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3화 (13/186)

결의의 장(3)

3.

그것은 대가리가 모기를 닮았지만, 본질은 그보다 훨씬 추악하고 흉물스러웠다.

머리통에 처박아 넣고 뇌를 빨아먹기 적합해 보이는 구조의 기관이···.

커다란 바늘처럼 돌출된 주둥이까진 봐줄만하다.

그러나 전신을 깨알같은 반점으로 가득 매우고 있는 것은 보고 있기 괴롭다.

그게 매우 작은 눈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혐오감이 끓어오른 뒤였다.

‘저 놈이 세 사람··· 아니, 어쩌면 숲을 헤매던 모두를···.’

아버지의 말은 일부 옳았다.

정말로 숲에는 마魔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딴 괴물에게 자경단의 모두가 당했단 말인가?’

치가 떨린다.

분명 다들 편히 죽진 못했겠지.

산채로 두개골을 후벼 파이고 꿰뚫어져 뇌수를 빨아 먹혔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상상을 하자, 먹은 것도 얼마 없을 위장이 구역질로 날뛰기 시작했다.

“우욱···.”

“너무 자세히 바라보진 말게나. 저것들은 관측한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주니까.”

“그딴 건··· 빨리 말하라고!”

이미 늦었다.

뭔가 불쾌한 감각이 밀려든다.

여전히 머리가 아파, 아니 점점 심해지는 기분이다.

내가 이마를 짚자 노인은 살짝 놀란 듯.

“아니? 레이 엔쯔이여, 뭔가 실수했느냐?”

“그럴 리가! 대스승! 저는 분명 약소하게···.”

“크으···아아악!”

“그게 아니라면··· 정말이지 가공할 증오로다.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빠르다. 이븐 가지의 분말Powder of Ibn-Ghazi이 한 없이 마기를 만들어내고 있군.”

여자는 눈에 띠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노인도 뭔가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혀, 가루를 게워내라.”

“그딴 건 또 어떻게 하는···.”

“무심無心이다. 머릿속을 비우고 냉정을 되찾아라.”

무리다.

마을의 친한 동생들을 죽이고, 그 시신마저 욕보인 괴물을 본 순간부터···.

내 가슴 속에선 억누를 수 없는 울분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밉다.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멋대로 손이 떨리고 숨이 거칠어진다.

저것을 찢어발기고 싶어,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어났다.

“레이, 제압해라!”

“예! 아니···.”

나로서도 의문이다.

내가 어떻게 두 사람이 붙잡은 팔을 뿌리칠 수 있었는지···.

작은 몸집의 여자는 몰라도, 나를 가지고 놀 정도의 힘을 가진 노인조차 지금의 나를 다룰 수는 없었다.

나는 아마 축 늘어진 괴물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무모하게도 맨손으로, 그것이 아니면 이빨을 새워서라도 물어뜯으려 했겠지.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식이 뭔가에 먹혀서 그대로 끊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기행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단 사실이었다.

“···정신이 들었나?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사내로군.”

눈을 떠보니, 나는 다시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노인은 내 뒤통수를 팔로 누른 채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큭큭, 소질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지··· 정말 성장이 기대되는군.”

“무슨 일이··· 나는 대체?”

“모르는 게 좋을 걸세.”

“뭐?”

“그냥 술주정 비슷한 거라고 여기도록. 이건 자네의 탓이 아니니까.”

“···면목 없습니다, 대스승.”

“아니다. 레이도 잘못한 건 없으니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거라. 그저··· 이 사내가 너무 특출한 것이다.”

특출나다고?

이 자는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아무튼··· 진정했으면 슬슬 일어나보시게.”

노인이 구속을 풀어주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부축을 받아들여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마법처럼.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을 거다. 그래도 이제 걷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정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가 움직인다.

분명 나는 골절상에··· 속은 뒤집어 졌고 노인에게 패대기까지 쳐졌을 터인데···.

등뼈와 쇄골의 욱신거림이 더는 없다. 너덜거리던 갈비뼈의 이물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가루··· ‘이븐 가지의 분말’이 가진 힘 중 하나지. 뭐, 자네에겐 꽤나 약발이 잘 맞은 모양이지만 말일세.”

“···그러면 왜 진즉 이 방법을 쓰지 않았지?”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네. 이롭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엔 대가가 있기 마련이지.”

“댁들도 마술사인가? 아니면 그와 비슷한 요술을 부리는 건가?”

“어느 쪽도 아닐세, 젊은이.”

“빌어먹을!”

내 인내심은 이제 폭발했다.

“작작 좀 해라! 이 말할 영감··· 언제까지 뜬구름 없는 소리만 늘어놓을 거지?”

다짜고짜 나타나선 멋대로 떠들고, 억지로 괴물을 보여주고···.

나는 충분히 지쳤을 터였다.

저 이방인들이 아니어도 미칠 것만 같이 힘든 것은···.

그럼에도 무엇 하나 시원하게 풀린 것이 없다.

어떤 신묘한 짓으로 몸을 치료해준 것은 고맙지만···.

당장은 육체의 피로보다 정신이 따라주질 못한다.

“그럼 이게 마법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차라리 모두 포기하고 싶었다.

이 끝없는 의문과 혼란, 클라리스와 아버지가 새겨 넣은 섭리와 이치의 굴레에서···.

차라리 마법이라고 해주었으면.

인간은 결코 이해 못할 세계라고 단념시켜주길 바랐다.

하지만 노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잔혹하게도 나에게 설명을 해줄 셈이었다.

“단순한 현상이다.”

“···뭐?”

“혹시 자네는 무지개를 본 적 있나?”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째서 이 노인은 지금··· 클라리스가 예전에 했던 말을 입에 올리는 거지?

“보시게, 젊은이···. 고대에 그것은 불길한 징조라고 경외 받거나 숭배되어왔다. 당시엔 무슨 수를 써도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다르네. 일부 수도의 학자들을 통해서 원리가 밝혀졌다네. 사람의 손으로도 재현할 수 있게 되었지.”

“닥쳐. 나도 알고 있어, 그 정도는···.”

그야 클라리스에게 배운 가장 인상 깊은 지식 중 하나였으니까.

“호,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네. 이미 벌어진 일은 있음직하기에 일어나. 단지 그 원인을 우리가 모를 뿐일세.”

“···.”

그 절묘한 대사에, 나는 숨을 쉬는 것을 잠깐 잊었다.

“놈들의 속임수는 일견 신비롭고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네. 하지만 그 원리를 모를 뿐, 그마저도 사실은 세계의 이치에 속해있지.”

질려버리겠군.

이번에는 아버지의 말이냐?

‘내 머릿속을 열어보기라도 한 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이제야 겨우 알겠어.

그럴싸한 소릴 늘어놓지만 역시 요술이다.

사악한 주술임에 틀림없다.

그래, 클라리스처럼···.

이놈들도 악마의 졸개인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설명?

나는 지금 뭐라고?

‘의심하는 거야. 그리고 탐구하는 거지, 모든 걸 꿰뚫는 세상의 본질을···.’

순간 클라리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인 것 같았다.

이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이치와 섭리다, 빅터. 불안할 땐 언제나 이걸 명심하거라.’

나는 끝내 이성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 젊은이. 생각을 멈추지 말거라. 계속 파고드는 것이다. 상식은 뒤집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은 새로운 현상을 관측할 때마다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노인은 여자가 질질 끌어가며 옮긴 세 사람의 시신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저것 또한 그렇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뿐, 그 본질은 화려한 장난질에 불과하지. 그래서 인지를 초월한 마법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람이 알도록 허락되지 않은 지식은 마술과 다름없어, 납득하지 못하는 불행은 모두 저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걸 경계하라, 맞서는 걸 멈추지 말거라.”

“···세상 모든 일은 일어날 법해서 일어난다···.”

“그거다. 미지를 두려워하지 말 지어다. 가슴을 펴도 좋네. 자네는 틀리지 않았음이야.”

나는 그만··· 이 입만 살은 허풍쟁이 늙은이에게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빌어먹을, 안 돼.

감동은 위험한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 감정을··· 멋대로 뒤엎지 마라!’

나는 그렇게 노인에게 대들려고 했다.

그러나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게 아니었다.

혼자선 견딜 수 있었던 울분이··· 어째서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무엇이 말인가?”

“어째서 나만이 살아남았는지, 왜 아내나 딸이 아니라 내가 남겨진 것인지가···.”

“그건 자네에게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네.”

“···뭐?”

이때, 노인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우리가 마을에 당도했을 때 들은 이야기에서, 그 마녀는 자네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했었지? ‘제물마저도 못 된 찌꺼기’라고.”

“···그래.”

“틀렸네. 자네는 찌꺼기 따위가 아니야. 강한 인간이다.”

나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일까?

그 눈동자에는 어떤 형용 못할 감정이 담겨있었다.

슬픔인가?

아니면 더욱 깊은 무엇이···.

“마녀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데엔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그건 자아를 포기하거나 공포에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자네는 자아를 내다버릴 신앙이 없었지. 끝까지 섭리와 이치를 따랐다. 또한 두려움에 떨기보단 가족의 죽음에 분노했을 터다. 그렇지 않나?”

그랬던가?

···분명 나는 마을이 거대한 힘에 문드러지는 그 순간까지도 필사적이었다.

그레이스와 아델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공포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으니.

“자네는 그 미칠 것만 같은 마경에서 가족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자네는 결코 어리석지 않아. 오히려 용감하다. 미지의 공포에 지지 않는 강함을 지니고 있지.”

그는 진심으로 날 격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지켜내지 못했다.’

아직도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싸늘하게 식은 아델의 감촉이 손끝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울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오열했다.

클라리스가 만든 지옥에서 빠져나온 직후까지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뺨 아래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내를 잃은 게 분한가? 아니면 다신 만날 수 없는 혈육이 그리운가? 어느 쪽이든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나보고··· 뭘 어쩌란 거냐?”

“젊은이, 나는 아직 자네의 결정을 듣지 못했다네.”

노인은 나를 재촉했다.

겨우 떠올린 슬픔으로 통곡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서.

너무하는군.

생각해주는 척을 하더니, 결국은 나를 수상한 자신의 패거리에 끌어들이려 한다.

‘아니, 사실은···.’

어째서인지 알 수 있다.

이 자가 나를 바라보며 자신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 자도 나와 같은 경험을··· 아니, 그보다 더 가혹한 일을 겪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그들의 강함···.

불가사의한 무술들은 놀랍다.

어떤 단련을 해야 그런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만일, 내게도 저런 힘이 있다면···.

“···내게 달리 선택할 길은 없다.”

“큭큭, 그런가? 아무래도 결심을 굳힌 모양이군.”

모든 것이 끝난 그날 이후, 해가 뜰 때마다 그레이스의 포옹이 그립다.

그녀는 등 뒤에서 나를 안아주는 것을 좋아했지.

정오의 빛나는 아델라이드의 미소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그리고 마을의 친구들···.

날이 지고서야 겨우 마을로 돌아온 나를 모두가 반겨주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

나를 의지해주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떠들썩하게 어울리며, 가끔은 고난을 함께 이겨내던 변방의 작은 촌락···.

···허나, 나는 안다.

이제 그것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아련한 과거를 떠올린 다음엔 언제나 애절한 슬픔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언제나 예외 없이 뭔가가 끓어오른다.

그것은 그들이 ‘가루’라는 것을 내게 흘려보냈을 때 느꼈던 충동과 정확히 일치하는 감정이었다.

‘클라리스···.’

어느새 바닥에 떨어지고 있던 물방울의 빛깔이 변해있었다.

검붉은 색으로.

나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노친네··· 아니, 앞으론 대스승이라 불러야 하나?”

“큭큭, 좋을 대로 하게.”

“안됩니다, 대스승! 저 애송이를 대체 어디까지 특별대우를···.”

“아서라, 레이 엔쯔이. 저 건방진 태도를 교정해주는 것도 하나의 여흥이 아니겠느냐?”

“···말을 함부로 했던 건 사과하겠다. 어떤 지시든, 무슨 말이든 듣겠어. 그 대신···.”

나는 무릎을 꿇었다.

이마까지 바닥에 끌어가며 거의 빌 듯이 말했다.

“부탁한다. 나를···.”

나는 맹세했다.

내일을 버리고.

오직 과거만을 그리며.

남은 일생의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목적만을 달성하는 데 걸기로.

또한 결의했다.

빅터란 이름의 남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었음을···.

그리고 그날, 나는 마녀 사냥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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