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헥센야크트-2화 (2/186)

제물의 장(2)

2.

녀석의 집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다.

숲을 가로질러 두 개의 언덕을 넘으면 지저분한 오두막이 나온다.

지붕이 반쯤 허물어졌고 정문 손잡이에 이끼가 끼어있어, 얼핏 보면 생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인적 드문 어둑한 산 속에 위치한 소굴이란, 마을 아이들 사이에선 도깨비 집으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상당한 괴짜,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은둔자가···.

녀석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9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마을에서는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가뜩이나 타지에서 온 사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변방의 촌락이다.

오래도록 드나든 상인마저도 믿지 않는 판국에, 선물은커녕 일말의 교류조차 하지 않는 수상쩍은 인물에게 줄 정따윈 없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녀석의 진짜 정체를.

이런 외딴 장소에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할 정도의 가혹한 사연에 대해서도.

“···일어났나?”

나는 녀석을 부르며 손등으로 썩은 나무문을 두드린다.

두 번, 세 번··· 아직 대답을 들려오지 않는다.

“나다. 빅터다.”

인기척이 없어, 한참을 기다려도 무거운 침묵만이 감돈다.

이상하다.

보통은 당장에라도 반응을 해줄 텐데.

외출이라도 한 건가?

곤란하군. 곧 비가 내릴 지도 모르는데···.

“움직이지 마.”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찌를 거야.”

말과는 달리 끝이 뭉떵하다. 날붙이조차도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망토 너머로도 느껴질 만큼 날카로운 냉기가 감돈다.

이번엔 대체 뭘 가지고 온 거지?

어찌되었든 이것은 언제나 있는 짓궂은 장난질이다.

역시나, 심지어 쿡쿡 거리며 부단히 웃음을 참는 기색이 느껴진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짓을 할 녀석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시덥잖다.”

고개를 돌리자 작은 몸집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후드로 가리고 있다.

손목은 마르고 앙상해, 가녀린 손가락이 뿌연 색의 기다란 뭔가를 쥐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다.

마치 돌로 만든 고드름처럼 생겼다.

별일은 아니다.

녀석은 매번 볼 때마다 내가 모르는 잡동사니를 가지고 있으니까.

“장난칠 때가 아니다. 클라리스.”

나는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입가가 싱긋 웃는다.

“곤란한데, 빅터.”

녀석이 입을 열자, 음침해 보이는 외모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미성이 숲에 울렸다.

“당분간 여기 찾아오지 않기로 약속했을 텐데?”

“사정이 있었다.”

“어지간히도 급한 일인가 보군.”

“그래.”

“괜찮겠나? 네 아내가 노발대발할 걸. 안 그래도 그 여사님은 좋게 보지 않는데 말이야.”

“그녀도 알고 있어.”

“무신경하긴. 보나마나 너 혼자 어거지를 부려서 나온 거겠지. 너랑 결혼한 그레이스는 정말 불쌍한 여자야.”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호오, 그런가?”

“그런데··· 그 해괴한 건 또 어디서 났나?”

“아, 이거?”

녀석은 그것의 뾰족한 부분을 내 앞에 들이 밀더니.

“석순이야. 계곡 아래 동굴에서 꺾어왔지.”

“어디에 쓰는 거지?”

“주변에 벌레가 들끓어서 말이야. 이걸 갈아서 강물에 섞어 바르면 효과가 있어. 그리고 양분이 부족한 밭에 뿌리면 작물도 잘 자라.”

“마치 석회같군.”

“바로 그거야.”

하지만 그건··· 내가 알기로 석회는 바닷가나 높은 산지에서나 얻을 수 있는 귀한 가루다.

이웃 마을에서 오고가는 상인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할 정도의 고가품이다.

그런 물건을 가까운 동굴에서 구할 수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군.

내 표정을 읽은 모양인지, 녀석은 킥킥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곳은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성분은 거의 같지. 너는 본 적 없겠지만, 저 멀리 바닷가에서 나는 조개껍데기도 마찬가지야. 모두 본질은 하나에 있어.”

역시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굉장히 호기심을 끄는 새로운 지식이다.

나는 혹여 녀석이 놀릴까 싶어, 애써 입을 닫고 감탄을 억눌렀다.

물론 속으로는 꽤 놀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눈앞의 상대를 존경하고 있다.

이 사실을 면전에서 이야기했다면, 녀석은 분명 고개를 저으며 어울리지 않게 겸손을 떨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친구는 고립된 은둔자이면서 한없이 현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만큼 놀라운 식견의 소유자다.

굉장히 박학다식하며,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산과 숲의 전문가인 나보다도 환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겉만 보아선 거의 넝마나 다름없는 먼지투성이 후드를 쓴 볼품없는 모습이나, 젊은 시절엔 동방의 대륙을 탐방한 경험이 있을 정도의 귀인이다.

녀석은 잘난 척하는 수도의 학자들이나 단지 아는 것만 많은 헛똑똑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지식은 신비하면서도, 여차할 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심지어, 나는 지금껏 녀석의 지혜 덕분에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곪아서 낫지 않는 상처에 바르는 천연 연고나, 부러진 팔이 뒤틀린 채 붙지 않도록 제대로 고정하는 방법부터··· 7년 전쯤, 내 딸아이가 열병을 앓았을 때 치료해주기도 했지.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내 딸이 걸린 돌림병은 마을 사람의 절반이 걸려있었다.

자칫하면 모두를 저세상으로 보낼 뻔 했을 정도로 큰 재앙이었다.

그걸 막아준 것이 바로 이 자··· 언덕 너머 오두막에 사는 클라리스라는 친구였다.

동방의 약초학이라고 했던가?

놀랍게도 녀석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단신으로, 흔해 볼 수 있는 잡초만을 가지고 순식간에 주민들 전부가 마실 수 있는 묘약을 만들어냈다.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매년 사람이 죽어나가던 원인 불명의 설사병이 해결되었다.

효과는··· 보다시피 아직 마을이 남아있는 것으로 증명되었지.

이제 누구나 그 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안다.

그 뒤로 클라리스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도 많이 변했지.

보수적인 변방 사람들이었지만, 적어도 생명의 은인을 매몰차게 대할 정도로 은혜를 모르진 않는다.

적어도 녀석이 마을에서 물건을 구하는데 성가신 문제는 없어졌지.

나 또한 클라리스를 대하는데 좀 더 거리감이 줄었다.

숲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이기에, 이렇게 교류하는 일이 많아졌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현재, 성격이 살짝 음험한 것을 제외하면 녀석은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친구이다.

“뭐, 그건 그렇고··· 빅터? 슬슬 이야기해주지 않겠나? 나에겐 무슨 볼일이지? 우직할 정도로 약속을 잘 지키는 자네가 그걸 깨뜨릴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음···.”

그래, 그렇지.

나는 그걸 위해 이곳에 왔다.

전날 밤, 촌장과 의논해서 클라리스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마을에 문제가 생겼다.”

“무슨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

나는 일연의 기이한 현상이 가장 처음 벌어진 것부터 말하기로 했다.

“워렌 영감을 기억하나?”

“알다마다. 농장의 주인이었지. 나도 작년 겨울에 육포를 받았었어. 올해엔 새끼를 밴 암소의 건강을 확인해주러 몇 번 방문했었지.”

“바로 그 문제다.”

“설마 송아지를 사산하기라도 했나? 이상하군, 일주일 전만해도 상태가 퍽 괜찮았던 거 같은데.”

“아니, 새끼소는 낳았지.”

“뭐야, 그럼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무사히 태어난 게 아니었다.”

“잠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넨 설명이 지지부진해. 좀 더 언변을 키우길 권하겠네만.”

“···그건 소이면서도 소가 아니었다.”

“빅터, 본론만 이야기하게.”

나라고 상대를 답답하게 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불경한 현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망설여질 뿐이었다.

나는 일주일 전에 목격한 흉흉한 것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외눈박이가 태어났다. 이마 정중앙에 주먹 만 한 눈깔이 하나 달렸더군.”

클라리스의 입주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런 표정을 짓는 녀석에게 더는 농담이 통하지 않는다.

“계속해봐.”

클라리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뒤로 묶어 정돈된 붉은 머리가 흘러나와, 녀석의 어깨 너머로 자연스럽게 걸쳐졌다.

벽옥 같이 창백한 피부, 하지만 감정이 실린 녹색의 눈동자는 생기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보다도 훨씬 작은 키와 몸집임에도 어쩐지 압도가 된다.

녀석의 굳센 얼굴에는 어쩐지 나이 대를 파악하기 힘든 일종의 마력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십대 중반을 조금 넘긴 내 또래의 저돌적인 혈기가 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서른이나 마흔을 훨씬 지난 자에게서나 보이는 노련한 기품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어서, 빅터. 자세히 말해 줘.”

클라리스의 재촉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 기이한 송아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게 태어날 때, 나는 평소처럼 산에 있었지. 토끼 덫을 확인하고 내려오는 길에 농장에 들려서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거기서 본 거지. 영감이 견디다 못해서 목을 쳐버린 그 괴물을.”

“괴물이라··· 하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심하다고?”

“기껏해야 기형으로 태어난 송아지야. 그런 것은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죽게 되지. 그걸 굳이 도끼질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워렌 씨가 그 정도로 가축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터인데.”

듣고 보면 그럴싸하다.

클라리스의 의문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게··· 말을 했다고.”

“···송아지가?”

“나는 직접 듣지 못했다. 하지만 영감이 그렇게 떠들어대더군.”

나는 농장에서 반쯤 정신이 나간 노인을 보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매달리듯 엉겨 붙었었다.

“반 년 전에 죽은 부인의 목소리로 울었다고 한다.”

“···.”

“너도 알지? 너도 그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었으니까.”

클라리스는 여기서 혀를 찼다.

“어처구니없어. 짐승이 사람의 말을 하다니, 그럴 리 있나.”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워렌 영감이···.”

나이는 쉰일곱 살을 넘겼지만 여전히 정정한 마을 청년들에게도 밀리지 않고 으름장을 놓던 늙은이가,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똑똑히 들었다고 하더군. 눈이 하나 밖에 없는 갓 태어난 소 새끼가 자길 바라보면서 죽여달라며 비명을 질렀다는 거야.”

사실 노인네가 횡설수설하기만 해서 자세한 내용까진 기억나지 않는다.

단, 그가 언급한 내용들은··· 대부분 끔찍한 것들이었다.

주로 불에 타는 고통을 호소하며 워렌 영감의 이름을 부르짖었다고 하는데, 어느 시점에선 왜 빨리 숨통을 끊어주지 않느냐고 저주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마을에 소문이 돌았다. 할머니가 죽어서 생전의 대가를 치루는 거라고.”

“음, 분명 에스메랄다 부인은 송아지 고기를 좋아했었지?”

그랬다.

나도 여러 번 대접 받기도 했었다.

그녀는 생후 3개월 된 어린 새끼를 요리하곤 했었다.

고기가 귀한 변방이지만, 이미 농사용으로 기르는 수소 한 놈이 있었기에 몸보신 겸 잡아먹었다나?

헌데, 그 방식은 생가죽을 벗기는 것이 일상인 나조차도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지.

어미 소 앞에서 끌어내 바로 그 자리에서 새끼의 목을 땄다고 하니···.

“내가 아는 것만도 그게 두 번째였다.”

영감의 말론, 바깥에서 처리해야 피를 빼기 쉽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에스메랄다 할머니가 송아지로 되살아난 것이라는 풍문이다.

업보를 쌓아 죽은 뒤에 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빅터,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생각하고 자시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럴 리 없기 때문이다.

내 단호한 태도에 클라리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에 새끼를 낳은 그 암소는 나이가 많았어. 게다가 교미시킨 소도 핏줄이 가까워. 촌수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아. 그러니 기형아를 낳아도 별 수 없지.”

“그렇겠지.”

“사람의 말이나 비명을 질렀다는 것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어. 눈이 하나만 나올 정도니까, 목의 구조도 보통 소와 다를 수도 있겠지. 그게 하필 우연히 에스메랄다와 닮았다··· 아니, 그보단 워렌 씨의 착각이겠지. 그 노인네, 자기만 모르지 완전히 공처가나 다름없었으니.”

“죽은 부인을 그리워해서 정신이 나갈 수도 있나?”

“아무렴. 반평생 함께했던 가족이 죽은 거야. 반년으로 그 아픔을 달래는 건 택도 없지. 내색하진 않았어도 그 할아버지도 힘들었을 거야.”

“그래···.”

모든 응어리가 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납득은 된다.

이 또한 있을 법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리스는 가늘게 한숨을 쉬더니, 확인 차 물어왔다.

“그럼 이걸로 해결된 거지?”

나는 언제나처럼 클라리스의 명쾌한 이치에 긍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니.”

“뭔가 또 있어?”

그도 그럴 것이, 괴물 송아지 사건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이것만이라면 별 것 아니야, 오히려 시덥잖은 수준에 불과하다.

“···길어질 것 같으니 안에서 이야기하지.”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이대로 바깥에 있으면 옷이 금방 젖어버릴 지도 모른다.

나는 턱으로 넌지시 오두막 안을 가리켰다.

클라리스는 내 방문을 제지하지 않았지만, 딱히 환영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빅터, 자네 말이야. 이러니까 자꾸 부인한테 의심받는 거라고.”

“무슨 말이지?”

“이봐,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주지만 일단 나도 여자거든.”

“그건 알아.”

“뭘 안다는 거야? 이 벽창호가···.”

나도 클라리스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보나마나 부인이 있는 외간 남자가 혼자 사는 여자의 집에 찾아오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나는 당당하다.

나는 흑심은커녕 순전히 녀석을 친구로 여기고 있다.

찰나의 육욕에 빠져 내가 클라리스의 몸에 손을 대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그녀를 순수한 존경으로 대하고 있다.

“하아, 들어와.”

마지못해 클라리스는 문을 열어주었다.

문틈 사이로 표면에 금이 간 원목 테이블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걸 계기로 일주일 전부터 이상한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

“요컨대?”

“외곽에 혼자 살던 노파가 죽었지.”

“···나이를 먹은 사람이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노파를 죽인 건, 다름 아닌 그녀가 기르던 고양이었다.”

클라리스는 다시 입을 닫았다.

“안부를 물으러 갔던 꼬마가 말하기론, 얼룩 고양이가 노파의 시신을 먹고 있다고 하더군.”

“그거··· 비극이군.”

“그뿐만이 아니다.”

“또 있나?”

“이건 시작에 불과해.”

나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사연들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일 년 전에 혼인한 케빈과 사샤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젊은 친구들이지.”

젊다기 보단 어리지. 둘 다 열일곱, 열여덟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 부부에겐 아기가 있었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이에 대해 언급하자 클라리스의 왼쪽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벌써부터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눈치챈 듯 했다.

“옆 마을의 친구가 부부의 집을 놀러왔을 때, 부부는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칠면조를 잡기로 했어. 내가 산에서 잡아온 녀석이었지. 그런데···.”

“그런데?”

“식탁에 올라온 건 새 고기가 아니었다. 그건···”

“괜찮아. 그냥 말해.”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를 부득 깨물었다.

“아기가 솥에 푹 삶아진 채로···.”

“···.”

“손님이 질겁해서 소리를 지르는 그 순간까지 자기네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다고 하더군.”

그리고 부부는 머잖아 아기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혼란에 빠졌다고.

토막 낸 것은 케빈이었다.

삶아낸 것은 사샤였다.

두 사람은 접시에 올려 진 손가락 몇 개를 보고 뒤늦게 넋이 나간다.

“그거, 참···.”

클라리스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져온 석순을 만지작 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 사이, 나는 그간 마을에서 죽어나간 아이들의 사건과··· 조금 전 마주쳤던 붉은 눈의 사슴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이상하다.

명백하게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떠드는 와중에, 나는 어느새 마을 여자들이 지껄이던 어떤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저주.

부정을 탔기에 벌어지는 이변이라고.

허나, 나는 이내 다시 그 생각을 지운다.

그리곤 클라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기대한다.

현명한 친구가 내놓을 해답을.

부디 그녀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치로 설명해주길 바랐다.

잠시 후, 클라리스는 겨우 입을 열었다.

“빅터. 일단 말해두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그래도 상관없다. 뭐든 말해다오.”

“당분간 강물을 쓰지 않는 편이 좋겠어.”

“강물을? 왜지?”

“언젠가 그런 병이 있다고 들은 것 같아.”

클라리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사람의 판단력을 이상하게 만드는 괴질이 있다고.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상황에선 가장 의심스러운 게 있어. 여기 오기 전에 본 미친 사슴이 개울 앞에 있었다고 했지?”

“그래.”

“바로 그거야. 뭔지 몰라도 강물에 풀렸는지도 몰라. 정신을 좀먹는 아주 위험한 게···.”

“뭐?”

“전에 말했었지? 우리의 마음은 이 머릿속의 흐물흐물한 덩어리에서 나온다고.”

“그랬지.”

“뇌는 굉장히 섬세한 기관이야. 거기엔 아주 적은 양이라 해도 독소가 들어가면 반드시 문제가 생겨. 사리판단을 못하는 건 기본이고 기억마저 잃어버릴 수 있지. 아무튼 사람들이 마신 것 중에서 영향을 주는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그게 대체 뭐지?”

“당장은 나도 단언할 수 없어. 하지만 빅터···.”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어. 알지? 예전에 내가 무지개에 대해서 설명한 걸로 기억하는데.”

무지개, 그 뜬금없는 단어에 나는 그만 헛웃음을 내뱉었다.

“어떻게 잊겠나? 그건 네가 내게 제일 먼저 가르쳐준 건데.”

“맞아. 이 사태는 그것과 같아. 크게 다르지 않지.”

나는 오래 전 클라리스가 해주었던 말을 되짚었다.

과거, 무지개는 하늘 너머의 존재가 보낸 신호라고 해석되었다고 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도 신비해,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 또한 존재한다.

“학자들은 항상 그걸 규명하고 싶어 했어. 하지만 고대엔 그럴 능력도, 지식도 없었지. 그래서 모든 현상에 하나하나 인격을 부여했어. 바람의 정령, 비의 여신··· 그렇게 나름대로 설명을 하려고 시도한 거야. 그것이 지금에 와선 종교, 신앙의 체계가 된 거고. 하지만 그 진상은 달라. 결국 무지개는 쌘비구름 속의 물방울에 햇빛이 비춰져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니까. 자연적으로 일어나기엔 조건이 까다롭긴 하지만, 그 원리 자체는 간단하지.”

실제로 그녀는 내 앞에서 직접 무지개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었다

이국의 수정을 물가에 비추더니, 오색빛깔의 신기루를 무리 없이 재현해보였었지.

“주교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겠군.”

“그래서 나 같은 부류는 흔히 요술사나 마녀라 몰리곤 하지. 광장에서 불태워지기도 하지.”

웃으면서 말 하지만 그것은 결코 가벼운 소리가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다.

이 마을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그렇지, 수도자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당장에라도 이단 심문관들이 당도할 지도 모르니까.

물론 클라리스는 마녀가 아니다.

단지 변방에서 흔히 믿는 신앙이 없을 뿐이다.

신이 아닌 섭리와 이치를 추구하는 탐구자이기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자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주교들의 성스러운 덕담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숲 속에서 알게 되는 사실들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빅터, 사실 이 이야긴 자네가 좀 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해주고 싶었지만···.”

“뭐지?”

“가끔, 아주 드물지만 초식동물이 고기를 먹는 경우도 있긴 해.”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자네가 본 것 그대로야. 양이나 염소도 영양 보충을 위해 벌레 정도는 잡아먹어. 가끔 새의 알도 탐하곤 하지. 이렇게 보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야.”

“그래도 토끼 같은 짐승까지 잡는 건···.”

“나는 본 적 있어. 저 멀리 대륙 너머엔 목이 나무보다 긴 짐승이 있지. 그것들도 초식 동물이야. 하지만 놈들은 기근이 와서 배가 고프면 새의 둥지를 찾곤 해. 그리곤 알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새들을 뼈와 함께 씹어 먹지.”

“···.”

“사슴이라고 다를 건 없어. 생물이라는 본질은 같으니까.”

“그렇다면 노파를 죽인 고양이는?”

“고양이가 할머니를 죽인 걸 직접 본 사람이 있었나?”

“꼬마가 그랬지.”

“그건 그 아이의 주장일 뿐이지. 걔 말론 고양이가 시체를 먹었다는 게 전부잖아?”

“으음···.”

“노파가 죽은 원인은 다른 데 있을 거야. 발작이라도 일어나서 목숨을 잃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때 문이 열려있지 않았던 거야. 고양이는 사람의 도움 없이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 그 작은 짐승이 며칠 동안이나 갇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면 어떨까?”

그러면 자신을 돌봐준 주인의 고기라도 뜯어먹을지 모른다.

연명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 그거야말로 자연의 당연한 이치···.

“아이를 요리한 부부는?”

“단순한 정신착란.”

“두 사람이 동시에 미칠 수도 있나?”

“같은 독을 먹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래서 강물을 조심하라는 거고.”

하나같이 황당한 내용뿐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해는 간다.

녀석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이게 요사스런 주술이 아닌, 단지 내가 모르는 어떤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정확한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은 가능성을 걸어보아야 한다.

“아무튼 사람들에게 전해. 당분간 강물을 퍼지 말라고. 우물도 강물과 같은 수맥을 공유하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지.”

“곤란하다. 그건 우리의 식수야. 그걸 막아 버리면···.”

“가능한 피해야지. 정 안되면 하다못해 펄펄 끓여서 마시는 수밖에 없어. 절대 날 것으론 먹어선 안 돼.”

클라리스는 아주 강한 어조로 강조했다.

그 당찬 태도에,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다.”

다음은 고지식한 마을 원로들을 설득시키는 일만 남았군.

쉽사리 받아들여지진 않겠지···.

왜냐하면, 나조차도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클라리스가 내놓은 대답에 아주 조금이지만 안심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은 일어날 법하니까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녀석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했던 말씀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래, 그거면 된다.

그것이 이치.

단지 아직 내가 무지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을 뿐인 무언가···.

나는 몇 번이고 그것을 속으로 읊조렸다.

“고맙다, 클라리스. 그럼 당장이라도 촌장님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잠깐, 그렇게 서둘 필요 있어?”

“한시가 급하다.”

“저 빗소리 안 들려? 그칠 때까진 기다리지 그래?”

아뿔싸, 무심코 바라본 창 밖 너머에는 어느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소나기인가?

하늘에는 여전히 비를 머금은 암운이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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