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4화 (14/186)

심연의 장(1)

1.

두 사람을 따라 마을을 나선 지 나흘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는 언덕과 산등성이를 스무 개 가까이 넘었지.

···강행군이었다.

이 주변은 지형이 전부 험난하기 짝이 없어, 산에 익숙한 나조차도 진이 빠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길을··· 노인과 여자는 해가 떠있는 동안엔 거의 쉬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 뒤를 쫒았다.

‘제기랄··· 어제도 오늘도 산을 타고만 있어.’

지금도 나는 땀에 절여져 거친 숨을 몰아쉬는 중이다.

가뜩이나 힘들어서 기진맥진인데···.

노인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조차 말해주지 않으니, 더욱 답답해죽을 지경이다.

거기다가···.

“뭘 하고 있나? 설마 벌써 녹초가 된 건 아니겠지? 그래선 우리의 동지가 될 수 없다네.”

“헉, 허억···.”

“···큭큭, 농담일세.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이쯤이면 보통 사람에겐 힘 겨울만 하지.”

이런 상황에서도 노인은 여유를 부렸다.

그 뒤를 따르는 레이란 여자도 마찬가지···.

이 두 사람은 정말 사람이긴 한 걸까?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으면서도 일말의 지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직, 아직··· 입니다.”

젠장···.

한참 연하의 여자와 나보다 인생을 두 배 넘게 산 노인에게 체력이 밀려서야 면목이 서지 않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금 보폭의 속도를 올렸다.

헌데 여자 쪽이 나를 흘겨보더니.

“쓸데없는 고집이네.”

“···뭐?”

“자기 역량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사내.”

뜬금없는 매도.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대꾸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잊을만하니 또 시비질인가···.’

저 여자는 동행한 첫날부터 이런 식이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틈만 나면 나에게 묘한 텃세를 부리곤 했다.

“레이, 너무 심술부리지 말거라.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이렇게까지 따라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 않느냐?”

“예, 대스승.”

“훈련도 없이 이 정도다. 성장이 기대되는군. 빅터, 자네는 그간 어지간히도 몸을 단련한 모양이군.”

“···그렇군요, 듣고 보니, 변방의 사냥꾼 출신치곤 제법 나쁘지 않네요. 덩치에 비하면 못 미덥지만.”

“큭···.”

“혹시 모르니 빅터를 봐 주거라. 나는 조금 앞서 가도록 하마. 해가 지기 전에 지형을 확인해두고 싶구나.”

“···네, 알겠습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비꼬는군.

이런 식으로 치켜세워봐야 기분만 나쁘다.

괴물 같은 것들···.

뭐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거냐?

“흥.”

여자는 아예 대놓고 내 면전에서 코웃음을 쳤다.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군.

내가 빨리 낙오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런 주제에··· 정작 내가 비틀거리거나 발목을 삐면 제일 달려와 부축하겠지.

나를 질겁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스승의 지시만큼은 착실히 따르는 여자니까.

‘게다가 예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선 집착에 가까운 신경질을 보이지.’

그랬다.

내가 동행하면서도 노인에게 쭉 무뚝뚝한 태도를 고수하자, 그녀는 칼까지 꺼내며 나에게 위협을 가했다.

‘뭐라고 했더라··· 연장자와 선배에게 경박하게 구는 혓바닥은 필요없어··· 였나?’

그 말 그대로···.

저 계집은 내 입안에 검을 박아 넣기 직전까지 날을 세웠다.

단지 예의를 지키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다 대뜸 자기에게도 사저라고 부르라며 강조까지 했다. 뭔진 몰라도 동방의 유구한 전통이라나···.’

결국 나는 대스승 크레이그를 존대하게 되었다.

당연히 사저라는 호칭도 함께.

허나 큰 불만은 없었다.

‘첫 만남이 원체 엉망이었지만, 완력으로 한 번은 제압당하기도 했다. 싸움에서 졌던 내가 거들먹거릴 입장이 아니지.’

결과적으로 나는 그에게 마의 존재들에게 맞서는 법을 배워야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존중은 필수 부가결한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취급을 당해도 상관없다.

애초에 이들을 따르기로 정한 시점에서 각오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뭘 빤히 보는 거야, 덩치?”

“아니, 아무 것도.”

“실속이 없는데다 싱겁기까지 하네.”

“···.”

이 성격 나쁜 계집애를 상대하는 건 그 자체로 고역이다.

냉철하고 조용한 인상이었던 것은 전부 스승 앞에서만 보이는 내숭이었던 것이다.

이거 원, 말투부터 목소리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좀 빠릿빠릿하게 굴어. 지금 너 때문에 얼마나 지체된 줄 알아? 하여간 민폐가 따로 없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모자를 벗으며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그리곤 내 보폭에 맞춰 느긋하게 걸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더니···.

대스승과는 달리 땀 정도는 흘리나보군.

이렇게 보니 조금은 사람에 가까운 것 같다.

‘···나만큼은 아니어도 이 녀석도 꽤 지친 모양이군.’

챙이 넓은 사냥모가 사라지자 이제야 겨우 이 여자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레이 엔쯔이···.

그녀는 의외로 장발의 소유자였다.

전날 밤 휴식을 취할 때 잠깐 보니 거의 허리까지 내려왔었지.

노인네와 같이 새치가 섞인 그 회색머리칼은 어쩐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얼굴만 보아선 아직 앳된 티가 엿보이는 계집이지만···.’

동방의 인종은 나이에 비해 몸집이나 키가 작은 편이라 정확한 연령을 파악하기 힘들다.

거기다 이따금씩 보이는 살벌한 눈빛에는··· 오래도록 생사를 넘나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노련함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녀의 움직임은 가벼우면서도 날카롭다.

나는 태어나서 레이만큼 날붙이를 잘 다루는 사람을 남녀 통틀어서 본 적이 없다.

나중에 노인네··· 아니, 대스승 크레이그에게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동방의 비전 검술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선 아름답기까지 한 칼부림···.

그러나 그 위력만큼은 장난이 아니다.

그 검 끝이 향하는 상대가 내가 아닌 마물들이라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외견만 본다면 분명 멋진 여자라 할 수 있다.

딱 하나만 빼면···.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군.’

딱히 내가 먼저 시비를 건 적은 없을 것이다.

대스승을 따라 가르침을 얻기로 맹세한 그 시점에서···.

나는 대부분의 지시를 순순히 따랐다.

마녀에 대해 섣불리 질문하지 말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술이나 저주에 대한 괜한 관심을 품지 말라는 당부까지···.

‘덧붙여 지금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에 대해서도 엄금이랬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꿍꿍이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당장은 묵묵히 따라야 하겠지.

지금의 나는 무력하다.

그들이 ‘가루’라는 것을 흩뿌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싸우기는커녕 밤의 짐승들을 볼 수조차 없다.

그러니 불평할 입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스승 크레이그의 명령에는 그걸 반드시 따라야할 이유가 있다고 했다.

‘빅터, 변방의 젊은이여. 지금 이 순간부터 자네는 한뜻을 품은 우리의 동지다. ···허나 지금 그대에겐 마술에 대한 방어기제가 전혀 없음이다. 어떤 적과 만나게 되더라도 반드시 처음 노려지는 표적이 되겠지. 우리의 밤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혹하다네. 이전에 자네의 마을에 본 놈도 개중에서 귀여운 편에 속하지. 이 시점에서 불필요한 지식이나 어설픈 정보는 오히려 독이 된다. 그러니 답답하더라도 견뎌 내거라. 때가 되면 싫다 해도 전부 알게 될 터이니···.’

결국 나는 대스승의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조바심을 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그래도 다행인 건, 대스승은 나에게 자질이 있다고 했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

분명 뭔가가 있다.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두 사람처럼 싸울 수 있는 기술과 어둠의 마물에게 대항할 수 있는 지혜가···!

“야.”

퍼억.

갑자기 중심이 기운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자세가 무너졌다.

이어서 느껴지는 오른쪽 다리의 통증···.

나는 걷어차였다.

레이가 날린 무자비한 발차기가, 접혀지는 내 무릎에 적중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잠자코 있어.”

“뭐?”

“흐음···.”

녀석은 자신의 목을 더듬더니.

“···대스승 그레이그! 빅터가 쓰러졌습니다!”

평소 대스승을 대하는 특유의 딱딱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녀석은 이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정비하는 게 어떻습니까?”

“···허?”

그러자 잠시 뒤, 한참을 앞에서 가던 대스승이 나타났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상태를 물었다.

“···빅터, 몸은 좀 어떤가?”

“아니, 저는 괜찮···.”

“진즉 말했어도 상관없었네. 어차피 우리가 당도할 곳은 여기서 그다지 멀지도 않으니까.”

“그게 아니라···.”

레이 엔쯔이 녀석,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댄 채로 무언으로 말하고 있다.

이 제스처에는 딱히 언어가 필요 없다.

명백히 닥치라는 의도가 담겨있으니까.

이 망할 계집애··· 대체 무슨 꿍꿍이지?

눈가가 웃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기가 피곤한 걸 날 핑계로 삼아서 쉴 생각인지도 몰랐다.

“···피곤합니다. 더는 다리가 말을 안 듣는 군요.”

“그래, 마침 잘 됐군. 그럼 이쯤에서 야영을 준비하세나. 두어 시간이면 해가 기울 테니. 레이, 주변에서 땔감을 좀 구해오너라.”

“예, 대스승.”

“난 이걸 좀 손질하고 있으마.”

그는 양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무슨 수로 잡은 건지··· 살집이 오른 산새 두 마리를 가져온 것이다.

“오늘밤은 이놈들로 배를 채우지.”

질렸다.

이마저도 핑계 삼아서 나를 배려하려 한다.

레이의 말처럼, 나는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군···.

허나 노인은 어울리지 않게 활달한 태도로 나에게 말을 이었다.

“어떤가, 빅터? 군침이 돌지 않나? 자넨 오래도록 고기를 먹지 못했을 텐데.”

이건 질문이 아니다.

애초에 거절권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친절을 받아들였다.

하여간 유쾌한 늙은이다.

나는 오래 전의 추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냥을 배우며 산에서 수렵을 하던 시절이 생각난 것이다.

그랬다.

나는 어느새 그를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보고 있었다.

2.

식사의 포만감.

그리고 모닥불의 온기가 조금이나마 피로를 녹여주었다.

노숙에는 익숙해졌다.

마을이 사라진 뒤, 나는 제대로 된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이들과 동행하니 먹을 것을 걱정할 일은 사라졌다.

대스승은 놀라운 남자였다.

사냥꾼인 내가 봐도 놀랄 만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어디선가 뭔가를 항상 채집해왔다.

보기 드문 버섯부터 산딸기, 어제는 무슨 재주인지 꿀이 한 가득 든 벌집조각 마저 구해왔지.

거기다 정체모를 연고와 알약을 끼니 때 마다 먹이질 않나···.

하지만 정작 대스승은 별달리 식도락을 즐기는 것 같지 않았다.

레이도 위장이 작은 지, 입으로 가져간 양이 적었고 말이다.

결국 내상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대부분의 음식은 나에게로 돌아갔다.

덕분에··· 며칠이나 가혹한 산행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서도, 내 몸의 상태는 확연히 호전을 보이고 있었다.

식음을 전폐했을 때 말라붙었던 근육이··· 지금은 거의 원 상태로 돌아왔을 정도다.

“···잠깐 괜찮겠나?”

그때였다.

갑자기 기척도 없이 함께 노인이 나타났다.

매번하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올 수 있지?

“대스승.”

“됐다. 지금은 그 아이가 망을 보러 갔으니 딱딱하게 예우를 차릴 필요가 없으니.”

무슨 볼일이지.

낌새를 보아, 대스승은 레이가 자리를 비울 때를 노리고 말을 걸어온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바로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햇다.

“레이의 심술을 이해해주면 좋겠네.”

“예?”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거두어 졌지. 햇수만 10년인가, 아니··· 11년이로군. 그래서인지 남다르게 나를 자신의 아비처럼 생각하고 있지.”

“그렇···습니까?”

살짝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차마 부끄러워 말을 꺼낼 순 없지만, 나도 레이의 감정이 얼추 이해가 되었다.

쓸데없는 말이 많고, 괜히 과장된 말투로 장황하게 떠들지만···.

이 남자, 대스승 크레이그는 기본적으로 인격자이다.

사소한 배려에서부터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끔 만드는 따뜻한 마음씨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러 사정이 있어서 최근엔 그 아이 외에는 제자를 들인 적이 없었지. 그래서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괜히 자네에게 거칠게 대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넘겨주게나. 기껏해야 갓 스물이 된 아가씨의 응정이겠거니 하고 말이야.”

“···.”

예상보다 나이가 적다.

아니, 나는 그런 어린 꼬맹이에게 지금껏 휘둘렸단 말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역시 나는 배우는 입장이기에.

“알겠습니다. 좀 더 견뎌보겠습니다. 나이가 차이 난다해도, 일단은 사저이니까.”

“큭큭, 고맙네. 저렇게 툴툴 거려도, 사실 레이는 귀여운 아이라네. 곧 그걸 알게 될 거야.”

제자가 아니라, 마치 딸 자랑을 하는 팔불출 같군.

허나 이것도 이해한다.

딸 아이라···.

새삼스럽게 아델의 얼굴이 떠올라, 나는 그것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만일 그것을 생각해내면, 오늘 밤을 잠들 수 없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근래, 나는 이런 식으로 필요에 따라 기억을 억누르는 요령을 터득했다.

그래, 적어도 잠을 청하는 동안만큼은 괜찮을 것이다.

이걸로 오늘밤도···.

“···애앵, 응애애···.”

그런데 그 순간, 숲속에서 기묘한 음성이 들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했다.

착각이 아냐, 나뿐만이 아니라 대스승도 순식간에 고개를 돌렸다.

“···이런, 벌써 영역이 퍼져있었던 겐가?”

“무슨 일이···.”

“실수다. 이렇게까지 가까울 줄은 몰랐는데.”

대스승은 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고 바로 화승총을 꺼내들어 전투를 준비했다.

“빅터, 횃불을 만들게. 그리고 나를 따라와라.”

“예.”

나는 그의 지시대로 불씨를 붙였다.

천으로 감싼 막대기에 아교를 발라 만든 간단한 횃불이지만, 의외로 이것은 오래갈 것이다.

대스승이 손짓한다.

나는 그 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으응, 애이엥, 으아앙!”

대스승의 뒤를 따를수록 울림이 커졌다.

이건··· 알고 있다.

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

그것은 아델이 갓난아기였던 시절, 밤마다 잠을 깨워서 괴로웠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아앙! 응애!”

이건 아이가 우는 소리이니까.

하지만 기괴하다.

인적이 드문 이 숲에, 갓난아이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쪽일세.”

대스승은 곧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손짓이 향하는 곳으로 횃불을 가져갔다.

“우애앵!”

그리고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그만 횃불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럴수가! 당장 눈을 감아라, 빅터. 이것은···.”

아기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태아가 어둠 속에서 얼굴만을 배꼼 내밀고 있었다.

허나 횃불의 일렁이는 빛이 조금 어긋난 것만으로도 그것은 본 모습을 드러냈다.

고목들이 우거진 숲 사이에 구부정한 거인의 그림자가 보인다.

수많은 머리, 팔, 다리가 뒤섞이고 뭉쳐진 뭔가가···.

그것은 아기들의 시신만을 뭉쳐서 만든 악의의 결정체 같았다.

“응애애애!”

마치 젖을 보채듯, 다시 울음소리가 퍼진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괴물이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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