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의 장(1)
1.
어둠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빌었다.
내 무의식이 들어주길 바라며 속으로 읊조린다.
마치 다른 사람이 들어주길 바라는 것 같은 말투로, 다분히 의도적인 물음을 건네는 것이다.
자, 우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기를 권한다.
아직 내뱉지는 말고.
일단 잠자코 들어주길···.
갑작스럽지만,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혹시 고문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있다.
그것도 꽤나 심하게 당했지.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덩치만 믿고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시비를 걸던 시절이었던가?’
당시 나는 이웃 마을을 방문했다가 수도에서 온 사제들의 눈에 띠였다.
‘가뜩이나 가죽이 팔리질 않아서 신경질이 났었던가? 하필이면 몰려다니는 그 자식들이 얼마나 밉게 보였던지···.’
요란스럽게 호위를 받으면서 길을 막고 있기에, 아주 대놓고 불경한 소릴 뱉어냈기 때문이었지.
대충 이런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 머저리는 신보다도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군.’
돌이켜보면 반항기였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교회의 권위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느낀 것을 상대의 면전에다 그대로 털어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애송이였지.
더욱이 이치와 섭리에 대한 집념이 이 시기에 특히 강했었다.
나는 그들이 믿는 교리의 모순을 하나하나 찾아낼 정도로 눈이 떠진 상태였다.
클라리스에게 들은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었지.
덕분에, 나는 당장 구속당했다.
순식간에 미늘창halberd을 든 녀석들 서넛 명이 달려들어서 내 목을 겨눴었지.
거기서 내가 좀 더 요령 있게 대처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허나, 당시 스무 살이던 나는 철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신성모독이라고 몰아붙여지자, 나는 그만 또 한 마디 읊어버리고 말았지.
‘뭐가 문제냐? 나는 댁들이 믿는 신을 모욕한 적이 없는데?’
한 시간도 안 되서 나는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반나절간은 그대로 갇혀있었다.
큰 걱정은 없었지.
우리 마을의 올가 할멈은 독실한 신도고, 내가 사교도가 아님을 간단히 증명해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나는 이단의 신앙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비록 불신자이긴 했지만··· 성스러운 교리에 의하면, 딱히 직접적으로 신을 부정하는 것만 아니라면 상관없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사태를 가볍게 여겼다.
성직자가 반드시 인격자가 아니란 걸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지.
놈들이 필요에 따라 교전을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단 것도 함께 말이다.
기가 막혔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에게 향하는 비판도 죄라고 하더군.
나는 항의했지만 논리적인 반박은 기대할 수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의심과 지적은, 전부 불경함과 애매모호한 믿음에 의해 차단당했다.
그때의 답답함을 표현하려면 아마 날밤을 새도 모자를 테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벽을 보고 말하는 기분이란 정말로 끔찍한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서 느낀 감정은 오로지 한가지뿐이었다.
그건 클라리스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항상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선 확실히 모른다고 답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우리의 먼 후손이 그 비밀을 밝혀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그때까지는 대답을 보류하자고.
지식과 상식이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사제는 달랐다.
그는 철저하게 모든 것은 신의 위업이며 거대한 계획의 일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건 단지, 성스러운 이름으로 포장된 ‘모른다.’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사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설명이나 납득을 시켜주지도 않으면서 오직 믿음만을 강요했다.
내가 끝까지 이해를 거부하자, 아예 대놓고 주교는 한껏 목청 높였었지.
‘신께선 네 저의를 의심하신다!’
사실 난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신랄한 말투로 답했지.
‘오호라, 하늘의 목소리가 들리신다 그거지? 정말이지 잘나신 분이시군.’
왜 만물을 창조하신 양반께서 하찮은 나까지 신경써가며 교포 활동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는지, 사실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허나 결국 나는 이단 심문관과 대면해야만 했지.’
놈들은 언제나 움직일 준비가 된 모양이다.
거기다 시간과 여유도 넘치는 자식들이었지.
불과 이틀 만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까지 방문할 정도로.
다섯 명이었을 것이다.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기억해낼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생각나는 건, 그자들이 적잖게 미친 변태 새끼들뿐이라는 사실이다.
‘놈들은 내게 참회를 요구했다.’
당연히 나는 그걸 할 줄 몰랐다.
놈들은 나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지.
나는 변방 출신의 신앙 없는 불신자였으니까.
‘그래서 얻어맞았다.’
그건 어떤 정보를 요구하거나, 개심을 바라기에 이뤄지는 고문이 아니었다.
단순한 화풀이에 벌주기였지.
사제는 내가 울면서 비는 것만을 기대했다.
그 작자의 용서가 없다면, 나는 얼마든지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놈들은 내 손가락을 정말 좋아했어, 곤봉으로 미친 듯이 분질러주셨지.
신체 말단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겪어 본 자가 아니면 몰라,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손톱과 발톱, 그 살집 사이에 긴 바늘을 박아 넣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의 관심사는 내 관절 마디로 향했다.
덕분에 나는 죽을 맛이었지.
한 번은 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을 정도다.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아마 죽었을 지도 몰랐다.
나를 걱정한 촌장님이 그들에게 상납금을 바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풀려난 이후로 약 두 달간은 병석에서 그레이스의 간호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얻은 건 있었지.
교단에 대한 혐오감도 보다 강해졌지만, 못된 버릇을 고쳤거든.
‘대뜸 상대를 모욕하지 않게 된 건 다행이었다.’
철이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누워있는 동안 생각 말곤 할 것도 없었으니, 싫어도 참는 법을 배웠지.
쓸데없이 싸우는 일은 확실히 줄었다.
그쯤 아델이 태어난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전부···.’
아니, 나는 생각해내선 안 된다.
떠올리지 마.
내가 무엇 때문에 굳이 과거의 개 같은 일까지 꺼내온 것을···.
그건 전부 순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참아보기 위해 궁리한 결과물이 아니었던가?
‘그래. 나에겐 현실도피가 간절하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가끔, 한 번 겪어본 고난을 떠올리며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가 있다.
그땐 힘 들었었지.
그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대충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래 전에 있었던 가장 아픈 순간을 지금 떠올리고 자빠진 거지.’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서,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고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성격이 다소 얌전해 질 정도로, 가끔씩 꿈에 다시 나올 정도로 괴롭혀진 경험이 있다.
나는 거기서 현재를 견뎌낼 힘과 동기를 찾는 중이었다.
그러나···.
‘틀렸어. 이건 실패다. 아무리 되새겨도 모든 게 같잖게 느껴져,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아픔은 과거의 그 어떤 것보다도 고통스럽기에.
말문을 흐리기엔 너무나 가혹하고, 설명하기엔 사실을 받아들이기조차 두렵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까?
이 통증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아직이다.
아직 숨을 내뱉지 말아주길.
나는 또 다시 마음속으로 독백을 이어가면서, 스스로에게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이내 그 바람은 허무하게 짓이겨졌다.
바깥세상에서 악마가 속삭여온 것이다.
“후후, 정신이 들었나요?”
잘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다.
어쩐지 관능적인 음성···.
예쁘지만 묘하게 불안해지는 울림이었다.
“괴롭죠? 그래요, 분명 그러실 거예요. 그래도 안심하시길. 그 아픔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제가 보증하죠. 우리들 모두 그런 과정을 겪었어요. 예외는 없답니다.”
나는 대답은커녕 눈조차 뜨지 못한다.
심지어 소리조차 지를 수 없다.
그저 웅크린 채, 부러진 손톱으로 끝없이 머리카락과 함께 두피를 후벼 팔 뿐이다.
그래도··· 이걸로 약간의 희망이 보인다.
이걸로 끝난 것이겠지?
아주 조금만 더 참는다면,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직 한참 멀었답니다, 빅터.”
허나, 이어서 상대의 말이 나를 좌절시킨다.
“아아, 그 얼굴··· 너무 간절한 표정이네요. 그러지 말아요. 또 도려내고 싶어지잖아요? 후후, 하지만 이제 시작이랍니다. 당신이 눈을 뜬 건 고작 1분 남짓 지났을 뿐이에요.”
“크, 으···.”
“앞으로 반나절은 더 견뎌야 해요. 그래야··· 겨우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답니다.”
그럴 수가···.
이 길고 긴 독백조차 고작 수십 초에 불과했단 말인가?
나는 지금··· 어째서 이 지경까지 와있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걸 견뎌내고 있었던가?
생각하자.
머리를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쓰고 있는 만큼은 그래도 고통이 분산된다.
그러니까 찾아내라.
내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 지를···.
그리고 나는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미 일주일 전에 시작되었다.
2.
“무엇을 배웠는가?”
참사를 맞이한 광산 마을을 떠난 지 닷새째···.
겨우 거점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대스승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레이는 단호히 한 마디를 털어놓았다.
“대스승, 이 사내는 강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면전에서 칭찬 받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레이의 의도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른 듯 했다.
그녀는 나에게 베인 왼손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저는 아직 미숙한 몸··· 실전에서의 부족함을 실감했습니다.”
상처를 보자, 대스승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 엔쯔이여, 이건···.”
사실 나는 이때까지 레이의 손가락을 치료할 수 있는 묘안이 있길 바랐다.
신비한 기술을 사용하는 대스승이라면, 어쩌면 잘려나간 상처까지 되돌리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건 역시 무리한 희망이었다.
“···앞으로 이 손으로 검을 쥐긴 힘들 지도 모르겠구나.”
“제 실책입니다.”
“아니다. 내 식견이 틀린 탓이다. 그 이상으로 빅터의 성장이 빨랐던 게야. 그런데, 소독은 제대로 했느냐?”
“예. 볼일을 마치고 바로 불로···.”
“그랬느냐? 가엷게도.”
그랬다.
내가 광산의 마녀를 죽인 직후, 그녀는 바로 횃불을 만들어 자신의 환부를 지졌다.
대스승은 레이의 왼손을 어루만졌다. 착잡한 심정을 그대로 내비치며, 마치 자신이 아프기라도 한 듯 두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잘못이다.
전부 나 때문에 레이의 손가락이···.
“···빅터여, 자네는 이 여로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대스승은 어느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기대한다.
사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버린 나에게···.
이 희생에 걸맞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곤 정신없이 말을 뱉어냈다.
이븐 가지의 가루에 취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레이가 알려주었던 마기와 결계의 구분, 물론 사역마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마녀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한 사실도···.
그러자 대스승은 내게 어떤 질문을 건넸다.
“빅터, 솔직하게 답해주게. 자네는 그 마녀를 진심으로 미워할 수 있었나?”
“···.”
그 마녀란, 당연히 미아를 말하는 것이겠지.
나는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원한이 없기에···.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오히려 그녀에게 애처로운 마음마저 품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증오를 품고 세상을 저주하며 기어이 복수를 이뤘음에도, 끝내 죽음을 갈망하던 여인을···.
나는 도저히 증오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게 자네가 내린 결론인가?”
“차마 대스승께 거짓말을 할 순···.”
“그거면 됐네.”
“···예?”
“아니, 오히려 그래야만 하지.”
어째서일까?
대스승은 흡족한 듯 보였다.
이건 대스승이 원하던 정답일 때, 그가 내비칠 수 있는 최고의 긍정이었다.
“빅터, 그것이 옳다. 마녀는 불쌍하지. 증오해야 할 적이지만, 동시에 가련하다네. 그것들은 정말이지 안쓰러운 존재야.”
이상한 기분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마녀를 죽이는데 기쁨을 느끼는 광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그렇기에 우리는 진짜 적을 제대로 봐야한다. 마녀는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에 불과할지니···.”
진짜 적이라고?
나는 불현 듯 어떤 것을 떠올렸다.
바로 마녀 미아가 죽어가기 직전, 쇠창살 너머에서 그녀와 접촉한 어떤 존재를···.
이어서, 대스승은 섬뜩한 미소와 말을 이었다.
“놈들의 이름은 아스트랄Astral. 별 세계에서 온 침략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