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겜블의 규칙 (1) (16/82)



〈 16화 〉겜블의 규칙 (1)

살수회합이 끝나고 삼일 뒤.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빨랐다.


살수중에 여자가 있다더라. 남자가 여자가 됐다더라. 불치병에 걸렸다더라.


그런 내용의 소문이 자극적으로 포장되어 성채민들 사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해무에게 벌어진 일이라는 것 까지는 모를 터였다. 하지만 소문의 내용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해무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었잖아?"


단하가 빨대로 콜라를 빨아들이며 말했다.


"예상하고 있었지."

대답하는 해무의 얼굴은 부루퉁했다.


해무 또한 당연히 소문이 빠르게 퍼질 것이라는걸 예상하고 있었다. 성채민들은 언제나 자극에 목마른 존재들이었다. 그런 곳에서, 두려움의 존재인 살수가 희귀질환으로 여자가 되었다는 자극적인 소재의 소문이 퍼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두가 타인의 실패담을 즐긴다. 고위직에 앉아 점잔 빼는 사람들도, 칼로 돼지 멱을 따는 백정들도 마찬가지다. 양지에서는 몰라도 음지에서는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로 들뜬 숨을 내쉬며 타인의 실패와몰락에 흥분하는 것이다.


그러니 살수의 몰락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해무의 불만은 단순히 그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건 상관없어. 하지만 헛소문이 퍼지는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해무가 죽일듯이 이빨을 갈며 말했다.

"내가 평소에 여자가 되고 싶어했고, 살수 일로 돈을 많이 모아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걸 위해 성채 밖에도 다녀왔다더라ㅡ. 이딴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는 놈도 있는 모양인데, 어떻게생각해? 형이라면 참을 수 있어?"


해무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눈 앞에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당장이라도 목을 비틀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


단하가 위로했다. 단순히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감정의 동요는 살수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일에 감정이 섞여들어가면 사고가 생긴다.

일에 냉철하지 못했던살수들은 모두 죽었다. 지금까지 해무가 무사히 살아남은 이유는 일에서는 칼같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장점을 잃는다면 아무리 해무라 하더라도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단하는 해무가 최근 들어 감정적이 되는 것이 신경 쓰였다.

"날 말리지 마.성채에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게 얼마나 큰 업보를 쌓게 되는지, 그 빌어먹을 놈들에게 가르쳐 주겠어. 언젠가는 말이지."


해무의 말은 날카로웠고, 단하로서도 물러서는 수 밖에는 없었다.


하긴, 저렇게 분노하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살수라면 자신을 기만하는 놈들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권위를 잃고 정말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알겠어, 맘대로 해. 그럼 일이나 끝내고 다시 보자고."


단하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해무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대충 인사를 마무리한 해무도 찻집을 나와 복도를 채운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섞여들었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서류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사진 몇장과 지령서가 들어있었다.

클립으로 지령서에 꽂혀있는 첫 번째 사진을 확인했다. 한 소년의 프로필 사진, 그리고 여의도로 입국하는 모습이 낮은 화질로 인쇄되어 있었다. CCTV에 잡힌 사진이리라.

작성되어 있는 이름은 수호.

사나운 인상. 삐죽삐죽한 머리칼. 나이는 자신과 비슷한 정도일 것이다. 남한 정보기관의 요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 몇 장이 더해져 있었다. 그것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해무는 지령서의 내용도 확인했다.

[구룡성채에 외부인의 잠입이 이루어졌다. 남한 정보기관의 요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남한은 성채의 마약수출을 억제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남한 요원의 잠입 또한 이 목표의 일환으로 판단되는 바,침입자들을 추적 및 제거하도록 하라.]


명쾌하다면 명쾌한 지시였다.

남한의 정보기관에서 성채 안으로 요원을 투입했다. 마약 수출길을 끊어버리기 위해.

구룡성채는 일반적인 다른 국가들에비해서 턱없이 작았고, 내부 경제 사정 또한 매우 위축되어 있었다. 당연히 내수 시장이 있을리만무했다. 그럼에도 구룡방이 융성하여 성채를 지배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부가가치 상품의 생산 및 수출.


그 한 가지 사업 만으로도 구룡방은 타 국가와의 교역에서 매우 큰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고부가가치 상품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마약.

성채 내부에서 마약을 만들고 이를 수출한다. 그것이 바로 구룡성채의 주 수입원이었다.


구룡성채가 무역으로 막대한 돈을 번다면, 막대한 돈을 지불하는 곳도 분명 있을 것이다. 바로 중국과 남한이었다.

특히 남한에게 있어서 매년 수천억의 돈이 여의도로 빠져나간다는건 버틸 수 없는 출혈일 것이다. 그것이 남한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였다. 그 정도로 남한 입장에선 구룡성채가 눈엣가시일 것이다.

때문에 자신들의요원을 잠입시키는 것도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리라.

하지만 해무에게 있어서 그런 내용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표가 남한 정보기관의 요원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노리는 것이 성채의 마약관련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두가지 사실이 핵심이었다.

해무는 생각했다. 지령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남한의 요원은 성채 내부에서 마약 조직을 직접 타격할 계획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말단 조직부터 접근해야 한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해무의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파악한 마약판매 조직들의 근거지가 그려졌다. 대부분 특수 용도로 지정되어 미활용 상태인 기타구역이었다. 혹은 적어도 사람이 붐비지 않는 상업구역이거나.

그리고 마약조직 근거지 중 어느 곳으로 향할지 결론을 내린 해무는 방향을 틀어 망설임 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멀지는 않았다. 한 이십 분 정도 걸었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노후화로 반쯤 무너진 건물이었다.

예상대로 주변은 조용했다. 당연히 거주민은 없었다.


해무는 기억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건물은 대부분 부서졌지만  몇개 정도는  형체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져있던 그 장소에 도착했다.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잠시 후, 눈높이에 위치한조그만 칸막이가 열렸다.


칸막이 너머로 부릅뜬  두 개가 보였다.


"파랑새를 사러 왔는데."

해무의 말에 안쪽의 남자는 힐끔 옆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카나리아는 어떠한지."


"죽은 걸로 사겠어."

칸막이가 다시 닫혔다.


잠시 후, 이번에는 문이 열렸다. 해무는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쾅 하고 문이 닫히며 세 명의 남자가 해무를 둘러쌌다.


"구매상이 아니군."


왼쪽의 남자가 말했다.

"중국 놈도 아니고."


오른쪽의 남자가 말했다.

"심지어 사내 놈도 아니군."


마지막으로 가운데 남자가 말했다.

그 모습에 해무가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내가 양놈이건 중국놈이건, 혹은 설령 계집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네놈들은 약을 팔면 그만일텐데."


"물론 중요하지. 네놈이 함정 수사를 벌이고 있는 공안청 수사관이 아니란 증거가 있나?"

남자의 말에 해무는 실소를 흘렸다.

구룡성채에서도 마약유통은 범죄였다. 마약판매조직 또한 당연히 범죄조직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바퀴벌레처럼, 성채의 이곳저곳 어두운 틈새에 몸을 숨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만 드러나는 모습일 뿐. 실제로 구룡방과 마약판매조직은 밀월 관계였다. 각 마약조직은 사실상 구룡방 전매청이 관리하는 말단부서들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공장에서 약을 대량 생산하면, 그걸 전매청의 관리 하에 분산된 조직들이 나눠갖는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중국과 한국에서 넘어오는 밀매상들에게 팔린다. 나머지 일부는 성채 안의 거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주민들은 중독되고 고통받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쨌든 구룡방은 돈을 번다. 아주 짭짤하게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해무 또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누굴 병신으로 아나. 공안청 수사관이 너네를 털어? 어차피  똑같은 놈들인데."

그 모습에 세 마약상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찾아온 손님이 단순한 마약 소매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보다는 좀 더 내부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가운데에 서 있던 남자는 해무의 목덜미로 코를 가져갔다. 그리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약쟁이는 아닌데. 무슨 일로 찾아왔지?"


"안타깝게도 네놈들 약을 사러 온  아니야."


"그럼?"

"살수회에서 왔다."


해무는 거리낌없이 신분을 밝혔다.


"방의 명에 따라 업을 수행 중이니 협조에 줬으면 좋겠군."


하지만 마약상들은 해무의 요청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하이에나처럼 낮은 웃음을 흘리며 해무를 비웃고 있었다.

"계집이 살수가 될 수 없음은 어린아이도 아는 바. 네년의 말은 헛소리에 불과해."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며 해무는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저들은 아직 소문을 못 들은 모양이었다. 살수 중에 에이시스에 걸려 여자가 된 자가 있다는 내용의 소문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애청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곳은 구룡성채.

폭력이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장소였다.

해무가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동시에, 세 명의 사람이 일제히 총을 꺼내들었다. 해무의 총구는셋 중 조장으로 보이는 가운데 남자에게. 그리고 나머지 두 마약상의 총구는 해무를 향해 있었다.

"다시한번 말하지. 방의 명에 따라 업을 수행중이다. 본 살수에게 협조해라."


"방의 명이라."

조장이 웃음을 흘리며 해무의 말을 되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설령 네년이 지껄이는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네년은 방의 명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회주의 명을 따르는 것이겠지."

"궤변이야. 회주 또한 방의 명으로 살수회의 장을 맡는다. 회주의 명이 곧 방의 명이다.나 또한 회주의 지시를 따르니, 응당 네놈들도 협조해야  거다."

"살수회의 지령따위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할 일이 있다. 방해하면 죽여버리겠다."


조장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해무는 오히려 여유로운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하염없이  있는걸 보면 누굴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로군. 조금 있으면 거래가 있을 예정이지 않은가? 이대로 나와 총을 꺼내든 채 대치하고 있으면 손님 받는건 물건너간 일일텐데."

해무의 말에  마약상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해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살수와 드잡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들에게있어서는 약을 파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과연 이대로 살수와 대치 상태를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마약을 구매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까.

그렇게 머릿속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노크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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