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33화 (33/186)

각인의 장(6)

10.

···신은 믿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도 수염을 기른 엄숙한 노인네가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봐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있을 법하지 않으니까.

신앙을 가진 이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고.

헌데 나는 그만큼이나 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딱 그런 직관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아마 불신자였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된 나는 한층 더 묘한 고집을 가지게 되었다.

잘 나신 주교나 사제가 하는 말은 모두 고깝게만 들렸지.

어쩌면 나는 신이 싫다기 보단, 단지 권위에 지나친 적개심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이후에 알게 된 클라리스 덕분에, 내 근거 없는 확신은 보다 뚜렷한 형태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클라리스는 그 사실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깊은 고찰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가 말했다.

‘딱히 초자연적인 존재를 가정하지 않아도, 이 세계는 충분히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당시의 내 눈에는, 클라리스 마저도 미심쩍어 보였지.

그래서 그녀를 곯려줄 생각으로 내 딴에는 작은 꾀를 냈었다.

‘클라리스, 그저께 네가 말하지 않았나? 세상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고.’

‘그랬지.’

‘그렇다면 만물의 시작에도 하나의 시작이 있을 거 아닌가?’

‘음, 빅터. 너는 그것이 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아니. 이건 내 말이 아니야. 올가 할멈이 꼬맹이들을 기도 시키려 홀릴 때나 쓰던 이야기지. 하지만 나는 멍청해서,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아주 먼 옛날, 고대의 철학자가 제시했던 논제구나? 분명 최초원인론이라는 이름이었지.’

‘네가 답해줄 수 있겠나?’

‘···짓궂어. 이 세상 어떤 사람도 그 질문엔 대답해 줄 수 없을 걸? 너도 그걸 알고 물어본 거지?’

‘핫, 들켰군.’

여기서 클라리스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자기 나름대로는 어떤 결론을 내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문제는 내가 너무도 무식했다는 점에 있었다.

어리석은 변방의 사냥꾼 놈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면···.

꽤나 골머리를 앓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리스는 곧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아주 명쾌하게 나를 납득시켜 주었다.

‘빅터, 네 말처럼 모든 것의 원인을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한 번 가정해보자.’

‘그래.’

‘그건 이 우주만물을 그것이 창조했다는 말이 되겠지.’

‘맞아.’

‘그렇다면 그 창조주는 누가 창조한 걸까?’

‘뭐?’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그렇지?’

‘잠깐, 잠깐만···. 그건 사제들이 자주 말하잖나?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라고.’

‘그럴까?’

‘그렇지 않나?’

‘몰라. 알 수 없지. 하지만 그건 딱히 좋은 정답이라 하긴 어렵어.’

‘왜냐?’

‘생각해봐, 그저 뭉뚱그려서 창조주는 원래부터 존재한다고 할 거면··· 그냥 이 모든 것도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어? 우주에 시작은 없었다, 라고.’

‘음···.’

‘그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듣고 보니 그렇군. 모든 것에 원인가 있다고 해놓고 어째서 신만이 거기서 예외란 거지?’

‘난 내가 내놓은 논리에 예외를 두고 싶지 않아. 오직 신만을 특별하게 가정하진 않을 거야. 물론 최초의 원인은 누구도 모르지. 아마 영영 알 수 없을 지도. 하지만 그 답은 비어있어. 아직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것 뿐.’

‘딱히 다른 대안도 없지 않나? 그 공백의 자리에 신을 넣어도 별 문제 없는 거 아냐?’

‘응. 맞아. 모르는 거니까. 그럴 가능성도 열어둬야겠지.’

‘궤변이군. 너도 사제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

‘그렇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하, 내가 충고하마. 나니까 들어주는 거지, 마을 사람들에겐 절대 그 이야기 하지 마라. 자칫하면 이교도에, 최악의 경우 마녀로 몰려서 매달릴 수도 있으니. 난 은인이 타죽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키득, 괜한 걱정이야. 이래 봐도 나는 사람들의 신앙을 존중하는 걸? 문화, 민족, 국가 마다 수많은 종교가 있으니까. 그래도···.’

이 순간까지도 클라리스의 표정은 온화했다.

아무리 내가 감정적으로 대꾸를 해도,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신에 대한 판단을 유보할 거야. 그 확고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말이지.’

‘그게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거냐?’

‘응.’

‘신성 모독이군. 이단 심문관들이 알면 참 좋아라 하겠어.’

‘아하핫, 그건 걱정 없어. 나는 아마 죽어서 지옥에 간다할 지라도, 신의 면전에서 할 말을 미리 준비해 두었거든?’

‘그게 뭔데?’

‘양손을 공손히 하고 이렇게 애원하는 거지. ···아아, 전지하신 신이시여! 너무나 부족하였습니다! 그대를 증명할 증거가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미 아시지 않으셨습니까?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부터, 제가 당신을 절대 믿지 않을 거란 사실을요! ···라고 말이야.’

나는 여기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의도이던 간에, 신을 모욕하는 것은 중죄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끼리만 아는 은밀한 비밀이 되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알게 모르게 클라리스에게 영향을 크게 받아갔다.

의심하는 법을 배웠으며, 탐구하는 자의 마음가짐을 알게 되었다.

지금에 와선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나는 끝내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지.

그 날의 비극을 경험하고 나선 더 더욱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이 정말로 있다면 나는 저주를 퍼부었으리라.

고향을 구해주지 않고, 처자식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보도록 방치하는 절대자 따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을 테니.

그러니 신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악마는···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으로.

바로 새치가 조금 섞인 금발의 여인, 내 앞에서 발정이 난 얼굴을 한 미친년처럼···.

그 악마는, 내가 태어나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요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 아주 깔끔하게 적출했어요. 여기 밀려나온 진홍색 선이 보이시나요? 이게 바로 시신경이랍니다. 우후후···.”

“크···.”

“하지만 아직 긴장을 풀긴 이르답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 남았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도리스란 이름을 가진 악마는 뭔가를 내 앞에 내밀었다.

자그마한 유리병 안에 든 무언가···.

투명한 뭔가가 꿈틀거린다.

“아참, 지금의 당신에겐 안 보이겠죠? 이건 저 너머 차원의 생물이니까.”

도리스는 내게 가루를 흩뿌렸다.

젠장, 나는 들이 쉬지 않으려고 숨을 참으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어요. 이건 당신의 시신경에 직접 흘려보냈으니··· 광분까진 아니어도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모르는 편이 나았다.

그걸 확인하지 않았어야 했다.

나무 마개로 밀봉된 병 속에는··· 얼핏 봐선 기묘한 벌레 같은 게 꿈틀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절지동물과 사뭇 다르다.

몸통이 물렁한 것은 달팽이를 닮았고, 미끄러운 유리 표면을 긁는 여러 개의 다리가 돈벌레와 비슷하다.

창백한 색깔을 하고 있는 주둥이는 마치 탈색된 나뭇잎의 모양이군.

아니, 아니다.

저건 그냥 더듬이 같은 촉각에 불과하다.

진짜 입은 그 아래··· 다섯 갈래로 벌어지는 대못같은 부위였다.

하지만 정말 끔찍한 건 따로 있었다.

마치 산란을 마친 물고기가 싸질러 놓은 알집과 같이···.

위아래, 세로로 찢어진 틈 사이로 무수히 많은 눈깔들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뭐냐, 이 생물은?’

징그럽다.

흉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봐도 지상의 생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바라본 것만으로도 지옥의 존재를 상상하게끔 만드는 모습이었다.

“귀엽죠? 이제 이 아이로 저는 뭘 할까요? 어디 맞춰보실래요?”

도리스는 내가 질겁하는 반응을 즐겼다.

나는 고개를 돌려, 최대한 사고를 제한했다.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

설마하니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하지만···.

생각하고 만다.

이 여자의 의도를, 저 기이한 괴물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그만 떠올려버린 것이다.

“맞아요. 이게 앞으로 당신의 오른쪽 눈을 대신할 거예요.”

“그게··· 이식의 정체라고?”

“그럼요. 보시다시피 우리의 눈은 특별하답니다.”

“뭐가 정안精眼이냐?! 마녀 사냥꾼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걸···!”

“후후, 재미있는 걸 알려드릴게요.”

“닥쳐!”

“아뇨. 들어봐요. 아주 흥미로울 테니까요.”

틀렸다.

이 정신나간 여자는 내가 원하던 그렇지 않던 계속해서 입을 놀림 셈이다.

“빅터 씨는 낚시를 즐기시나요?”

“···강가에서라면 몇 번 했었지.”

“아쉽네요. 바다에서 그물을 다뤄보셨다면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대체 뭔 소릴 하고 싶은 거냐? 언제까지 날 놀릴 생각이지?”

“놀리다뇨? 가당찮아요. 저는 단지 이 아이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이 될 수 있는지, 그걸 알려주고 싶을 뿐이에요.”

“···.”

“저 먼 바다에는 재미있는 생태를 가진 기생충이 살고 있답니다? 그 녀석은 물고기의 입 안에 들어가서 혓바닥부터 없애버려요. 혀에다 갈고리처럼 생긴 앞발로 꾹 눌러서 혈관을 막아 썩어버리게 만들죠. 자연스럽게 말라비틀어지도록 유도하는 거예요. 신기한 건, 그 과정에서 물고기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단 거죠.”

“역겨운 소릴···.”

“그런데 여기서 부터가 진짜에요. 사실 그렇게해서 자리를 잡은 기생충은··· 물고기의 혀를 대신하게 된답니다.”

웃기는군.

그런 웃기지도 않은 기생충이 어디 있나?

저 여자는 나를 놀리려는 게 틀림없다.

“아예 미각까지 느낀다고 해보시지?”

나는 한껏 비꼬기 위해 억지로 입가를 들어올렸다.

허나, 도리스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글쎄요. 그럴 가능성도 있죠. 기회가 된다면 연구해볼 가치도 충분하겠는 걸요?”

“뭐?”

“아무튼 간에, 그 기생충은 물고기의 혀로 기능하면서 완벽하게 공생해요. 가끔은 도움까지 주죠. 입안의 찌꺼기를 처리해주는 식으로요. 굉장하지 않나요? 숙주의 혀를 파먹고, 숙주의 혀가 되는 생물이라니요!”

“그러면···.”

어째서 항상 끔찍한 예감은 적중하고 마는 것일까?

도리스는 내가 생각한 걸 굳이 확인시켜주었다.

“네! 이 아이도 마찬가지랍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부여해주죠. ···자, 마침 몽마의 눈Nightmare eyes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네요?”

웃지 마.

그걸 내 앞에서 당장 치워.

나는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래선 의미가 없다.

여자에게 개같이 휘둘리긴 했지만, 나는···.

‘결국 이걸 실행하기 위해서 여길 찾아온 거니까.’

무슨 일이든 감내하겠다고 각오한 건 거짓이었나?

클라리스를 찾아내고, 마녀를 죽이고··· 대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내겠다고 맹세한 건 순간의 변덕이었나?

어리광부리지 마라, 빅터.

이제 와서 지옥에서 올라온 벌레 따위가 무섭나?

뭐가 두렵지?

어차피 내 눈의 대용품이다.

이건 모든 마녀 사냥꾼이 거치는 과정이라고 했다.

대스승도, 레이도, 토드도···.

심지어 내 바로 앞의 미친 여자까지, 모두 견뎌낸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참아낼 수 있다.

내 각오가 저런 광년보다 못할 리가 없지.

거기다··· 나는 이미 한 번 죽은 자가 아닌가?

“후···.”

“어라? 빅터 씨, 괜찮으신가요? 왜 갑자기 웃으시는 거죠?”

“아니, 이젠 아무래도 좋다 싶어서.”

“네?”

“웃기지도 않다. 결국 넌 날 가지고 장난을 칠 생각인가 본데, 이제 충분하지? 그럼 작작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라. 그걸 내 눈에 쑤셔 박고 싶다고? 해라, 지금 당장! 난 그걸 위해서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까!”

“당신···.”

도리스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일순간 모든 감정이 사라진 듯, 새하얀 가면처럼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입술이 휘어진다.

그것은 아래로 기울어진 초승달을 연상시켰다.

“나, 당신한테 반할 거 같아. 그게 어디까지 진심인지 확인하고 싶어졌어어어!”

유리병의 마개가 열린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작은 마물이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악!”

놈은 아직 시신경과 연결된 내 안구에 달라붙더니, 그것을 사정없이 파먹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망할 벌레 새끼가 게걸스럽게도 씹어재끼는군.

혐오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휘몰아친다.

고통과 역겨움이 한꺼번에 맴돌았다.

이윽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구멍 안까지 파고들어왔다.

“어때요? 신경이 좀 먹히는 기분? 꿈틀거리는 게 머릿속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지 않나요? 네? 네에?”

“닥···쳐!”

“참지 말아요, 예? 좀 더··· 좀 더 솔직하게 진심을 보여줘요!”

“아, 아악! 크억!”

“그래요. 쉽사리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죠. 아무렴요. 솔직해지세요. 당신의 모든 걸 보고 싶어. 후후, 후후후···.”

강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의식이 잠겨간다.

천장과 벽이 푸른빛으로 발광하고 있지만, 내 눈앞은 깜깜해지기만 했다.

어느 순간 도리스의 가증스런 웃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

어둠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빌었다.

내 무의식이 들어주길 바라며 속으로 읊조린다.

마치 다른 사람이 들어주길 바라는 것 같은 말투로, 다분히 의도적인 물음을 건네는 것이다.

자, 우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기를 권한다.

아직 내뱉지는 말고.

일단 잠자코 들어주길···.

갑작스럽지만,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혹시 고문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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