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창관의 성모 (22)
하루만에 성당으로 돌아온 해무를 맞아준 것은 테레사였다. 예배당의 의자에털썩 앉은 해무가 입을 열었다.
"셴이 구룡방주의 사생아라더군."
그렇게 해무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대."
에이시스의 치료제를 찾기 위한 단서로 생각했단 소녀. 그녀의 정체가 구룡방주의 사생아라는 사실은 예상 밖의 소식이었다. 해무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려 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충격적인 소식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테레사의 모습에는 미동 하나 없었다. 마치 이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런 테레사를 향해 해무는 이어서 말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들은게 있어. 성채의 여자들을 지금까지 밖으로 내보내왔던 조직. 그게 당신들이었다며?"
하지만 그 말에도 여전히 테레사는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어디서 들었니?"
"호두."
"그 아이는......"
"죽었어."
침묵이 예배당에 내려앉았다. 테레사는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해무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로서는 테레사에게 확답을 받아야했다. 설령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 이야기들이 진짜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사실이란다."
테레사는 순순히 인정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지. 성당에 고아들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들을 내보내왔어."
"미쳤군."
해무의 말대로, 성채 밖으로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 없었다. 구룡방의 룰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권력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일할 노예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구룡성채의 권력 구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구룡방의 간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의 체제 유지였고, 그렇기에 허가 없이 성채 밖으로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을 엄중히 금지했다.
그런데 성당은 이런 규칙을 어기고 사람들을 내보내 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보낸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자였다. 성채 안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약자이며, 더욱 학대받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약자들을 돕고자 하는 성당은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을 먼저 탈출시키는데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성채에서 여자들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도구의 기능을 갖는다. 남자들이 구룡방의 권력층들에게 노동력을 상납한다면, 여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상납하는 셈이다.
그런 중요한 자원을 외부로 반출한 조직이 적발된다면, 구룡방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갖고있는 전력을 활용하여 상대를 궤멸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해무는 참담한 기분을 억누르며 물었다.
"왜 그런 짓을 벌인 거지?"
"당연히 저 아이들을 위해서란다."
그렇게 말하며 테레사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당의 안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지금 둘이 나누고 있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채로.
"저 아이들에겐 아무런 죄가 없어. 그저 우연히 성채 안에서 태어났을 뿐이야. 하지만 그런 우연 하나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지. 자유라던가 평온함, 안정감 같은 것들을 평생 모른 채."
테레사의 말대로, 아이들에겐 죄가 없다. 그럼에도 성채 안에서 지옥과도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남자 아이들 중 몇은 살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언젠가는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자 아이들은 창관에서 몸을 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비가 누군지도 모를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성채의 일상이었으니까.
"너는 납득할 수 있겠니? 성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걸 말이야."
"원래 삶은 고통스러운 거야. 그걸 납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도 없지."
그 말에 테레사는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해무의 말은 단순한 충고나 일침이 아니었다. 전부 그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었다.
마리아가 죽고 성당을 뛰쳐나온 열 살짜리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구룡방의 정보원으로 시작했다. 중요하지 않은 첩보나 전언을 전달하는 자질구레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해무는 그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구룡방의 밑에서 일한지 일년 째 되는, 열 한살 때의 일이었다.
을종 살수들이 실수로 놓친 목표가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왔다. 당시 정보원이었던 해무는 뒷골목에서 숨어있었고, 도망치던 목표와 마주쳤다.
평범한 남자였다.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상처입은 남자는 도망치는데 정신이 팔려, 골목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방심한 상대를 죽이는 것은 어린 소년에게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주머니에서 숨기고 있던 칼을 꺼내 남자의 배를 찔렀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컥, 하는 신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해무는 몇 번이고 남자의 배와 가슴팍을 찔렀다.
그렇게 남자는 죽었다.거친 숨을 헐떡이며 시체를 내려다보는 어린 해무의 손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해무는 사람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구룡방의 정식 암살 임무까지 받고, 결국 갑종 살수라는 지금의 위치에 도달해 있었다.
구룡성채에서 말하는 성공한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얼마나 사람을 잘 죽이느냐로 결정되는 삶.
그것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그래...... 물론 네 말도 맞단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필요는있지."
테레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니? 저 아이들에게도 한 줄기 희망은 있어야 해. 성채 안에 신의 손길이 닿는 한."
"당신들이 죽을 수 있는데도? 이 성당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는데도?"
"......."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테레사를 향해 해무는 재차 쏘아붙였다.
"지금 상황은 이전과는 달라. 더 치명적이지. 모든 이목이 여기에 쏠려있다고."
셴을 추적하는 살수가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여자들을 성채 밖으로 내보내온 조직을 캐고 다니는 살수도 있다. 누쿠로와 단하. 두 명이나 되는 갑종 살수가 엮여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획을 속행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갑종 살수가 두 명이나 움직이는건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야. 그 정도라면 이미 구룡방 내부에선 성당을 주모자로 지목해 둔 상황이겠지. 물론 아직은 심증 뿐일지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는건 시간 문제야. 그리고 그 확실한 증거가 밝혀진다면, 치외법권인 성당도 무사하지 못해. 바티칸이나, 심지어는 신조차도 당신들을 구원하지 못 할거야."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구룡성채교구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바티칸 때문이었다. 성채 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구룡방이라 하더라도 바티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움직인다면, 구룡방도 더이상 성당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구원이라...... 뭔가 오해가 있구나."
"오해라고?"
테레사의 말에 해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래. 네 생각과 달리,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란다. 오히려 신의 자비로 사람들을 구원하는게 우리들의 역할이지. 설령 누군가의 방해가 있더라도 말이야. 성직자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니?"
지금 바로 옆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죽음의 위협만으로 계획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건 우리도 알고 있어. 셴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구룡방은 이미 우리들을 조여오고 있었단다. 감시가 심해서 직접 셴을 데려오지 못했고, 그래서 창관의 조력자들에게 먼저 맡길 수 밖에 없었지."
테레사가 말하는 조력자는 호두를 뜻하는 것이리라. 호두 외에도 그림자 속에서 성당을 돕는 조력자들은 여럿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희생당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걸 고려한다면 이 일을 더더욱 중단할 수 없어. 구룡방의 추적이 가까워져 오고 있으니, 앞으로는 점점 더 이 일을 하기 어려워질거야. 그러니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꼭 탈출시켜야 해."
"그렇다면 당신들도 함께 성채를 떠나. 그러면 적어도 죽을 일은 않겠지."
하지만 테레사는 해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만약 우리들이 전부 떠난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니? 성채에는 그들을 받아줄 곳이 필요해. 성채에 남은 사람들을 내보낼 다음 기회가 몇 년 뒤에 다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어차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내보낼 수는 없단다."
"한 번에 내보낼 수 있는 숫자에 한계가 있나 보군."
"구룡방의 감시를 피해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리고 나와 카밀라가 나가는걸 포기하면, 아이들을 네 명은 더 내보낼 수 있지. 그게 낫지 않겠니? 우리처럼 이곳의 삶에 때가 탄 사람들 보다는, 순수한 아이들을 내보내는게 말이야."
해무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레사의 결심을 바꿀 수 없을 거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설령 자신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이 계획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해무에게는 그 뒤에 이어질 상황도 뻔히 보였다. 구룡방은 결국 성당이여자들을 내보냈다는확실한 증거를 잡을 것이다. 그들의 흙 묻은 발이 성당을 짓밟을 것이고, 사람들은 철창 속에 감금될 것이다. 테레사와 카밀라는 물론이고, 고아원의 아이들도.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그 사실에 침음성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참아내며 해무가 물었다.
"대체 누가 이런 미친 짓거리를 처음으로 시작한거야?"
"......모르니?"
테레사가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무는 알지 못했다. 열 살 까지 성당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로 어제 알게 된 참이었다. 분명 자신에게는 비밀로 한 탓이리라.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해무를 향해 테레사가 나지막이 답했다.
"마리아란다."
그 말에 해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리아......라고?"
창밖에서는 첨탑에 매달린 종이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뎅그랑, 뎅그랑 하는 종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