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5화 (5/186)

제물의 장(5)

7.

촌장은 나에게 일주일간 구금을 지시했다.

“당분간 머리를 좀 식히도록 하게.”

이유는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철없는 소릴 지껄인 정도에, 고작 그 하찮은 일에 뿔이 나서 달려들었다.

‘촌장이 보기에 그 만큼 내가 냉정을 잃은 것처럼 보였겠지.’

어떤 이유에서건 자경단에게 폭력을 휘두른 주민은 최대 보름간 집에서 자숙기간을 가져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촌장의 처우는 공정했다.

내 대응이 과격했다곤 하나, 그 꼬맹이가 경솔한 소릴 지껄인 것도 충분히 고려한 결과겠지.

그에 대해 나는 큰 불만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 후회는 없다.

아직도 이게 그나마 신사적인 대응이라 생각한다.

‘흥, 고작 앞니 두 개로 끝났으면 다행이지.’

은인이자 친구의 모욕을 면전에서 들은 것치곤, 벨트레란 애송이 녀석이 받은 대가는 아주 귀여운 수준이었다.

자칫 덩치 큰 놈들의 시비에 휘말리기라도 한다면 결투를 빙자해서 일방적으로 난도질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걸로 그 꼬맹이도 조금이나마 입조심이란 걸 배웠겠지.

그래, 예의란··· 존중이란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래야 사람은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규칙이나 처벌이 존재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다.

‘그렇기에 룰은 중요하다.’

내가 별 말 없이 촌장의 명령에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을이 개판이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

나는 이렇게 보여도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입장이다.

마을을 대표하는 사냥꾼이자 무기고의 관리자이다.

여차하면 마을 사람들을 무장시키도록 판단해야하지.

즉, 내 잣대만으로 싸움을 멈추거나 진행시킬 수 있지.

당연히 만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인원인 자의 책임감이라는 것이다.

그런 내가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나를 믿겠는가?

그러니 잠자코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곤 하지만, 내가 클라리스를 만나러 간 것 때문에 마누라도 그간 울분이 쌓인 것 같고···.

며칠간은 가족을 달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여보, 혹시 딴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몰래 빠져나간다던가?”

뒤통수가 따갑다.

잠깐 생각했다고 어느새 본인이 나타났다.

“내가 그럴 리 없잖아, 그레이스···.”

“당신 때문에 못 살아요. 내일부터 이웃들 얼굴을 어떻게 볼지··· 이게 다 대견한 다혈질 남편을 둔 덕분이죠.”

사냥 도구를 정돈하는 나에게, 마누라는 잔뜩 날이 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바깥에선 얌전하고 다정한 아내로 통하지만, 단 둘이 남으면 이처럼 무섭게 돌변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레이스가 옳기 때문에 나는 일방적으로 혼나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번 사건도 그렇고 말이다.

거기다 최근 마을에서 일어난 흉흉한 소동들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히스테리가 잦다.

이럴 땐 달리 방법이 없다.

“미안하게 됐군.”

“그게 사과하는 태도인가요?”

“···미안하다.”

“됐어요. 당신이 무뚝뚝한 게 하루 이틀 일인가요?”

그러면서 아내는 획 고개를 돌려버린다.

알기 쉽게 화가 나있군.

어느 쪽이지?

설마하니 일전에 클라리스를 만나러 갔던 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건 이미 며칠이나 지난 일이니까.

그러면 촌장에게 징계를 받은 탓인가?

아니면 아직 내가 눈치 채지 못한 무언가 때문에?

내 딴에는 사정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성의가 모자랐던 모양이다.

“화 풀어, 그레이스. 다신 이런 일 없을 테니.”

“정말인가요?”

그러자 아내는 눈을 흘기며 물어온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자경단 애송이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나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

“···역시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군요.”

나는 여기서 살짝 불길함을 느꼈다.

눈치를 살피기도 전에, 그레이스는 이미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게 제가 몇 번을 말했어요? 그 여자랑 더 이상 얽히지 말라고요.”

“난 지난 나흘간 클라리스를 만나지 않았···.”

“지금 나랑 장난쳐요? 벨트레의 실언에 격분했다면서요? 그 여자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고!”

“그 녀석이랑 관계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실책이지, 그리고 동시에 애송이 꼬마가 입을 놀린 대가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레이스는 그 조차도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웃기지 말아요! 당신, 이번에도 괜히 그 망할 창녀 편 들어주다가 일 낸 거잖아요?”

“그레이스···.”

“왜요? 분한가요? 첩이 욕먹으니 또 화가 나나요? 나까지 때리기라도 할 건가요?”

“···.”

아니, 이 경우엔 단지 슬프기만 할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내는 클라리스를 싫어한다.

우연찮게 얼굴을 보거나, 대화중에 잠깐 언급되기만 해도 아주 질겁할 정도로 몸서리를 친다.

자연스럽게 그레이스와 클라리스의 관계는 최악이다.

어쩌다 마을에 내려와도 클라리스는 애써 그녀를 피하려한다.

모든 원인은 굳이 말 할 필요도 없다.

‘···전부 나 때문이다.’

분명, 나는 클라리스와 그 어떤 불순한 관계도 아니다.

녀석과 나 사이에 있는 감정은 성별을 초월한 우정과 존경심뿐이다.

그것만은 어디에 가서든, 심지어 이단 심문관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당당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견고한 의지와는 별개로··· 소문만은 어쩌지 못한다.

“옆집 아주머니가 자꾸 비웃는다고요··· 젊은 애들도 절 보면 수근 거려요. 남편의 계집질을 보고서도 내버려두는 푼수라고···.”

“당신도 전부 헛소문이라는 거 알잖아.”

“알아요! 알지만··· 그치만 당장 어제도 참을 수 없는 모함을 받았단 말이에요!”

“그만해. 전부 내가 잘못했어. 내 처세 문제일 뿐이다. 당신은 아무 잘못 없어. 그러니 당당하게···.”

“짜증나! 왜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해요? 감히··· 마녀한테 남편을 빼앗긴 멍청한 년이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의 양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누가 그딴 소릴 해!”

“아, 아파요!”

“감히, 어디서! 어떤 빌어먹을 놈이!”

“이것부터 놓고 말해요!”

“아···.”

아내는 팔을 뿌리치며 내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당장 내 불한당 같은 행동에 대해 사과하려 했지만, 아내의 어쩐지 기뻐 보이는 미소에 말문을 잃었다.

“조금이지만 안심했어요. 그래요··· 당신은 아직 나 때문에 화를 내 주는 거네요.”

“···.”

“그죠? 나는 절대 마녀 따위한테 남편을 도둑질 당한 게 아니에요.”

“당연한 소릴···.”

“나한테 필요한 건 그 당연한 확인이라고요!”

그때였다.

“엄마아, 아빠랑 또 싸우는 거야?”

언성을 높이는 그레이스의 목소리에 이끌리듯, 또 한 명의 가족이 침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앙증맞은 얼굴, 나의 검은 머리카락과 그레이스의 유순한 생김새를 닮은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여자아이···.

우리의 보물이자 나의 모든 것, 바로 딸 아이인 아델라이드였다.

아델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우리를 관찰하자, 그레이스는 나에게 눈치를 준다.

표정을 관리하라고.

얼른 다정하게 아이에게 말을 걸라며 무언으로 재촉했다.

하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대해주는 것뿐이었다.

결국 항상 그렇듯, 그레이스가 먼저 운을 띄웠다.

“아니야, 아델. 나랑 아빠는 언제나 사이가 좋아. 그쵸, 여보?”

“그래. 나는 단지 네 엄마에게 혼나고 있을 뿐이···.”

“당신!”

“아델, 너도 조심하렴. 이 여자는 화가 나면 정말 무서우니까.”

“아이참! 이게 대체 누구 때문인데요?!”

나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 다행이었다.

내 무뚝뚝한 태도가 오히려 꽁트가 되어 딸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뭐야아! 엄마도 아빠도 둘 다 엉터리에요.”

이것이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다.

나의 잘못을 망설임 없이 질책해주는 그레이스.

분위기가 심상찮을 때마다 나서서 다시금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아델라이드.

그리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발 벗고 나서는 나까지···.

내가 열일곱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두 살 위였던 그레이스와 결혼을 한 이후로 십 년이 지났다.

지금 아델라이드는 아홉 살이다.

변방의 여자답게 슬슬 집안일과 바느질을 도울 나이야, 솜씨 좋은 자신의 어머니를 닮아서 배우는 것도 빠르다.

단, 호기심이 많은 면은 내 어린 시절을 빼다 박았지.

“그런데 아빠, 다음에 숲은 언제 데려가 주실 거예요?”

“음, 그건···.”

“또 토끼 덫 만드는 방법 가르쳐줘요!”

“아델, 그건 우리끼리 비밀이라고 했었지?”

“아! 맞다···.”

“두 사람, 또 나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산에 올라갔었나요?”

“이크···.”

숲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레이스가 나를 쏘아봤다.

아내는 딸아이가 사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불만이다.

일전에 아델라이드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다리에 생체기가 난 이후로, 더욱 극성이 되었다.

반면, 딸은 숲속에서 모험을 하며 나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하지.

아델의 어리광을 들어주면, 우리 부녀는 여지없이 사모님의 꾸중을 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한참을 철 들으라고 혼난 뒤에서야, 그레이스는 겨우 마음을 풀어주었다.

내가 구금당한 일주일 내내 집안에서 수발을 들겠다고 약속한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낡은 선반을 고치고, 뒤뜰을 정리하고···.

모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쉬기는커녕 더 바빠지겠군.

거기다 나에게 무모하게 매달리는 딸까지 포함하면··· 새삼 내 어깨가 무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싫지 않다.

술친구들에겐 딸 바보나, 마누라에게 휘둘려서 사는 공처가라며 놀림 받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여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요···.”

“음.”

“항상 명심해주세요. 당신은 내 남편이고, 아델라이드의 아버지라는 걸요.”

사소한 몇 마디였지만, 거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듯 보였다.

본래 순진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어쩐지 근래 들어서 음험한 부분이 생겼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기가 무섭군.’

나는 단지 그녀가 내 마음 속을 간파하지 못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내의 어께를 움켜잡으면서까지 화를 낸 이유가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기에···.

어째서일까?

나는 그녀가 들은 험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분노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건 바로···.

‘···누군가가 클라리스를 ‘마녀’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마 그 이야기까지 그레이스에게 털어놓을 순 없었다.

그 대신, 하루 종일을 정체모를 죄책감에 시달리며 어울리지 않게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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