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의 장(6)
8.
그러나 내가 구금에서 풀려는 데에는 일주일은커녕, 단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해가 자취를 감추자 마을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아델은 갑자기 창밖이 번쩍이더니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고 연신 비명을 질렀다.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바깥을 내다보자, 거리에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왜 모두가 하나같이 손아귀에 횃불 따윌 들고서···.
“당장 매달아!”
“짚, 짚을 더 가져와!”
여기저기서 다급하면서도 두려움이 스며든 고함 소리가 울린다.
나는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지나가는 행인 하나를 불러 세웠다.
“이봐! 대체 왜들 그러지?”
“아, 빅터. 마침 잘 됐군.”
“뭐?”
어쩐지 반응이 이상하다.
녀석은 나와 같은 동년배의 곱슬머리 에드거란 사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잘 아는 얼굴이다.
심약하고 겁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로, 언제나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만사를 해결하는 놈이지.
때론 그게 지나쳐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좋은 자식이다.
그런데 지금 에드거의 눈빛은 사뭇 이상한 빛깔을 발하고 있었다.
“에드거, 너 술이라도 마신 거냐?”
“술이라고? 아, 그럴 리 없지. 내가 포도주도 못 마시는 걸 뻔히 알면서 그러긴가?”
아니, 자세히 보니 그건 일종의 흥분 같았다.
뭔가가··· 본능적인 어떤 것이 잔뜩 고양되어 튀어나오기 일보직전의 얼굴이었다.
“그보다 자네도 함께하자고.”
녀석은 내게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횃불을 건네려했다.
나는 그 손을 밀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헛소리 마라. 촌장에게 못 들었나? 난 낮에 소동을 일으켜서 출입금지를 명령 받은 상태다.”
“자네답지 않게 왜 그래? 거기다 이 판국에 그딴 걸 누가 신경 쓰겠어?”
이 판국?
내가 되묻자, 에드거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목청을 높였다.
“지금 요괴를 처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냐고!”
“잠깐, 요괴? 그 아이를 처리해?”
“그야 당연하지! 요즘 마을이 뒤숭숭했던 것도, 요사스런 일들이 벌어진 것도 전부 그것 때문이라는 게 밝혀졌으니까 말이야.”
“에드거,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자빠진 거냐? 밝혀지긴 뭐가 밝혀져? 광증의 원인은 물 때문이라고. 너도 봤잖아? 광장에서 클라리스가 직접 증명했던 걸.”
“너야말로 뭔 말이야? 낮에 괴물 꼬맹이를 잡은 건 다름 아닌 자네면서?”
묘하게 대화가 어긋난다.
내가 물은 것은 그 요괴··· 아니, 이빨이 모두 송곳니인 이방인 소녀의 처우에 대한 것이었다.
분명 낮까지만 해도, 나는 촌장과 의논했다.
‘분명히 그 여자애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걸로 결판을 지었었는데···.’
요괴라 불릴 만은 하다.
그 포악함··· 더욱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얼굴은 내가 보아도 충분히 흉물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요괴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죽일 순 없다.
만일 내 딸인 아델라이드가 약간 기형적인 외모를 타고났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
부모라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건 요괴를 닮은 저 여자애도 마찬가지겠지.
‘어느 누구도 부모가 없이 태어날 순 없으니까.’
가족이 어디선가 이 소녀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와 흉포한 짐승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죽음의 이유는 될 수 없다.
아델라이드를 생각해서라도, 그런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만에 하나 강물에 스며든 독을 마시고 광증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을의 사정에 휘말린 불운한 희생자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던 것인데···.
“왜 그러나? 얼른 자네도 합류하지 않고?”
“아니, 나는···.”
“저길 봐. 마을 사람들이 전부 나왔잖아?”
불꽃에 뒤틀린 그림자가 놈의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에드거, 이 자식은 뭐가 좋아서 히죽거리는 거지?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이 꺼림칙한 감각은··· 흡사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능청을 부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와 흡사하다.
인간의 어두운 흠과 마주했을 때, 나는 이따금씩 이런 느낌이 들곤 했다.
“하하, 이거 무슨 축제 같구만. 기억나나, 빅터? 우리가 꼬마였을 때 말이야. 수도에서 유랑 곡예사가 왔었지?”
“···그래.”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이 모인 거 같지 않나?”
에드거의 말 그대로였다.
공포에는 전염성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태양이 사라지면서 모두가 어둠에 홀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흉흉한 감정이 점점 더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것이 뻔히 보였다.
불꽃을 든 무리가 점점 수를 불려가고 있었다.
어째서냐?
왜 이런 어려운 시기에···.
‘다들 눈에 핏줄까지 새웠어. 대체 누가 이 행진을 먼저 시작한 거지?’
풍랑 때문에 농작물이 날아갔을 때도.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수명이 다 해 돌아가셨을 때조차···.
불과 백 명도 안 되는 주민들은 전부 모인 적이 없었다.
허나 지금은 마을 전체가 떨릴 정도로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부디 내 착각이길 바란다.
이 무리가, 고작 여자애 하나를 죽이기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니기를···.
“여보···.”
제길, 결국 소란이 그레이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말았다.
“여보···.”
“괜찮아. 당신은 들어가 있어.”
“아이고, 그레이스 형수님. 이거 오랜만이군요.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 였더라···.”
“에드거 씨? 이게 왠 난리래요?”
“하하, 난리긴 하지요? 하지만 기뻐하시죠. 이제 마을의 재앙은 끝날 겁니다.”
“네?”
“에드거, 그 이상 말하지 마라.”
“음? 빅터, 자네 아까부터 이상하군. 뭐가 문제인가? 원흉을 불태워서 정화하겠다니까? 원로들 결정에 뭔가 불만이라도 있나?”
“설마, 그 어린 아이를 말인가요?”
“그럼요. 마녀의 새끼를 태워죽일 겁니다. 그걸로 만사 해결이죠.”
에드거는 내가 전혀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실실 웃고 있었다.
술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에 취한 건지, 이건 흡사 광인의 얼굴이 아닌가?
나는 곧 후회했다.
놈이 입을 더 이상 놀리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다.
“원흉? 불태워? 아빠, 엄마··· 그게 뭐에요?”
그만 아델이 이 더러운 대화를 듣고 말았으니까.
“에드거, 너 이 새끼···.”
“워워, 진정해. 아무래도 내가 하필 나쁜 시기에 찾아온 것 같군. 그렇지?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방해했으니 화가 날 만도 해.”
“당장 꺼져. 네 아가리가 평생 귀리죽 밖에 못 먹게 만들어주기 전에!”
“아, 알겠어! 내가 잘못했으니 화 풀게나, 빅터. 나중에 내가 한 잔 쏘지.”
그렇게 엄포를 놓고서야 녀석은 서둘러 뒷걸음질을 했다.
제기랄, 이놈이고 저놈이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유독 에드거만이 이상한 게 아니다.
내 집 앞을 스쳐지나가는 자들도···.
어깨 위로 횃불을 든 행인들 전부가 어딘지 모르게 묘한 광기를 내뿜고 있었다.
“칫···.”
나는 침실로 뛰쳐 들어가, 당장 옷걸이에서 사냥용 코트를 집어 들었다.
“여보!”
“미안해, 그레이스. 당신도 보다시피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 벌충은 나중에 확실히 할 테니, 지금은 일단···.”
하지만 아내가 나를 부른 것은 만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돌아보는 나를 향해 뭔가를 건네려 했던 것뿐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걸 잊으면 안 되잖아요?”
그것은 내가 자주 애용하는 쇠뇌, 그리고 짐승을 해체할 때 쓰는 단검이 꽂힌 벨트였다.
“그레이스···.”
“조심하세요.”
“음.”
허나 상처 없이 돌아오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것은 변방의 미신 탓이다.
집 밖을 나서는 사냥꾼에게 필요 이상의 염려를 하면 실제로 사고가 생긴다는 둥의 우스운 헛소리···.
동시에 내가 그걸 약속할 수 없다는 걸 그녀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
‘마을 녀석들이 하려는 건 미친 짓이다. 원로 늙은이들··· 이건 보나마나 주술 타령 하는 그 노친네들 선동에 넘어간 게 틀림없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 마을에서 원로들은 촌장보다 더 큰 영향력이 가지고 있다.
척박한 산기슭 아래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마을을 세운 것은··· 분명 그들 덕분이다.
지금처럼 내가 가족들과 마음 편히 사는 것도, 전부 늙은이들이 젊음을 희생하고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거친 결과물이지.
그 점을 생각하면 결코 나이 많은 자들을 경시할 순 없다.
그 자들도 나름대로는 마을의 미래를 걱정해서 행동하는 것일테니까.
‘하지만 이건 잘못됐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반대편에 선다는 것이 내 신상에 좋을 리 없다.
나는 각오를 굳혀야만 했다.
자칫하면 이웃들과 주먹다짐을··· 아니, 심하면 화살을 겨눠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허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럴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젠장···.”
광장을 둘러싸듯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뭔가를 외치는 중이었다.
“아아, 주신이시여. 이 마을을 구원해주시옵소서.”
“
수많은 감정이 얽히고 뒤섞이는 광경···.
그 혼란의 지점에서 누군가는 노래를, 또 누군가는 기도를 읊었다.
그것은 매우 불경하면서도, 동시에 성스러운 의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처참하고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달이 없는 밤 하늘 보다도 짙고 어두운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것은 기둥에 매달린 채, 흡족한 미소를 짓고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키, 키득! 키득키득! 키케케케케!”
이어서 낮에 마구간에서 들었던 끔찍한 웃음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과연, 요괴인가?
문득 어쩌면 그게 정말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열하는 불길 속에서 미친 듯이 웃음보를 터트릴 수 있는 사람이란 이 세상에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소녀는 웃고 있었다.
좋아서 죽을 것 같다는 듯, 만인을 비웃는 폭소를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곤 소녀의 몸이 화염에 전부 타들어가는 순간까지 그 모습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9.
수 시간 뒤, 날이 밝고 나서 남은 흔적은 재뿐이었다.
나는 무력감에 빠졌다.
결국 막을 수가 없었어···.
무고한 소녀는 요괴로 몰려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렸다.
모두가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안심했다.
누구도 죽지 않고, 내년의 농사도 풍작일 것이며, 건강한 아이들이 새로 태어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나는 여기서 어느 정도 달관했는지 모른다.
나는 비록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바닥을 목격하고 말았지만, 이것으로 평화가 찾아온 다면 모든 걸 그냥 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당연히도 그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어리석었다.
나 또한 잘못 생각했다.
심지어 클라리스조차 틀렸지.
원로들이 했던 수많은 헛소리 중에서 딱 하나만 옳았다.
저주.
그 날을 기점으로, 지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