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4화 (4/186)

제물의 장(4)

4화

5.

클라리스의 해독차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한동안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지.

그간의 소동이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 마냥 마을이 조용해졌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 시점에 아내와 딸아이를 안심시켰다.

더 이상 불온한 사건이 없을 거라 두 사람을 다독였지.

하지만 클라리스가 염려한 대로, 세계의 악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틀린 것은 나였다.

그녀의 걱정을 단순한 기우라 여긴 내가 멍청했다.

“빅터! 어서 와주게!”

해가 중천에 뜬 시간, 덫을 확인하고 돌아온 나를 반긴 것은 촌장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기··· 날붙이가 필요하네. 빅터, 지금 가지고 있는 사냥 도구 중에 쓸 만한 게 있나?”

“쓸 만한 거라, 당장은 쇠뇌랑 무두질용 칼이 전부입니다.”

“젠장! 그거론 부족해!”

“뭐가 문제입니까? 또 마을에 멧돼지라도 내려왔나요?”

“멧돼지면 차라리 다행이지.”

“예?”

“마틸의 마구간에··· 요괴가 있어!”

요괴?

순간 이 양반이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제아무리 미신을 맹신하는 변방 출신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얼토당토 않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촌장은 그렇게까지 우둔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그의 주관은 뚜렷해, 적어도 마을의 대표가 될 정도의 통찰력은 가지고 있는 자였다.

아직 서른 살도 되지 못한 나보다는 인생경험도 풍부한 만큼 아는 것도 많은 어른이지.

지금은 비록 노쇠했다곤 하나, 그도 사냥꾼 출신이다.

내 아버지가 살아있을 시절엔 곰 사냥에 동행할 정도의 담력도 있었다.

헌데, 그런 촌장이 동요하고 있다.

분명 범상치 않은 뭔가를 본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마틸네에서 도끼라도 빌려보면 어떻겠습니까?”

마구간지기 마틸은 부업으로 나무꾼을 겸하고 있다.

벌목용 도끼 정도라면 있을 것이다.

“···그래, 그거라면 괜찮겠군.”

말과는 다르게 촌장은 나를 흘깃 보면서 혀를 찼다.

퍽이나 다행이다, 라는 뉘앙스였다.

대체 어떤 짐승이길래 이렇게까지 염려를 하는 거지?

곧 그 수수께끼는 밝혀졌다.

촌장이 겁에 질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6.

마틸의 마구간에 도착해보니, 입구부터 피가 흥건했다.

“조심하게, 빅터. 그건 매번 우리가 처리했던 살쾡이나 들개 같은 게 아니야.”

촌장의 말처럼, 죽은 닭들이 이 사방에 널브러진 꼴이 심상치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닭의 목이나 가슴팍에 아주 날카롭게 이빨로 배어 문 흔적이 엿보인다.

그런데 이건 주둥이가 큰 동물의 것이 아니다.

내 착각인가?

이 잇자국은 오히려 사람의 모양을 닮아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아주 흉포한 놈이 숨어든 모양이군.

“마틸, 혹시나 해서 묻는데 쥐구멍 같은 건 없겠지?”

“얼마 전에 보수공사를 했어. 그런 건 없네. 만에 하나라도 저게 달아날 틈은···.”

“알겠다. 그럼 자넨 촌장님과 함께 물러나 있어.”

나는 도끼날을 새워서 언제든 내려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등 뒤에서는 자경단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인 닉슨이 대기 중이다.

그는 내가 건넨 쇠뇌를 든 상태였다.

“헤헤, 어디 요괴 놈의 낯짝이나 한 번 볼까요?”

“쉿, 조용히.”

“에이, 촌장님은 그렇다쳐도 빅터 씨까지 왜 그러심까?”

“그 입 좀 닥쳐라.”

“아, 옙.”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하여간, 요즘 어린놈들은 덩치만 컸군.

닉슨은 나보다 머리 하나 만큼 키가 크고 호기로운 성격이지만, 신중함이 다소 부족하다.

경솔한 면만 고치면 차기 자경단장도 노릴 수 있을 것을···.

언제나 섣부르게 나서서 일을 그르치곤 하지.

이번에는 좀 얌전히 일을 처리하길 바랄 뿐이다.

“···일단 내가 먼저 가지.”

“예.”

“내가 신호하기 전까진 들어오지 마라.”

나는 마틸이 폐쇄해둔 마구간의 문을 당겼다.

그러자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여물과 말의 배설물이 섞인 악취···.

이것은 변방 사람인 나에게도 익숙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혈향血香이었다.

도축한 가축의 뱃속을 들어낼 때나 나는 비린 냄새도 함께 섞여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신선한 죽음의 향취다.

“긱··· 기긱!”

이어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쌓아올린 짚단 너머로 들썩이는 그림자가 보인다.

열린 문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빛에 반응했는지, 그것은 그늘 속에서 암약하며 시선을 번뜩이고 있었다.

“기기긱, 기익!”

처음 듣는 울음.

하지만 진저리쳐질 정도의 기괴함이 느껴졌다.

대체 어떤 생물이 이런 기분 나쁜 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놈의 정체가 드러났다.

‘요괴···.’

촌장의 표현은 절묘했다.

이 이상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달리 없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앞에는 사람의 거죽만을 뒤집어 쓴 요사스런 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피로 물들인 것만 같은 산발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져있다.

핏기 없는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서 석고마냥 새하얗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는 자가 있다면 이런 혈색일까?

더욱 기묘한 것은 그것의 크기였다.

덩치가 작아, 열 살도 채 되지 못한 어린 아이의 몸집이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이는 정말로 어린 소녀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눈앞의 존재가 도무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를 비추는 놈의 시선이··· 일말의 백색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검고 깊은 수렁과 같았기 때문이다.

소녀의 눈동자에는 흰자가 없었다.

눈깔의 모든 면이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웃고 있는 건가?

저 소녀는 어째서 낯선 사람인 나를 보면서도, 왜 입이 귀에 걸릴 만큼 미소를 짓고 있는 거지?

‘···세상에!’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소녀의 형상을 한 이 요물의 손아귀에 뭔가가 들려 있다는 것을.

연신 입안에 뭔가를 으적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은 고기였다.

뱃속이 파헤쳐진 망아지의, 소녀의 바로 앞에 주검이 된 불쌍한 가축의 내장이었다.

“갸아아악!”

그때였다.

식은땀이 미간을 타고 내려온 그 순간···.

내가 잠깐 눈을 깜빡하는 사이에 그림자가 튀어나온 것은.

“큭!”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 찰나의 순간, 내가 맨 먼저 파악한 것이 놈의 쩍 벌린 흉물스런 아가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콰직!”

나는 가까스로 도끼를 후려쳤다.

그러나 그것이 파고드는 속도가 너무 빨랐어, 적중한 것은 날붙이가 아닌 자루 쪽이었다.

그래도 타격은 꽤나 둔탁하게 들어갔다.

마구간의 불청객은 그것만으로도 바닥을 굴렀다.

나는 곧바로 달려들어, 놈의 팔을 낚아채려했다.

아주 잠시, 마르고 앙상한 몸뚱이를 보고서 자칫하면 부러뜨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갸악!”

소녀의 반항은 내 예상 이상이었다.

녀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톱을 새워 내 눈을 후벼 파려고 시도한다.

다행히 당장 손목을 낚아챘기에 뺨이 긁히는 정도로 끝났지만, 이 힘은··· 터무니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 마을에서 완력으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어린 여자애는 내 몸이 들썩일 정도로 몸을 비틀었다.

믿을 수가 없다.

필사적으로 양팔에 온 몸무게를 실어야만 겨우 버틸 수 있을 정도다.

“닉슨!”

내가 고함을 치자, 대기하고 있던 닉슨이 급히 안으로 달려왔다.

“기다리느라 지루해 죽는 줄 알았··· 어, 뭡니까? 이 계집애는···.”

“당장 밧줄을··· 묶을 걸 가져와라!”

“어린 도둑년입니까? 완전 피 칠갑을 하고 있는데요.”

“어서!”

“무슨 걱정입니까? 빅터 씨가 이렇게 꽉 잡고 있는데요. 어? 그런데 이 꼬맹이, 눈이 좀 이상한 것 같··· 크아아악!”

빌어먹을!

맹세컨대, 나는 그것의 팔을 전력으로 누르고 있었다.

잠시라도 힘을 빼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놈은 팔을 뻗어 닉슨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어버렸다.

나는 경악했다.

일순간, 내가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는 어깨의 관절을 스스로 뽑아버리더니··· 손끝을 채찍처럼 휘두른 것이 아닌가?

이어서 마구간에 끔찍한 이중창이 울려퍼졌다.

“으··· 으아아, 아아악!”

“킥, 키득··· 키득키득!”

닉슨의 절규와 여자 아이의 잔인한 조소였다.

그때 촌장이 들어온 것은 행운이었다.

그가 곧장 단조용 망치로 소녀의 머리를 후려갈기지 않았다면,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주춤했을 지도 모른다.

요괴라 불리기 충분한 그것은··· 몇 번이나 정수리를 내려치는 와중에서도 그 끔찍한 웃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다른 자경단원이 가져온 밧줄로 몸을 속박하고서 입에 나무로 된 재갈을 물릴 때 겨우 눈치 챈 사실이지만···.

“이럴 수가, 빅터··· 자네도 이런 걸 본 적 있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개조차 저을 생각을 못했다.

당연히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나운 늑대의 어금니도 이렇진 않을 터인데···.”

그랬다.

내가 도끼를 휘둘렀을 때 본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소녀의 모습을 한 이 괴물의 찢어진 입 속에는··· 정상적인 이빨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이가 송곳니···.

그것은 마치 목수들이 나무를 손질할 때나 쓰일 법한 톱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져있었다.

“빅터, 이젠 어떻게 하면 좋지?”

“···일단 가두도록 하죠.”

당장 죽여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겨우 그 충동을 억눌렀다.

‘진정해라, 빅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거다···.’

아버지와 클라리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있을 법하기에 벌어진다.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식견이 필요하다.

요괴라···.

겉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물처럼 보이지만,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또 다른 관점이 보인다.

이 정체모를 짐승 같은 여자애는, 단지 다른 인종··· 우리가 모르는 타지에서 온 문화의 이방인일 수도 있다.

이 마을의 사정을 모르고 그만 강물을 마셔버려서 광증이 발병한 것인지도 모르지.

뾰족한 이빨이나··· 어떻게 해서 이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유가 있다.

그저 우리가 당장 그걸 파악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부, 불길해.”

햇볕이 드는 곳으로 포박한 소녀를 끌고 나오자, 뒤늦게 몰려온 자경단 중 제일 어린 녀석 하나가 읊조렸다.

올해 갓 열여섯이 된 험튼의 막내아들이다.

이름은··· 벨트레라고 했던가?

“겨우 조용해진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어. 역시 우리 할머니 말씀처럼 저주가 틀림없는 거야!”

“조용히 해, 벨트레.”

“그치만 로만 형? 그게 아니면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거기다 저길 봐, 저걸···.”

사내놈이 신중하지 못하게 생각한 걸 그대로 입 밖에 내다니···.

하지만 이해는 간다.

무서울 만도 하지.

이건 어느 누가 보아도 그렇게 느낄 테니까.

그러나 하필 나는 듣고 말았다.

채 소년티도 벗지 못한 그 어린놈이 별 생각 없이 토해낸 한 마디를.

“머리칼이 오두막에 사는 그 여자처럼 붉은 색이야···.”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놈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매다 꽂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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