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章. 소루와 야토
이제 요괴의 이야기를 하겠다.
생과 사의 경계를 정처 없이 헤매던 그들이 막 형체를 얻었을 때 그들은 그저 움직이는 살덩어리에 불과했다. 검은 진흙 덩어리 같은 형체를 하고서 어둠 속을 기어 다니던 그 미물들은 제일 먼저 입을 갖추었다.
그 시커먼 구멍을 벌려 첫 호흡을 한 뒤에는 무언가를 먹었다. 무엇인지는 모른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그저 입을 벌리고 그 안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밀어 넣었을 뿐.
어느 날 자신들이 팔을 갖추었다는 것을, 다리를 갖추었다는 것을, 두 눈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입’이었다.
그것만이 의미가 있는 기관이었다. 나머지는 ‘입’의 활동을 돕기 위한 부속물일 뿐. 앙상한 두 손은 무언가를 움켜쥐어 입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서만이 존재했고, 두 다리는 먹을 것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만이 존재했다.
‘눈’은 가장 쓸모가 없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그 컴컴한 어둠 속에서는 제 모습조차 볼 일이 없다. 그들은 자아조차 온전히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어둠 속을 기어 다니며 먹고 또 먹기만 하였다.
그것이 반복된 지 수십 년.
어느 날 한 마리가 말하였다.
지겹다.
그게 그들 사이에 나타난 최초의 감정이었다.
가장 먼저 자아를 완성한 그 요괴는 먹는 것을 멈추고 어둠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굶주림이 아닌 다른 욕구가 그의 발길을 그리로 이끌어갔다. 그 욕구의 이름이 ‘무료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후의 일.
요괴는 떠나갔고 그 뒤를 따르듯 다른 요괴들이 어둠 밖으로 기어나갔다. 그들은 빛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구별한 뒤 형태도 조금씩 바꾸어 나갔다. 뱀, 거북이, 지네, 쥐, 사자, 소, 말과 까마귀, 여우, 고양이 등등….
참으로 많은 형태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인형(人形)이었다.
누가 맨 처음 그 모습을 흉내 내었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모습이 가장 ‘온전함’에 가깝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함’에 집착했다.
사람의 형태를 추구했던 요괴 대부분이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신체의 일부만 어설프게 흉내 내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그들은 그 불완전함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인간에 가까운 형태로 변해 서로 뽐내기도 하고, 그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때때로 서로를 죽이기도 하며 계곡은 전과 달리 번잡스러워졌다. 마치 자신들이 태어난 그 혼란으로 되돌아가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어지러이 뒤섞여 요란하게 날뛰어댔다.
그런 변화에서 동떨어진 채 살아온 요괴도 있다. 오로지 어둠 깊은 곳에 남아 먹는 것만을 반복하며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 온 한 요괴.
그는 태어난 이래 탐식을 잠시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바닥을 기며 무의미하게 입 안으로 밀어 넣고 또 넣기만 하는 그를, 다른 요괴들은 너는 살덩어리에 구멍이 난 것에 불과하다, 조롱하였다. 그는 그 요괴들마저도 삼켜 버렸다.
분노를 느끼고 그리한 것은 아니었다. 때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을 뿐. 그는 자아조차도 완성시키지 못해 모욕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으며 따라서 분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태곳적 모습 그대로 원형을 유지해 온 유일한 요괴였다. 느끼는 것은 오로지 허기짐뿐이고 하는 것이라고는 배를 채우는 일뿐. 세상천지에 이보다 더 비천하고 흉한 귀물이 있을까.
같은 요괴조차도 비웃는 이 요괴는 아귀(餓鬼)라 불리웠다.
비대하게 살찐 몸을 출렁이며,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를 휘청거리며, 계곡 속을 기고 또 기며, 흙을, 돌을, 나무를, 때때로 생물을, 동족을 게걸스레 먹고 또 먹는 탐욕귀.
그저 구더기와 다름없는 모습 그대로 계곡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세상도 저 자신도 평온하였을 테지. 그 어떤 혼란도, 고통도 자각하지 못한 채 구더기처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그 역시 어느 날 계곡 밖을 바라보게 된다. 제가 있던 구덩이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운 뒤 비척비척 동굴에서 기어 나와 계곡을 헤매던 날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와구와구 먹으며 걷다 보니 그는 어느새 어둠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희미한 연기가 배어 있는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고 요괴는 생전 처음으로 맡아보는 냄새에 늘 땅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요괴는 난생처음으로 빛을 보았다. 해질녘 산 너머로 가라앉아가는 불덩이 같은 태양. 거기서부터 뻗어 나오는 붉은 바늘 같은 빛줄기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바라보던 요괴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그라지는 빛을 쫓았다. 어찌하여 쫓는지도 모르는 채로 흐느적거리며 달려가 어느덧 계곡 밖까지 도달해버렸다.
요괴는 어리둥절하였다. 해는 어느새 저물어 있었지만 이상하게 주변은 밝았다. 그는 곧 하늘에 떠 있는 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밤조차도 빛 속에 있는 것인가 하며 멍하니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기를 잠시 지상에서도 반짝반짝한 빛무리를 발견해 내었다.
요괴는 그리로 비척비척 기어갔다. 한 무리의 인간들이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요괴는 의아했다.
한자리에 있으면서도 저들은 어째서 다투지 않는 것인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계곡을 떠올리며 요괴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그가 맨 처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자그만 움집 앞에 불을 피워놓고 기대앉은 남녀였다.
그것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들은 서로 어깨를 붙이고서 말없이 손을 맞잡고 있었다.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돌연 남자가 여자를 향해 고개를 숙여 얼굴 위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요괴는 잡아먹으려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은 입을 대기만 할 뿐 먹지는 않았다. 그저 입술을 겹쳤다가 떼기를 반복하기만 한다.
대체 뭘 하는 건가.
어리둥절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더욱 불가사의한 광경이 펼쳐졌다. 작은 쪽이 즐거운 듯 키득키득 웃더니 큰 쪽의 몸을 꽉 끌어안는 것이었다.
요괴는 혼란에 잠겼다. 미지의 것에 대한 생경한 호기심이 요괴를 사로잡았다.
저들은 대체 무얼 하는 것일까.
두 개가 나란히 있으면 하나가 반드시 다른 하나를 죽인다. 눈앞의 타자(他者)는 먹이일 뿐.
그것이 요괴가 알던 세계.
하지만 저들은 어찌하여 저리 하는 것일까.
그저 서로 몸을 붙이고 있을 뿐인 두 인간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요괴는 생각했다.
알고 싶다. 저들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그날부터 요괴는 조용히 인간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 부지런히 움직이며 땅을 갈거나, 물건을 내놓고 서로 교환하거나 하였다. 그들끼리도 가끔씩 다투기도 하였지만 함부로 상대를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성난 두 놈이 서로 주먹질을 하다가 다음에는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지를 않나, 목청껏 싸우다가 다음 순간 깔깔거리며 웃어대지를 않나.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젊은 것이 늙은 것을 등에 업은 채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한 줌도 안 되는 갓난 것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며 머리를 쓰다듬고, 어린 것 둘이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손을 잡고 언덕을 뛰어다니기도 하는 등 요괴에게는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였다.
호기심은 그의 안에서 나날이 부풀어 올랐다.
어찌하여 저들은 먹지도 않는 것에 입을 맞추는 것일까.
어찌하여 저들은 얼싸안고 웃는 것일까.
어찌하여 등을 주물러주고, 끊임없이 어루만지고, 손을 맞잡는 것이며, 한자리에 모여 깔깔거리며 떠들고, 먹을 것을 나누며, 때때로 서로의 눈물을 훔쳐 주는 것일까.
그 의문들은 이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요괴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답을 구해야 한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그는 어느 날 홀연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저 물으려 하였을 뿐이었다.
너희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하지만 그를 본 인간들은 곧장 요괴와 같아졌다. 하나같이 비명을 내지르며 우왕좌왕 도망치거나, 달려들어 돌이나 창을 던진다. 입을 크게 벌리고 저주의 말과 고함을 쏟아낸다. 요괴는 혼란하여 물러났다.
어째서 저러는 건가.
의문이 한 가지 더 더해졌다. 하지만 이 의문은 곧바로 풀리었다.
요괴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추악한 괴물.
그들의 외침을 그제야 이해한다. 개구리처럼 부풀어 오른 눈두덩과 쭈글쭈글한 얼굴, 형형하게 빛나는 시뻘건 눈알. 불에 타 눌어붙은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시커먼 피부에 두꺼비처럼 비대하게 살찐 복부, 그 부푼 몸뚱이에 길게 돋아나 있는 듯한 형상의 앙상한 팔다리. 인간들의 완전한 몸과 달리 제 육체는 어그러지고 뒤틀려 추하기 그지없었다. 요괴는 그제야 제 흉함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답을 해 주지 않는다.
요괴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방법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마을 끄트머리에 숨어 제가 처음으로 보았던 남자를 기다렸다. 그를 잡아다가 먹고 그 껍질을 뒤집어썼다. 뒤룩뒤룩 부푼 몸을 인겁 안에 구겨 넣어 완전히 사람의 모습을 갖춘 뒤에는 그 남자가 살던 거처로 향했다.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환히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하며 양손을 다정히 맞잡고는 뺨에 입을 맞춰준다. 그로서는 역시나 이해할 수 없는 행위.
요괴는 물었다.
“왜 그리하나.”
“그리하다니요?”
“왜… 입을 맞추는 거냐.”
눈을 끔뻑이던 여자가 싱긋 웃으며 답하기를,
“그야 사랑하니 입 맞추지요.”
하였다.
“사… 랑…?”
처음으로 듣는 단어에 요괴는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사랑이 무엇이냐.”
농담이라 생각하였는지 여자가 입가를 가리며 깔깔 웃는다.
“사랑이 사랑이지요. 가군, 오늘 이상하십니다. 왜 그런 엉뚱한 질문을 하십니까?”
여자는 제대로 답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요괴는 눈을 끔뻑였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려나.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여자가 씩 웃으며 두 손을 가슴께에 가져다 대었다.
“이 가슴속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가.”
요괴는 손을 뻗어 여자의 가슴을 열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여자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까뒤집는다. 요괴는 개의치 않고 살을 넓게 찢어 벌리고 뼈를 부수어 여자의 가슴을 뒤적였다.
“이것인가?”
팔딱거리는 심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자는 답하지 않는다. 피 거품을 그륵그륵거리는 입과 동공이 열린 퀭한 눈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하기를 잠시 아니면 이것인가 하며 간을 꺼내 들었다. 특별한 것을 모르겠다. 그는 폐를 끄집어내었다.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말캉한 붉은 살덩어리. 그것을 뭉개어 안을 확인해 보아도 사랑이란 것은 도통 보이질 않는다.
“무엇이 사랑이냐.”
대답 없는 허연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먹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하며 원래의 제 본성대로 그것들을 마구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여태까지 먹어온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의문에 휩싸인 채로 그는 먹고 또 먹었다. 몸통 안에 들어있던 것을 모두 긁어먹은 뒤에는 뼈와 살까지 으적으적 씹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사랑은… 대체 뭐지?”
피 웅덩이 속에 황망히 서서 입가를 피로 진득하니 적신 채 요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 몰랐다. 그 물음이 자신을 어디까지 몰아갈지를.
***
까맣게 탄 요괴의 시체가 지척에 깔려 있었다. 아시타와 자호가의 무인들이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자호가의 무인들 열댓 명과 법령사 다섯이 크게 다쳤고 셋이 죽었다. 야토를 놓쳤으니 그리도 자신만만하였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그들은 도성 외곽지에 급히 천막을 치고 병자들을 옮겼다. 사람을 불러 부상자들을 자택으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그리했다가는 도성 백성들이 다친 꼴을 보고 무어라 수군댈지 모를 일.
비령은 뒤늦게 당도한 무인들에게 천막을 치고 부상자들을 옮기도록 지시했다. 그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에는 하나하나 돌아가며 소루의 피를 먹였다. 상태가 하도 심각하여 말릴 수도 없었다.
다친 이들에게 칼로 살을 베어 피를 내어 주는 소루를 지켜보는 자현의 얼굴은 그야말로 참혹하였다. 저 꼴을 보지 않으려고 위험천만한 이 계획에 동참한 것인데 그 요괴 놈은 코앞에서 놓치고 소루의 손에는 또다시 상처가 무수히 생겼다.
당연,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법령사들을 보는 자현의 눈초리는 살벌하였다.
“설마 치료를 받겠다고 기어들어 온 것은 아니겠지.”
내내 팔짱을 낀 채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자현이 으르릉거리며 말하자 소루가 놀란 얼굴을 든다. 그러고는 새로이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다친 이가 또 있느냐.”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
자현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치유술에 뛰어난 법령사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시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겨우 독기를 해독하고 염증을 가라앉힌 정도. 사실은 통증이 말도 못할 정도다. 의료 지식이 해박한 법령사가 상처를 잘 꿰매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멀끔히 아물겠지만 공주의 피를 먹고 몸이 낫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겠다고 그녀의 천막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청했다. 자현이 의외로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침묵을 허락이라 여겼는지 소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물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무 말 없는 자현을 대신해 비령이 사람들을 물렸다. 천막 안에는 소루와, 자현 그리고 아시타와 비령뿐이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아시타가 소루의 말간 얼굴을 내려다보며 입을 뗐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번 계획을 주도했던 법령사 아시타입니다. 험한 일을 겪게 한 것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직접 마차를 끌고 나오기는 했지만 얼굴을 대면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아시타는 제 소개부터 우선하였다. 소루가 흐린 낯으로 고개를 수그린다.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인걸.”
앳된 목소리. 말투는 거만한데 목소리가 다감하여 영 위엄이 없다. 제 나이보다 앳되어 보이는 자그만 소녀를 복잡 미묘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아시타는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야토에 관해서 물어도 되겠습니까?”
여자의 어깨가 살짝 굳었다. 그것을 예리하게 내려다보며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졌다.
“야토의 그 황금색 눈, 본래는 소루 공주의 것이었지요?”
“…내 눈이 본래 황금색이었던 것은 맞다.”
소녀가 제 눈언저리를 쓸며 답했다.
“야토가, 내 눈을 가져간 것도 맞다.”
가장 추한 요괴가 공주의 눈을 훔쳐 달아났다는 노랫말을 떠올리며 비령과 자현은 얼굴을 굳혔다. 그 무서운 요괴 놈이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건가.
“그 눈은 본래 어떤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까.”
혼란한 그들과는 달리 아시타는 미리 예상한 듯 덤덤하게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무어라 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양 낯빛을 흐리던 소루가 더듬더듬 답한다.
“힘 같은 것은 모른다. 다만….”
“다만?”
“그 눈은 너무나 밝아서…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 다 보였다. 요괴나 귀신, 때때로… 사람의 마음이나 과거, 미래, 죽음까지… 보고자 하는 것은 뭐든 볼 수 있었다.”
아시타는 턱을 쓰다듬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천인의 눈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신물인가.
“야토는… 그것으로 요괴들의 진명까지 들여다본 모양이군요.”
“진명?”
“요괴의 혼에 새겨져 있는 이름입니다. 그것을 알아내기만 하면 어떤 요괴든 제 수족처럼 부릴 수 있지요. 공주께서는 눈을 잃기 전에 요괴의 이름을 본 적이 없으십니까?”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배운 적이 없어서….”
그렇게 답하는 소녀의 얼굴은 민망함으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시타는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낯빛을 흐렸다.
선왕에게 내쳐져 비천한 여종의 손에 길러진 처지라 하였지. 글을 배울 수 있었을 리 만무하다. 두 눈을 잃은 뒤에는 더더욱 그럴 기회가 없었겠지.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글을 읽는 법만 익힐 수 있었다면 요괴들의 그 행패에 속수무책으로 시달릴 일도 없었을 터인데.
어디 그뿐이랴. 이 소녀가 만약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면 얼마나 대단한 법령사가 되었을까. 진리를 꿰뚫어 보는 눈으로 천하의 모든 귀물을 다스리고, 타고난 신력으로 천지를 뒤흔들 만한 술법을 자유로이 부리며, 온 세상에 신녀로 명성을 떨쳤을 것이다.
한데 요괴에게 신안(神眼)도, 신력(神力)도 빼앗겨 귀신 공주라 불리고 있다. 남은 것이라곤 기껏 신체(神體)로 사람을 치료하는 재주뿐.
그는 딱한 시선으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기구한 출생. 그 하나로 그녀의 운명은 이토록 뒤틀린 것이다.
“지금 야토는 공주의 신안을 사용해 희란국의 모든 요괴들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 수백을 잡아먹고 이미 육체의 반은 인간이 되어 본래라면 요괴의 몸으로는 손댈 수도 없었을 터인 공주의 부군조차 위협하였지요. 지금으로서는 놈을 제지할 방도가 없습니다.”
착 가라앉은 음성에 소루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푹 숙이며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그렇군…. 이 또한, 결국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던가.”
투명한 눈동자에 물기가 고인다. 조그만 어깨가 애처롭게 떨리는 것을 무거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아시타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야토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놈을 저지할 방도를 찾고 싶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또다시 사람들이….”
소녀가 가볍게 어깨를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서 침묵하기를 잠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야토는 나를 먹으러 온 요괴 중 하나였다.”
“요괴 중 하나라면….”
“무수히 많은 요괴들이 항상 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서 틈을 살피듯 자나 깨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지.”
혹 야토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 자세한 생김새를 물으려던 아시타는 이어지는 말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느 날 모인 요괴들이 크게 다투었다. 저들끼리 싸우고 싸우다, 단 한 마리만 남게 되었는데… 그것이 야토였다. 나는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그를 치료해 주고 그에게 이름을 주었다. 야토라는 이름도, 내가 준 것이다.”
천막 안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멍하니 소녀를 내려다보던 아시타는 곧 추궁하듯 언성을 높였다.
“어찌하여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 괴물을…!”
“잡아먹히기를 원하였기에, 그리하였다.”
덤덤히 내뱉는 말이 하도 섬뜩하여 아시타는 움찔 몸을 굳혔다.
소녀가 손가락에서 상처가 터져 피가 배어 나오는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옷자락을 거세게 움켜쥐고서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지옥 같았다. 다른 이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나 혼자서만 본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더는 다른 이를 괴롭히고 싶지도 않았다. 사는 것이, 그저 괴롭고 괴로워서….”
그리 바라였던 게 소녀의 나이, 열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태어나 십 년도 살지 않은 소녀가 사는 것이 괴로워 괴물에게 제 몸을 내어 주려 했단다. 그제야 아시타는 천인도, 귀신 공주도 아닌 그저 자그마하고 앳된, 눈먼 소녀를 보았다. 그녀가 눈물을 주룩 흘리며 무겁게 말하였다.
“그래서 그랬다.”
“…….”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미안하다. 내… 내 탓이다.”
자그만 머리통을 힘없이 떨구며 그녀가 가늘게 흐느꼈다. 무거운 죄악감이 소루의 마음을 짓누른다. 그때 제가 그에게 손을 뻗지 않았더라면, 그때 제가 야토를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제가… 편해지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미안하다….”
소녀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
요괴의 이야기를 계속하자.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의문을 품게 된 요괴는 그 후로도 사람들 속에 숨어들기를 계속하였다. 금세 답을 구할 수 있으리란 기대와는 달리 그날의 물음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은 채 그의 가슴속에서 점점 무거워지고 커져가기만 하였다. 요괴는 정처 없이 인계를 헤매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고 형태를 바꾸며 묻고 또 물었다.
어느 해에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그녀와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답은 구할 수 없었다. 여자의 시체를 찢어 입으로 밀어 넣은 뒤에는 어느 사내의 첩이 되었다. 그의 곁에서 수년을 살았지만 역시나 그는 사랑이 무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내를 죽여 몸을 먹고 난 뒤엔 한 여인의 아이가 되었다. 지극한 어미의 보살핌 속에서 딱 십 년을 보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소용이 없었다. 그 누구도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지 못했다.
사랑이 무어냐.
그 질문에 누군가는 가슴이 따뜻해지고 서로를 귀중히 아끼는 것이라 하였다. 그 답변은 그의 안에 의문만 더 부풀려 놓았다.
귀중히 아낀다는 게 무언가. 가슴이 따뜻해진다는 것은 또 무어지?
누군가는 격렬하며 뜨거운 감정이라 하였다.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새로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요괴는 그 무수한 질문들 속을 정처 없이 헤맸다. 다양한 인간의 껍질을 벗었다 뒤집어쓰기를 반복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형태를 취하더라도 끝은 항상 같다.
답을 구하지 못하고 속여 온 상대를 먹은 뒤에는 떠나는 것이다.
그것을,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반복하여 마음 한구석에 슬그머니 체념이 스며들 즈음 요괴는 한 노승을 만났다.
그는, 인겁을 뒤집어쓰고서 숨어들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 늙은 법사에게 공격당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요괴는 답을 구했다.
“나는 알고 싶을 뿐이다. 어찌하여 너희는 입을 맞추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얼싸안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함께하는 것이냐. 사랑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 질문에 노승은 답하였다.
“평생을 추구하여도 요괴, 너는 그 답에 도달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사랑을 한다. 그것은 이해를 벗어난 이타(利他)의 감정.”
요괴는 타오르는 눈으로 달 아래 선 승려를 노려보았다. 그 말이 칼날처럼 요괴의 고막을 찔렀다.
“탐욕에 휩싸여 살육만을 반복해 온 괴물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부질없는 짓 하지 말고 피안의 세계로 되돌아가라.”
그러고는 부적을 꺼내 들어 법문을 왼다. 요괴는 노승이 공격하기 전에 달려들어 그의 팔을 뜯어냈다. 방심하고 있던 노승은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단박에 노승의 숨통을 끊어놓은 요괴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곱씹었다.
탐욕에 휩싸여 살육만을 반복해온 괴물은 알 수 없다 하였지.
그렇다면 탐욕을 부리지 않고 살육하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것인가.
요괴는 오로지 답을 얻는 것만을 추구하여 제가 왜 그리도 ‘사랑’에 집착하는지도 모르는 채 결심하였다.
사랑을 흉내 내어 보자.
그저 묻고 또 묻고,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직접 한번 해 보자. 그들을 따라 하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요괴는 노승의 인겁을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인가를 돌아다니며 마땅한 대상을 찾아 헤맸다. 사랑이란 것은 반드시 타자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는 정처 없이 사랑할 대상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를 헤매고 있는 눈먼 소년을 보았다. 왜소한 체격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인간의 아이는 맨발로 흙바닥 위를 유령처럼 배회하며 구걸하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힘겹게 치켜들고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동냥을 하고 있는 그를 본 순간 요괴는 생각했다.
이 아이로 하자. 백 년 넘게 관찰해 알아낸 것 중 하나가 그 사랑이란 것이 대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돌보는 듯한 외형을 취한다는 사실이었다. 강한 수컷이 약한 암컷을. 큰 인간이 어린 인간을. 그 격차가 클수록,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의존하면 의존할수록 관계는 긴밀하여진다.
그리하여 요괴는 그 무력하고 야윈 소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잔뜩 굶주린 아이는, 소도 제대로 들어있지 않은 딱딱한 만두 한 덩이에 그를 따라왔다.
요괴는 미리 마련해둔 거처로 그를 데려와 인간이 제 어린 것에게 하듯이 깨끗이 몸을 씻기고, 음식을 먹이고, 새 옷을 입히며, 극진히 돌보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때때로 그 자그만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뺨에 입을 맞추어 보기도 하였다. 이제는 알 수 있으려나 저제는 알 수 있으려나. 미칠 듯 몰려드는 허기를 참고 또 참으며 그렇게 사랑을 흉내 내기를 여러 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소년의 키는 제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앙상하게 말랐던 몸에는 토실토실 살집이 붙었고, 상처투성이 흙투성이였던 손발은 뽀얗게 고와졌으며, 어두웠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리고 소년은 언제부터인가 그를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저를 그리 부를 때면 요괴는 그 사랑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제게 환하게 웃으며 사랑한다 할 때는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도 하였다.
요괴는 환희에 차올랐다. 자신이 느끼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로 그는 기뻐했다. 무수한 세월 동안 추구해 왔던 의문의 실마리를 겨우 붙잡았다.
나는 알고 싶다. 나는 느끼고 싶다.
허기보다 깊어진 그 열망이 해소되는 순간만을 고대하며 요괴는 소년을 더더욱 극진히 보살폈다. 더 잘해주면 분명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을 들어 줄 때마다 답에 가까워져 가는 듯했다.
그러한 생각에 휩싸여 있던 차에 소년이 말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어요. 그러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요괴의 가슴속에 확신이 들어찼다.
이 소원을 이루어주면 나는 분명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소년이 저를 올려다보고 그 기쁨에 찬 눈을 들어 제게 사랑을 말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그는 인간 아이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백 년 만에 계곡으로 되돌아갔다. 강대한 요력을 타고나 온갖 기괴한 것을 할 수 있는 요물, 검은 여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두컴컴한 계곡 속을 더듬더듬 걷고 또 걸어, 구불구불한 나무뿌리를 넘고 넘어, 그는 겨우 여우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그에게 사람의 눈을 밝게 하는 약을 달라 청했다.
“탐욕귀, 네놈 재미난 짓을 하는구나.”
사정을 들은 여우는 낄낄거리며 웃더니 그냥은 안 된다 하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어둠 속에서 여우의 붉은 눈동자가 요염하게 가늘어진다. 희롱하듯 제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여우가 이내 말하였다.
“약값으로 그 인겁을 달라.”
“이 인겁을?”
“그래, 그것은 필시 승려의 껍질일 테지? 매우 좋은 냄새가 난다. 나는 그것이 탐이 나.”
“이것이 없으면 약이 있어도 소용이 없지 않나.”
“두 눈이 먼 인간이다. 네 모습이 바뀐 것쯤은 큰일이 아닐 테지. 눈을 치료해 주었으니 필시 인간은 네 모습에 상관 않고 깊이 감사하리라.”
그런가 하며 요괴는 흔쾌히 거래에 응했다. 오랫동안 추구해온 사랑을 알게 되기 직전이다. 마음이 조급하여 요괴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껍질을 벗어 여우에게 내어주었다. 그러자 여우가 약병을 건네주고는 승려의 껍질을 물고 만족스레 제 동굴로 사라졌다.
그는 병을 품에 넣어 들고 서둘러 거처로 돌아왔다. 어느덧 밤이 깊어져 소년은 침상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요괴는 성마른 손길로 그를 깨웠다. 소년이 부스스 고개를 들며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다.
“왜 그러세요.”
“네 눈을 고칠 약을 구해왔다.”
잠이 싹 달아났는지 소년이 화들짝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정말이요?”
열망이 어린 음성에 요괴는 정말이다 하고 중얼거리고는 병을 꺼내 들었다. 그러다 방 안이 너무 컴컴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래서는 기껏 눈을 고쳐 주어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불을 피울 만한 것을 찾았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집에는 양초는커녕 작은 호롱 하나 없었다.
고심하던 요괴는 곧 소년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유난히 달이 밝은 날. 이 정도면 충분히 주변을 식별할 수 있겠지.
그는 소년에게 약병을 건넸다.
“자, 이것을 먹어라.”
소년이 무엇이냐 묻지도 않고 의심 없이 받아 마신다. 소년은 그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었다.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들었다. 소년은 그를 사랑한다. 이제 그도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요괴는 들뜬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맛이 이상하다며 오만상을 쓰던 아이가 곧 두 손으로 눈을 감쌌다.
“뜨, 뜨거워요. 아버지…! 누, 눈이 불타는 거 같아요.”
“조금만 참아라. 이제 곧 보일 거다.”
소년이 어지러운 듯 휘청거리며 신음을 토해 냈다.
슬그머니 불안감이 든다. 혹 그 여우가 저를 속여 괴상한 약을 준 게 아닐까. 안절부절못하고 있기를 잠시 소년이 눈에서 손을 뗐다. 바로 명징하게 보이지는 않는 듯 한참을 눈을 깜빡이던 그가 곧 떨리는 음성을 토해 냈다.
“보, 보여요. 조, 조금씩… 서, 선명하게….”
소년의 자그만 어깨가 격정에 덜덜 떨려 온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제 손을 내려다보던 그가 이내 감격에 겨워 고개를 쳐들었다. 그 얼굴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보, 보여요! 잘 보여요! 아버지, 아버지의 얼굴도…!”
소년이 불현듯 말을 멈춘다. 끔뻑끔뻑 눈꺼풀을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몇 번, 아이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가 사라지었다.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요괴는 늘 하였던 대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던 소년이 그에 소스라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요괴는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머리를 만져주면 볼을 붉히며 기뻐하지 않았던가. 왜 피하는 건가, 의아해 하며 아이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히, 히익…!”
그러자 그가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친다. 동공이 열린 형형한 두 눈 위에는 공포감이 완연하였다. 시퍼렇게 질려 제게서 멀어지는 소년을 황망히 바라보며 요괴는 물었다.
“어째서… 물러나는 것이냐…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 주었는데.
눈을 떠 나를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요괴는 소년을 향해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오, 오지 마!”
아이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비명 같은 흐느낌을 토해 낸다. 벌레처럼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오줌까지 질질 지린다. 그 공포에 질린 눈길에 요괴는 입술을 달싹였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건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대체 무엇인가. 사랑이 대체 무엇이기에.
요괴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앙상하고 울긋불긋한 팔뚝을 들어, 뼈마디가 불거져 나무토막 같은 손가락을 펼쳐, 갈고리처럼 휘어진 긴 손톱을 파르르 떨며, 흉측하기 그지없는 그 손을 아이의 얼굴을 향해 내민다.
소년이 그것을 피해 뒷걸음질을 치다가 휘청,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고도 주춤주춤 땅바닥을 기며 저에게서 떨어지려 애를 쓴다. 다급히 돌멩이를 주워들어 던지며 다가오지 말라 외친다. 그것을 보는 요괴의 눈이 타올랐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서!
내게서 멀어지려 하는가.
요괴는 소년의 몸을 붙잡았다. 자그만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품에 안고서 입을 댄다. 인간은 그리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요괴의 행위가 남긴 것은 줄줄 흐르는 시뻘건 피 웅덩이뿐. 요괴는 멍하니 부른 배를 움켜쥐었다. 입 안에는 소년의 살덩어리가 아직 남아 있다. 인간의 아이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위 속을 구르고 있다. 잠시간의 포만감.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
요괴는 입을 벌렸다. 소년의 체액이 흉측한 입가를 적시며 질질 흐른다. 문득,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가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우는 듯 웃으며 앙상한 팔다리를 휘청거렸다.
밤바람이 더운 피부를 감싸온다. 희롱하듯 달이 밝다. 하얀 달이 흉악한 제 모습을 고스란히 비쳐내었다.
그제야 요괴는 온전히 깨달았다. 노승이 했던 말의 의미를.
사랑은 오로지 인간의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의 것이다.
이 입은 오로지 포식하기 위한 것.
이 손은 오로지 그 살을 움켜쥐고 찢어 게걸스레 입으로 밀어 넣기 위한 것.
비대하게 살찐 몸으로도 기아에 허덕이며 끝없이 탐식하는 나는,
요괴.
그 무엇도 사랑할 수가 없다.
아시타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는 기나긴 돌계단을 오르며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다 낫지 않은 상처가 심하게 욱신거려 진땀이 줄줄 흘렀다.
뒤따라오는 여란이 그것을 보고 무리하지 말라 하였지만 그는 듣는 척도 않고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비죽 솟은 왕실의 신당이 보인다. 대왕이 머무르는 본궁과 관료들이 드나드는 북관과 남궁에서 멀찍이 떨어져 후궁전이 자리한 동쪽 끄트머리 언덕배기에 댕그라니 놓여진 그 소담한 건물은 예상 이상으로 볼품없고 황량하였다. 신녀들이 제를 지내는 전각이 근처에 지어져 있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버려진 사당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기는. 십몇 년간 제를 지낸 적이 없을 터이니 버려진 사당이 맞지….’
찾는 이 하나 없는 그 볼품없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잠시 걸음을 멈춘 사이 뒤따라오던 여란이 바로 곁으로 다가서서 투덜거렸다.
“그리 기 쓰지 마라. 혹여 네놈이 여기서 기절이라도 하면 내가 업고 내려가야 한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어 고맙구나. 사제.”
아시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 계집앨 왜 달고 왔을까. 이리 속만 긁는 것을.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계단을 오르는데 이제는 어깨 위에 올라앉은 까마귀가 좀 더 속도를 내라 훈계를 해댄다. 그는 매몰차게 놈을 어깨에서 털어 냈다.
“너무하잖아! 네놈 곁에서 떨어질 수 없게 주술을 걸어 놓고는…!”
“조금 정도는 떨어질 수 있잖아! 안 그래도 몸이 무거운데 어딜 태평하게 올라앉아 있는 것이냐.”
“요괴랑 실랑이를 할 기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쓰러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어서 올라가라. 그 비령이라는 자가 해가 저물기 전에 내려오라 하지 않았던가.”
요괴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여란이 도끼눈을 뜨며 말한다.
아시타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서둘렀다. 진땀이 뻘뻘 흘렀지만 여란의 말대로 시간이 넉넉지 않다.
그들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궁궐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최근 도성에 흉흉한 일이 자자하니 이 나라에 낀 액운이 걷히도록 궁궐에서 가볍게 제를 드리고 싶다는 핑계를 대어 겨우 반각 정도 머무는 것을 허락받은 것이다. 들여보내준 이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재빨리 들어갔다 나오라 신신당부를 한 터.
“서둘러. 어서 볼일을 끝내고 돌아가자.”
“알겠다. 나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쯧, 그 몸을 해 가지고 굳이 저길 가야 할 필요가 있는 건지….”
여란의 구시렁거림에 아시타가 쓴웃음을 지었다. 스스로도 그 요괴의 과거를 조사한다고 해서 과연 놈을 없앨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 전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괴에 관해 알아내야만 한다.
“만져 보고 싶다.”
그리 말하던 요괴의 황망한 얼굴을 떠올리며 아시타는 낯을 굳혔다. 탐욕스럽고 흉악하고 비정하기 그지없는 요괴의 바람이란 게 겨우 그거였다.
납득이 갈 리가 없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그토록 처참하게 죽이면서까지 요괴가 추구했던 것이 겨우 작은 소녀에게 닿는 일이었단다. 납득할 수 있을쏘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요괴는 혼돈이었다.
요괴는 오로지 이기와 욕망, 혼란의 덩어리일 뿐이다. 구제할 길이 없는 해충이었다. 이타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순수한 악. 그런 것의 안에 타애(他愛)가 존재할 리 없다.
‘하지만… 어찌하여 요괴는 소녀에게 닿기를 바라는 건가.’
공주를 바라보던 요괴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은 혼란에 빠져든다. 야토는 그가 줄곧 품어 온 생각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영문을 알아야 했다. 그 요괴의 진정한 목적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 생각이 그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른 아시타는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고개를 곧게 폈다. 늘어진 소매로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아내며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빛에 붉게 물든 사당을 바라보았다.
육각형의 건물. 네 개의 장지문과 창살이 촘촘히 나 있는 창문…. 처마 끝에는 새끼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디선가 짤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황량한 풍경을 하나하나 살피며 아시타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공주는 줄곧 여기서 지낸 건가.”
여란이 오만상을 쓰며 중얼거린다. 본래는 신녀로 떠받들리어야 마땅한 소녀가 이런 외진 곳에 갇혀 지냈다는 사실이 영 마뜩잖은 모양이다.
아시타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 또한 운명. 인간의 나고 자람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숙명이다, 그리 낮게 읊조리며 그는 부적 다발을 꺼내어 들었다. 그것을 들고 법문을 읊은 뒤 던지자 부적 네 장이 허공을 날아 사당을 둥그렇게 둘러쳤다.
그 장소에 새겨진 과거의 념(念)을 찾아내어 읽어 내려가는 주술이었다. 필시 요괴들이 싸웠던 때의 흔적이 이 장소에 깊게 남아 있을 터. 그는 그것을 찾기 위해 염주를 들어 법력을 불어넣었다.
부적이 화르륵 타오르더니 허공에 붉은 글자를 그려낸다. 그 문자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장소에 가장 깊숙이 패어져 있는 기억 하나를 골라내었다.
아시타는 두 눈을 부릅떴다. 어디선가 바람이 몰아쳐 굳게 닫혀있던 신당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 문 안에는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스산하고 넓은 마룻바닥과 그 위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앙상한 계집아이.
아시타는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자 등 뒤로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힌다. 소녀는 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듯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기만 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녀가 웅얼거린다.
그는 그 자그만 몸뚱이에 손을 대어 보았다. 그녀의 념이 그의 안으로 흘러든다. 소녀에게 유일하게 상냥하게 대해 주던 신녀가 죽었다. 매일 사당 안으로 몰래 음식을 넣어주던 그이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졌다고 한다.
요물의 짓이었다. 그 짓을 한 놈이 찾아와 말하기를, 너를 대신하여 그 여자의 혼백을 먹었다고 한다. 너 때문이라 하였다.
소녀는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짐승이 제 새끼의 손발을 핥듯 매일 저를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던 그 여인도 처참하게 죽었다. 부정한 짓인 줄 알면서도 차마 저를 배 속에서 긁어내지 못한 어미도 죽었다. 모두 죽었다.
대체 왜 나는 태어난 건가. 어째서 세상에 태어나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 왜 사는 것,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이렇게 고통스럽게만 하는 건가.
소녀는 짐승처럼 웅크리고서 울고 또 울었다.
“죄송합니다. 나 같은 것… 때문에… 나 같은 거 때문에… 정말 죄송합니다.”
저를 낳은 죄로 사약을 먹고 죽은 어미의 시퍼런 얼굴이 소녀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저를 키웠다는 이유로 괴물의 이빨에 찢겨져 난자당한 여인의 얼굴도 떠오른다. 머리가 깨져 피를 콸콸 흘리는 여인의 얼굴. 목을 매고 죽은 이의 퍼런 얼굴, 기를 다 빨려 바짝 말라 죽은 여종의 얼굴… 그 참혹한 얼굴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만물을 보는 두 눈이 모든 죽음을 계속해서 눈앞에서 반복한다.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슬픔을, 비통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괴로움으로 피부가 저릿하고 가슴이 찢기었다.
싫다. 더는 이런 거 보고 싶지 않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차라리 죽고 싶어.
그리 비통하게 흐느끼던 소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텅 빈 눈으로 어둠 속을 바라본다. 세상에 존재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황금색 눈이 고요히 일렁거렸다. 소녀가 그리로 손을 뻗었다.
“이제 그만… 나를 가져가라. 나를… 가져가.”
아시타도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컴컴한 그늘 속에 번뜩, 수백 쌍의 붉은 눈동자가 빛난다. 마치 그 허락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들이 어둠 속에서 기어 나왔다.
“그래. 전부 다 가져가.”
그 명령에 요괴들이 일시에 소녀를 덮쳐온다. 하지만 그들은 나눌 줄을 모르는 종족이었다. 한 요괴가 그들을 제치고 뛰어나오며 팔을 휘둘렀다. 소녀를 독차지하려는 셈이다.
그러자 개의 머리를 지닌 요괴가 그 요괴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거대한 원숭이의 모습을 한 요괴가 괴성을 내지르며 몽둥이를 휘둘러 경쟁자를 쫓는다.
아비규환. 소녀를 두고 요괴들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한데 뒤엉켜 엎치락뒤치락하는 그 모습은 마치 폭풍우를 몰고 오는 먹구름과 같았다.
그 장엄하기까지 한 광경에 아시타는 넋을 놓았다. 그들의 존재는 이내 공간의 개념조차 왜곡시켜 사당을 평야처럼 넓혀 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공간을 팽창시켜 놓아도 계속해서 어둠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요괴들의 부피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의 존재가 넘쳐 올라 지붕을, 벽을 일시에 불태워 버렸다. 요괴들의 요력이 기어코 피안의 문까지 열어젖혀 연옥(煉獄)의 업화(業火)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아시타는 무의식중에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과거의 기억일 뿐인데도 그 독한 열기에 일순 숨이 막혀왔다.
그 지독한 불길 속에서도 요괴들은 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괴성과 비명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진다.
도깨비가 참도(斬刀)를 휘둘러대었고 까마귀가 거세게 날갯짓을 한다. 머리가 다섯인 뱀이 그들의 몸통을 조이며 아가리를 크게 벌린다. 그 모든 요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뒤엉키기를 한참, 끝내 한 마리만이 남았다.
마치 거대한 진흙 덩어리를 아무렇게나 뭉쳐 바닥에 패대기친 듯한 형상의 요괴였다. 동족의 몸을 밀어 넣고, 밀어 넣어 터질 듯이 팽창한 배를 한 팔로 움켜쥐고서 요괴가 끄윽끄윽, 괴로운 숨을 내뱉었다.
그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아시타는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산처럼 부푼 배에, 마치 화상을 입어 녹아내린 듯한 흉측한 얼굴, 그 부푼 몸에 붙어 덜렁거리는 기형적으로 야윈 팔다리.
이것이, 야토의 본 모습인 건가.
이 추하고 기이한 괴물이?
출렁출렁거리는 몸을 주체 못 해 바닥을 기며 요괴가 소녀를 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 꼴이 되고서도 포기를 못 해 너덜거리는 손을 소녀를 향해 뻗는다.
“나는 인간이… 인간이….”
아시타는 야토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제 허용량을 초월한 탐식의 대가로 형태를 잃고 녹아내려 가는 실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놓질 못하고 있는 그 열망의 정체는 대체 무어냐.
“나는 인간이 되어… 를….”
“무엇을…?”
“나는 인간이 되어서… 를….”
무엇을 그토록 욕망하는 건가.
그는 요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요괴의 념이 흘러든다. 내장이 모두 불타 녹아버릴 듯한 강렬한 열망에 아시타는 신음했다. 배 속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뇌수까지 완전히 점령하고 있는 의문. 죽음의 끄트머리에서도 차마 놓지를 못하는 단 하나의 바람.
사랑을 알고 싶다.
***
인겁을 뒤집어쓰고 사람을 흉내 낸다고 한들 요괴는 절대로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하여 요괴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모든 요괴들이 탐내 마지않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희란국 왕성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모습을 감추고서 어둠 속에 숨어 공주를 지켜보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인간의 계집아이. 저것을 먹으면 사람이 되어 완전한 육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든 요괴들이 숨어 그녀를 지켜보았다.
당장은 소녀가 가지고 있는 신력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지만 분명 약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집어삼키자.
모든 요괴들이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둘러친 채 기다렸다. 이 미숙하고 어린 천인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를.
아귀 역시 어둠 속에 숨어 그때를 기다렸다. 그는 단 한시도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덧 요괴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계집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면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시커먼 감정. 제가 길러 집어삼켰던 그 소년에게서조차 느껴본 적 없는 집요한 격정이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미움.
그래. 그는 저 아름다운 것이 미웠다.
계집아이는 그날 밤 저를 비추던 그 환한 달과 닮아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홀로 고고하게 빛나며 제 추함을 깨닫게 하는 흰 달과 똑같다.
때때로 소녀의 황금색 눈동자가 어둠 속의 제 모습을 꿰뚫어 볼 때면 요괴는 증오심마저 느끼었다. 바로 눈앞에서 조롱이라도 하듯 빛을 발하며 제 흉한 모습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천상의 향기를 내뿜으며 갈망을 돋우지만 정작 닿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저주스럽다.
소녀가 수줍게 웃을 때면, 슬픈 얼굴로 창밖을 내다볼 때면, 때때로 눈시울을 적실 때면,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며 훌쩍일 때면, 그 감정은 더더욱 격해져 불길과 같아졌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저 미운 것을 먹어 세상에서 없애고 싶어.
오로지 그 생각만이 머리통을 점령하여 요괴는 한순간도 그 음습한 시선을 공주에게서 거두지 않았다.
매일매일 그 하얀 살을 물어뜯고, 그 아름다운 눈알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고, 밤하늘 같은 그 머리칼까지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는 것만을 반복하여 생각하였다. 버러지처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는 그런 시커먼 탐욕만 무럭무럭 키워 온 것이다.
그런 음습하기 그지없는 괴물에게 소녀가 다가온다. 불길 속에서 비참하게 녹아내리던 요괴는, 자박자박 다가오는 그 조그만 발등을 형형한 두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제 품새보다 큰 옷을 질질 끌면서 걸어온 소녀가 한 걸음을 두고 멈춰 섰다. 요괴는 그으으, 하는 괴성을 쏟아냈다.
내게 무엇을 하려는가. 조롱하며 비웃으려 하는가. 저주를 퍼부으려 하는가.
날 적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이어져 온 일에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물큰거리며 치솟는다. 저를 향한 혐오감이 어려 있을 그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마저도 혐오 당하고 싶지 않다.
“너는… 살고 싶은 것이냐.”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잠잠한, 평온하기까지 한 음성이 지척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소녀가 눈물에 젖은 고요한 두 눈으로 가만히 저를 바라본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불길에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리도,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냐.”
자멸해 가는 내게 어떤 의중을 품고 그런 것을 묻나.
그리 대꾸하는 말조차 그으으, 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비통한 외침조차도 그처럼 초라하다.
요괴는 어그러진 얼굴을 더더욱 어그러뜨리며 반쯤 뜯겨나가 말을 듣지 않는 팔을 소녀를 향해 내밀었다. 위장조차 허물어지고 입조차 흐물흐물 녹아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님에도 그리했다. 조롱당하느니 두려움을 받는 편이 낫다.
나를 피해 도망가라. 비참한 꼴이 되어 그 같은 호기를 부리는 저를 공주가 고요하게 올려다본다. 그 얼굴은 언뜻 평온하게까지 보였다. 마치 깊은 호수처럼 잠잠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가 채 닿지 못하고 허공에 떠 가늘게 떨리기만 할 뿐인 그 손을 살그머니 마주 잡았다.
“그리도… 나를 원하느냐.”
요괴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 손을 피해 흐느끼며 뒷걸음질을 치던 소년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저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공포에 질린 얼굴들도 떠오른다.
그토록 흉물스러운 것을 소녀가 조심스레 감싸 쥐고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댄다. 그는 숨을 멈추었다. 팔 위에 난 상처가 아물어갔다. 입 안을 깨물어 제 피를 낸 공주가 그것을 상처에 살금살금 바른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듯 소녀가 그의 몸 위에도 젖은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요괴는 혼란하여 몸을 떨었다. 녹아내리던 살들이 요동을 치며 제 형체를 되찾아간다. 뇌수가 혼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생경한 고통에 몸을 떨며, 어지러운 혼란에 잠겨, 그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고요하게 속삭였다.
“나에게는 없다.”
“흐으으….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영문을 모르는 채로 소녀의 얼굴을 황망히 바라본다. 그녀의 행동은 그의 이해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어째서 내게 손을 뻗는 것인가. 어째서 나를 구하려 하는가. 나는 너를 미워하였는데. 너를 먹으려 하였는데.
소녀의 혀가 쓰린 상처를 핥는다. 마치 짐승이 상처를 핥아주듯이. 보드라운 손가락이 시커먼 피부를 살그머니 어루만진다. 서늘한 머리칼이 제 피부를 감미롭게 스친다.
요괴는 난생처음으로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약동하는 것을 느끼었다. 뜨겁게, 저릿하게,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린다. 그것이 이내 물큰거리며 목까지 치밀고 올라왔다. 넘쳐흐를 듯하여 요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에도 홧홧한 기운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부풀어 오르기만 하였다. 그것을 견디지 못해 그는 손톱이 부러지도록 바닥을 긁었다.
이게 대체 뭐지. 가슴을 태우는 이 뜨거운 열기는, 눈가가 시큰거리는 듯한 이 기분은, 대체 무어냐.
“그러니… 나를 먹어라. 야토….”
그녀가 저를 부른다. 그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제 이름은 아니었다. 그녀가 부른 것만이 제 이름이 되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평생 그리 불리어온 것만 같다.
“더 이상, 눈 뜨고 싶지 않아. 그러니 나를 먹고 사람이 되어서… 네가… 사는 것이다.”
하얀 손가락이, 무엇이든 게걸스레 먹어치워 온 그 흉악한 입가에 살며시 와 닿았다.
이렇게 추한 나를, 어째서 안아 주는 것이냐.
요괴는 가늘게 신음했다. 목 안쪽이 뜨겁다. 눈시울이 달아오르고 두 손은 격정에 떨리었다. 그런데도 움켜쥐지를 못하고 허공만을 헤매는 손가락. 고동치는 심장.
이게 대체 뭐냐. 대체 뭐야. 이런 거 난 모른다. 난 모른다.
요괴는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달과 같은 그 눈 위에 제 모습이 비친다. 기형적으로 뒤틀린 비대한 육체와 기이하게 일그러진 얼굴, 욕망에 달아오른 시뻘건 두 눈…. 그 안쪽에는 바닥없는 구멍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아무리 삼켜도 만족할 줄 모르는 그 입이 쌕 웃는다.
그녀의 눈을 통해 제 본질을 새삼 확인하고 요괴는 고통스레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슴속에서 뜨겁게 부풀어 오르던 것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그 자리를 절망감 같은 것이 대신한다. 그는 온몸을 떨며 흐느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