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21화 (21/186)

환마의 장(1)

1.

보름이 지났다.

나의 여정은 잃어버린 고향을 시작으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세계까지 발을 디뎠다.

고백하자면, 힘겨운 여행길이었다.

며칠간은 대스승과 레이를 따라 일대의 산맥을 건넜지.

또한 놓친 마녀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렇다.

결과만 보았을 때, 그것은 헛수고나 다름없었다.

‘일주일 내내 추격한 끝에 정작 그 마녀를 놓쳤으니···.’

대스승은 자신의 협박이 지나치게 잘 통했다며 난처해했다.

빌어먹을 겁쟁이 년···.

‘빙의의 마녀’라는 녀석이 과도하게 겁을 집어먹은 탓에, 어지간히도 자취를 감춘 모양이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대스승이 집요하게 마녀를 추격할 생각까진 없었다고 한다.

찾아내서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걸 조금만 더 일찍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며칠을 낭비한 끝에, 대스승이 겨우 밉살맞게 웃으며 꺼낸 이야기가 떠오른다.

‘큭큭, 때론 억지력도 필요한 법이지.’

그의 말은 이러했다.

마녀들이 항시 사냥꾼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고.

의식을 막고 활동을 제한한다.

그것만으로도 마녀는 지속적으로 마기를 소모한다.

대스승은 이 또한 마녀 사냥꾼들의 병법이라고 했다.

‘알겠느냐? 우리는 단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의 마녀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하지. 그러면 그때 우리들이 사냥하는 거다.’

반대로 겁을 먹고 틀어박혀만 있다 해도,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다.

그렇게 말려 죽이는 것이다.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이 마의 권속이 사라져준다면, 그들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일이겠지.

거기다···.

‘어차피 우선순위가 있다고 했었다.’

마녀에겐 등급이 있다.

자세한 기준까진 모르지만···.

그건 일종의 악명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빙의의 마녀’, 달리아는 서둘러 죽여야 할 만큼 위험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밝혀진 피해 사례는 드물게 산길에서 인간을 납치하는 정도라고 했다.

‘물론 그 계집도 몰래 제물의 의식은 치룰 것이다. 분명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사악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 뻔하지. 허나, 그래도 그것이 그나마 마녀 치고는 비교적 온건한 부류에 속한다.’

처절하게 마녀의 분신을 찔러 죽인 대스승이 꺼낼 말이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 요지는 달관도, 위험하지 않으니 방치하겠다는 안일한 의도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스승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고 했다.

‘빅터여, 그 마녀는 자신이 꼭 지켜야할 것이 있다고 말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그렇겠지.

그런 자에게 어떤 숭고한 목적이 있을 리 없다.

제대로 된 일은 아닐 것이다.

의도와 진의가 의심스럽다.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갓난아기를, 그것도 대량의 태아 시신을 재료로 쓰는 마녀에게?

상상해보라.

그 많은 시체를 어디에서 공수해올 수 있을지 짐작이나 가는가?

상상할수록 두려운 생각만이 든다.

수많은 부부가 자식을 잃었다는 가정을 하는 것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지만···.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아기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역겨운 이미지가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비참할 뿐이다.’

결국 제아무리 겉모습이 차분한 미녀라 해도···.

그 속에 담긴 본모습은 추악하기 그지없는 괴물이다.

비록 추적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나는 뒤늦게라도 대스승의 판단이 옳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는 기회가 있을 때 죽여 놓도록 해라.’

그래,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면 말이지···.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아직 마의 존재들과 맞서기엔 기술도, 지식도 너무나 부족하기에.

심지어··· 당장 눈앞의 계집애조차 상대하기 벅차다.

“···덩치, 듣고 있어?”

아니···.

물론 한쪽 귀로 흘리고 있다.

“묻고 있잖아? 오늘만 해도 내가 몇 번이나 시범을 보여줬냐고!”

“···세 번째였나?”

“다섯 번이다, 이 멍청아!”

그러면서 발을 높이 들어 내 머리를 후려친다.

절묘하게도 발뒤꿈치가 내 정수리에 작열했다.

아프기보단 기분이 나쁘다.

재주도 좋아, 용케 다리가 거기까지 올라가는군.

과연 신통한 동방의 무술이다.

···아니, 사실은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 이상 레이 녀석의 심기를 건드리면 뒷일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니까.

“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 거야? 잘 보란 말이야, 손끝을 가져가서 일순간에 폭발이라니까?”

“그러니까, 그 폭발이라는 게 대체···.”

“펑, 하고 터지는 느낌으로. 몸속의 기운을 이렇게···!”

“···.”

“답답해 죽겠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빌어먹을 꼬맹이···.

‘하지만 내가 불평할 입장이 아니지.’

보다시피, 레이는 요 며칠간 나의 수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역시 대스승의 지시 때문이었지.

최소한 육체의 단련 정도는 해두는 것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던가?

물론 그 자체엔 나도 불만은 없다.

아니, 오히려 가혹하게 훈련시켜 준다면 바라 마지않는다.

몸을 쓰는 일이라면 쓸데없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이 초조함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혀 줄 수 있을 테지.

하지만··· 정작 그걸 알려주는 쪽이 엄청나게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게 문제였다.

최근엔 내가 편해졌는지, 성격이 바뀐 것처럼 난동을 부린다.

대스승이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마치 어린애같은 말투로 대해오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봤던 냉철한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구시렁거리지 말고 일단 한 번 더. 결국 이 기술은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어.”

“후우···.”

나는 우선 레이의 지시대로 오른손을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두 번째 마디까지만 기울인 뒤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다.

몇 번인가 반복한 동작의 다음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하면 된다.

곤혹스러운 것은 이 다음이다.

이어서 오른발로 나아가···.

콰앙!

전신의 무게를 한 쪽 다리에 실어 땅을 박찬다.

그러면 지면을 통해 전달된 힘이 하반신과 허리, 이어서 팔까지 전달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 위력을 전면에 박아 넣는 것뿐이지.

나는 그것을 눈앞의 거목을 향해 내질렀다.

그러자···.

콰아아앙!

굉음, 나무의 표면이 흔들리며 잎사귀 몇 개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내가 주먹을 날린 타격점에는 선명하게 파고든 흔적이 남았다.

이제 모습만이라면 썩 그럴싸하군.

하지만 이것은 실패다.

제대로 먹히기는커녕, 내 손등에 상처만 생겼을 뿐이다.

“또 동작의 절제가 부족해. 타격점이 엇나갔잖아.”

“음···.”

“대체 얼마나 손가락을 날려먹어야 제대로 할 생각이지?

나라고 손등과 가죽을 일부러 쓰라리게 만들고 싶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손끝에 전해지는 아픔다보는, 레이 녀석의 입을 닫는 게 급선무다.

다시 주먹을 쥐고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만큼은, 레이 녀석도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니까.

나는 최근 일주일간··· 이것을 틈만 나면 연습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그리고 또 실패였다.

“아, 진짜··· 왜 이걸 못하냐고!”

레이는 인상까지 써가며 자신의 답답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어지간히도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다.

그녀가 보기에, 나는 그렇게까지 재능이 없는 건가?

“무식하게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딴 식으로 할 거면 그냥 후려갈기는 것만 못하단 말이야. 탄력을 이용해서 내부에 힘을 흘려 넣는 요령으로···.”

다른 사람이 보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것은 레이 나름대로는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스승이 시킨 일만큼은 철저하게 수행하는 녀석이니··· 최선을 다해 무술의 이론을 전수해줄 생각이겠지.

하지만, 나는 녀석의 설명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탄력은 뭐고, 힘을 흘린다는 건 또 어떻게 하는 거지?”

“···그냥 한 번 더 보여줄게.”

레이는 내가 했던 동작을 그대로 재현했다.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쩐지 레이 쪽이 좀 더 가볍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레이는 내가 몇 번이나 후려갈겼던 나무쪽으로 돌진했다.

그리고는 일순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나무를 날려버렸다.

‘이건 매번 볼 때마다 놀랍다.’

내 몸보다도 두꺼운 고목에 그녀의 주먹이 파고들어 있다.

그것은 거의 절반 이상을 꿰뚫었다.

터무니없는 파괴력··· 이게 정말 맨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란 말인가?

그것도 나보다 한참 작은 여자의 몸으로?

“이렇게 전신의 무게를 한 점에 집중하는 거야. 이치대로라면, 네 덩치로는 본래 나의 위력의 두 배 이상 나와야 한다고.”

“음···.”

“이제 좀 감이 잡혀?”

그럴 리가 있나···.

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레이는 또 다시 분통을 터뜨리려 했다.

허나 다행히도, 이 시기에 마침 대스승이 나타나주었다.

그는 내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던 레이의 어깨를 잡아서 멈추더니, 우리에게 희소식을 알렸다.

“오늘은 그쯤 해두거라. 도시에 충분히 가까워졌으니 슬슬 짐을 챙겨라. 오랜만에 하산할 준비를 하도록.”

2.

도시.

인구가 수천을 넘어, 거의 수만···.

그것은 불과 백 명 남짓의 촌락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었다.

인간이 넘친다.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장의 규모도, 오가는 인파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북적이는 상가는 마치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도시를 방문해본 건 처음인가, 빅터?”

대스승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적인 지리는 알고 있었다.

산을 넘고 넘어, 행상인들이 오가는 길을 며칠이고 지나면 이런 물류의 중심지가 나온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새삼 내가 좁은 세상에서만 살아왔다는 것이 실감된다.

동시에 내가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간다는 현실 또한 깨달을 수 있었지.

저 너머의 내 고향이 사라졌음에도··· 이곳의 사람들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

이렇게 인간이 많은데도 어느 누구 하나 그 사실을 모른다.

어째서일까?

그걸 생각하니 묘하게 가슴 언저리가 지끈거린다.

변방의 사건, 나의 가족과 이웃들이 겪은 재앙들··· 그 모든 비극이 아무도 모르게 허무하게 잊혀지고 만다는 것이.

“넋을 놓고 바라보기엔 이르다. 거리 구경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

“예, 대스승.”

“지금은 나를 따라 오거라.”

내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대스승은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키기 보다는 그게 나은 것 같아, 나는 별다른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수많은 행인들 사이를 오가며···.

우리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상가 외곽에 위치한 술집이었다.

벌레가 먹은 판자, 낡은 간판이 꽤나 지저분하게 보였다.

이런 곳에 볼일이 있다고?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내가 바라보자, 대스승은 슬쩍 미소를 흘렸다.

“이곳엔 우리의 조력자가 있다.”

그리곤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입구에 들어서니 묘하게 습한 냄새가 났다.

손님은 보이지 않았고, 벽과 모서리에는 드문드문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먼지까지 자욱하군.

오래도록 사용되지 않았나?

그런데···.

“멈춰.”

접대용 테이블 쪽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움직이면 머리를 날려버릴 거야.”

우리는 상대의 요구대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가 있나?

이것이 도시의 매너란 말인가?

한 손에 엽총Rifle을 든 채로 손님을 맞이하다니···.

“···큭큭, 여전히 접대가 고약한 가게로군. 하지만 불법침입은 내 잘못이지. 멋대로 들어와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내 얼굴을 봐서 넘어가주지 않겠나?”

하지만 대스승이 고개를 들자, 총을 겨눈 쪽은 바로 태도가 돌변했다.

“···크레이그 씨? 그리고 레이!”

상대는 두 사람을 알아본 듯 했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더니···.

“정말 오랜 만이에요, 둘 다!”

그늘 속에 숨은 그림자가 테이블에서 튀어나가더니, 당장 대스승에게 안긴다.

그리고는 순서대로 레이 쪽에게도 손을 뻗어 포옹을 했다.

상대는 잿빛 로브를 걸친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하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아쉬운 듯 말하는 그 음성은 쾌활하고 맑다.

후드를 벗으니, 살짝 남색 빛을 띠는 검은머리가 드러난다.

나이 대는 나보다는 어리고, 레이보다는 많아보였다.

대충 이십대 중반쯤인가?

“새삼스럽게, 우리가 언제 통보를 하고 방문하더냐? 너도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됐을 텐데.”

“그럼요. 정말 다들 제멋대로라니까요.”

“큭큭, 면목이 없구나.”

내 기분 탓일까?

어쩐지 대스승은 목소리는 평소보다 살갑게 느껴졌다.

“저··· 이 분은?”

여자는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겁을 먹거나 경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두 사람과 동행한 시점에서 나까지도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스승은 상대에게 손짓을 하더니···.

“아이라, 소개하마. 이 사내는 빅터··· 우리의 새 동료이자, 나의 새로운 제자다. 그리고 빅터, 이쪽은 아이라···. 오래도록 우리에게 협력해온 가문의 영애이지. 자, 서로 인사 하거라.”

나를 여자와 대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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