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24 신세계 (2)
“여.”
나는 잔뜩 당황하고 있는 둘에게 손인사를 하며 밝게 웃었다.
“괘, 괜찮은거야…?”
걱정이 섞인 토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내가 심했나 싶었다.
“뭐, 뭐냐 이건…!”
여전히 허공을 헤치며 연기를 없애려고 하는 포드의 모습을 보고는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열기로 인한 증기에 그런 과민반응하는 모습을 보니… 그런 감상이 드는 것 뿐이다.
“그거, 단순한 시야 방해만 하는 연기니까 괜찮아. 인체에 무해해.”
나의 말에 둘은 경계태세로 잔뜩 긴장해, 어정쩡한 자세로 있던 자신의 몸을 바로 했다.
“크, 크흠… 그런 건 빨리 말하라고.”
어둠 속에서도 포드의 얼굴이 빨개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짓궂어.”
아마 토니의 얼굴은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미안해~”
이것만큼 가벼운 사과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재밌는 것도 보았기도 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 * *
“그럼, 잘자?”
“…잘자.”
우리는 포드의 방에서 나왔다.
짜증이 섞인 포드의 신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제대로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잭이 알아서 뒤처리를 해주었을까?
내가 너무 폐를 끼친 것 아닐까?
하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어떠한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이 제일 '적절하다.' 라고 느꼈을 뿐이다.
“토니, 그래서 나의 어떤 기술을 가지고 싶은거야?”
“기발함.”
“응?”
“기발함.”
“아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들었어, 그런데 무슨 의미로 말한 건지….”
“아, 나는 적용을 잘 못해.”
“적용?”
“코어는 재밌어서 이것저것 만드는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거야?”
아무래도 저번에 미리 만들어둔 것은 그냥 어쩌다보니 틀이 맞았을 뿐이었던 것 같았다.
…아무렴 어떤가?
결과가 좋다면야 더 이상 지나간 일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 과한 걱정을 줄이는 한가지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는데도 도움이 되며 다른 곳에 신경을 더 쓸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적절한 긍정적인 생각은 꽤나 유리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흐음… 일단, 놀랐네.”
“놀랐…다고?”
“그럼, 코어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네가, 그것의 사용법을 모르겠다니….”
“처, 천재까지는….”
“아무튼, 나는 그렇다 쳐도. 토니, 만약에 말이야… 괴물들이 단순하지 않고 지능이 높아져서 이런 저런 움직임을 보인다면 어떻게 할거야?”
“저번의… 빠른 괴물처럼?”
“어, 어… 마치 그런 녀석처럼.”
“흐음….”
나는 잔뜩 고민하고 있는 그를 주시했다.
…고상한 얼굴이 고심하는 표정이란.
“흐음… 아, 멀리서 저격?”
“어… 음… 그것도 좋지.”
“아… 아닌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토니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아니, 아니, 아니야. 괜찮아.”
“…그래 보이진 않는데.”
어찌 이리도 날카로운가?
“크흠, 아무튼… 그 괴물을 잡으려면 어떻게 할거야?”
“멀리서 저겨….”
“아니, 아니….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긴 한데… 혹시라도 피하는 경우가 생기잖아?”
“그렇지….”
“그러면 어떻게 할거야?”
“한발 더….”
당당하게 한 우물만 파는 토니의 모습을 보며, 기발함이 필요하다던 그의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니, 이쪽에서 뭐라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음… 그래, 좋아. 무력화…라고. 생각해 보았어?”
“무력화?”
“방어기능이나 이동기능을 저하시키거나 완전히 봉쇄하는 일 말이야.”
“호오….”
토니는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움직이지 못하니까 피하는 것도 어렵겠고, 네가 맞추기도 쉬워지겠지?”
“응…! 그러겠네…!”
자신의 자그마한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눈을 반짝였다.
음… 가만보니 마리랑 엇비슷….
왠지 두 사람의 오빠나 형이 된 기분이다.
“페스틴, 그런데 마녀는 어떻게 되었어?”
“아, 어? 아… 마녀 말이지…? 음… 그게 말이야….”
둘러댈 겸, 토니에게 한가지 사실을 알려주려고 마음 먹었다.
“도망쳤어.”
“…그래?”
“음... 왜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연기처럼 사라져.”
“아, 괴물이 죽는 것처럼?”
“어.”
분열의 마녀 때도 그랬고, 잭에게 맡겼던 상해의 마녀의 최후를 알고 있지만, 그냥 그렇게 둘러댔다.
일이 복잡해지는 것이 싫을 뿐더러, 살인이라는 형태의 결과물을 기분 좋게 설명하는 것도 좀 그랬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설명이 실제와는 괴리감이 있는 것이라, 토니에게는 유용할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거짓말 이기도 하고….
“그래…? 신기하네…. 무슨 연관이 있으려나…?”
“그렇지? 나도 신기해. 차차 알게될 거라 아직은 참고 있어.”
“참고… 있어?”
“어? 어, 어….”
원래 토니는 자신이 마음을 열은 상대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 보는 토니를 보고 있자니, 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
크흠, 일단 이건 피로 때문에 생겨난 착오라고 생각하겠다.
“아, 도착했네.”
“어, 공방이네.”
“그럼….”
그는 뭔가 아쉬운 듯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고는 미련없이 자리를 떴다.
공방의 문은 내가 상당한 거리를 걸어갔음에도 닫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가 계단을 하나둘씩 내려가자, 그때서야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렀다.
단순한 정에 의해 움직인 것인가, 아니면 경계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가에 대한 사실 여부는 오로지 토니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의심만 하는 것은 좀 지쳤다.
슬슬, 남을 신뢰하는 것을 신경쓸 때가 된 것 같았다.
어느정도 체계가 잡혀져 가고, 일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아직, 나의 계획이 순조롭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나름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이렇게 안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잭을 불렀다.
* * *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드리우자, 나의 앞에 뚱한 표정의 잭이 앉아있었다.
그는 뭔가 불만을 가진 것 처럼 턱을 괴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 미안해요….”
“전혀, 미안한 마음도 없으면서 그러는가.”
잭은 나를 가리켰던 손가락을 내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에헤헤….”
“웃는다고 다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네!”
“크흠, 그건 그렇고, 어디에 있어요?”
“뭐가 말인가?”
“아까 그 마녀요.”
“하아… 내가 이래서 말을 안하는거네. 내 능력을 이용하질 않나…. 내 균형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이런 건 좀 자제해 주게….”
“균형이요?”
“그러네, 균형을 위해서라네.”
“균형이라….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균형.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개인적인 신념에 관한 이야기임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타인의 신념을 존중하려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악의적이지 않은 신념말이다.
“읍! 읍! 으읍!”
“앗, 저기에 있었군요.”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는 한 여성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힌채로 소리치고 있었다.
“…아까 자네가 나에게 떠넘긴 짐이라네.”
“짐이요? 전혀 그렇게 못봤네요.”
“허참….”
이리저리 잘 피해가는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잭이었다.
“그런데… 저 여성을 가두고 있는 거는 뭔가요?”
“…감옥이라네.”
“…아, 감옥이요? 전혀 그렇게 안보이는데요?”
그것은 두꺼운 하얀색 벽에 하얀색의 얇은 기둥으로 촘촘하게 막아져 있는 정사각형의 방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원래 있었던… 아니, 됐네. 이런 감옥도 있는 걸세.”
“…그래요?”
나를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다시 잭에게 관심을 돌렸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됐네, 그것보다 저걸 어떻게 할 셈인가?”
“아… 실험이요.”
“실험…?”
“읍! 으읍! 읍! 읍! 으읍!”
그 비정의 마녀라고 소개했던 그 사람은 묶인 팔다리 때문에 꿈틀대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실험이라니… 저번에 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그건가?”
“뭐… 그렇다고 봐야죠, 그런데 조금 다릅니다.”
“하아… 그야… 자네의 자유는 자네의 손에 달려있지만, 자네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의 손에 자유가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게.”
“그러니, 기회를 주려고요.”
“으읍?”
나는 철창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쭈그려 앉았다.
“그래서… 죽을래요? 아니면 우리와 동료가 될래요?”
“으읍! 읍, 으읍! 읍!”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지만,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딴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자, 자네… 내가 누누이 말하겠다만….”
“괜찮아요, 이 사람은 뭔가 달라요.”
“…? 다르다니?”
“인간성 자체가 달라요.”
“…어떤 점이 말인가?”
“아마도… 이 사람은 그들사이에서도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읍…?”
“그래요 그래요,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을 겁니다. 약간 겉돈다는 느낌으로?”
“분위기라 함은….”
“대개 마녀들은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완전히 시커멓죠.”
“그렇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되겠구만.
“네, 붕 떠있는 존재가 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방법은…?”
“…아무튼, 이 사람은 눈빛이 달라요.”
“자네, 정말 안좋은 버릇이 있네.”
“하핫, 압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눈빛이 다른 이 사람에게 흥미를 가졌어요.”
“…그래서 살려두었던 것인가?”
“네,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단순히 정보를 얻고 못얻고를 떠나서요.”
“읍….”
“그렇다고 죽일 생각이 있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읍…?”
“안심하세요.”
“그런데… 아까부터 능력, 아니 힘을 안쓰고 있는 것 같네만.”
“그러네요.”
“읍! 읍! 으읍!”
“조건 같은게 있는 건가요?”
“아까 보기로는 꽤나 강한 힘을 가진 것 같네만, 대개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만큼 대가가 있는 것이 당연한 법이네.”
“그럼, 간단한 힘일 수록, 대가가 적어지겠네요?”
“맞다네, 무에서 유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각할 수 있는 힘이라면, 꽤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걸세.”
“이를테면…요?”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나, 신체 부위의 일부나, 아니면 기억과 같은 머리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포함되네. 그러니까, 모든 것의 매개체는….”
잭은 나를 따라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개의치 않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 사람은 딱히 외적으로 달라진게 없으니까… 지능?이려나요?”
“읍! 읍! 으읍!”
“…입을 좀 풀어주어야 할까요?”
나의 물음에 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네, 더 시끄러워질 뿐이네.”
“…아니면, 특정한 방식으로만. 아니, 어떠한 행동을 해야 힘이 사용된다는 것은 어떤가요?”
“그런 경우도 많았다네. 정확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개인 고유의 제스쳐가 도움이 되니까 말이네.”
“읍…!”
“음?”
잭은 손가락을 뻗어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았다.
“호오… 페스틴 군, 아무래도 정답인 듯 하네.”
“뭐가요?”
“무언가 특정 행동으로 힘이 사용되는 모양이네. 안그렇다면 이리도 동요하지 않았을게야….”
잭은 은근히 사악한 눈빛을 하며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눈빛, 눈빛이요.”
나의 지적에 그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으흠! 나도 모르게 옛 모습이….”
나는 문득, 이 사람의 과거는 어땠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페, 아니 자네… 슬슬 돌아가야 할걸세.”
“아… 그러네요.”
제 5시가 넘어선 지금,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수상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럼, 신세질게요.”
“하아…. 이제와서 무엇을 말 한들… 자네가 알아 먹겠나?”
“하하핫! 잘 알고 계시네요.”
잠깐의 빛이 나고, 나는 나의 방으로 통하는 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 * *
공간의 차이 때문일까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한 순간에 이동한다는 것은 어떤 제약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입에서 듣지 않는 이상, 내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길래, 그냥 생각을 그만두었다.
조금이라도 자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 *
“페스틴, 일어나세요.”
“…예?”
“하아… 어쩜, 제가 깨우러 오지 않으면 영원히 잠들 기세군요.”
“그, 그러네요….”
“와하하하~ 페스틴 잘 잔다~”
한층 시끌벅적해진 분위기에 나는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이미 깼지만, 맨정신이 되는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리는 듯 하다.
“뭐, 뭐야…?”
흐릿한 눈을 비비며, 바라본 풍경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