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23 괴물 사냥 (5)
“흠….”
나는 두개의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뒤를 보기 위해서는 거울 하나가지고는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내 뒤로, 다른 하나는 나의 얼굴쪽으로 가져갔다.
‘오오…!’
나의 뒤통수가 시야에 들어오자, 별거 아닌 일에도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몇번이나 거울을 들여다 보아도,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잘 안보이네.”
페퍼의 그 반응은 그냥 그녀에게 다른 속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 뿐인가?
…그런 건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것이지만, 어떤 면으로는 정말 좋기도 하다.
만약에, 믿고 있었던 사람이 사실은 나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고, 올바르지 못한 의도로 나에게 접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참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몰려올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배신감 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된다는 것은 그런 나쁜 감정까지도 읽게 된다는 것이다.
모르는게 약이다 라고 할 정도로, 어느 정도의 무지함은 적절하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을 베풀기도, 그리고 그 사람의 악의적인 미끼에서 몸을 피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그 힘을 가진 사람의 계획은 보다 수월해질 것이고, 해야 하는 것은 경계 뿐이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해서, 자신의 적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과 대면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의 반응을 하나부터 열까지 빠지지 않고 살펴야 하는 나와는 정말 다른 것이다.
그러니 만약에, 만약에 내가 그런 힘을 가지게 된다면, 선택적인 힘 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적절하게 사용하고 싶을 때에 사용하고, 그렇지 않을 때면, 고이 접어두는, 일종의 책과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읽고 싶을 때면 펼치고, 읽고 싶지 않다면 접기만 하면 될 뿐이다.
아무리 내가 이런 생각을 해도, 그런 힘은 나에게 생기지 않을 뿐이다.
그저, 나의 망상이 될 뿐이다.
나는 페퍼가 나의 뒤통수를 두번이나 보고 나서야 특별한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토니가 수상한 부분을 짚어주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나는 정신없이 내 생각에만 몰두하다 보니, 그러한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위치는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이런 간단한 정보를 잊어버리다니.
“바보네….”
나는 나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으려다가 내 머리만 아파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기억을 되짚어, 토니가 짚어준 부분을 헤매었다.
몇번 머리카락을 들춰보니, 초록빛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
페퍼는 정말로 감이 좋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꽁꽁 숨겨진 이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나는 주저함 없이 긁었다.
살짝 씩 들춰지던 그것은 내 두피를 굳게 잡고 있는 것처럼 쉽게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나의 손기술을 개발시킬 목적으로 가져왔던 바늘을 꺼내 콕콕 찔러보았다.
보이는 것보다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있었는지, 좀처럼 뚫릴 모양새는 없었다.
‘이걸 그냥 잡아 떼면, 피부채로 뜯어지려나?’
페퍼가 동일한 것을 보았다고 치자면, 제거 방법은 바로 때리는 것이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페퍼는 그것을 그만두었고, 내 머리에 달라붙어 있는 채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인가?
무언가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전의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고 느낀 것 일까?
일단, 내가 시도해 보고 안되면 다른 방법을 몰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아야!”
힘을 준다고 너무 준 것 같았다.
…이거, 의무실에 가야 할 듯 하다.
툭-
그런 아픔도 잠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무언가 꼬물거리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뭐야 이건…?’
허리를 숙여 괴생물체를 들여다 보니, 왠지 어디서 본 듯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책들 중에는 ‘벌레’에 관한 책이 있었다.
그것의 크기에 대해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아무리 커도, 인간의 팔뚝 만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특수한 환경에서만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고, 대부분의 벌레들은 작다고 읽었다.
눈 앞에 보이는 무언가는, 그 중에서 ‘누에’라는 애벌레의 모습과 유사했다.
어째서 이리도 잘 기억하고 있나 하나면, 그것들은 옷감의 원재료가 되는 실을 뿜어 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유심히 보았던 것이다. =
내 계획의 일부에는, ‘자원의 풍성함’ 이라는 조건이 들어있기 때문에, 언젠가 그 생물을 발견하게 된다면, 꼭 보존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나는 바늘로 다시 한번 콕콕 찔렀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그것은 움찔거리더니 이리저리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알고있는 것보다 작은데?’
그것의 크기는 내 새끼손가락에 붙어있는 손톱보다 작았다.
“이런게… 붙어있었단 말이지…?”
나는 뜬금없이 나온 벌레.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벌레를 본 지금, 모순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없애자.”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줄리에게는 미안하지만, 태워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을 더듬어 휘발유가 담긴 병을 찾아보았지만, 씻는다고 따로 벗어두었다는 것을 기억해내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있던 겉옷을 집어 들었다.
도망가지 않도록 옷으로 감쌀 생각이었다.
“아. 컵으로 하면 되겠구나.”
하마터면 선물받은 옷을 버릴 뻔 했다.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공부할 때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주방에서 가져온 투명한 컵을 벌레 위에 덮었다.
그 벌레는 꼬물거리다가 벽에 가로막혀서, 이쪽 저쪽으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자그하만 생물체의 모습을 지켜보자니, 갑자기 그것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달리 지성을 가진 생물체는 없었다.
괴물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 벌레는 자신의 작은 다리를 이용해 넓은 이 공간을 열심히 기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흉물스럽다고 할 만한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게 내가 잠자고 있을 때 침대로 기어들어온다면…, 나는 침대를 불태울 것이다.
역시, 지켜보는 것이 좋다.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낯설다고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벌레를 컵에 담고는, 불을 붙였다.
* * *
“잭?”
밤이 깊어지고, 모두가 제각기 할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즈음, 나는 은색빛의 영롱한 달빛이 내리쬐는 공터에 홀로 앉아 있었다.
쇠로 만들어진 벤치는 다소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앉을만 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적정한 체온이 있으며, 그것을 유지할 힘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에게는 ‘열정’이라는 것이 있다.
‘무슨 소리래… 역시 피곤한 가보다….’
오랜만에 헛소리를 하는 나 자신을 타박하고는 다시 한번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잭을 불렀다.
“잭…. 거기 있어요…?”
불러도 대답이 없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괜히 기운이 빠졌다.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간간히 했던 대화는 나의 마음을 강화시켜 주었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여러모로 주저함이 가득했을 것이다.
늘 나 혼자, 나의 마음을 다잡고, 내 몸을 일으켜야 했지만, 가끔씩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이 그러워 지는 것이다.
그 손길이 나는 오늘따라 필요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왜 일까?
엘리스에게 내일부터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미리 예고를 받아서 그런가?
그 기대감, 아니, 불특정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에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인가?
나는 여전히, 나의 모든 능력을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인가?
그 요인이 무엇이든, 지금의 나는 상당히 불안한 마음이 들고 있는 것이다.
터벅- 터벅-
그런 생각을 하며, 멍 때리고 있을 때 즈음, 누군가가 다가왔다.
나는 흠칫 놀라며, 순간적으로 경계를 하려고 했지만, 상당히 익숙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페스틴, 혼자서 뭐하고 있는거야?”
“아, 페퍼, 별 일 없었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걱정하는 마음은 페퍼를 잠깐 동안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 응, 그, 그렇지?”
“아… 미안, 나는 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느라, 정신이 없어.”
“그래보여, 네 얼굴에 착잡하다고 쓰여져 있거든.”
“어…?”
‘그렇게 걱정 되었던 것인가….’
“파하하하! 나도 머리 좀 식히려고 나왔지.”
“그래? 머리 식히는 건…. 비행장이 좋다고 하지….”
페퍼가 비행장에 갔다가 곤혹을 치른 것이 기억이 났다.
“으응…. 그냥… 이쪽으로 와봤어.”
“그, 그렇구나….”
나는 실수를 한 것 같은 마음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근데… 머리가 간지럽지는 않아?”
“머리?”
“어, 어….”
페퍼의 물음에 나는 나의 머리를 카리켰다.
“이제, 가렵지 않아.”
“이제?”
“제거 했어.”
“아, 아… 다행이네….”
“고마워.”
나는 밝은 미소를 띄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끝까지 방심한 채로, 나의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대체 그건 뭐 였을까?”
“아마…. 또 다른 마녀의 힘 일지도 몰라.”
“그게? 으으… 마녀들은 다 징그러운 힘이 있는가봐….”
“하하하! 그런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말하는 페퍼의 모습이 귀… 다고 생각했다.
‘크흠….’
“으흠! 그래서, 아무튼 간에 말이야. 이거… 사용법 좀 알려줄 수 있어…?”
“응?”
페퍼는 자신의 등 뒤에서 응축기…, 아니, 그것을 꺼냈다.
“당연하지, 그런데….”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뜸을 들이자, 페퍼가 무슨 이상한 점이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왜, 왜…?”
“그거 이름 뭐로 정했어?”
단순한 호기심이다.
그냥,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아~ 이거? 빵야.”
“빵야…?”
“응, 날려버리잖아.”
“으, 으응~ 그렇구나….”
“왜? 별로야?”
“아, 아니 그냥…. 너 다운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얼른 가자고, 밤은 짧으니까.”
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뭔데 그래?”
“있어 그런게.”
왠지 모르게, 그녀와 있는 시간은, 얼음이 녹듯 한순간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 * *
“그래, 그렇게.”
“오, 오!”
잔뜩 신이 난채로 이리저리 ‘빵야’를 휘두르던 페퍼는 자신이 땀을 흘릴 정도로 휘두르고 있었다는 것을 망각한 것 같았다.
나는 냉각수의 냉기 때문에 유리병 표면에 물이 생겨서, 자꾸 젖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손수건으로 감싼다는 생각을 떠올려서 몇개 품에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 중에 하나를 아니, 가장 깨끗한 하나를 건넸다.
“응?”
“이거 써.”
“앗, 아~ 고마워.”
내가 손수건을 건낸 후에야 자신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모양이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그녀를 보니, 뭔가… 생각이 멈추어졌다.
달빛에 반사되는 그 얼굴에 나는 할말을 잃은 것이다.
그런 적막함을 알아챈 것인지, 페퍼는 어색하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이야~ 페스틴 다 컸네? 누나를 챙길줄도 알고?”
그녀의 농담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페퍼는 어색하게 웃더니 내 팔을 팔꿈치로 툭툭 쳤다.
“왜, 왜 그래~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이제서야 나는 입이 열리고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못해 갈피를 못잡았다.
밝은 달빛에 반짝이는 부드러운 장발.
무엇이 기쁜지 생글거리는 얼굴.
거기에 과한 움직임으로 살짝 상기된 얼굴.
그… 아무튼 여러 요소가 나의 뇌를 뒤흔들고 있었다.
“음… 아, 아니 그냥….”
결국 얼버무리고 말았다.
“응?”
페퍼가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왠지 눈을 마주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몸을 돌리고는 페퍼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잘시간이 훨씬 넘었다. 내일을 위해서 자둬야지?”
“…그래, 그러자.”
등 뒤가 곤두섰다.
두려움이나 악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왠지 모를 긴장감이 나의 등근육을 수축시키고 있던 것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던 페퍼의 발자국 소리가 내 오른편에서 멈추었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바라보니, 페퍼가 방긋 웃고 있었다.
뭔가.
빛이 난다.
아니, 무슨….
“어, 어서 가자고….”
“많이 피곤한가봐?”
“그, 그렇지~ 피곤하지~”
나는 어색하게 과민반응을 하며, 삐걱삐걱 걸어갔다.
역시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짧다.
…아니, 짧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