살기 좋은 몸으로 강제 변화시키고 있는 것에 가까웠지만.

“자광석이 발하는 신비한 빛은 몸 깊숙한 곳을 파괴하죠. 그 아이가 당신 몸을 녹이고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주고요. 과거의 약한 육체를 마모시키고, 새로운 피와 살로 대체하는 거예요. 그 고통의 이유는 거기에 있답니다. ···후후, 사실 그거 알아요? 평범한 사람은 여기에 잠깐 노출된 것만으로도 몇 주안에 죽어버린 답니다? 금방 나간다 해도 며칠간은 음식을 먹기만 해도 토하고, 머리칼이 전부 빠져요. 잡병에 잘 걸리는 건 물론이고 항상 피로한 채로 서서히 망가져간답니다. 운 좋게 살아난다고 해도, 영구적인 장애를 얻지요.”

도리스를 나를 한 시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말로는 내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시간을 잊고 고통을 감내하는 걸 막을 셈이란 게 뻔히 보였다.

“···그래서 이 장소는 고대의 성소임과 동시에, 저주받은 사원이기도 해요. 대체 어느 시점부터 우리 마녀 사냥꾼들이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어떻게해서 이런 방법을 고안했을까··· 아마 우리들의 선조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겠죠.”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한쪽 귀로 흘리기엔 너무나도 맑은 목소리, 청각마저도 민감해져서 도리스의 음성이 있는 그대로 파고들어왔다.

나는 매순간마다 제정신을 유지한 채로 모든 아픔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12.

“···후후후, 빅터 씨. 아직 살아계시나요?”

퍽이나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 생사를 확인하고 자빠졌군.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봐준 것일까?

하필 정신을 차리자마자 맨 먼저 본 얼굴이 저 여자라니, 끔찍할 지경이다.

“일어나 보실래요? 이제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그 말마따나, 아픔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직 오른쪽 눈에 이물감이 있는데다 시야도 흐릿하지만···.

적어도 죽을 것만 같던 신경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좋은 눈이 됐네요. 거울이 있다면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로.”

겨우 몸을 일으킨 나에게, 도리스는 꺼림칙한 축하를 건넸다.

“드디어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네요!”

하지만 이 마저도 끝이 아니야,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아직도 다음이 남아있을 것이 뻔했다.

“이걸로 당신의 몸은 구석구석까지 변화했어요. 자광석의 빛으로 문드러진 몸을, 이계의 육신과 융합시켜서 강인한 육체로 탈바꿈한 거죠. 근육의 탄성, 골격의 강도가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을 거예요.”

“···.”

“아, 굳이 대답할 필욘 없어요. 성대가 덜 풀려서 당분간 말을 못할 테니까요. 익숙해지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린답니다?”

촤륵···.

나는 쇠사슬을 끌어당겼다.

그리곤 놓치고 있던 도끼를 회수하려 했다.

단 한 방이라도 좋으니, 이 망할 년에게 제대로 먹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잘도 내 몸을 가지고 놀아줬구나.

말이 제대로 나온다면 분명 나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벌써부터 몸을 풀어보시게요? 그만두시는 게 좋을 텐데.”

뱃속이 비어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온 종일 고통에 몸부림쳤기 때문인가?

몸이 무겁다 못해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손아귀에 들린 도끼는··· 분명 예전보다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신기한 경험이죠? 아주 잠깐, 열 댓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것을··· 당신은 십 수 년 이상 단련해도 도달하지 못할 힘을 손에 넣은 거예요.”

모두 제 덕분이죠, 라고 지껄인다.

거기서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뭘 어쩌시려고?”

나는 자세를 잡자마자 땅을 박찼다.

상상 이상으로 빨라, 나 자신이 놀랄 정도였다.

이건 흡사··· 이븐 가지의 분말을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어라, 저랑 해보시게요?”

내 움직임에 도리스는 반응했다.

뛰어든 나를 보고서 그녀도 한 발자국을 내밀었다.

나는 도끼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뽑아들기도 전에 상대가 내민 오른손에 막혀졌다.

“···큭!”

“손버릇이 나쁘시네요, 빅터 씨?”

도리스는 내 도끼 자루를 쥐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이런 상태로는 팔을 내지르기는커녕, 이전과 같이 바닥에 처박힐 뿐이다.

그런데···.

“앗!”

밀리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방적으로 휘둘리기만 하던 힘의 방향이, 주도권을 내가 잡은 것이다.

부웅.

나는 그녀의 팔을 집어 들고, 반대쪽으로 집어던져 버렸다.

···그랬군.

대스승이나 저 여자가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룰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육체의 변화한 힘 덕분이었나?

“···멋져요. 이제 제 완력만으론 절대 못 이기겠는 걸요?”

잘도 뻔뻔하게 그딴 소릴···.

하지만 도리스는 곧 나를 다시 제압했다.

내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묘한 움직임으로 내 팔을 파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반항할 새도 없이, 그녀의 양 다리가 내 팔목과 팔꿈치를 조이고 비틀었다.

제기랄, 마치 관절을 반대로 꺾기 위해 고안된 무술 같은 것을···.

“힘을 다루는 방법이 아직 서투르지만, 꽤 적응이 빠르네요.”

도리스는 곧 내 몸을 풀어주었다.

애초에 진지하게 상대할 생각도 아닌 듯 했다.

“그래도 멀었어요. 그 눈··· 아직 안 보이죠? 의태는 끝났지만 제대로 기능하진 않을 테니까.”

분하지만 도리스의 말이 맞았다.

벌레가 내 눈의 자리를 차지했어도, 여전히 앞은 깜깜하기만 했다.

왜지?

그 빌어먹을 고문을 견뎌냈는데도, 정작 시력이 망가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것도 아직 다음 과정이 남았기 때문인가?

그래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위해···.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그런 내게, 도리스는 바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당신의 몸에 뻗은 신경은 이제 대부분 ‘몽마의 눈’과 일체화 되었어요. 마물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과도 잘 뒤섞여서 딱 절묘한 상태일 거예요. 아픔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죠. 하지만 아직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부위가 있어요.”

도리스는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바로 뇌랍니다.”

“···.”

“후후, 놀란 얼굴이시네요. 그럴 만 해요. 어째서 머릿속만큼은 그 아이가 손을 뻗지 않는지··· 그게 궁금하시죠? 이유는 간단해요. 본래라면 기생충은 숙주와 공존을 해야 해, 숙주를 죽이면 자신도 죽고 말아요. 자칫해서 뇌까지 파고 들면 그대로 끝장이죠. 그러면 아무리 1단계를 버텨낸다 해도 의미가 없어요.”

그러면서 녀석은 내가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읊었다.

“아, 참! 물론 빅터 씨는 잘 통과하셨어요. 제가 맡았던 이전의 두 사람은 이 단계조차 못 견뎌서 결국 죽어버렸거든요. 안타깝게도, 아픔을 참아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답니다.”

“···.”

“아아, 운명의 인도는 가끔 슬픈 결말로 끝나고 만답니다. 마녀 사냥꾼이 되기엔, 그들은 너무 여린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뭐, 차라리 잘 됐죠. 여기서 낙오되는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펼쳐질 가혹한 싸움을 견뎌낼 수 없을 테니까요.”

가증스럽다.

나는 이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이나 ‘가혹함’을 믿지 못하겠다.

그도 그럴게, 앞에서 보이는 모든 표정이 거짓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리스는 괴물이다.

나는 내 눈앞의 저것이 단지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 쓴 요괴처럼만 보였다.

내 고통은 그저 저 년의 오락거리에 불과해,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아,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맞아요. 그 눈을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육체의 동기화를 넘어서 정신까지 연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크···.”

“그건 말이죠. 뇌를 파 먹히면서도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는 거랍니다. 그걸로 정안精眼은 비로소 완성 되는 거지요.”

그건 또 어떻게 하는 거지?

어찌하면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그렇게 물으려 했다.

허나 도리스는 그것도 예상했는지···.

“후후, 간단해요. 옆에 있는 조력자가, 아주 살짝 미끼를 던지면 되거든요. 이렇게···.”

도리스, 이 망할 계집!

녀석은 내 앞에서 이븐 가지의 분말을 흩뿌렸다.

이건 대스승이나 레이가 조절해주던 것처럼 적은 양이 아니야, 나를 걱정하거나 염려할 의도는 일절 보이지 않는다.

명백히 나쁜 마음을 먹고 대량의 가루를 날린 것이다.

나는 그것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건 내 오른쪽 눈에 둥지를 튼 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몽마의 눈이 가루에 반응할 거예요. 머지않아 당신의 머릿속에 스며든 이븐 가지의 분말을 쫓아서 안까지 파고 들겠죠. ···어라? 후후후, 마침 새로운 손님들이 몰려오네요?”

“으, 으으···!”

몽마Nightmare.

도리스는 녀석들을 그렇게 불렀다.

반투명하고 모양도 가지각색인 괴물 놈들이···.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 어느새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내가 당장 알아볼 수 있는 건··· 저것들의 몸체가 내 눈을 대신한 벌레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뿐이었다.

“저것들은 악몽을 먹고 사는 저 너머의 생물들이에요. 2단계로 나아가면 항상 이렇게 마중을 오죠. 아버지께서 말하시길, 인간의 공포나 절망을 맛보기 위해서 몰려온다고 해요.”

즉, 나를 노리고 방문해왔단 이야기로군.

“이 다음은 당신의 정신력에 달렸어요. 자아, 신념··· 뭐든 좋으니까 넘어서 봐요.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세요. 제가 옆에서 응원할게요. 당신이 그 고통을 넘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면··· 후후, 정말로 반해버릴 지도 몰라. 하지만 여기서 먹힐 정도의 하찮은 각오라면, 당신은 처음부터 마녀 사냥꾼이 될 자격이 없었던 거니까.”

나는 도리스에게 반론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직후에 바로 악몽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그 순간, 오른쪽 눈으로 의태한 것이 안쪽까지 파고들어왔다.

동시에 괴물들이 덮쳐들었다.

13.

···꿈을 꾸었다.

그리운 꿈이었다.

어느새, 나는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동산에서 몸을 뉘이고 있었다.

머리 위로 따스한 햇볕과 아름드리나무의 그늘···.

그리고 등 뒤로는 온기를 머금은 봄바람이 불어온다.

은은한 풀 내음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최근 이렇게까지 안락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그보다 이것은 언제였지?

추억이라 부르기엔 멀지 않다.

하지만 최근이라 말할 만큼 가깝지도 않다.

뭔가 놓친 기분이 든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그래.

이 장소에 있었던 건, 나뿐만이 아니다.

여기에선 분명···.

“여보, 뭘 멍하니 있는 거죠?”

약간 심술이 난 이 목소리를, 나를 절대로 잊지 못한다.

그 순간, 나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모처럼 가족끼리 소풍이잖아요. 앉을 자리 정도는 만들어 달라고요. 아델도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그치, 우리 딸?”

“응. 아빠, 여기 짚으로 만든 깔개 가져왔어요. 어제 엄마랑 열심히 만들었어.”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당장 두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꺅! 갑자기 뭐에요, 당신···.”

“아빠, 답답해요!”

“아, 아아···!”

진짜다.

이 부드러움··· 이 촉감은 정말이었다.

나의 소중한 아내, 그리고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둘을 끌어않고 울었다.

거의 오열했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서, 그간 억눌러온 감정을 모두 토해냈다.

‘이게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아다오!’

나는 처음으로 영원을 바랐다.

이것이 찰나가 아니기만을 필사적으로 빌었다.

아아, 그레이스···.

나는 그 동안 고생만 해온 당신에게 입맞춤과 사죄를 해야만 해.

그리고 우리 딸 아델에겐··· 무역 도시에서 예쁜 옷을 잔뜩 사주어야지.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맹세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전부 이 아이를 위해 바치라고.

지금까지의 나는 어리석었다.

나이를 먹고 덩치만 컸지, 너무 철이 없었어.

앞으론 두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

내일 부터는 나도 좀 더 분발해야 할 것이다.

겨울 동안은 사냥꾼으로 돈 벌이가 안 되니까, 다른 기술을 배우도록 하자.

목수도 좋고, 내 특기를 살려서 덫을 만들어 팔아도 나쁘진 않겠지.

어느 쪽이든, 나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제 무엇이든 하리라.

우리는 지금부터 행복하게···.

‘···아니.’

그러나 나는 그만 떠올리고 말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꿈이라는 걸.

나는 이 평화의 땅에 들어오기 전의 상황을 기억해냈다.

결국 이건 거짓이다.

하지만 동시에 잔혹할 정도로 다정한 환상이기도 하지.

내가 바라마지않던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여보?”

그만.

그 목소리로 말하지 마.

그레이스, 당신은 잔혹할 정도로 내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다.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아려올 정도야.

‘빌어먹을, 정말로··· 정말로 이건 최악의 악몽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말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이해해버린다.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방법을···.

“당신, 오늘따라 이상해요.”

“그래···.”

“설마 아직 그 여자랑 어울릴 생각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거라면, 저 화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두세요.”

알아, 그레이스.

그 날도 우리는 이것과 비슷한 대화를 나눴었지.

하지만 알고 있잖아?

나는 당신에게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아내의 말은 언제나 옳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

클라리스의 오두막엔 앞으로 다시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어이 받아내고, 당신은 해맑게 웃어보였었다.

재앙이 일어나면서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지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두 사람의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러주지 못했군.”

나는 무릎을 꿇어 아델의 어깨를 보듬었다.

그리곤 다시금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아빠?”

그 이상···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지 마라!

딸의 얼굴을 빌려서 나를 조롱하지 마라!

우득.

나는 그것을 뭉개버렸다.

아델의 목을··· 그 작디작은 머리를 분질렀다.

“꺄아아아악! 당신, 왜··· 어째서?!”

이어서 나는 그레이스의 목에 양손을 가져갔다.

최대한 빨리 숨이 끓어지길 바라며,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졸랐다.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몸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나는 더 이상 두 사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또 그 여자한테 갈 생각인가요?”

돌아선 나에게 들려올 리 없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닿았다.

역시 꿈이다.

그것도 내가 싫어할 것만을 골라 만든 교묘한 악몽···.

“이번에도 당신은 우릴 버리는 건가요? 그만큼 그 여자가 중요해요?”

“···.”

“나와 아델을··· 당신은 또 배신하려는 거예요!?”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저것들은 진짜가 아니니까.

단지 내가 마음속에서 떨치지 못한 죄책감에 불과했기 때문에.

“···미안하다.”

그럼에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타들어가는 가슴도,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결심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을 쯤, 추억 속의 동산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머지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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