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겜블의 규칙 (5)
구룡성채는 상류층과 빈민층의 공간이 명백하게 구분되는 곳이었고, 그것은 유흥 시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상업구역 8동. 관리들과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들이 몰려있는 곳.
빌딩은 사치와 향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의 주점들은 평범한 성채 주민들이 가는 곳과 판이하게 달랐다. 대부분이 밀수입된 양주나 와인을 취급하는 호화스러운 클럽 라운지였다. 식당 또한 생선회나 소고기같은 고가의 식재료를 메뉴에 올려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최상층에는 구룡성채의 유일한 카지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40층에서 멈춰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내린 해무는 카지노 입구 앞에 멈춰섰다.
카지노 또한 건물에 있는 다른 장소들과 마찬가지로 호화로운 외관을 필사적으로 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룡성채처럼 폐쇄적인 장소에서 바깥 세상의 호화스러움을 백 퍼센트 모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입구 양 옆의 붉은 기둥을 휘감은, 양각으로 조각된 용들은 군데군데 때가 타서 닳아있었고, 바닥을 따라 깔린 붉은색 벨벳 매트에는 낡은 티가 역력했다.
"어서오십시오, 손님. 혹시 저희 카지노에는 첫 방문이신가요?"
해무가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치파오 차림의 접객원이 물었다. 하지만 해무는 과연 저걸 제대로 된 치파오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단추로 잠겨있는 목 카라. 그 아래를 따라 길게 트여있는 슬릿으로 봉긋한 가슴의 볼륨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치마 옆을 따라 길게 이어진 슬릿을 통해서도 엉덩이와 허리, 그리고 골반의 윤곽이 노골적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업장에서의 접객을 위한 복장이라기보다는, 명백히 섹스어필에 치중한 복장이었다.
"아니."
해무는 접객원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몇번 와 본적이 있으니 접객은 필요 없다고 말하자, 접객원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물러갔다.
그 뒷모습에서 보이는 엉덩이의 실루엣을 곁눈질로 슬쩍 훔쳐본 해무는 얼굴을 찌푸렸다.
옛날이었다면 해무의 시선을 꽤나 끌었을 복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중요한 일을목전에 두고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여자로 변해버린 자신의 몸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순간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이내 그 감정을 지워냈다.
업무 중이다. 쓸데없는 감정은 판단을 흐릴 뿐이다.
그렇게 짜증을 가라앉힌 해무는 고개를 들어 카지노 홀을 훑어보았다.
녹색 천을 씌운 게임 테이블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각 테이블에는 노출도 높은 치파오를 입은 딜러들이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둘러앉은 갬블러들은 자신의 손에 들린 카드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쪽에는 라운지 코너도 있었다. 그 쪽에 있는 사람들은 안락한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개중에는 고급 콜걸을 끼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며 해무는 겜블러들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큰 돈을 잃은 듯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감싸쥐는 사람도 있었고,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룰렛 테이블을 응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각자의 게임에열중하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 수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절대 헛짚은게 아니다. 그저 놈들이 조금 늦을 뿐이다. 언제가 되었건, 놈은 분명히 온다.
그렇게 생각하며 해무는 계획을 정했다.
지금 여기에 남한의 요원들이 없다면, 굳이 벌써부터 게임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 목표도 없는데 게임을 해봤자 쓸데없이 돈만 잃을 테니까.
대신 해무는 바 테이블 쪽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잠시후 바텐더가 다가왔다. 바텐더 또한 여자였지만 치파오 차림은 아니었다. 해무처럼 검은색 양복 차림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해무는 보통의 넥타이를 하고 있었지만 바텐더의 목에는 보타이가 둘러져 있다는 것 정도였다.
"주문은?"
"버진 쿠바 리브레."
해무의 주문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바텐더는, 이내 어깨를 으쓱 하고는 얼음이 채워진 잔에 콜라를 가득 따라주었다. 차가운 컵 안의 검은 액체가 격렬히 기포를 뿜어냈다.
"찾는 사람이 있는데."
잔을 받아든 해무가 말했다.
"어제, 혹은 그저께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사람. 바에는 절대 오지 않고, 개점부터 폐점까지 계속해서 게임에만 집중하는 사람."
"음ㅡ 글쎄요. 그런 사람은 잘 모르겠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던 바텐더가 말했다.
"하루종일 카지노에서 지내는 분은 알고 있지만요."
"하루종일 카지노에 있는 사람?"
"네. 분명 손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바텐더는 바테이블 반대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해무는 해무는 바텐더가 가리키는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곧바로 깨달았다.
상대는 여자였다. 나이는 서른살 쯤 되었을까. 머리는 비녀를 써서 틀어올렸고, 잘 맞는 치파오로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접객원이나 딜러들처럼 섹스어필을 위한 치파오는 아니었다. 고급스런 재질로 지은, 제대로 된 치파오였다. 드러낸 어깨 위에는 모피로 만든 숄을 걸쳤고, 입술에는 길다란 담뱃대가 물려 있었다.
"드래곤 레이디."
해무가 상대방의 별호(別號)를 읊었다. 남자가 지배하는 이 도시에서 몇 안되는 유명인사급 여자. 그 중에서도 드래곤 레이디라고 불리는 여자는 단 둘 뿐.
"드래곤 레이디 세브린."
카지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돈을 따, 한때는 출입금지 조치까지 당했던 여자. 구룡성채 역사상 최악의 도박마라고 불리는 여자.
그것이 그녀의 정체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에서 과거의 명성, 혹은 악명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겜블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바에 앉아 바텐더와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한 손으로는 접객원의 엉덩이를 대놓고 주물주물거리고 있었다.
그저 카지노에 죽치고 앉아 성추행이나 일삼다 쫒겨나는 영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해무는 이내 그녀로부터 관심을 껐다. 드래곤 레이디 세브린은 자신의 목표가 아니다. 자신의 목표는 오직 하나, 남한에서 파견한 요원들이었다.
세브린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낸 해무는 카지노의 유일한 입구를 주시했다.
얼마동안 기다렸을까. 콜라에서 이따금 보글보글 솟아오르던 기포가 완전히 잦아들고, 얼음이 전부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물처럼 묽어진 콜라가 담긴 잔 너머로, 세 남자가 입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선두에 서 있는 남자.
짙은 정장과 불량하게 대충 맨 넥타이. 뾰족뾰족한 머리카락과 사납게 뜬 눈.
살수회로부터 받은 자료 안의 사진에서 본 그대로의 외모.
남한에서 파견한 요원, 수호의 모습이었다.
ㅇ ㅇ ㅇ
"오늘은 무슨 게임으로 시작할 생각이야?"
수호가 카지노 홀을 둘러보며 물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은 룰렛 테이블. 색색깔의 룰렛이 돌아가는 화려한 모습과, 그 위에서 볼이 통통 튀며 내는 경쾌한 소리가 겜블러들의 오감을 사로잡고 있었다.
하지만 룰렛을 고르는건 바보같은 선택이다. 룰렛은 실력으로 승률을 높일 수 없는 게임. 오직 돈을 따내는게 목표인 수호와 재이에게 있어서는 최우선으로 피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룰렛 테이블을 지나쳐 걸었다. 그 다음으로 나타난것은 바카라.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력보다 운이 중요한 게임이다.
바카라 테이블도 지나 오픈되어 있는 게임들을 살펴보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블랙잭."
눈앞의 테이블에 막 새 게임이 세팅되고 있었다.
"블랙잭으로 시작할께요."
재이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빈 자리에 앉았다. 먼저 앉아있던 사람들이 새 참석자를 힐끔 훑어보았다. 하지만 재이는 신경쓰지 않고 수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호는 한손에 들고있던 검은색의 각진 가방을 테이블 위에 쿵 하고 내려놓았다.
가방이 어찌나 묵직했는지 단단한 게임 테이블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재이는 잠금쇠에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칩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전부 오십 억원. 어제 단 하루 동안 딴 것이었다.
그 모습에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그들의 눈을 채우고 있는 감정은 탐욕이었다. 많은 칩. 그리고 새파랗게 어린 소년. 도박사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먹잇감처럼 보였으리라.
'그래, 더 몰려들어라.'
겜블러들의 모습을 뒤에서 관찰하며 수호는 생각했다. 이 미끼에 많은 겜블러들이 낚일수록 좋은 일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도전해봤자, 돈을 따는 것은 이쪽이 될 테니까.
카지노에서 운영중인 블랙잭의 룰은 다수의 참가자들이 딜러와 승부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참가자들끼리 서로 경쟁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카지노는 참가자들을 이겨서 돈을 버는 대신, 승리한 겜블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렸다.
카지노의 게임이라는 것이 결국 딜러가 승리하게 되는 게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방식은 오히려 수익이 낮아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사치와 향략이 가득찬 구룡성채에는 카지노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짜 부자들도 많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리고 빌린 돈으로 겜블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동시에 그런 먹잇감들을 노리고 겜블에 참석하는 도박사들도 많았다.
누가 재촉하지 않더라도 카지노에 기꺼이 수수료를 갖다바칠 사람들이 넘쳐나는 셈이었다.
때문에 카지노 입장에서는 딜러가 참가자들과 게임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훨씬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룰 덕분에, 수호와 재이가 다른 겜블러들과 승부하여 돈을 뜯어낼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참석자들이 전부 자리에 앉자 딜러가 카드 셔플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재이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참가자는 네 명 뿐인데 카드를 많이 쓰네요."
"원래는 여섯 벌을 쓰는게 기본이었는데, 옛날에 어떤 손님이 카드 카운팅으로 카지노를 거의 파산 상태까지 몰아부친 일이 있거든요. 그 이후로 열 벌을 기본으로 쓰고 있습니다."
딜러가 웃으며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는 블랙잭을 위해 총 여섯 벌의 카드를 사용한다. 조커를 제외하면 전부 312장의 카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프로 겜블러들의 카드 카운팅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겜블러들이 압도적인 승률을 갖는 것을 방지하고, 보통의 사람들이 게임에 참석하게 유도할 수 있었다.
때문에 재이 또한 여섯 벌을 기준으로 카운팅 전략을 준비해 두었다. 재이의 능력이라면 여섯 벌 짜리 게임을 하면서도 충분히 퍼펙트 카운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곳은 여섯 벌로도 부족해서, 전부 열 벌의 카드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카드 숫자만 자그마치 520 장이다. 당연히 카운팅의 난이도 또한 급속도로 증가한다.
재이가 여섯 벌짜리 블랙잭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워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수호는 긴장된 기분으로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과연 재이가 열 벌이나 되는 카드를 전부 카운팅 할 수 있을까.
그런 둘의 고민에 관계없이 게임은 시작됐다. 참석자가 걸수 있는 판돈은 무제한. 딜러가 게임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변형된 룰이 적용되었다.
먼저, 재이를 포함한 네 명의 사람들이 참가비를 냈다. 가격은 인당 백만원 씩. 참가비라고 하기에는 꽤나 많은 돈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면 그것만으로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정도로.
하지만 제이를 포함해서 테이블에 앉은 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냈다. 전부가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딜러가 카드를 돌렸다. 모두의 앞에 두 장씩의 카드가 놓였다. 재이의 숫자는 17.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보통이라면 스테이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이는 카드를 한장 더 요청했다. 딜러가 건넨 카드는 6.
"23. 버스트(Burst)입니다."
그리고 딜러가 재이의 앞에 놓인 패를 덮었다.
허무한 패배였다. 참가비 백만원만 날린 셈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던 수호는 알 수 있었다. 방금은 의도적인 버스트. 재이는 자신의 숫자를 가늠하는 것보다, 테이블 위에 오픈된 카드가 무엇인지 주의깊게 살피고 있었다. 전부 후반의 카드카운팅을 위한 포석이었다.
이후로도 재이는 게임을 오래 끌고가지 않았다. 대신 적당히 따라가면서 카드를 세는데 집중했다. 그 동안 지나간 라운드는 열 번. 오픈된 카드는 대략 백이십 장 이상이었다.
그 쯤 되어서야 재이가 움직이기시작했다. 지금까지 조금 빠른 페이스로 게임을 마무리짓던 재이는, 이번에는 조금 신중하게 고민하며 플레이하고 있었다.
이번에 재이의 패는 19. 그의 앞에 앉은 참가자 또한 같은 숫자였다. 만약 이대로 게임이 끝나게 된다면 공동 승리로, 판돈을 둘이 나눠가져야 하는 상황.
눈을 감은채 생각하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힛(Hit). 레이즈."
그리고 오억원 어치의 칩을 앞으로 밀어넣었다. 그 모습에 겜블러들의 얼굴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것은 딜러 또한 마찬가지였다.
"힛을 부른게 맞으신가요?"
심지어 재확인을 받을 정도였다. 규정 위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행동이다.
하지만 재이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오억원 레이즈. 첫번째 참가자분 폴드 확인했습니다. 두번째 참가자분 콜 확인했습니다. 네번째 참가자분 콜 확인했습니다."
테이블의 한가운데에 거의 이십 오억원에 달하는 칩이 쌓였다.
그리고 딜러가 재이의 세 번째 카드를 오픈했다.
"세 번째 카드는 2. 블랙잭. 어린 손님의 승리입니다."
딜러가 재이의 승리를 콜했다. 오늘의 첫 승리였다.
수호는 남몰래 식은땀을 닦아냈다. 칼날 위에 선 듯한 아슬아슬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정작 테이블에 앉아있는 재이는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한창 게임 중이었을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칩들을 거둬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게임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처음으로 재이에게 패배한 참가자들은 부아가 치미는 듯,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참가비를 냈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딜러가 카드를 돌리고, 참가자들이 패를 확인하고, 배팅을 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이번의결과 또한 같았다.
"두번째 참가자분 버스트. 이번에도 어린 손님의 승리입니다."
딜러가 재이의 승리를 콜했다. 눈 앞에는 산더미같은 칩이 쌓여있었다.
오십억으로 오늘의 게임을 시작했다. 열 판을 내리 지면서 약 삼억원을 잃었는데, 지금 쌓여있는 돈은 백억 원을 넘어섰다. 열 두번의 게임으로 오십억 원을 벌어들인 것이었다.
"저놈 미쳤군.아까 전 상황에서 카드를 한장 더 받다니."
뒤에서 게임을 지켜보던 제리 창이 수호를 향해 속삭였다. 수호는 성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수호의 감상도 마찬가지였다.
블랙잭에서 자신의 패를 보고 액션을 결정하는 심플 카드 카운팅은 수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카드와 다른 사람의 카드, 그리고 이전에 나왔던 카드들까지 포함하여 즉석에서 승률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 플레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10개의 덱을 사용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그런 조건인데 19를 받은 상황에서 카드를 한장 더 받고 레이즈까지 한다? 이전까지의 총 판돈이 십억 원에 달하고,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그 반을 보장받는 상황인데?
미친놈이 아니라면 하지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지금 재이라는 소년은 그걸 해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막대한 양의 연산 탓에, 얼굴은 고통으로 찌푸려져 있는 채였다.
수호는 재이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받아."
손에 들려있는 것은 초콜렛이었다. 그것을 받아든 재이는 곧바로 포장을 뜯어 입에 넣었다.
소년이 입 안에 초콜렛을 가득 물고 우물우물 녹여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수호는 생각했다.
'아직 부족해.'
재이가 제시한 목표는 천억원. 하지만 이 페이스 대로라면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자신들이 가짜 여권으로 구룡성채에 입성한게 그저께의 일이었다. 그리고 구룡방은 고작 5일간의 체류를 허가했다.
첫 날은 숙소를 잡고 주변 상황을 탐색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고, 둘째 날인 어제 처음으로 게임을 시작해서 오십억을 벌었다.
그리고 오늘이 삼일째 되는 날이다. 앞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날은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 총 삼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구백억 원을 더 벌어야 한다. 누가 봐도 쉽지 않은 목표였다.
'하지만 재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수호는 생각했다. 재이의 나이는 고작 열 여섯살. 나이는 이중에서 가장 어렸다. 하지만 두뇌로는 가장 뛰어날 것이다. 그는 특무국의 정규 행정관이었으니. 고작 열 여섯의 나이 만으로도 뛰어난 두뇌로 지금까지 임무를 성공시켰다. 특무국이 이 작전에 밀어넣은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이겨버렸다는 점에 있었다.
많은 돈을 쥔 호구에게는, 그를 털어먹으려는 겜블러들이 달라붙는다. 하지만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면 당연히 꽁무늬를 뺀다. 지금의 재이가 딱 그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약자처럼 보였고, 그랬기에 세 명의 겜블러들이 열 두 판이나 따라붙었다. 하지만 마지막 두 판에서 크게 이겨버리는 바람에 그들은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잡아먹는 쪽이 아니라 혹시 잡아먹히는 쪽이 아닌가ㅡ 하는 의심 말이다.
약함을 가장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수호가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테이블의 빈 자리에 앉았다.
"나도 끼지."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칼.
지금까지 맞은편에서 게임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
해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