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8화 (18/186)

심연의 장(5)

5.

숲은 악의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대지가 소녀의 비명에 공명하고 있어, 고목들의 그림자가 빛을 무시하고 요동 쳤다.

“쫒아라, 레이! 사역마를 불러내기 전에 처리하거라!”

“예!”

레이는 대스승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그 사이에 가루를 흩뿌렸던 것일까?

가공할 속도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그녀는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 검 끝으로 소녀의 목을 노렸다.

그 급습은 성공했을 것이다.

아주 조금만, 한 걸음만 더 빨랐다면 말이다.

그러나 레이의 일격은 바닥에서 솟아오른 뭔가에 의해서 차단당했다.

‘칼날? 아니, 저건···.’

레이의 칼을 막은 것은 대낫을 닮은 기다란 무언가였다.

이어서 사람의 머리만한 눈깔 두 개가 땅에서 기어 올라온다.

“고오오오···.”

결국 대스승이 염려가 현실이 되었다.

레이는 눈앞에 나타난 방해꾼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망할 벌레 새끼가···.”

그랬다.

그것은 사람과 사마귀를 뒤섞어 놓은 것만 같은 괴물이었다.

조물주가 악의를 품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최대한 뒤틀린 형상에 집착하는 파탄자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흉하고 기이한 생물이 존재할 리가···.’

사악한 살기를 품은 눈은 분명 벌레의 것이다.

그러나 기분 나쁘게도 입에 달린 턱은 사람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두 발로 걷는 것 또한 인간의 특징을 가졌지만, 비정상적으로 긴 양팔은 이형의 검으로 변해있었다.

겉만 보아서는 우스꽝스러울 지도 모른다.

마치 아이가 만든 것 마냥 조잡한 장난감 같은 생김새이니까.

그래, 이것은 말 그대로 어린 마녀의 작품이었다.

‘사역마Familiar.’

그것은 마녀가 불러내는 이형의 생물체를 가리킨다.

연약한 육신을 가진 자신을 보호하고자 창조해낸, 본디 있어선 안 되는 존재···.

그 부품은 죽은 자의 일부, 혹은 마술로 배양해 만들어낸 몸뚱이다.

그것을 기우고 이어 붙여서··· 저 너머의 세계에서 배운 지식으로 되살린다고···.

대스승의 가르침에 의하면 마녀를 죽이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놈들이라 했었지.

“고오오오!”

사마귀 괴물은 레이의 검을 쳐내고 맹공으로 반격해왔다.

양팔을 순서대로 내리치며 저돌적으로 파고들어왔다.

챙, 챙강!

수 초 만에 열 번이 넘는 참격과 검격이 교차했다.

체구는 사마귀 놈 쪽이 두 배는 크다.

하지만 레이는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 작은 몸으로 묵직한 괴물의 낫질을 몇 번이나 튕겨냈다.

“···칫!”

공방이 이어질수록 레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힘겨움보단 짜증이 섞인 얼굴이다.

마치 한낱 미물 따위가 자신과 겨루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듯 했다.

“···후우우우.”

허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레이는 격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세워 사마귀 놈의 양팔을 한 순간 차단하더니, 그 틈을 노려 숨을 깊이 들이 마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뻗었다.

동시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살짝 쥔 주먹이 사마귀 괴물의 몸통에 닿았다.

그 순간···.

“하앗!”

투콰아아아앙!

레이의 기합과 함께 공기가 폭발했다.

나는 보았다.

괴물의 가슴팍에 선명한 소용돌이의 뒤틀림이 발생한 것을.

“고··· 오오옥!”

사마귀의 눈깔이 요동친다.

그 아래 사람의 것과 다르지 않은 아가리에서 피가 섞인 거품을 토해냈다.

레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칼날이 괴물의 목을 꿰뚫었다.

잘린 사마귀의 머리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대스승!”

마녀를 놓치진 않을까, 레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럴 걱정은 없었다.

그녀가 초조해하기도 전에, 대스승 크레이그는 행동에 나섰다.

그는 한참 전에 화승총을 나에게 넘기고, 레이에게 받은 검을 든 채 걸음을 옮겼다.

“도망칠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스승은 이미 사역마가 당한 것을 보고 달아나려던 마녀의 퇴로를 막은 상태였다.

“수준 낮은 마법, 같잖은 사역마··· 정말이지 안쓰럽구나. 어린 마녀여.”

“아, 아아···.”

“이 이상의 발악은 용납하지 않겠다.”

소녀는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눈앞에는 대스승이, 등 뒤에는 레이가 거리를 좁혀온다.

불안감을 넘어선 두려움이 소녀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도와··· 구해줘!”

“···.”

“아빠아아, 살려줘!”

그러면서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보인다.

왜 날 바라보는 거지?

어째서 내게 구원을 요청하는 걸까?

아빠라고?

너무 두려운 나머지 착란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게서 부모의 일면이라도 본 건가?

“현혹되지 마라, 빅터. 아무리 작다곤 하지만 이것은 마녀다. 지금 미약한 마기가 그쪽을 향하고 있어, 아까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자네의 마음을 이용하려는 걸세.”

“···이젠 괜찮습니다.”

“정말인가? 내 하나 남은 손목까지 분지르면 곤란한데 말이야.”

그랬다.

마음은 진정된 지 오래다.

더는 아델을 떠올릴 때와 같은 간절함이 생기지 않는다.

조금 전에 내가 느낀 심정의 변화는 결국··· 가루의 부작용과 더불어 마녀의 방어기제 탓에 일어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빅터, 자네의 눈에 이것은 그저 작은 아이로만 보이겠지. 가루를 흩뿌려도 고작 그 정도의 본질 밖에 간파할 수 없었던 거야.”

대스승은 검을 휘둘렀다.

그 궤적이 지나갈 때마다 소녀의 어깨, 다리와 가슴에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치는 것은 다르다네.”

하지만 머잖아 그 상처는 다시 메꾸어진다.

소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애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 그만해요! 내가 나빴어.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가증스러운 것, 아직도 뻔한 연기를 하는군.”

“아악!”

“재생 횟수를 보게. 이거야말로 이 계집이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의 정수를 탐닉해왔다는 증거지.”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아아!?”

“탈진한 상태임에도 꽤나 농도가 짙은 마기를 가지고 있다. 어리다고 얕볼 수가 없겠어.”

난도질은 끝나지 않았다.

차마 보고 있기 힘들다.

대스승의 행동이 단지 어린 여자애를 괴롭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부디 그의 행동에 어떤 이유가 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 진실이 밝혀졌다.

그것은 소녀의 귀가 대스승의 칼에 잘려나간 직후였다.

“키야아아악!”

나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갑자기 소녀의 턱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길앞잡이의 것처럼 가로로 돌출된 것이 아닌가?

“마기가 다 떨어졌나? 이젠 사람의 모습조차 유지하지 못하는군. 봐라, 이게 이 어린 마녀의 본 모습이다.”

이윽고 순진무구하던 얼굴이 찢어지며 이마부터 마디가 달린 더듬이가 튀어나온다.

눈알은 무수히 쪼개져고 마치 곤충의 겹눈처럼 변해버렸다.

소녀의 얼굴은 점차 문드러져, 어느새 완전한 벌레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녀란 것들은 자기 자신도 마법의 영향을 받지. 세상의 이치를 가지고 논 대가로 마기에 침식되는 것이다. 그 방식에 따라서 형태가 가지각색이지만··· 이 계집의 경우는 독충과 깊은 연관이 있었던 것 같군.”

대스승은 크게 팔을 휘둘렀다.

수직으로 소녀··· 아니, 벌레를 다루는 마녀의 머리를 쪼게 버렸다.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것은 뒤로 널브러졌다.

사지를 바들거리며 경련하더니··· 이윽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대스승이 검을 거두어들이자,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던 요사스러운 기운이 급격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늘은 본래의 색을 되찾고, 숲의 나무들도 생기를 발했다.

마녀가 죽음으로 결계가 풀린 모양이었다.

악몽의 밤은··· 드디어 끝이 났다.

“대스승, 고생하셨습니다.”

“아니다. 너도 잘 해주었다, 레이. 그리고 빅터, 자네도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

“자네는 나쁘지 않다. 이것도 깊게 신경 쓸 필요는 없네.”

대스승은 나로 인해 부러진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오히려 아이가 죽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쪽이 비인간적인 것이야. ···나는 그런 의미에서 냉혈한이라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지. 허나, 언젠가 자네도 알아주길 바라네.”

“무엇을 말입니까?”

나는 살짝 비꼬는 투로 말했다.

“마녀라면 그게 무엇이든 찢어발겨야만 하는 것이 댁들입니까?”

대스승이 무얼 말하려는 지는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째서인지 애꿎은 반항심이 들었다.

나는 못마땅했다.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소녀가 죽기 직전, 사람이 아닌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나는 그만 안도하고 말았다.

그것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럼에도, 그것이 본래 어린 아이이며 소녀였단 사실을 망각하면서까지.

“빅터, 젊은 사냥꾼이여.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도 나름대로 필사적이라네.”

그러나 의심스럽다.

소녀를 죽이려던 그 순간, 대스승에게서 광기의 일면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공한 증오를 내뿜고 있었다.

안타까움을 느끼기는커녕 일종의 희열마저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의 신사적이고 이지적인 모습은 전부 위선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렇다, 빅터. 자네가 느낀 것처럼 우리는 미쳐있다.”

대스승은 부정하지 않았다.

“가루를 통해서 내 본성을 보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진실이다. 나는 마녀들을 참살하는 것에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감미로운 기쁨에 사로잡힌다네. 그리고 그것은 레이도 마찬가지지.”

정말인 모양이다.

역시 이들은 내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허나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째서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지를.”

“···.”

“자네는 이미 나에게 맹세했네. 그렇다면 끝까지 따르게나. 의심을 하되, 두 눈으로 직접 확인 하거라. 이 여정이 끝나면 해답은 저절로 나올 지니.”

대스승은 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는 어차피 나에겐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아는 듯 했다.

이제 돌아가기엔 너무도 많은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아직 원하는 것도 손에 넣지 못했다.

“잘 생각했다. 그러면 다시 움직여 보실까? 이 밤이 끝나기 전에 아직 조사해야할 것이 있으니.”

“···예?”

“이상하지 않나? 내가 방금 끝장을 낸 계집의 본질은 벌레였다. 그렇기에 그것이 다루는 사역마 또한 벌레의 형상을 했지. 그런데 기억해보라. 우리는 숲에서 벌레의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마물을 보지 않았느냐?”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스승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기의 육신으로만 이뤄진 그 기괴한 괴물을 만들어낸 녀석이 따로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는 건···.

“큭큭, 벌레 계집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네. 오늘의 메인디쉬는 따로 있지.”

“그럴수가?”

“분명 숲의 결계는 풀렸다. 허나 아직 이 숲에는 마녀가 또 하나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지. 아마 그 어린 마녀를 추적해온 녀석일 거다. 잘 하면 한밤중에 벌어진 소동의 사정을 들을 수도 있겠지.”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젠 지긋지긋하다.

이만 잠을 청해서 망각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대스승에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자네에겐 힘겨운 밤이다. 진이 빠졌나, 빅터?”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치열한 싸움을 했으면서 잔뜩 의욕에 차있다.

엄청난 정신력··· 경외심이 들 정도다.

“하루에 두 마리의 마녀를 죽일 기회는 흔치 않다네?”

따라올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일으킬 뿐이다.

“좋다. 이 밤이 지나면 자네는 한층 더 강해질 걸세. 틀림없어. 내가 보증하지.”

그는 내가 가장 바라마지 않던 것을 동행의 조건으로 걸었다.

그러나 기쁘지 않다.

어째서일까?

나는 내 영혼이 뭔가에 잠식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분명··· 심연 깊은 곳에서 정신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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