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장(2)
3.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날, 나는 이제 어떤 걸 봐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가루를 통해서,보이지 않는 세계에 숨어사는 미지의 생물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최소한 마음의 준비를 하면 얼마나 흉측한 것과 대면하더라도 괜찮겠다 싶었지.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신비의 분말을 뿌려가며 대비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괴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물러나라, 빅터. 이것은 위험하다!”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마물의 몸집에 압도당한 나는 물론, 대스승 크레이그마저도 표정에서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 말인즉, 지금 이 상황은 밤의 괴물들과 싸우는 전문가인 자들에게조차 드문 사건이라는 말이 된다.
‘한 눈에도 내 몸의 다섯 배는 되어 보인다.’
마찰에 짓물러진 피부는 한 없이 갓난아기를 닮은 얼굴···.
본디 앙증맞아야 할 손가락들이 벌레처럼 뭉쳐져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단호히 추악하다고 부를 수 없었다.
문득 보이는 그대로 떠오른 것을 그대로 뱉어내서는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이것은 사람의 자식이지 않은가?’
어째서일까?
그 무엇보다 귀엽다고 느껴져야 할 아기가, 단지 수 십체가 결합하여 기이한 실루엣을 이룬 것만으로···.
이토록 끔찍한 혐오감을 느껴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 속으로 바랐다.
이것이 진짜 아기로 만들어진 무엇인가가 아니길···.
단지 여행자를 잡아먹기 위해서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마물일 뿐이기를.
하지만 당장 나에겐 미와 흉에 대해 자문할 틈도, 이 괴물들의 정체를 파악할 여유도 없었다.
그늘 너머에서 그림자가 거칠게 움직였기 때문에.
“몸을 숙여라!”
“윽!”
괴물이 거수를 휘두른 것만으로 작은 폭풍이 일었다.
바로 앞에 있던 고목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박살난 파편과 부러진 가지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힘이···.’
이런 건 제아무리 덩치가 크고 흉포한 곰이라 할지라도 흉내 낼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저건 짐승과 비교할 대상조차 아니다.
이것은 본디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니까.
“크흠··· 하필 이런 곳에서 성가신 것이 튀어나왔군.”
대스승의 말처럼, 그로서는 당장 이 거대한 괴물을 상대할 길이 없어보였다.
그의 무기는 화승총이다.
엄밀히는 흑색 화약으로 발사되는 손톱보다 자그마한 쇠구슬이지.
물론 위력은 있다.
이것은 특별한 장비이다.
사람의 사지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도록 대스승이 직접 특수하게 제작을 했다지.
화약의 양을 늘리고 지근거리에서 폭발력을 증폭시켰다고 이전에 넌지시 이야기해준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은 무의미해 보인다.
아무리 개조를 했다곤 하나 목표의 덩치가 이만큼 차이가 난다면···.
“대스승!”
나는 그에게 후퇴를 권하려했다.
내가 그들의 싸움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할지라도···.
이런 괴물과 정직하게 전면전을 할 순 없단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다행히 나는 그 사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몸이 많이 회복되었으니, 아주 잠깐이라면 대스승에게 뒤처지지 않고 달릴 자신이 있었다.
“어쩔 수 없구만.”
다행히 대스승은 내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만큼 간단한 상대는 아니지만··· 이 또한 자네를 교육시킬 기회로 삼도록 할까?”
이마저도 나의 착각이었다.
대스승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내 쪽으로 한 눈까지 파는 여유를 보였다.
“보거라, 빅터. 이 세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마가 존재한다네. 기억하느냐? 하나는 이전에 보았을 게야. 이븐 가지의 분말을 통해 나타나는 저편의 놈들이 바로 그렇다네. 이쪽 생물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아니, 지금은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저놈과 같다. 이쪽의 생물들을 재료로 삼아 뒤틀린 모습을 취하지. 육신이 이 세계의 것이므로 당연히 가루 없이도 잘 보인다네. 바로···.”
제기랄!
이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신비한 힘이 좀 있기로서니, 위기감이 마비라도 된 것인가?
순간 그의 머리 위로 거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주먹을 쥔 채 냅다 아래로 처박아버릴 기세였다.
조금 전에 목격했듯··· 괴물의 일격에는 수 그루의 고목을 날려버리기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쿠콰아아아앙!
지진이 울렸다.
밤하늘로 흙먼지가 튀었다.
어느새 조금 전까지 대스승이 서 있던 자리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놈의 공격은 대스승에게 닿기는커녕, 스치지도 못했으니까.
“경거망동 하지마라, 젊은 사냥꾼아.”
나는 보았다.
무시무시한 괴물의 철권이 지면을 내려치는 그 순간, 대스승이 오히려 안으로 파고든 것을···.
경악스럽다.
이건 이미 비범하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 노인은 피할 때조차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는 괴물이 뻗은 주먹을 발판 삼아, 놈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보통 이것들은 무식하게 힘만 쎄다네. 조금만 관찰해도 다음 움직임을 쉽게 예측이 가능해. 기괴한 모습에 겁만 먹지 않는다면, 나 같은 늙은이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지!”
아니, 무리일 것이다.
보통은 절대로 불가능하겠지.
머리로 안다고 해서 따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배울 수가 없다.
하지만 보란 듯이 대스승은 다음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보통 이런 놈들의 약점은 머리에 있다네.”
단번에 고개를 돌리는 거인의 이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번쩍하고 숲이 일순간 밝아졌다.
동시에 괴물의 두상이 뒤로 튕겨나갔다.
태아로 이뤄진 거인은 그대로 나자빠졌다.
“오애아아앙!”
하지만···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소름끼치는 아기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고, 팔을 뻗어서 대스승의 뒤를 쫓았다.
“···물론 이런 중합체가 반드시 약점이 머리라는 보장은 없지.”
여기서 그는 착지와 동시에 어떤 행동을 한다.
총을 잡지 않은 왼손을 가슴 언저리로 가져오더니···.
뭔가를 한 움큼 쥐는 기묘한 동작을 취했다.
나는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 지 안다.
가루를 흩뿌린다···.
이븐 가지의 분말을 허공에 날려 어떤 신묘한 힘을 끌어내는 것이다.
“후우···.”
일순간, 노인을 추격해온 거인의 팔이 튕겨나갔다.
이걸 무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발길질이었다.
대스승은 덮쳐오는 커다란 물체를 단지 걷어찼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육중한 마물의 몸이 살짝 공중에 뜰 정도였다.
“쯧.”
대스승은 다시금 화승총을 겨누려 했지만, 이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관두지. 이런 놈에게 화기는 무용지물이다. 간단히 이기려하고 하다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그러면서 그는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안 그런가? 레이 엔쯔이.”
“···말도 안 됩니다, 대스승.”
언제 돌아와 있었던 것일까?
레이는 대스승의 부름에 맞춰 괴물의 머리 위로 뛰어 들었다.
직후, 하늘에서 검광이 번뜩였다.
나무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박히는 참격···.
그 찰나의 순간, 레이는 공중에서 두 바퀴 이상을 회전한 듯 보였다
“훌륭하다.”
대스승이 박수를 치자, 괴물의 몸에 붉은 균열이 일었다.
놈이 한 걸음을 내딛자, 무릎과 허벅지의 경계선이 갈라져··· 이윽고 전신이 분해되었다.
‘저런 걸 물리치다니···.’
전율이 일었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고목을 간단히 뽑고, 지면에 박힌 바위조차 가루로 만드는 거구의 마물을···.
이들은 희생 없이 일방적으로 사냥했다.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됐구나, 레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수풀 사이에 마귀들이 북적이기에 조금 처리하느라 그만···.”
“아니다. 마침 딱 좋은 시기에 와 주었다.”
대스승이 흡족하게 웃자, 레이는 고개를 숙이며 뭔가 안도한 듯 보였다.
“그럼 빅터, 이번 일로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배웠나?”
“그건 무슨 말입니까?”
“복습이다.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성장은 없는 법이야.”
나는 어이를 상실했다.
이게 방금 목숨을 건 싸움을 끝낸 사람이 할 법한 질문일까?
하지만 대스승의 얼굴은 진지해 보였다.
나에게서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괴물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그렇지. 천천히 기억해보게. 이만한 충격을 겪음으로 얻은 지식은 아주 인상 깊게 각인 되니까.”
“하나는 가루를 뿌려야지만 보이는 것. 나머지 하나는 육체가 있는 것···.”
“옳지. 개념은 파악한 것 같구만. 그리고···?”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것도 만족할만한 정답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보다 실질적인 해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괴물을 쓰러뜨리는 방법에 대해서 입니까?”
대스승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겨우 그 의도를 눈치 채고 말을 이었다.
“시체를 이어붙인 놈들에겐··· 날붙이가 유효하다.”
“그렇다네, 빅터. 잘 관찰했군. 그게 맞는 말일세. 가끔 머리가 여러 개인 놈들 중에선 굉장히 끈질긴 놈들이 있거든.”
이어서 그는 자신이 거인을 쓰러뜨렸을 때의 과정도 설명했다.
대스승의 가르침 자체는 단순했다.
자신들이 상대하는 적은 대부분 거대하다.
치명적인 공격은 피하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약점을 노린다.
마무리는 최대한 치명적이어야 한다고···.
‘이해는···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기에.
고작 그 정도론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으니.
면목이 없다.
머리를 숙여가며 부탁해서 동행했으나 제자리에 멈춰있는 기분이 든다.
두 사람의 싸움에 감탄했지만, 동시에 내 자신이 너무도 무력하고 막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저걸 흉내 낼 수나 있을까?’
이런 인간을 넘어선 영역의 싸움을···.
“큭큭, 뭘 벌써부터? 아직 자네에겐 실습을 요구하지 않을 테니 괜한 생각은 하지 말게.”
대스승은 평소처럼 껄껄 웃어 보였다.
내 생각을 간단히 꿰뚫어본 모양이었다.
“두려운가?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나? 그럴 테지. 하지만 자네는 아직 저것들과 맞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육체의 단련도, 정신의 강화도··· 모두 때가 되면 다 이뤄질 것이다. 그러니 조바심은 가지지 말게나.”
“하지만 저는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고 싶습니다. 언제까지고 이래선 죽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고개를 들 수가 없단 말입니다.”
“착각은 금물이다, 빅터. 자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우리를 도와 마물들과 싸우는 게 아니다. 그건 헛되게 목숨을 버리는 길이지.”
“···.”
“명심하라.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리고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고 눈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당장 자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또 의미 모를 소리···.
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조건으로 대스승 크레이그의 제자로 들어온 것이니까.
“···그래. 그거면 된 거네. 싫든 좋든, 자네는 오늘 밤에도 많은 것을 봐야만 할 테니.”
“예? 지금 뭐라고···.”
“아직 끝나지 않았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장 큰 위협이었던 흉물은 방금 이들이 쓰러뜨렸을 터인데···.
“본래 평범한 숲에는 저런 것들이 배회하지 않는다. 아무리 이 세계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영역을 벗어나면 머지 않아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야.”
“영역···?”
“그렇다.”
대스승 크레이그는 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고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무거운 목소리를 흘렸다.
“우리는 지금 마녀의 결계에 들어와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