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살수회합 (3) (11/82)



〈 11화 〉살수회합 (3)

진료실을 뛰쳐나온 해무의 발걸음은 빨랐다.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대체 무엇에 대한 분노일까. 아니, 이게 정말 분노이기는 한 걸까?

생각해본 해무는 정정했다. 분노는 아니었다. 분노보다는 짜증에 가까웠다.


상황이 맘에 안들었다. 여자가 된 것도,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단하도, 그리고 당황해서 어찌할  모르는 자신의 모습도. 전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짜증이 나는 것이다.


분노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뭐든 부수고 때려서 화풀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이 짜증은 그렇지 못했다. 대상이 없었다. 굳이 있다면 자기 자신? 이 몸뚱아리?

웃기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던 해무는 위화감을 느꼈다. 복도의 풍경이 평소와는 무언가 달랐다. 그리고  이유가 달라진 눈높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키가 172쯤 됐다. 하지만 지금은 165가 조금 넘을까. 거의 5센치 가까이 키가 줄어든 셈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보여지는 풍경이 체감될 정도로 바뀌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닌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은근히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두려움이 섞인 시선이었다면, 지금은 관심과 흥미가 서린 시선이었다. 사람들은자신들의 시선 숨기며 은근슬쩍 훔쳐보고 있었지만, 예민한 해무의 시각에는 그런 모습들이 전부 보였다.


그리고 이 또한 자신이 여자가 된 탓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자, 한층 짜증이 차올랐다.


지금처럼 기분이 더러울 때면 과거에는  가지 선택이 있었다. 술을 마시거나, 혹은 창관에 가는 것.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 창관에 갈 수 있을 턱이없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술 뿐이었다.

상업 구역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이었지만 술집을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그 탓인지 손님은 없었다. 해무는 곧바로 카운터 석에 앉아 주문했다.

"백주."


개점 준비중이던 점주는 미간을 잠시 찌푸렸으나 이내 주문을 받았다. 백바에 늘어서 있는 술들 중 하나를 꺼내 잔을 채웠고, 잠시 후 투명한 술 한잔과 소금을 뿌린 땅콩  접시가  앞에놓였다.


해무는 점주가 내놓은 잔을 노려보았다. 마치 그게 짜증의 원인이도 되는 것처럼.


누가 봤다면 마치 잔을 당장이라도 깨부숴버리고 싶어하는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무의 표정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점주도 잔을 내놓은 이후로는 다시 개점 준비에열중하고 있었다.


해무는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젠장....."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걸까.

전부 오조 놈 때문이다. 살수회 담당 관리는 자신이 일을 빨리 처리 못했기 때문에 오조가 죽은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오조가 만약 일을 빨리 처리했더라면, 자신이 그 빌어먹을 주사를 맞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전부 오조 때문이다.


"더."

해무가  잔을 내밀며 말했다. 주방 안쪽에서 채소를 다듬던 점주는 불쾌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다시 잔을 채워주었다.


또다시 해무는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담당 관리 놈도 맘에 안든다.  빌어먹을 일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살수로서 구룡방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는걸 알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규칙따위 엿이나 먹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B지구로 넘어가서 개같은 꼴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봤자 이제와서는 전부 소용없는 일이다. 할  있는 것은 3개월이 지나기 전까지 치료제를 찾는 것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취하고 싶었다.

"주인장, 한잔 더. 아니 차라리 그냥 병째로ㅡ"

해무의 주문은 이어진 소란에 묻혔다.


술에 취한 남자가 소리치며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옆에서 또다른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구룡방 관리인가.'

남자의 모습을 힐끗 확인한 해무는 생각했다.

취한 남자는 관복 차림. 그렇다면 뒤를 따르는 것은 수행원일 것이다.

관리 쪽은 보통 키에 보통의 몸. 적당히 배에 살이 찐 걸 보면 무력을 행사하는 직렬은 아니다. 다만 옆에서 그를 호위하는 수행원 쪽은탄탄해 보였다. 무기 보유 여부는 미확인.


그렇게 상대의 전력(戰力)을 탐색한 해무는 신경을 껐다. 오랫동안 살수 일을  오면서 몸에  버릇이었다.

관리라고 해봐야 높은 직급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높아봤자 고작해야 7급 정도일까. 그 정도라면 길바닥에서 거들먹거리고 다닐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갑종 살수 앞에서는 숨을 죽이고 행동해야 할 위치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해무 옆에 앉았고,  옆에 수행원이 앉았다. 관리가 떠들어댈 때마다, 알콜을 흠뻑 머금은 뜨거운 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점주가 관리 앞의 컵에 맥주를 따랐다.

해무는 관리의 직급이 7급 정도로 높지 않은 수준일 것이라 판단했지만, 그것은 박한 평가였다. 살수회주 같은 고위 관료를 마주하는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7급 정도라면 꽤나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녀도 시비털릴 일이 없을 수준이었다. 아마 자신이 헤집고 다니는 거리가  세상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이 곳에서도 변함이 없는지, 관리는 주변 상관 않고 잔을 흔들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관리의 팔꿈치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는 것을 느끼며 해무는 얼굴을 찌푸렸다.


 있어봤자 기분만 잡치겠군.

그렇게 생각한 해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할 때, 관리가 말했다.


"여기는 이른 시간부터 작부도 손님으로 받는가?"


그리고 해무는 관리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관리의 시선은 자신을 훑고 있었다. 얼굴. 가슴. 그리고 엉덩이라 허벅지까지. 자신이 점수매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생생히 느껴졌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마침  됐구나. 시커먼 사내 둘 뿐이라 외로웠는데. 이 몸의 시중을 들지 않겠느냐."


그 황당한 체험에 반쯤 입을 벌린 채 굳어서 있던 해무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꺼져."

이번에는 관리와 수행원이 황당해할 차례였다. 아무리 관리가 무례하게 말을 걸었다 하더라도, 감히 술집 작부 따위가 구룡방 관리를 향해 폭언을  수는 없었다.

곧바로 옆의 수행원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관리는 수행원을 만류하며 다시 말했다.

"천한 작부 주제에 비싼 술을 마시는구나. 어디 한번 따라봐라."


관리가 자신의 빈 잔을 해무에게 내밀었다.

해무는 병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관리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병이 산산조각났다. 다행이 관리의 머리통은 산산조각나지 않았다. 대신에 머릿가죽이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수행원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호신용 쇠막대기를 품 안에서 꺼내든 채였다.

해무는 수행원의 쇠막대를 피하고 무릎 옆을 발로 찼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메마른 소리와 함께 부러진 다리뼈가 가죽을 찢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애처럼 비명을 지르는 수행원의 커다란 머리통을 테이블에 내려찍었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몸이 풀리며 바닥에 널부러졌다.


"이 씨발년!"


앞에서는 정신을 차린 관리가 악을 쓰며 깨진 병을 휘둘렀다. 그걸 피해 한발짝 물러섰다. 뒤에서는 식칼을 들고 카운터 밖으로 뛰쳐나온 점주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점주의 팔을 꺾여 쓰러뜨리고 손에 쥐고있던 식칼을 빼앗아 관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끄아아악!"


관리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식칼이 관리의 손을 꿰뚫고 카운터석 테이블에 박혀있었다.

점주와 수행원은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고, 잦아든 소란 속에서 관리의 흐느낌이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해무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공안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ㅇ ㅇ ㅇ







공안들은 당혹감을 느꼈다. 구룡성채의 그 누구도 공안과 시비붙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업구역 7층의 한 주점에서 마주한 계집은 달랐다. 서슬퍼런 공안의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격렬하게저항했다. 그리고 두 명의 팔을 부러뜨렸고, 한 명의 머리통을 찢어놨고, 또  명을 기절시켰다.


구룡방 공안청의 위엄에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공안은 자신이 당한 치욕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때문에 안그래도 잔혹하기로 유명한 공안들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고작 계집 하나였다. 부끄러움을 느낄 법 했지만, 공안의 자랑은 숫자였고 그 장점을 절대로 숨기지 않았다.


서른명 가까운 인력이 투입되었고, 아낌없이 폭력을 사용한 끝에 계집을 체포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근처 공안소의 취조실로 끌려온해무의 몰골은 상처와 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해무는 의자에 묶인 채로 고개를 들었다. 공안의 시선이 한참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압적인 태도. 하지만 해무는 주눅들지 않았다.


"날 건드린걸 후회하게  거다."

해무의 말에도 공안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고작 계집의 협박 따위를 신경쓸 공안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계집이 구룡방과 계약한 갑종 살수라면 얘기가 다를 것이다.


해무의 품 안에서 지갑을 찾아낸 공안은그것을 꺼내 펼쳤다. 안에는 신분증이 있었다. 자신을 증명해줄 신분증, 살수 등록증이. 그리고 공안이 지갑과 자신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보며 해무는 이를 갈았다.


"이제 니가 건드린게 누구인지 알겠냐, 이 버러지같은ㅡ"


해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공안이 손을 휘둘렀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해무의 목이 돌아갔다.


해무는 입을 뻐끔거렸다.뺨을 맞았다.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였다. 황당함이었다.


공안 나부랭이가 감히 갑종 살수의 뺨을 쳐? 미쳐버린건가?


하지만 공안은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극히 상식적이었고, 때문에 얼굴이 터질 듯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친년, 방의 관리를 폭행하는걸로도 모자라 살수의 지갑을 훔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남자가 여자로 변했다는 사실을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등록증  살수가 하루 사이에 계집으로 변해 눈앞에서 묶여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보다는 계집이 살수의 신분증을 훔쳤다는 가능성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에이시스의 발병율은 0.001퍼센트. 절대 널리 알려진 병이 아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존재에 대해 알고, 그보다 더 적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었다.

관리의 생각은 당연한 일이었다

곧바로 무참한 폭력이 이어졌다. 관리는 주먹으로, 발로, 계집의 몸뚱아리를 쉼없이 때리고 찼다.

해무는 머리를 맞았다. 얼굴을 맞고, 가슴을 맞았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었다. 몸은 의자에 단단히 묶여있는 채였다.


"이 개새끼야, 내가 살수라고......."

해무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공안을 자극할 뿐이었다. 공안이 머리채를 움켜쥐고 뜯어낼 듯이 잡아당겼다. 해무의 목이 뒤로 홱 꺾였다.


"이 씨발년, 다시는 개같은 짓거리를 못 하게 만들어주마."


"좆 까."

해무가 공안의 얼굴에 피 섞인 침을 뱉었다. 그것으로 공안의 실낱같은 마지막 인내심이 끊어졌다.


공안의 주먹이 아랫배를 강타했다.


순간 눈앞이 점멸했다.

해무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살수의 억누른 신음이 아닌, 길거리에 널린 작부들이 눈물과 함께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많은 고통을 느껴왔다. 살수라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건 해무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충격이었다.

순간 온몸의 모든 솜털이 삐죽 설 정도의 고통. 면역이 되어있지 않은 고통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허리가 덜덜 떨렸다.

하지만 인내심이 끊어진 공안의 분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공안이 또다시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걸 본 해무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깐ㅡ"

공안의 주먹이 다시한번 해무의 아랫배를 꿰뚫을 듯이 찔렀다. 조금 전 보다도 더 강하게.


이번에는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못했다. 아랫배를 넘어 횡격막과 폐까지 충격이 퍼졌고, 입에서는 풍선이 바람빠지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하반신이 경련했다. 다리가 제멋대로 바들바들 떨었고, 구두가 바닥을 긁으며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풀린 방광에서 천천히 오줌이 흘러나왔다. 엉덩이와 허벅지가 흥건하게 젖기 시작했다. 검은색 정장 바지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검은 얼룩이 천천히 퍼져나갔다.

공안은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해무의 가슴팍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의자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해무는 그때까지도 계속해서 움찔움찔 경련하고 있었다.


"유치장에 처넣고, 내일 해가 뜨자마자 바로 옮겨."

명령을 받은 공안 둘이 의자에서 해무를 풀었다. 그리고 질질 끌어 유치장 안쪽에 던져넣었다.

의자에서 풀려났지만 팔은 여전히 등 뒤로 묶여 있었다. 해무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아랫배의 격통에 몸을 웅크린 채로 숨을 꺽꺽거렸다.

고통을 다스리는 법은 안다. 신경이 전하는 신호를 무시한 채 심호흡을 하면 된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폐는 공기를 들이쉬고 내뱉은 일상적인 작동조차 불가능했다.그저 공기를 가득 삼킨 채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고, 짧은 숨만을 거듭 헐떡였다.

"뭐야 이건."

술에 취에 유치장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남자 하나가 고개를들었다. 지저분한 남자들이 널부러져 있는 유치장에 소녀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그 사실에 몇몇 남자들이 히죽거리며 구경했다.

몇몇은 구경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유치장에서 재미 볼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남자들의 손이 해무를 더듬었다. 그 느낌에 정신을 차린 해무가 발을 휘둘렀다. 한 명이 구둣발에 얼굴을 맞고 코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를 악문 채, 취객의 손길을 떨쳐내는 사투를 계속하며 해무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 새끼들은 자신이 남자라는걸 알까? 분명 모를 것이다. 알았더라면 남자를 상대로 저런 짓거리를 시도할 리가 없겠지.

공안들은 유치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차피 전부 쓰레기들이나 마찬가지다. 쓰레기들끼리 어떤 짓을 벌이건 상관 없었다.

그리고 취객 몇을 발로 차서 쓰러뜨린 해무는, 유치장 구석퉁이를 향해 기어서 벽을 등지고 앉았다.

아직도 취객 몇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해무는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당장이라도 그놈들을 찢어죽일듯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다른 놈들이 자신에게 손대는걸 피하려면, 여길 나갈 때까지 이렇게 깨어 있어야  것이다.


긴 밤이 될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