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5화 〉#26 굳게 닫은 문. (3) (125/128)



〈 125화 〉#26 굳게 닫은 문. (3)

“아, 엘리스.”

나는 도둑이 제발걸린  마냥 움츠러 들었다.

“…페스틴, 당신 정말….”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마치,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

나는 엘리스의 입이 움직여지길 바라며 가만히 서있었다.
순전히,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 보자는 취지였다.

“말도 없이 사라지면….”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도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길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정지었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복한 기대를 조금이라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형식적인 사과를 하며,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요. 걱정을 시켰네요.”
“…됐습니다. 멀쩡한 모습을 봤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채로 등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말없이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붙잡아야 할까? 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왜, 화를 내는 걸까.

* *

“그래서 페스틴… 어떻게 된거야?”

토니가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던 내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그가 조용히 물었던 까닭은,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의든, 단순한 호기심이든 하룻밤 사이에 보여주었던 나의 태도는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그들의 집요한 시선을 무시한채로 계속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자, 참다못한 토니가 나에게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냥 지쳐서 산책 좀 하다 왔어.”
“…산책? 꽤나 오랫동안 했네.”

토니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평소의 그로 돌아왔다.
그 만큼은 어느정도 나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했다.
불필요하게 토를 달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럴 것 같았다.

“…그랬구나.”

옆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는 페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 내가, 오늘 밖을 돌면서 순찰을 하는 일정을 빼먹고 홀로 방황한 내가,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나는 감이 오질 않는다.

누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소리가 들렀다.
어찌나 세게 일어선 것인지,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렀다.
조용히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던 식당안의 분위기를 깨는 소리에, 일제히 손짓을 멈추었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페스틴.”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대답도, 목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지도 않은채로 식사를 속행할 뿐이다.

“어이… 이젠 무시하기 까지냐?”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렀다.

하아…

소란을 피우는 것은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소음을 내며, 주위에 폐를 끼치는 행동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다.

“…당신의 말에 귀기울인 다면, 제가 이득이 될게 있습니까?”
“…? 뭐, 뭐?  자식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브란도.
그는 나에게 격분하고 있었다.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으로 일을 위해서 기분을 전환시키고, 계획의 일부를 달성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다 왔을 뿐이다.
그는 나에게 뭐라 할 자격이 없다고 느껴진다.
나에게 그는, 소중한 사람이 아닐 뿐더러,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뿐인 사람이다.
그런 그와 불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라고 느껴졌다.

“고작, 산책이라는 것 때문에 중대한 일을 빼먹다니, 네놈은 팜 녀석의 제자라고  자격이 없다!”
“…사람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제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며, 지금도 그렇게 할 마음이 가득합니다.”
“…?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거냐.”

식당에 있던 전원이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방 안쪽에서 일하던 메이드 아주머니들도, 엘리스도, 페퍼도, 토니도 그리고 마녀들도 말이다.

“…발견했습니다. 비옥… 아니.”

유토피아.
제시 아주머니의 여관의 이름이다.
 단어는 사람들의 이상이 담겨져 있는 나라.
모두가 바라고 꿈 꿔올 만한 나라를 가리킨다.

“유토피아… 라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갑자기 그게 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인지, 테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에게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반응보다 나의 말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그것에 걸맞는 ‘땅’을 발견했습니다. 아직도… 아직도 믿겨지지 않지만… 인간을 제외한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을요.”
“…? 생명…이라고?”

안토리오가 적잖게 당황하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며 대답해주었다.

“틀림없는 동물… 동물이 있었어.”

나의 입에서 나온 ‘동물’ 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식당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무, 뭣!”

테리스가 잔뜩 당황하며, 손을 떨기 시작했다.
식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한순간에 식당 안은 소란스러워 졌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페퍼는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벌리며 나에게 물었다.

“무어라고!”

브란도가 식당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외쳤다.
나는 그의 반응에 태연하게 반응했다.

“제가 미친게 아니라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알아보고, 확실히 하기 위해서 돌아다녔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건에 관련된 목표는 배를 타고 밖으로 탐험을 나섰던 그 사내를 만나는 것 밖에 없었다.

“…아까 산책이라고….”
“실패했습니다. 정보를 얻을  있는 사람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한지 오래였습니다.”

나는 조금 어두운 목소리로 그 사실을 담담히 내뱉었다.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이상한 거짓말을 하는군요.”

테리스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나를 모함했다.

“어찌보면 그렇게 되겠네요. 하지만 저는 저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잘못을 숨기고픈 마음이 들어도, 그럴 생각은 전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증거가 있는거야?”

포드가 조용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지금 즈음이면 없겠지.”

나도 조용히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제가 따로  이야기를 나눠야  것 같군요.”

조이드가 나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몇몇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페퍼가 걱정스러운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 보았지만, 나는 애써 웃어보였다.

“이제 부터 시작이야.”

* * *

나의 발언으로 시끌벅적 해진 왕궁 내부는 좀처럼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페스틴 군~”

그에 반해 왕이라는 작자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여전히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네.”
“그러니까… 내가 들은 말이 사실임은 틀림없지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의 확고한 대답에 조이드가 뒷받침 해주었다.
학생과 선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이곳은, 나와 왕과 조이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근처에 오지 않았다.

“흐음… 그렇단 말이죠…. 일단은, 믿겠습니다. 아무래도 요새 페스틴 군이 활약을 해주기도 했고 말이죠.”

활약이 아니라, 함정에 마구 걸려들었었지.

“…하지만… 괜찮을까요?”

뜬금없는 조이드의 질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그들의 대화와 표정과 같은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럼요~ 제 계획의 일부인 걸요~”

계획?

“송구하지만… 계획이란 것은…?”

나는 공손하게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묻는 척을 했다.

“…후훗…. 현재 조금 잠잠해 졌지만, 왕궁에 있는 국민들의 불만이 거셌죠.”
“그렇죠.”

조이드는 긍정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주려고 했죠~ 그런데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었는데….”

왕은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아주 소량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결국 페스틴 군이 찾아주었네요! 저는 정말 기쁘답니다?”

밝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잠시 내려다 보고는, 순진무구한 나를 상상하며 손을 잡았다.

“아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흠흠, 선생들과 학생들에게는 내가  전달할 테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면 해요. 일종의 극비 안건이라…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일리있다. 라고 느낄 정도로 그의 감정과 표정이 나에게 전달 되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먼저 왕께 아뢰었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나는 죄책감을 가진 척을 하며,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아닙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요~”

왕은 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는 토닥거렸다.

우웅—

어…?

순간적으로 뭔가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서 왕을 보려고 했지만, 나의 온 몸의 직감이 그대로 있으라고 외쳐대었다.

“…됐나요?”

조이드의 음성이 들렀다.

“…페스틴 군? 이제 고개를  들어요…. 괜히 내가 더 미안해 지는 것 같아요….”

부드러운 왕의 음성이 들리자, 나는 굳혔던 몸을 피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고개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자, 왕과 조이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푹 쉬어요, 큰 일을 당했는데도…. 왕궁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았던  이군요….”

왕궁이 아니라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가, 감사합니다….”

나를 배웅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한발자국씩 발걸음을 떼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

“페스틴.”
“응?”
“아까,  불려간거야?”
“어?”
“뭔가… 큰일이 나서 네가 불려갔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상하다.
페퍼의 물음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방금 전의 나는 어디에 있다가 온 것이지?
내가 ‘특별한 일’을 기억하지 못할리가 없었다.
나의 기억 일부분이 떨어진 것처럼 뭔가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의 일에 대한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이상한 상황을 일단은 넘기기 위해서 밝게 웃으며 둘러대었다.

“아~ 별거 아니었어…. 내가 최근에 말썽을 피운게 있잖아?”

어디까지 나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어…? 아… 아! 너 왜 오늘 안나온거야?”
“어?”
“응? 오늘 순찰 빼먹어서 불려나간 거 아니야?”
“어… 마, 맞아.”
“그런데….”
“…아직 몸이 회복이 안되어서… 말하려고 했는데, 깜빡 하고 잠이 들어버렸어.”
“그렇구나….”

그녀는 감사하게도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페스틴, 왜 이렇게 수척해 보여….”
“내가?”
“응… 요새 괜찮아? 뭔가….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괜찮아.”
“…그래?”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는 정말로 감이 좋다.

후웅—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으읏-”

그 바람에 페퍼 머리 위에 놓여져 있던 둥근 챙의 이상한 장식이 붙어있는 모자가 날아갔다.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모자를 낚아채었고, 다행이 더 멀리 날아가지 않고, 나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자.”
“앗, 고, 고마워….”

그녀는 모자를  눌러쓰며 말했다.

“…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제 반짝이기 시작한 달빛을 올려다 보았다.
 모자는 그녀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도 그런 물건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소중한 사람이  수 있을까?
…정답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이다.

“정말… 무슨 일 있으면 나에게 털어놓아도 돼….”
“응?”

작고 여린듯한 페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에 들었던 ‘마담’의 목소리 보다는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작았지만,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는 내 생각을 흔드는데 충분했다.

“그러니까… 에잇! 누나에게 의지해도 된다구!”

주먹으로 내 가슴을 치고는 저 멀리 도망쳐버리는 페퍼의 등이 보였다.

“…”

나는 잠시 혼란이 왔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를 한다고?
일단, 예의상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멈추어 서서 손을 흔들며 웃었다.
저게 뭐야… 바보 같이….
나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띄어졌다.
가면도, 억지로도, 남을 속이기 위해서도 아닌,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즐거움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고는 한다.

부웅—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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