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27화 (27/186)

환마의 장(7)

11.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림자의 위치가 바뀔 무렵, 마을의 풍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입구의 초소로 쓰였을 돌탑은 허물어졌고, 성문을 흉내 낸 듯 보이는 입구는 내부에서부터 처참하게 깨져있었다.

꽤나 깊숙이 들어갔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없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생활의 흔적이라곤, 기껏해야 갱도에서 끌어올린 것처럼 보이는 수레와 흙무더기뿐이었다.

“역시나 이 꼴이네. 기대하지 않길 잘 했어.”

그렇게 말하지만 레이는 분한 모양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앞장서는 모습이 탐탁지 않게 보였다.

“덩치, 이쯤이면 너도 눈치 챘을 지도 모르지만···.”

“뭐가 말이지?”

“혹시 사역마의 재료가 뭘까 생각해본 적 있어?”

대충이나마 짐작은 한다.

마물들에게는 틀림없이 피와 살과 근육과 뼈가 있었지.

그걸 취해온다면, 달리 생각나는 게 없다.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레이는 내 표정을 읽었다.

“맞아. 보통은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대량의 육신··· 즉, 인간을 가지고 만들지.”

허나 레이가 말을 꺼낸 건, 내가 거북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의 적들은 사람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용해먹어. 하나는 역시 제물이고. 다른 하나가 사역마의 조제지.”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듣기나 해. 우선 의식 말이야. 마녀들한테 있어서 자신이 모시는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거든.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짓거리야.”

“그런데?”

“하지만 왜 굳이 소중한 제물을 사역마로 만들까? 그것도 다 이유가 있어.”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홀로 남겨진 마녀는 무방비해보였다.

벌레의 모습을 취했던 마녀나, 분신의 육체를 가지고 나타났던 쪽도 대스승을 당해내진 못했었지.

어쩌면 마녀들은 사역마가 없으면 대항할 수단이 없는 게 아닐까?

내 예상이 맞았는지,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녀라고 불리지만, 몸 자체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여성의 그것이니까. 굳이 우리 같은 사냥꾼이 아니어도 험난한 세상 앞에선 무력하지. 그래서 사역마를 만드는 거야. 강력한 수행자이면서 든든한 수호자의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러니 아까운 제물을 소모해가면서 까지 무리하게 조제하는 거지.”

“잠깐, 그게 사실이라면 뭔가 이상하다.”

제물을 바치는 쪽이 우선순위, 그러나 사역마는 필요에 따라 만드는 것···.

레이의 말을 미뤄볼 때, 마녀들이 마물의 수를 무리하게 늘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마을로 들어오기 전, 우리는 입구에서 무수한 괴물들과 맞서야만 했지.

···설마?

“이제 눈치 챘어?”

“그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긴, 이번 마녀는 적잖게 이상한 괴짜란 소리지. 어쩌면 유별난 사연을 가지고 있을 지도?”

“레이 사저··· 나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 확실하게 설명해 줘.”

“저걸 보면 알거야.”

레이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한다.

그곳에는 건물 몇 채를 밀어버린 흔적, 무리하게 땅을 파낸 집터가 보인다.

부자연스러운 공터가 있었다.

마른 장작인가?

아니면 무너져 내린 지붕의 일부인가?

그 중심에 시커멓게 타들어간 덩어리들이 탑처럼 쌓여있다.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봄을 맞이하는 축제에서나 볼 법한 장식처럼 보였다.

“아니···?”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사람의 일부였다.

층을 이루며 위로 솟구친 검은 숯덩이는 타죽은 인간들의 유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배경과 결코 융화되지 않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바로 흰색 페티코트를 입은 여인이···.

“···결국 여기까지 와주셨네요.”

땅거미 아래, 주근깨가 드문드문 보이는 순진한 얼굴이 돌아본다.

뒤로 땋은 갈색머리는 옅은 빛깔···.

수줍은 듯 지어보이는 미소엔 일말의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미아. 이 마을사람들은 저를 ‘동굴의 처녀’라고 부르곤 했죠. 그쪽의 신사 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무슨 꿍꿍이지?

정황상 이 여자가 보통 인간일 가능성을 없다.

당연히 마녀겠지.

그 증거로 레이도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댄 상태다.

“소개하기 싫으신가요? 그래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당신들을 환영합니다.”

허나, 우리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미아라 밝힌 여자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한 표정으로 입가를 부드럽게 만드는 게 아닌가?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는 반항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을 테니까.”

“무슨 수작질이냐?”

“아무 것도. 저는 그저 치쳤을 뿐이에요.”

“뭐?”

“어차피 최후의 한 명을 처리하는 그 순간까지만 시간을 끌면 충분했어요. 그래도 이제 원하는 것은 모두 이뤘어, 꿈에 그리던 대로 복수를 끝마쳤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여한은···.”

그러더니 여자는 눈을 감았다.

“부디 이제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마저 아래로 숙인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다 놓은 것 마냥, 숨통을 끊어 달라는 것처럼.

“덩치, 지금 뭐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 알기나 해?”

“뭐냐니? 레이, 너에겐 저 여자가 보이지 않나?”

“보이고말고. 하지만 지금 네 눈에 비치는 건 전부 환상이야. 아무래도 아직 너한텐 가루의 영향이 남아있는 모양이네.”

레이는 내 눈앞에다 손을 저었다.

내 도끼에 손가락이 날아간 왼손이었다.

희미하게 혈향이 풍긴다.

아주 조금 현기증이 났다.

“마기를 중화했으니까 다시 봐.”

“···.”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레이가 말한 것처럼, 이제 내 눈앞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얼굴을 가린 채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것까지는 같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여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살아있는 것조차 아닌 듯 보였다.

‘스스로 몸을 불태운 건가?’

흉측했다.

그건 거의 해골이었다.

잿빛으로 물든 앙상한 골격에 드문드문 적갈색 살점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인다.

타들어간 머리거죽, 그을린 머리칼만이 조금 남은 주제에···.

그것은 녹아내린 눈깔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자기 주인에게 제물을 바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야. 남아 있는 마기를 전부 끌어 모아, 힘에 닿는데 까지 사역마를 만들고 나머진 태워버린 것 같네.”

“이런 경우가 흔할 것 같진 않은데.”

“물론 극히 드물지.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니까.”

그때였다.

“···아, 에.”

존재할 리 없는 성대를 울리며, 산송장은 내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뭔가 전하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 것인가?

순간, 뭔가가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물러서! 여기까지 와서 홀리지 마! 망할, 아직 중화가 덜 됐었어?!”

레이가 나를 저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말처럼 아직 내 몸에는 해독되지 않은 가루의 일부가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뇌리에 자연스레 뭔가가 떠오른다.

멋대로 내 정신 속으로 헤집고 들어온다.

‘놀라지 말아주시길. 이건 제가 지금까지 겪은 과거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당신에겐 어떠한 위해도 미치지 않으니···.’

그러나 그것은 아주 길고 슬픈··· 고통의 기억이었다.

12.

나는 어떤 광경을 지켜본다.

지저분하고 높은 벽, 사방이 막힌 지하실로 추정되는 공간의 일부···.

그곳에 한 아이가 주저앉아 있다.

알몸의 소녀였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피부가 거칠고 눈 안쪽이 움푹 들어가 있을 정도로 말랐기에 겉모습만으론 추정하기 어렵다.

몸집은 대략 열 살 정도로 보이나, 소녀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여기에 갇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빠져나갈 순 없었을까?

아마 무리였을 것이다.

양쪽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다.

살을 파고 들어서 아이의 발은 제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조금이나마 위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것도 쇠창살을 통해서다.

성장에는 치명적이고 처참한 환경이었다.

소녀는 강물과 이어진 조잡한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오물 속에서 드물게 멀쩡한 음식물 쓰레기를 걸러 먹었다.

갈증은 비교적 깨끗한 도랑의 흙탕물로 해결했다.

그러나 아무리 익숙해져도 배탈이 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위에 구멍이 나는 일도 다반사, 극도의 영양 부족으로 간과 췌장도 엉망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아이는 살아남았다.

‘오랫동안, 거의 십 수 년이 지나서도···.’

나의 의식은 어느새 소녀와 일체화되어 있었다.

순식간이었지만 약 스무 해 정도가 지나는 동안의 기억이 그대로 새겨졌다.

그래서 나는 당장 소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큰 소망은 아니었다.

철이 들기 전부터 살아온 이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닿지 않는 쇠창살 너머의 세상으로 벗어나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 뿐이다.

헛된 희망,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당장 이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빛이었다.

갇힌 까닭은 모른다.

‘마지막 기억은 죽어가는 어머니의 얼굴···.’

분명 죽창에 꿰뚫려 죽었었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농가에 침입해서 음식은 훔쳤던 것이 그 이유였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소녀는 그 어미의 죄를 물려받아 여기에 방치된 건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보다 사악하고 끔찍한 사연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심상세계에서 또 다른 지식을 보다 먼 미래에서 얻게 되었다.

그러자 보인다.

외지 출신 도둑년의 불결한 자식, 그런 욕지거리를 하는 무리의 모습이···.

바로 광산 마을의 주민이었다.

이들은 오래도록 이어온 어떤 풍습을 실현하고자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거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산 제물이었다.

어차피 고갈되면 더 나오지도 않을 철광석인 것을···.

‘동굴의 처녀’라는 명목으로 무고한 피를 흘리면 마을에 다시 번영이 찾아온다는 식의 미신을 여전히 숭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알았다.

미아Mia라는 건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그 자체가 ‘광산’이란 뜻을 지닌 제물의 명칭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는 그에 적합했다.

핏줄도 모르는 계집아이라면, 마을의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당시 소녀는 그 사실을 몰랐다.

어리석게도, 이따금씩 창을 통해 방문하는 새들을 보며 소박한 망상 놀이를 즐겼을 뿐.

부러워했을 테지.

날개를 가진 아이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까.

그래서 소녀는 상상했다.

어쩌면 먼 훗날, 자신의 양팔에 깃털이 돋아나서 바깥세상에서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마을 사람들은 오로지 소녀가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오히려 죽지 않는 다면 곤란한 상황이었다.

마침 광산에서 채굴되는 양이 눈에 띠게 줄었다.

철광석이 나오지 않으면 이 마을의 미래는 없어, 그렇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인신공양에 효과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지금까지 광물이 가져다준 금은보화가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감옥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수도를 막았다.

누구에게도 소녀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는 엄포도 함께 내려졌다.

불과 닷새 만에 소녀는 기력을 잃어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소녀는 쇠창살 사이의 까마귀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자신을 하늘로 데려가 달라며,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공손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까마귀의 습성을 안다.

경계심이 많고 머리가 좋지.

동시에 놈들은 죽은 동물의 고기를 탐하는 자연의 청소부다.

그런 녀석들이 소녀에게 접근한다면··· 이유는 한 가지 뿐이다.

굶어 죽은 아이의 시체를 뜯어먹기 위해서지.

소녀는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배신감··· 덩달아 지금까지 동경하던 새에게서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을 테지.

이어서 소녀의 비명을 동반한 발광이 시작되었다.

틀림없이 아이는 세상을 향해 온갖 저주를 토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별 세계 바깥에서, 가공할 악의만으로 이뤄진 존재가···.

그리고 소녀는 분명 금단의 지식과 힘을 얻고 복수를 이뤘을 터였다.

“···커헉!”

“덩치!”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마을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그게, 너의 기억이었나?”

불에 탄 여자가 말없이 끄덕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묘하게도 만감이 교차한다.

모든 게 환상이었음을 알아차렸어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설마하니, 처음 봤던 말쑥한 모습은··· 소녀가 꿈에 그리던 미래의 자신이었던 건가?

기분 나쁜 까마귀의 모습을 한 사역마의 형상마저도 사실은 그녀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란 말인가?

“정신 차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레이가 내 뺨을 후려갈긴 모양이었다.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네가 할 일은 정해져 있잖아?”

그랬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자 아이··· 아니, 마녀의 기억이 끊어지기 직전 흘러들어온 감정이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그건 후회와 탄식, 그리고 죽음을 갈망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상대는 나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고통뿐이었던 자신의 삶을 끝내달라고.

“그냥 보내줘. 눈치를 보아하니, 저 녀석은 너한테 뒤처리를 부탁한 거 같네.”

“레이···.”

“저 너머의 존재에게 한 번 영혼을 팔아버린 권속은 스스로의 의지로 죽을 수 없으니까.”

레이는 이어서 그것이 마녀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라고 말했다.

“마녀를 죽일 수 있는 건, 마기를 품은 자뿐이야. 지금의 너라면 가능하겠지. 자, 어서···.”

머리가 복잡해,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마녀의 심정이 뼈저리게 공감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녀석의 기분을 그대로 체험했으니까.

애초에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결국 마녀란, 불행한 과거를 지닌 인간에 불과했다.

‘그녀는 피해자, 부조리한 악의에 유린당한 슬픈 존재···.’

하지만 내게 망설임은 없었다.

인내와 자비, 심지어 동정심조차도···.

‘대스승은 나를 신뢰하기에 이곳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레이는 나 때문에 손가락마저 잃었지.’

두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이제와 머뭇거린다면 그거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겠지.

잠시 후, 나는 도끼를 들어올렸다.

양손을 내리치기 직전, 어떤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인 것 같았다.

‘고마워요.’

미아.

나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죽인 마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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