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24 신세계 (3) (117/128)



〈 117화 〉#24 신세계 (3)

“아… 어쩐 일로 다들….”

나는 여전히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게슴츠레 떠진 눈으로는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연신 눈을 비볐다.
차츰 뚜렷해져가는 시야에는 그녀들이 보였다.
다들 무장을 한 상태였다.

“제가 깨우러 오지 않았더라면 하루 종일 자버렸을 겁니다.”

부드럽지만 강하게 나를 향한 일침을 날리는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다리를 돌려 이불 밖으로 꺼내려고 했다.

“아.”

순간적으로 어제 피곤한 바람에 갈아입을 옷을 찾지 못한채로 그냥 속옷만 걸쳐 입고 있었던 맨몸으로 잠이 들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나의 눈앞에는 맨살처럼 보이는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고, 나는 황급히 다시 다리를 집어넣었다.
행여나 이불이 날아가지 않도록 꽉 붙들어 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어~? 페스틴, 안 일어나면 두고 간다구~?”

마리가 내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이불을 움켜쥐고는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 그만…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둬어!”

나는 처절하게 외쳤지만, 페퍼가 가세해버리고 말았다.

“거참 고집이 쎈 동생이구만~ 얼른 일어나라구!”
“도, 동생이 아닐 뿐더러, 지금 걷어버리면!”

알고 있겠지만, 페퍼의 가늘어 보이는 팔에는 무지막지한 힘이 담겨져 있다.
공중으로 날아가버린 나의 이불은 제 주인의 부끄러운 자태를 가리지 못한채로 엘리스의 발치로 떨어졌다.

“아.”
“…”

엘리스의 외마디에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지금 시점에서 냉정해지는 것은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차분히 베개를 집어들어 맨살이 드러난 곳을 가렸다.
그나마 엘리스에게는 타격이 적었다.
불시에 내 방문을 열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상? 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할  있겠다.
하지만, 나의 이런 차림새를 보여준 사람은 남자들을 제외하고 엘리스 뿐이었기 때문에, 논외인 두 사람은 나에게 큰 타격을 준다는 소리이다.

“…미, 미안.”

짧은 사과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가는 페퍼는 누군가에게 부딪쳐 가면서까지 내 방에서 도망했다.
대체 이 상황은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노출 사건에 나는 곤란할 뿐이다.

“쌔… 쌤쌤 인걸로? 헤헷?”

뭐가 헤헷? 이냐….

마리는 어색하게 웃어보이고는 페퍼의 뒤를 따라갔다.

“어이, 페스틴을 데려 오라니깐, 무슨 일 있….”

귀찮다는 듯이 뒷목을 긁으며 들어온 소피는 이 참혹한 현실을 보고는 실소했다.

“푸흡… 빨리 입고 와라….”

등을 돌려 방을 나가는 소피는 심하게 어깨가 떨렸다.
아마도 나의 체면을 생각해서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것참.

“…변태네요.”
“뭔 소립니까!”

엘리스가 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다는 것은 매우 화날 만한 일이다.

* *

“모두 약속 장소로 모였습니다. 페스틴, 당신만 빼고요.”
“뭐, 뭐요? 아니… 그보다 저는 오늘도 나갈거란 말을 못 들었….”
“당연하죠. 혼자만 벌거벗고 자고 있었으니까요.”
“…제발.”

나는 두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가렸다.
방금 전의 상황이 머릿속에 멤돌아 자꾸만 부끄러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나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것참… 이쪽의 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웃긴  어떻게 합니까~”

문득, 이 사람이 이렇게 까지 밝게 웃을 수도 있었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아… 그래서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럼요.”

엘리스는 나의 물음에 언제나 처럼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아무튼 말이죠. 깨우러 와준거 고….”

내가 말하는 도중에 그녀가 멈추어 서서, 내 머리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방어본능, 이하 누군가의 손길에 대한 두려움과 낯설음 때문에 경계를 했다.
움찔한 나의 동작에 그녀는 멈칫했다.

“왜, 왜요…?”
“아뇨, 그냥 먼지가 묻어서.”

그녀는 마저 뻗었던 손을 나의 머리 어느 부분으로 가져가 먼지?를 떼었다.

“봐요.”

엘리스는 나의 머리에서 뗀 먼지를 보라는 듯이 들어 보였고, 그리고 내가 보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즉시, 미련없이 버려버렸다.

“…고, 고마워요.”
“뭘요.”

싱긋 웃는 엘리스의 미소를 본 나는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결코, 나쁘지 않은 의미의 긴장이었다.
묘한 두근거림. 그런 의미의 긴장감이었다.


* * *

“노예.”
“…? 저말인가요?”
“하아… 죽고싶냐?”
“아, 아뇨…. 딱히….”
“그럼 왜 늦잠을 쳐 자는 거야!”

쾅— 하고 그녀가 의수가 아닌 팔이 나의 머리로 내려쳐졌다.
어찌 이리 매운지 눈물이 핑 돌을 지경이었다.

“아, 아파요….”
“아프라고 때린거다.”
“뭐, 뭡니까아….”

정말 매서웠다. 감정이… 실린 것인가?
동료를 해한 나에대한 악감정 말이다.
나는 아직 베피에 대한 정보는 터무니 없이 적었다.
현재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는 이렇다.
4명 사망, 1명 실종.

나는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들의 전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5명이 감소된 것이 얼마나 영향을 줄지 가늠이 안왔다.
그나마 유추  수 있는 것은 꽤나 오래 전부터 ‘마녀 사냥’을  온 것을 보아, 그들의 수가 꽤 많을 것 같다는 점이다.
확실한 점은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 나는 현재 차근차근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이 나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이루고 있다는 증거와도 같기 때문에 안심이 되는 것이다.

루이스와 히로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할 필요가 있다.
 밖으로 나가서 순찰을 돌고, 괴물을 잡고 하는 일상이 지속될 것 같은 지금 이 시기에, 과연 그들을 만날 시간이 될까?
잠깐, 왜 내가 굳이 만날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가만히 휴대용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여기에 뭔가 더 접목시킬 만한게 없을까?
배는 떠올랐고, 페퍼는 내 소매를 붙잡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기회를 붙잡았다.


* * *


“그래요?”
“그래, 네가 얼마나 날뛴 건지 모르고 있나봐?”
“아하하… 왠지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가더라고요….”

현재 우리는 학생들의 성장이 생각보다 빨라서, 둘에서 넷씩 짝지어서 개별 행동 중이다.
물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합류할 수 있게 일정 거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베피와 나는 별개로, 실력이 괜찮다는 것을 인정받아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순찰하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의 무기가 사용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왔고, 넓은 들판을 따라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무래도 위험하잖니, 굳이 나서지 않아도 우리가 있기도 하고.”
“그, 그렇죠….”

답답했기 때문에 그렇게 선수를  것이다.
이렇게 하루 하루 나와서 잠깐씩 제거해 나간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쪽의 체력낭비만 될 뿐이다.
아예 날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에, 중심부를 쳐야할 것이다.

“그럼,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부턴 안 그러겠지 노예 군?”
“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약속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어서다.
그리고 약속을 저버린다는 것은 그것만큼 치욕스러운게 없다고 생각한다.
약속을 저버린다는 것은 지킬수 있었음에도, 즉 내가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내가 그럴 책임이 있었는데, 그것을 개인의 이익이나 시덥지않은 이유로 버린다는 것은, 나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불가능이라는 것이 생기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단지, 필요로 해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에게는 생존에 달려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약속은 회피함으로 어쩌면 전면으로 부딪히는 것보다 도망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실패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면으로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고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나의 마음속에 가득한 것이다.
모든 것의 정점에 서고 싶다는 이 욕심이 나를 완벽주의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말했지 않은가?
나는 나의 목표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그것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나를 깊이있게 지켜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아…  저지를 생각  인거냐.”

그런 말로는 나의 의지를 굽힐  없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베피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을 회피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위험 요소가 없는지 살폈다.

반짝-

응?

“베피.”
“왜?”
“방금 봤어요?”
“아니.”

무미건조한 그녀의 반응과는 달리 나는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원하던 장난감을 드디어 찾아냈다는 듯한 흥분 말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눈에 띌정도로 반짝거렸다.
감이 날카롭고 시야가 넓은 베피가 보지 못했을리가 없다.
거짓말.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무기보다도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데 특화된 무기이다.
내가 잠시 망설이고 있자, 베피가 등을 떠밀었다.

“그럼 가보시던지.”

그 자리에 서서 팔짱을 끼고 나를 주시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주춤거렸다.

“어, 어… 괜찮아요?”

방금 전까지 그녀의 태도는 내가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호기심을 주체하지 말라는 듯한, 아마도 나를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놓칠세라 꽉 잡고있던 밧줄을 놓아버린 그녀는 왜인지 모르게 싸한 느낌을 주었다.
틀림없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천천히 빛의 발생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서 한번도,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진의를 파악해버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유리?”

빛의 근원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바닥에서 하늘을 반사시키고 있었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니, 거울인가…?”

액체라고 하기에는 표면이 너무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에 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 고개를 내밀자, 내 얼굴이 보였다.

“오, 초췌하군.”

오랜만에 보는 나의 겉모습에 인간성이 없어져 가는 나 자신이 보였다.
어쩌면 늦잠을 자서 그럴지도 모른다.
새벽에 괜히 일어나서 죽을 뻔한 큰 곤혹을 치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최근들어서 계속 경계를 하고 있고 긴장된 상태에 있어서 그런가.
나는… 정말 잘 한 것 일까?
지금껏 해왔던 일들이.
지금껏 해왔던 선택들 말이다.

쿠릉-

“어…?”

땅이 움직였다.
자연의 힘이 아니라, 인위적인 움직임이다.
나는 재빨리 베피를 바라보았다.
멀었지만, 나는 확실히 보였다.
희미하게 미소짓던 표정이 굳었다.
뭔가 끈적하고 음흉한 미소를 짓던 베피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베피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으로 뛰어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당황… 이라고 해야 하나.
‘이럴리가 없는데….’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
하지만, 그 의도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했다.
그것은 바로 함정.
나를 죽이기 위한 계획적인 함정이다.
베피는 의도하지 않은 듯 했다.
어쩌면, 나를 이곳으로 유도하라는 지시만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정체 모를 괴물을 조우했다는 것에 동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거리라면 베피의 색적능력에 포함되는 거리였다.
괴물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망연자실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정이 어떠하든, 나는 도약했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지면의 움직임보다 늦었다.
도약과 동시에 나의 좌우에서 아주 빠르게 무언가가 다가왔다.
그것은 괴물도, 자연의 무언가도, 인간도 아니었다.
나를 덮치는 것이 뭔지 파악이 안되고 있었다.
거대한 이빨처럼 보이는 것들이 달려있는 벽이, 땅 아래에서 튀어나와 나를 양쪽에서 먹으려고? 했다.

이거… 위험한데…?

나의 머릿속에 드는 유일한 생각은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몸과 마음은 위험 신호를 마구 보내며 움찔거리고 웅웅거렸지만, 머리에서는 희열이라는 감정을 마구 뿜어대게 만들었다.
살며시 지어지는 미소는, 포기가 아니라, 또 다른 마녀를 확정지었다는 기쁨이었다.

콰직-

* *

쿠르르르르르-

“아.”

정신이 든 것은 아마도, 무언가에 의해 덮쳐진지 체감상 한시간이 흐른 뒤에 였다.
무언가는 나를 삼킨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이동하고 있는 곳은 아마도 땅 속인 듯 했다.
왜냐하면 걷는 소리나 기어가는 소리나 꿈틀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드릴.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가 설명을 해주었던 기계이다.
아마도 그때 부터 기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굉음을 내며, 건축을 위해 땅과 돌을 부수는  기계는 나에게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거.
행복했던 과거의 회상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겠다.
더 이상 했다가는, 나는 다시 나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포기한 것을 다시 주워들고 싶지 않았다.
이래 뵈어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반짝거리는 휴대용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시간은 제 3시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외부 성벽을 지나 밖으로 나와서 착륙한 시점에서 제 1시 34분.
덮쳐지기 직전에 본 시각은 제 2시 14분.
한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를 구하러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오로지 휴대용 시계의 불빛 만을 의지한채로 더듬더듬 움직여 보았다.
물컹물컹한 바닥 감촉이 느껴졌으며, 나는 틀림없이 어떤 생물체의 안, 아마도 입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배의 절반 크기보다 살짝 더 작았던 괴물도 있었으니, 이렇게 집채만한 괴물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괴물의 지능은 상당히 되어보이는 듯 했다.
함정을 이용해서 나를 제압했다.
내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게 말이다.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무력하고, 나약하게 되어버렸다.

물컹-

한참을 걸어가보니, 바닥과 같은 느낌의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역시, 어떤 생물체의 몸속 안이다.
나는 품 속에서 휘발유를 꺼내 불을 붙여보기로 한다.
아주 소량을 원했기 때문에 아주 작은 것을 꺼내들었다.

휘익-

주사위는 던져졌고, 게임은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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