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프롤로그 (1/82)



〈 1화 〉프롤로그

내가 죽음의 음산한 계곡을 걸어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시편 23:4)


[거주구역, 14동 1022호]


틀리지 않고 제대로 찾아왔다.

해무는 시간을 확인했다. 손목시계의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오후 3시 58분.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복도에는 창문 하나 없었다. 때문에 한낮임에도 건물 안은 어두침침했다. 구룡성채의 건물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해무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무는 그의 옷차림은 온통 검정 일색이었다. 정장과 셔츠, 넥타이부터 구두까지 전부.

반면 눈썹과 머리카락은 새하얀 은발이었다. 때문에 얼핏 보면 선이 가는 소년의 머리만이 어둠속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무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째깍거리는 시계소리가 적막한 복도에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연기를 차례 빨아들인 해무는 담배를 비벼끄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거의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시곗바늘은 3시 59분 50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해무는 목걸이의 십자가 펜던트에 입을 맞추고 넥타이 아래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오십 육,
오십 칠,
오십 팔,
오십 구,
육십.

쾅, 하고 문고리가 부서지며 문이 열렸다. 해무는 안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아무도 없었다.

총구의 방향을 유지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에 깔린 마루가 삐그덕거렸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은 고작 손바닥만했다. 그 옆에서는 누군가가 쓰러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오조."

해무가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어깨에 한발, 가슴팍에 두발.

가는 숨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것도  멈출 것이다. 해무는 주변을 경계하며 다시 안쪽으로 이동했다.

삐그덕,

누군가가 있다. 해무는 멈춰섰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살수로서의 감은 누군가가 안쪽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해무를 향한 총구가 불을 뿜었다. 폭음과 함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이 시멘트 벽에  박혔다.

해무는 몸을 낮추고 달렸다. 고작해야 세걸음 앞. 그곳에 자신을 향해 발포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총구가 해무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해무가 빨랐다. 양손으로 쥔 총을 창날처럼 찔렀다. 강철로 들어진 총신이 남자의 가슴뼈를 쪼갰다.

남자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뒤에 또 한놈. 팔을 꺾어 부러뜨리고, 마지막으로 숨어있던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44구경 매그넘에 정강이를 꿰뚤린 남자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반쯤 끊어진 다리가 무릎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순식간에 쓰러진 세 명의 습격자들. 해무는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총구가 정확히 세 번 불을 뿜었다.

그것으로 세 명이 죽었다.

한 호흡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사위는 침묵에 잠들었다.조금 거칠어졌던 해무의 호흡이 다시 잦아들었고, 방 안을 떠다니던 먼지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해무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오조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가 맥박을 확인했다. 숨이 끊어져 있었다.

자신을 제외하면  곳에서 숨을 쉬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누군가가 쾅 하고 옷장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해무는 지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알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빗나갔다.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창문 밖을 향해 몸을날렸다.

해무도 곧바로뒤를 따랐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몸을 날린 남자가 맞은편 건물 창틀을 넘어 안쪽으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너편과의 간격은 약 5미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빌딩 사이의 좁은 틈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었다.

거의 3층 정도 높이의 쓰레기 더미. 하지만 떨어지면 죽을 것이다. 그 정도로 10층은 높았다.

창문으로부터 걸음을 크게 물러선 해무는 한차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달렸다.

도움닫기와 함께 창문 너머로 도약한 해무의 몸뚱아리가 건너편 건물 안으로 안착했다. 몇 차례 바닥을 구르는 거친 착지였으나 어쨌든 무사했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달렸다. 남자는 빨랐지만 해무 쪽이 더 빨랐다. 둘 사이의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앞서 달리던 남자는 문이 열린 방 안에 몸을 숨겼다. 해무도 뒤를 따라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뒤에서 날아온 갑작스런 공격에 바닥을 굴렀다.

해무와 뒤엉킨 스테인리스 선반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선반이 무너지며 쏟아진 실험용 기구와 앰플들이 깨져 바닥에 푸른색 약물의 웅덩이를 만들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해무는 남자의 발에 가슴을 맞고 다시 쓰러졌다. 위에 올라탄 남자가 커다란 주사기를 움켜쥐고 휘둘렀다. 안에는 파란색 약물이 담긴 채였다.

해무는 이를 악문  양 손을 들어 남자의 팔을 막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 사이로 힘이 오갔다.

남자가 오른손에 체중을 실어 누르자, 주사기 끝의 굵은 바늘이 천천히 해무의 어깨를 파고들어갔다.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악문 이빨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해무는 남자의 팔을 막고 있던 한쪽 손을 놓았다. 그러자 주삿바늘이 한층 더 깊이 파고들었다.

고통으로손이 덜덜 떨려왔다. 해무는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바닥에 떨어뜨렸던 총에 손끝이 닿았다.

이제 바늘 끝은 거의 뼈에 닿을 정도였다. 팔을 뻗어 총을 주워든 해무는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폭음과 함께 남자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그제서야 턱까지 차올랐던 숨을 토해냈다. 긴장과 고통으로 굳어있던 몸이 한순간에 이완됐다. 아드레날린으로 억눌렀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지친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 조차 힘겨웠다.

잠시 후, 해무는 여전히 자신을 누르고 있는 머리 없는 시체를 밀어냈다. 철푸덕 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떨어진 시체가 바닥을 굴렀다.

몸을 일으키려던 해무는 힘이 빠져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어깨에는 주사기가 박힌 채였다. 그것을 뽑아 바닥에 내던지자 산산조각나며 바닥에 흩어졌다.

정체모를 실험실  가운데. 그곳에서 마지막 목표를 처리한 해무는 품 안에서 목걸이를 꺼내쥐었다.

멀리하지 마옵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그렇게 기도를 마친 해무는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오늘도 일을 끝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