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24화 (24/186)

환마의 장(4)

7.

대스승이 말했던 것처럼 광산 마을의 살림은 넉넉한 모양이었다.

꽤나 먼 곳까지 상인들이 드나들기 쉽게 오솔길을 만들어 뒀군.

방문하기는 편하지만, 지나친 사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잠깐.”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레이가 반응했다.

전조는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길가에 부자연스러운 고요가 흘렀기에.

나는 알지.

예전에 이와 같은 현상을 겪어본 적이 있다.

숲의 녹림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 기현상을···.

“···윽.”

갑작스런 악취에 레이가 코를 막았다.

나도 눈앞의 광경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낮부터 마기가 짙나했더니, 시작부터 이렇게 반겨주시네.”

레이는 비꼬며 말했지만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늘어진 나무 가지들 사이에 핏덩이가 있다.

날이 갠 날에 빨래를 늘어놓은 것만 같군.

하지만 그 재료는 지저분하고 역겹기 짝이 없다.

금방 뱃속에서 끄집어낸 것 같은 주홍빛 내장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던 것이다.

이건 경고인가?

아니면 단순한 장난?

“어느 쪽이라 생각해?”

레이가 나를 간파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서로 생각이 크게 벗어나진 않은 모양이군.

“함정 같은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도시에 있던 대스승에게까지 소식이 무사히 전달된 게 수상하다.

마녀 사냥꾼들의 정보통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입맛에 맞는 이야기가 이렇게 쉽게 들어올 리가 없다.

거짓을 흘려서 끌어들이는 것일지도 모르지.

‘사실, 대스승은 내가 출발 전에 이미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달아나라고 했었지.

하지만 나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건 동행한 레이 쪽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그거 알아? 마녀는 보통 자기 정체를 숨기려고 한다는 걸.”

“그렇다고 하더군.”

그래, 나도 대스승이 잠깐 언급했던 걸 기억한다.

“왜냐면 그것들이 우릴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하기야 사방에서 마녀 사냥꾼들이 자기네 목을 노리고 있으니 오금이 저릴 만도 하지. 그래서 마녀는 괜히 으스대지 않아. 아무리 거물이라도 자길 드러내는 걸 극단적으로 피하지.”

“그래서?”

“이걸 봐. 아주 대놓고 보여주고 있어. 어지간히도 과시욕이 높은가봐.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열 받는 걸.”

나는 레이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짐작했다.

본디 몸을 사려야할 입장인 마녀가, 오히려 사냥꾼인 우릴 도발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인가?”

“적어도 나는 처음 겪어. 그리고 봐, 보다시피 여기까지 발을 들였는데도 결계가 없잖아? 이건 뭔가 있어. 아주 대놓고 들어 와보라고 말하는 것 같네.”

나는 모른다.

그녀와는 다르게 눈에 마기란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스승과는 달리 이 녀석은 내 입장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는군.

결국 나는 하나하나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레이 사저, 혹시 마기와 결계는 전혀 다른 별개의 건가?”

“뭐? 너 여태 그런 것도 몰랐던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대스승의 교육 방식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이해하게 되지만···.

정작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바로 답해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대스승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 기다린다.

그렇게 궁리 끝에 낸 결론이 정답인지 확인만 시켜줄 뿐이지.

“어쩔 수 없네. 그럼 한 번만 말해줄 테니까 잘 들어.”

“그거 고맙군.”

“기왕이면 더 살갑게 말할 순 없어? 하여간 무뚝뚝한 것도 정도가 있지.”

레이는 귀찮은 기색을 내면서도 설명해줄 모양이었다.

“···마기란 어떤 힘을 말해.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확실하게 말할 순 없어. 하지만 그건 어둠 너머의 존재들을 불러들이지. 동시에 마녀가 사용하는 주술에 필수 불가결한 거야.”

“음.”

“그리고 결계는 마기로 이뤄져있어. 마녀가 목적으로 가지고 만들어낸 거야.”

“정리하자면··· 마기는 찰흙이나 점토고, 결계는 항아리란 말이군.”

“그렇게 되나? 좋은 비유네. 요점을 잘 이해했어.”

레이에겐 처음으로 들은 칭찬이었다.

심지어 내게 조소가 아닌 제대로 된 웃음을 보여주는 것도···.

“더 궁금한 건 없고? 마침 좋은 기회야. 이 사저가 아는 거라면 뭐든 답해주지!”

“아니, 당장은 없다.”

“어?”

“나중에 또 생각나면 부탁하지.”

“···.”

내가 또 무슨 말실수를 했나?

레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처음에는 당황한 듯 보이다가, 갑자기 성난 얼굴로 내게로 다가오더니.

“···윽!”

퍼억!

냅다 내 정강이를 걷어 차버렸다.

맞은 부위도 그렇지만, 레이 녀석의 발차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부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타격이다.

“귀여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

있을 리가 있나?

아니, 그보다 몇 년 만 더 있으면 서른이 넘어가는 사내에게서 대체 뭘 기대하는 거지?

“쳇, 됐어. 너랑 친해져서 내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입은 살았구나? 그럴 기운이 있으면 엄살 피우지 말고 당장 일어나.”

사람을 험하게 굴리는 재주가 있는 계집애다.

아주 닦달을 해주시는군.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냐. 어서 일어나라니까.”

하지만 그건 단지 나를 곯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레이는 더 이상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 위였다.

꼭대기에 뭔가가 매달려있었다.

“마중 온 모양이네. 우리가 입구에서 얼쩡거리기만 하니까 직접 찾아오셨나?”

처음엔 까마귀 떼가 한 곳에 뭉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관찰하자 그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얼핏 그것은 새를 닮았다.

하지만 비슷한 것은 모양새뿐이야, 날개처럼 생긴 양팔을 펄럭이지만 머리는 오히려 늑대에 가까웠다.

빼곡하게 이빨을 드러낸 두상에 눈처럼 보이는 기관이 전혀 없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놈은 아가리에 뭔가를 물고 있다.

불운한 희생자의 몸통처럼 보였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쩐지 몸집이 작은 사람이 당한 것 같았다.

놈은 나무 위에 내장으로 만든 둥지를 꾸미고 있었다.

숲의 경관을 더럽힌 범인은 저 요물이 틀림없었다.

“하늘을 나는 사역마는 또 처음이네. 쉽지 않겠어.”

레이는 칼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뭐야? 비켜.”

“레이, 이놈은 나한테 다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게다가 누가 멋대로 존칭을 생략하래? 방해되니까 어서···”

레이가 내 얼굴을 못 봤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말문을 잃은 걸 보니, 그건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나는 손끝이 떨리는 걸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덩치, 너···.”

시력이 좋은 것이 독이 되었다.

나는 끝내 나무 위의 마물이 뭘 씹고 있는지 알아보고 말았다.

어린 아이다.

채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년의 고기를 입에 물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머니의 품에 있는 게 더 자연스러울 자그마한 애가,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에게 사지를 뜯기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가슴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검고 뜨겁고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참, 너 전에도 그랬었지? 어린애의 죽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이걸 보고서도 가만히 있는 놈이 이상한 거다.

저런 광경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게 인간으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용납할 수 없다.

용서하지 못한다.

감히, 내 앞에서···.

또 다시 어린 아이를, 처먹는다고?

“일단 진정해, 그 상태론···.”

“닥쳐.”

나는 등짐을 던지고 그 속에서 쇠뇌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당장에 나무 위의 검은 마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화살이 닿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포물선을 그리더니 괴물에게 닿기 전에 나무 아래에 박히고 만다.

“갸아아아아···!”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원한 건 처음부터 놈의 시선을 끄는 것이니까.

“와라.”

자기 보금자리가 위협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괴물은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누가 보아도 지상을 향해 하강할 셈이었다.

놈의 아가리가 노리는 것은, 당연히 나다.

“물러서!”

“싫다.”

웃기지 마라.

스스로 내게 달려들어 준다면 바라던 바다.

“갸악!”

“큿···!”

콰지지직!

높은 곳에서 곤두박질치는 괴물의 일격에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등이 쓸렸다.

땅바닥에 끌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밀려나갔다.

“갸··· 갸각!”

이빨 속에 또 다른 이빨이 가득 찬 것이 보인다.

그것이 내 오른팔을 깊숙하게 베어 물고 있었다.

카득, 콰직···.

인정사정없이, 아가리에 닿은 걸 물어뜯으려 전력으로 달라붙어 온다.

엄청나게 포악하군.

정말이지 먹성이 대단한 개새끼다.

“너, 팔이···.”

레이가 경악했다.

하지만 그건 걱정이 아니었다.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다.

내가 팔에 장치해 둔 것을···.

“왜 그러지, 이 괴물 새끼야? 내 고기를 먹고 싶지 않나? 더 씹어봐라, 더···!”

아래로 핏방울이 흐른다.

마물의 입을 막은 오른팔에서 피가 배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물어 뜯기진 않았다.

피부가 조금 찢긴 정도다.

왜냐하면, 지금 괴물의 송곳니 바로 아래에는··· 온통 쇠사슬로 휘감겨있으니까.

“그래, 계속 꽉 물고 있어라. 뒈질 때까지···!”

나는 오른팔로 놈을 막고, 왼손을 등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허리춤에 가죽 끈으로 견고하게 고정해둔 것을 집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전력을 다해 그것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갸, 아아아악!”

다리로 괴물의 배를 걷어참과 동시에, 나는 양손으로 도끼를 잡고 내리찍었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피 보라가 튀어 올랐다.

넓고 예리한 날이 마물의 머리통에 그대로 파고든 것이었다.

“갸, 긱··· 쿠겍!”

괴물은 얼굴이 반쪽으로 갈라지자 갑자기 경련하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지저분한 날갯짓이 이어졌다.

놈은 그렇게 사방에 체액을 흘리며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목이 날아간 닭이 마당을 뛰어다니는 것보다 기괴한 모습이었다.

나는 차마 그 꼴을 볼 수가 없어, 다시 한 번 도끼로 그것의 몸통을 날려버렸다.

이윽고 괴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쓰러뜨렸다.

처음으로 마의 존재를···.

사역마를 내 손으로 죽였다.

“헉, 허억!”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건만, 갑자기 숨이 차오른다.

그 짧은 순간에 나도 모르게 꽤나 악을 쓴 모양이었다.

“···엉망진창이잖아.”

주저앉은 나에게 레이가 다가왔다.

어쩐지 얼굴이 울상이다.

평소와 안 어울리는 표정이군.

“날 걱정했나?”

“걱정하긴 누가?”

그녀는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대체 뭔 생각이야? 그러나 목이라도 물렸으면 어쩔 뻔 했어?”

“아쉽게도 아직 살아있다.”

“퍽이나, 무슨 미치광이도 아니고···.”

“이겼으면 된 거지.”

너무하는군.

칭찬까지 바라진 않지만, 그래도 사제의 첫 승리를 기뻐해주지도 않는 건가?

하지만 레이 입장에선 나를 못마땅하게 볼만한 이유가 있었다.

“건방진 소리 마. 이제 겨우 사역마 하나 처치한 거 가지고 뭘 으스대는 거야?”

그랬지.

그만 분노로 잊고 있었다.

저 끔찍한 괴물을 만든 녀석이 어딘가 숨어 있을 거란 사실을···.

아직 마녀가 남아있었다.

“거기다 저길 봐.”

레이는 검을 든 채로 내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그 곳에는···.

“아무래도 우릴 그냥 보내줄 거 같진 않은데?”

놈들이 나란히 나무 위에 걸터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괴물은 한 마리만 있었던 게 아니었단 말인가?

한 눈에도 스무 마리가 넘어 보인다.

그야말로 떼거지였다.

그것은 마치 까마귀 장례식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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