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12화 (12/186)

결의의 장(2)

2.

모두 좋은 녀석들이었다.

딘은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많았다.

목수의 아들답게 여러 도구를 만들거나 마을 보수 공사에도 큰 도움이 되었었다.

내가 애용하던 쇠뇌가 망가졌을 때 수리해준 것도 그 동생이었다.

데니스는 다소 불량한 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열다섯도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건들거리며 돌아다녔지.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린 놈이었다.

늙은 노모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녀석은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루헤인은 올해 초 아내가 임신했다.

평소 어벙하고 둔해빠진 놈이었지만, 가족이 생겼을 때 녀석의 눈에서 나는 사내다운 맹세를 엿볼 수 있었다.

틀림없이 행복했겠지.

나도 그 기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녀석들이 돌아왔다.

며칠이나 산 속을 헤맨 끝에 비로소···.

목숨을 잃었음에도, 사람조차 아닌 몸이 이끌고서 말이다.

‘유령은 실존했던 건가? 어쩌면 영혼이란··· 정말 있었던 것이냐?’

그렇다면 나는 기쁠 것이다.

신앙이 없기에 장황한 복음은 모르지만, 최소한 망자들을 위한 기도라도 기꺼이 바치리라.

인지를 초월한 괴이한 현상이 다시 벌어진다면, 적어도 마지막은 기적이 일어나주길 염원했다.

‘녀석들은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어서까지··· 가족의 품에 돌아오길 말이다. 최후의 최후는 고향으로 돌아와 묻히고 싶었던 거다. 그럴 거야. 그래야한다. 그렇게라도 인간은 구원을 맞이해야 해.’

···과연 그럴까?

하지만 가슴 한편에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깊이 새겨온 아버지의 가르침과, 클라리스의··· 그 녀석이 알려준 세상의 지식들이 나의 마음을 옥죄고 있었다.

믿고 싶다.

인정하기 싫었다.

사실은 그 전부가 나란 인간의 하찮은 고집이 아니었길.

‘아아, 그레이스··· 아델··· 나는 어째서 아직도!’

이것이 마녀의 저주인가?

클라리스, 나를 지옥에 빠뜨리는 게 목적이었다면 너는 성공했구나.

실로 완벽하게 나의 육체와 정신··· 모든 걸 산산조각으로 망가뜨려주었다.

가족을 잃고서도, 마을이 초월적인 뭔가에게 집어삼켜지는 것을 전부 목격했으면서 아직 나는 이성理性에 얽매여있다.

오직 그것만이 남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세 놈들은 모두 처참한 몰골이었기 때문이다.

‘뒤통수가 비어있다. 남은 건 얼굴 가죽 뿐···.’

그랬다.

모두가 머리 뒤를 뭔가에 파 먹히기라도 한 것 같다.

본래 뇌와 두개골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 것도 없었다.

당연히 그들의 눈구멍에도 허망한 광장의 풍경만이 비춰질 뿐이었다.

‘어째서냐, 클라리스··· 머릿속의 기관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는 게 아니었단 말이냐!’

그럼에도 움직인다.

놈들은 걸어오고 있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팔과 부자연스럽게 다리를 질질 끌면서.

희망은 없는가?

내 악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는가, 젊은이?”

그때, 노인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몇 번이고 겪었을 터이다. 허나, 그럼에도 의심하고 있군. 그렇지?”

어느새 나는 설명을 바라며, 상대를 매달리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노인은 어째서인지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훌륭해. 아주 마음에 드는군. 그거면 된다.”

“뭐가 좋다는 거지?”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일은 없다는 말일세, 젊은이. 마법은 속임수야. 당연히 저주도 존재하지 않아. 명심하게. 모든 마술과 미신을 원천 부정하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거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신념이지.”

하지만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노인을 닦달했다.

“저것들이 보이지 않나? 지금 시체가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어! 마을에 벌어진 일들 도 그렇다! 그런데도 노친네, 댁은 나한테··· 여태껏 겪은 모든 경험을 부정하라는 건가?”

“아니, 그건 다르지.”

“뭐가 말이냐!”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현실이다. 그건 자네는 물론 나와 레이 엔쯔이의 눈에도 보이고 있다. 수도의 학자들은 이것을 세계관의 공유, 그리고 검증의 교차라고 부르지.”

···라고 또 모를 소리를 지껄여댄다.

이젠 조바심이 나는 것을 넘어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나 노인은 나를 외면했다.

“나도 철학적인 담론을 썩 좋아하는 편이네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날 약 올리는 건가? 대화 도중에 무슨···.”

“일단은 저 예의 없는 놈들을 처리하고 나서 말이야.”

그의 말처럼, 어느새 세 명의 망자는 불과 스무 걸음 앞까지 걸어와 있었다.

철컥!

노인의 메마른 오른손이 자신의 코트 자락으로 들어간다.

그가 품속에서 꺼내든 것은 붉은 재질의 막대에다 녹이 쓴 금속을 조잡하게 이어붙인 뭔가였다.

손잡이가 있다.

걸쇠가 보인다.

방아쇠가 있었다.

이것은··· 언젠가 본적이 있다.

부유한 상인들이 몇 번인가 아버지에게 구입을 권유했었던 도구···.

그것은 바로 화승총Musket이었다.

“귀를 막게나.”

“뭐?”

타아아앙!

불꽃이 어둠을 밝히며 천둥을 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선두에 있던 데니스의 몸이 튕겨나갔다.

앙상하게 달려있던 얼굴 가죽이 통째로 날아가고,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굉장한 위력이야, 쇠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게 말했잖나? 반응이 둔한 친구로군.”

노인은 발사 직후, 왼손으로 머스캣 총을 잡았다.

그리곤 곧장 주머니에서 천 뭉치에 포장된 작고 둥근 공 같은 물건을 집어 들었다.

“큭큭, 이 맛이 끝내준단 말이지.”

입으로 그것을 뜯어내자, 까만 쇠구슬이 하나 드러났다.

그렇군.

저런 식으로 장전을 하는 건가?

“레이 엔쯔이, 한 놈은 네 것이다.”

“예, 대스승.”

노인이 탄환을 총 안에 밀어 넣는 사이, 여자가 튀어나갔다.

그녀는 어느새 양손에 내 팔뚝 길이만한 검 두 자루를 쥐고 있었다.

“핫!”

짧은 기합 소리, 여자는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이어서 대각선으로 내려치는 참격이 딘의 목덜미에 닿았다.

여자가 든 칼날은 순식간에 어깨 죽지부터 가슴팍을 양단했다.

이건 또 무슨 무술이지?

저 작은 몸집으로 단번에 우락부락한 장정의 몸을 가르다니···.

타앙!

그리고 또 한 발의 총성.

뒤이어 접근하던 루헤인의 상반신이 폭발했다.

역시 죽은 자였단 말인가, 아무래도 뱃속이 썩어있었던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노인은 사방에 튄 루헤인의 내장을 보더니 혀를 찼다.

“쯧.”

하지만 그는 총을 내려놓지 않고 다음 총알을 끄집어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놈만 남았군.”

“뭐라고?”

“놓치지 마라.”

한 놈이 더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이 주변에 걸어 다니는 망자 따위 더는···.

“읏!”

···아니, 있었다.

단지 내 눈에 비춰지지 않을 뿐.

노인에게 레이라 불린 여자가 지금 허공에 칼부림을 하고 있었다.

“부웅!”

“콰직!”

땅이 움푹 파인다.

여자는 뭔가를 베고 어떤 압력에 의해 튕겨 나가졌다.

그러면서도 살기를 띤 어떤 것을 피해가며 검무를 추는 중이었다.

그녀는 분명 보이지 않는 뭔가와 맞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그만하면 됐다.”

그렇게 말하며 장전을 끝낸 머스캣을 들어올린다.

따로 신호를 보낸 것도 아닌데, 동양인 여자는 곧장 몸을 뒤로 뺐다.

“타아아앙!”

불꽃이 일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것은 눈앞의 투명한 적에게 정확히 명중한 듯 보였다.

처음 들어보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키야아아아아아악!”

일순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머스캣이 발사 직후 피어오른 매캐한 화약 연기 너머로, 기이한 형상이 드러난 것을.

‘이 자들은 지금 대체 무엇이랑 싸우고 있는 거지?’

노인은 총을 거둬들였다.

나의 혼란을 간파한 듯, 그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놀라지 말게나. 자네에겐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놈들은 인간의 육안에는 비치지 않으니까.”

“놈들···?”

“저편에서 넘어온 마의 존재, 어둠 속에 암약해 살아가는 추잡한 것들이지. 음, 그래··· 마침 좋은 기회로군.”

그러면서 노인은 여자에게 손짓했다.

“그에게 보여주도록 해라.”

“예? 하지만···.”

“괜찮다. 이 사내는 변방에서 보기 드문 정신력의 소유자야. 가루의 양을 잘 조절하면 문제없을 게다.”

“알겠···습니다.”

여자는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노인의 지시를 마지못해 따르려는 듯 내 앞으로 다가온다.

“너, 지금 나한테 뭘···.”

“입 닫아. 가만히 있어라.”

섬세하고 가녀린 손가락이 내 뺨을 스친다.

여자는 내 눈앞에서 뭔가를 흩뿌렸다.

그 순간···.

“···큭?!”

눈알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들이마셔서는 안 되는 것을 목구멍 속에 흘려 넘긴 기분이었다.

“크아아악!”

이어서 격렬한 두통이,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가공할 아픔이 엄습해왔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웅크린 자세가 되었다.

그리곤 아픔을 견디기 위해 얼굴을 쥐어뜯어야만 했다.

잠시 후, 노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이제 눈을 뜨시게. 그리고 보도록 하라. 이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크, 으···.”

눈꺼풀 너머에서 빛이 일렁인다.

시야가 흔들리고 하늘과 땅이 요동친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노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건?”

“송장을 가지고 노는 요물이지. 죽은 자를 움직여 미끼로 삼은 다음, 산 자의 골수를 빨아먹는 사악한 것이다.”

그 곳에는 뭔가가 있었다.

새파랗게 창백한 짐승이···.

조금 전까진 아무 것도 없던 장소에 흉측하고 뒤틀린 시신이 나타났다.

몸집은 나보다 거대하다.

사지가 달렸지만, 그것 말고는 사람과의 공통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마물이었다.

그야말로 지옥의 생명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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