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3화 (3/186)

제물의 장(3)

3.

결국 우리는 클라리스의 조언에 따랐다.

고집스런 마을의 늙은이들은 끝까지 저주따윌 입에 올렸지만···.

내가 느끼기에, 원로들은 단지 이 제안을 클라리스가 내놓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어떤 이유로 백 명도 채 살지 않는 낙후된 곳에다 주술 같은 걸 걸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연히 멍청한 노친네들은 아무런 근거도 내놓지 못했지.

‘클라리스가 말했었지. 그거야말로 사람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진짜 마물魔物이라고···.’

대다수의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우선 그것을 탐구하기보다 외면하기에 급급하지.

어떤 시도라도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저 두려움에 떨며 멈춰 있으려 한다.

‘하지만 당장 현실적인 방안은 물을 끓이는 것뿐이다.’

정황상, 강과 우물에 섞인 뭔가가 이변을 만들어내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그것을 증명하듯, 나와 함께 마을로 내려온 클라리스는 반나절만에 모두가 납득할만한 실험을 직접 보여주었다.

녀석은 어디에서 잡은 건지, 생쥐 한 마리와 산토끼 하나를 우리에 담아 왔다.

그리곤 강에서 뜬 물과 우물에서 길러온 물을 각각 두 짐승에게 먹이고 변화를 관찰했다.

직후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서넛 시간이 지나고나니 질겁할만한 결과가 나왔다.

이변을 보인 것은 생쥐 쪽이 먼저였다.

놈은 갑자기 발광하더니, 나무로 된 궤짝에 머리가 터져서 죽을 때까지 박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토끼가 자신의 살가죽을 끊임없이 파먹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맹독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어, 나는 내가 보고도 그걸 쉽게 믿지 못했다.

그러나 답은 이제 명백하다.

마을 사람 모두가 깨달았다.

원인이 어떻게 되었든, 당분간 강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걸.

‘그래도 다행이군. 클라리스가 없었다면···.’

식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것도 클라리스였다.

정말이지, 그 녀석의 지식에는 탄복할 수밖에 없다.

클라리스는 마치 이 모든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왔다.

그것은 연두빛에 가깝게 우려낸 투명한 차였다.

대륙 건너 동방에서 가져온 마른 풀을 물과 함께 끓인 것이라 했다.

효과는 있었다.

차를 다른 쥐에게 먹여보니, 거의 하루가 지나서도 멀쩡했었지.

심지어 그 풀을 몇 년째 오두막 주변에서 기르고 있다고 하니··· 우리들에겐 정말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또 한 번, 클라리스는 마을을 구원해주었다.

허나···.

“빅터.”

사건이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었음에도, 어쩐지 그녀의 얼굴은 탐탁하지 않아 보였다.

“며칠은 두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왜 그러지? 잘 풀린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좀 마음에 걸려서···.”

“음?”

“내게 찻잎이 있었던 건 단지 운이 좋았던 거야. 거의 요행이었지.”

고작 해독차로는 충분하지 않다.

클라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짐승이랑 사람의 몸은 달라. 쥐나 토끼가 해가 없는 병도 인간에겐 치명적인 경우도 있거든. 어쩌면 증상이 나타나는 개인차가 있을지도 모르지. 방심해선 안 돼.”

그러면서 최소 일주일 넘게 광증을 보이는 경우가 없어야만 겨우 안심할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우린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어. 아직 본질을 알지 못해.”

순간, 나는 이 말에서 두 가지의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위화감.

클라리스는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역할을 자신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라고 말해주었다.

평소에는 사람과 잘 엮이려 하지 않는 이 은둔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나만큼이나 녀석도 나를 신뢰해주고 있다는 뜻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기쁘다.

반면, 다른 하나는···.

‘본질, 이 친구는 입만 열면 본질 타령이다.’

떠올려보면, 항상 녀석의 관심사는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본질’이란, 내가 따르고 있는 이치나 섭리와도 비슷한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그것은 어딘가 다르다.

학식이 부족한 나는 콕 찝어서 그걸 설명할 순 없지만···.

왠지 모르게 클라리스는 그보다 더 넓은 개념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선각자는 언제나 진리를 입에 올린다.

자신이 깨달았다고 만인에게 떠들어대지.

나는 이걸 허풍쟁이나 사기꾼과 비교해서 뭐가 다른지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녀는 다르다.

클라리스는 항상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강조한다.

지금 아는 것보다도 부족함을 입에 올린다.

그래서 클라리스는 여러 분야를 탐구하고, 또 하나하나 깊숙이 파고든다.

그리고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요소들에서 기어이 ‘본질’을 찾아내고 말지.

석영과 석회, 그리고 조개의 껍데기에서 공통된 것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숭고한 의지이다.

나는 안다.

그걸 밝히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걸.

“아냐, 분명 아직 뭔가가 더 있어. 어쩌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해로운···.”

가끔 나는 그녀의 이런 모습에서 일종의 집념을 느낀다.

그것은 어떤 의미론 부럽고 본 받을만 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선 오싹하다.

클라리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뭔가가 나로 하여금 경외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본질’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틀림없이 나 따위 범인은 평생 동안 이해하지 못할 거대한 관념일 테지.

때로는 마을 원로들의 적대감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친구인 나조차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보수적인 늙은이들이 보기에 오죽했을까?

‘그래도··· 나는 클라리스를 믿는다.’

허나 이 친구가 이토록 고민하는 것은, 또한 지식을 갈구하는 이유는 전부 사람을 위해서다.

부조리한 비극을 막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선의···.

언제나 이런 일이 생기면 그녀는 직접 발을 움직여 나선다.

위험에 스스로 뛰어들어서 까지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비록 자신을 홀대하고 차별하는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째서일까?

왜 그렇게까지 하지?

이타심?

희생 정신?

교리를 지키기 위해?

아니다.

클라리스에겐 그런 대의나 자각은 없어 보인다.

헌데 정신을 차려보면, 그녀는 어느새 문제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마치 남을 돕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허나 그것뿐 만은 아니다.’

물론 내가 그녀를 신뢰하는 이유에는 그보다 깊은 사연이 있다.

그건 매우 부조리하고, 슬프며··· 불행한 이야기가···.

4.

클라리스가 처음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다.

당시 나는 이웃마을에 가죽을 팔기 위해 나가 있었으니까.

아무튼 클라리스는 한 살이나 두 살 정도 된 여자애와 동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죽은 아기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굶어죽어 피골이 상접한 시체를, 어미였던 클라리스가 품속에 안고 다녔다나?

생각해보면, 그녀는 여행 중에 잃은 자식의 장례를 치러주고자 가까운 촌락에 발을 들인 게 아니었을까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 지혜로운 녀석이 굳이 위험까지 무릅쓰면서까지 자리를 잡진 않았겠지.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가 사는 오두막은··· 죽은 아이의 무덤 바로 옆에 위치해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이 마을에 자리 잡는 과정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질겁했다.’

이방인을··· 그것도 죽은 아이와 함께 흘러들어온 낯선 여인을 반길 리 없었다.

클라리스는 정신이 나간 여자라 불리며 욕을 먹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족족 얻어맞았고···.

심지어는 아이들에게 돌팔매질까지 당했다고 들었다.

당시의 나는, 그녀가 더 심한 꼴을 당하기 전에 나가주길 간절히 빌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녀석은 구해준 거야.’

바로 그 해, 끔찍한 병이 돌았다.

마을 사람의 3분의 1이 당했을 정도로 전염성이 강한 그 병은···.

먹고 마시는 모든 걸 토해내고, 그나마 뱃속의 장기까지 피 섞인 설사로 내보내버리는 무서운 괴질이었다.

그 돌림병에 걸린 것은 내 딸인 아델라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이웃 마을의 의원조차도 원인을 알 수 없어,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도 치료하지 못했다.

내 아내 그레이스는 절망하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가 죽어가는 꼴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재앙,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처절한 무력함을 실감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걸 구해준 것이 클라리스였지.’

그녀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괴롭히고, 죽은 아이의 명복조차 빌어주지 않던 매정한 마을 사람이 죽어가는 상태···.

걔 중에는 이런 역병이 돈 원인을 외지인이 저주했다며 선동하던 인간도 있었다.

미웠을 것이다.

만약 그게 나라면 참지 못하고 역병에 걸린 머저리들을 면전에서 비웃었을 지도 모른다.

꼴좋다.

그래, 너희 마을은 나로 인해 저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악담을 내질렀겠지.

그런데, 그럼에도 그녀는 모두를 구해주었다.

나는 알 수 없다.

그 용서에는 얼마나 큰 결의가, 또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나는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아델라이드, 내 딸 아이를 치료해주면서 클라리스는 까마귀를 닮은 가면을 쓴 채 나지막이 읊조린 그 한 마디를···.

내가 잊어버리는 일은 앞으로도 결코 없으리라.

‘내 딸이 살아있었다면, 이 아이처럼···.’

그 순간, 나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감동했다.

아아, 이토록이나 사랑은 증오보다도 강대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단언컨대, 그건 성당에 틀어박혀 만인을 위해 기도하는 주교보다도, 거지들에게 적선하는 졸부의 위선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클라리스의 선행에 이해득실은 없다. 녀석은 순수하게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거야.’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해빠진 외지인, 그래서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럼, 빅터. 나머지 일은 부탁할게.”

클라리스는 말린 약초 덩어리를 내게 건네주었다.

매고 온 배낭 서넛 개에 뭘 꽉꽉 채우기에 뭔가 싶었는데···.

당장 마을 사람 전부가 마실 물를 끓이는데 충분한 양의 찻잎이었던 모양이다.

과연 철두철미하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으련만···.”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마을을 나섰다.

여기서 더 나쁜 일이 생길 리 있나,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배웅해주었다.

사실 나는 이쯤에서 마음을 놓았다.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기면, 클라리스는 다시 마을의 영웅이 될 수 있겠지.

만일, 그래도 녀석을 손가락질하는 놈이 나온다면··· 그땐 내가 후려패서라도 바로 잡아줄 생각이다.

클라리스는 우리 마을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녀석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언젠가 꼭 묘지가 있는 오두막을 떠나서 마을 안에 자리를 잡게 해주리라.

‘새로 태어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이 클라리스보다 잘 어울리는 녀석은 없으니까.’

그러면 우리의 후손에게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으리라.

앞으로도, 언제까지라도···.

그러나···.

나의 낙관적인 기대는 불과 며칠 만에 처참하게 빗나갔다.

나흘 후, 다시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이 전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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