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21 가지치기. (2) (103/128)



〈 103화 〉#21 가지치기. (2)

“어… 음…. 오, 오랜만입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생소한 장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서오게.”

팜 아저씨도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적잖게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럼, 한사람 분을 더 내와야겠네요. 페스틴, 우선 내것을 마시고 있어요.”
“네? 아, 아닙니다.”

나는 극구 사양하려 했지만, 팜 아저씨 부인은 나에게 찻잔과 과자들이 담긴 접시를 떠넘기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음… 하하… 티타임 좀 가질까요?”

나의 물음에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 * *


“음… 형, 왜 갑자기 온거야?”
“응?”

나로서는 그런 질문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나의 모습을 본 팜 아저씨와 소브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붕대에 감긴 나의 손을 내려다 보고는, 다시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은 어떤 눈빛을 가지고 있고,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것보다… 자네, 그 손, 어떻게 된 건가….”
“…이제야….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요.”

내가 습격을 받아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걱정해주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동안의 사투는 뭐란말인가?
아침에 보니, 피범벅이 되어서 붕대를 갈아끼고 오길 잘했던 것 같았다.
다친 상태로 그대로 잠들었지만, 누군가가 응급처치를 해준 듯 하다.
잭인가…?
아무튼, 내가 다시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상황이 더 심각해 질 뻔 했다.
…이 장소로 돌아온 이유는  나에게 혼란만 가득했던 하루를 마무리 해야 하는 시간에, 마음의 안식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시점에서…?

“이, 이제야 라니….”

내 눈에는 내 마음에 비해 아주 아주 아주 작은 상처를 과대포장 하고 있는 붕대가 보였다.

“아… 이 손 말이죠?”

나는 붕대가 감긴 손을 잠깐 들어보이고는 다시 내렸다.
그들은 내가 한시라도 빨리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뜸을 들이고 있었다.
다치지 않은 손으로 찻잔을 들어올려, 그 잔에 담긴 것의 향을 맡아보았다.

“아… 역시, 차분해 지는 향이네요.”

나의 말에 팜 아저씨가 아주 미세하게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차의 감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느꼈던  특별한 향은 소용돌이 치던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잠재우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나의 얼굴만 바라보던 두 사람을 내버려 둔채로 나는 그 향기로운 차로 혀를 적셨다.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맛은 나의 혀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나의 목으로 흘러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조금 흥분되어 있었던 나의 마음이 다시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 때까지 아무말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형…? 무슨 일… 있었어…?”

소브는 나의 하나뿐인 혈육 답게 나의 미세한 반응을 낚아 채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렇지….”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고민했다.
나는 어째서 이 집으로 들어온 것일까?
마음을 다잡는 다면서, 왜 다시 도망쳐 버린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터놓고 말해야 할까?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되는 이 문제를 털어 놓아도 될까?

나는 소브를 흘낏 보았다.
올해로 10살.
소브와 떨어진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약 2년 뒤의 소브는 눈빛이 달라졌다.
말과 행동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과연, 이사를 하던 그 날.
팜 아저씨의 어떤 말이, 이 나의 동생을 뒤바뀌게 만들었을까?
역시 그때 귀담아 들을 걸 그랬다.
지금의 나는 나이가 20살.
어느새, 나는 성인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곧,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하지만, 아직 나로서는 이 버거운 세상을 헤쳐나갈 자신감이 없다.
불신의 마음이 나를 가득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내가 말을 내뱉자 마자, 방 안은 그야말로 한겨울의 냉기가 가득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태연하게 눈을 깜빡이며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나의 앞에 앉아있는 두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충격적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의  뒤에서 이쪽 방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도 멈추어 버렸다.
나의 ‘가족’ 만큼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채로 결국 살인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렸다.
그것도 두번이나 말이다.
무엇보다 두려웠다.
내가 가장 기대고 있고, 신임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버리면 어쩌지? 하는 그런 마음은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다.
이 바닥에서 살인은 흔한 일이지만, 내가 고집하던 방식을 알기에 이 사람들은 이리도 당황하고 마는 것이다.
나의 꾸며진 모습을 봐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그런짓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나 자신은 내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더럽고, 추악한  자신일 뿐이다.
이런  모습을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두렵지만 지켜보도록 하자.

“…지금… 뭐라고…?”

잔뜩 구겨진 소브의 얼굴을 보니, 옛날에 소브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 * *

“형….”
“응?”

소브는 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나는 그런 동생을 따뜻하게 바라 보기보다, 어두컴컴한 방안의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형, 동화책에서 봤는데… 나쁜 사람이 나왔어.”
“나쁜 사람?”

나는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지만, 차마 동생의 얼굴을 내려다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처음으로 ‘범죄’ 즉, ‘악’ 이라는 것을 처음 저질러 본 순간이었다.
두려운 마음에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소브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응, 형은….”

* * *

나는 고개를 흔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등을 돌려 이 '집'으로 부터 도망치려고 했다.
눈에 선히 보이는 결말을   눈으로 직시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말하지 말걸 그랬나….”

일말의 후회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자… 자네….”

걱정섞인 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부터… 저는, 모든 마녀를 몰살할 겁니다.  계획에 방해되는 것들도요….”
“…이보게 페스틴….”
“이 계획이 끝나는 시점에는…. 저는 사람이 아니겠죠.”

나는 씁쓸한 미소를 그들에게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왔다.

‘아… 그런 것이었다. 나는… 나는….’

“후우….”

멀어져가는 공방에서 뒤늦게 쫓아와,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렀다.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고!”

나는 처음 왕궁으로 떠났을 때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쥔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아저씨! 쫓아가야 되는거 아니냐고요!”

다급한 소브의 외침이 들렀다.
아마, 아까의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팜 아저씨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어둑해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걸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뛰는 소리가 들리기를 내심 바랐지만, 소브의 외침만 들렀다.

“왜, 왜 그래요! 이, 이거 놔요! 형이…. 형이 떠나간단 말이에요!”

…이리도 처절한 울부짖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 지금이 아니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소브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아챈다.
그때의  약속을 하던 소브도 그랬다.

* * *

“형… 형은 나쁜 사람 아니지?”

두려움에 뒤덮인 나의 얼굴을 보며 그 녀석은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꿰차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소브를 향해, 나는 힘겹게 웃으며 끄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헤헤… 그럴 줄 알았어…. 형, 앞으로도 나쁜 사람이….”

* * *

“앞으로도 나쁜 사람이 안된다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즈음, 소브의 외침이 내 귀에 닿았다.
나는 머리로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발을 우뚝 멈추었다.
조금 떨어진 등 뒤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렀다.

‘팜 아저씨가 놓아 주었나 보군….’

그 발자국은 어느새   뒤로 다가와 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허억…. 그게…. 허억…. 무슨 소리야 형….”

나는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했다.
뒤돌아 보면서 내려다본 소브가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차있었다.

‘…나는 결국….’

“소브.”

분명,

“…형…?”
“놔.”

‘나는 쉼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의 얼굴은….

“혀… 형….”

‘확실하게 끊어내기 위해 온 것이었다.’

탁!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브가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겠지.
강하게 뿌려쳐진 자신의 팔을 매만지고 있는 소브를 남겨두고 성큼성큼 어둠이 깔려있는 골목길로 향했다.

* * *


그렇다.
그랬던 것이다.
나는 일말의 후회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가족 마저도 포기한 것이다.
 시점으로 부터 다음의 세대로 넘겨받은 나는 이전의 나를 모조리 버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나.
그것은 두번의 살인.
악의 번복에 힘없이 굴복해 버리는 나약한 자신에게 절망해 버린 탓일 것이다.
상냥한 형.
말 잘듣는 제자.
놀리기 쉽고 허술한 친구.
믿을 만한 능력을 가진 학생.
사람을 돕는 착한 청년.
그리고, 착한 아이로 남고 싶어했던 나를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기에, 아직 남겨둔 것 몇가지가 있다.
그것은 나의 계획에 필요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즉 그들에게 호의를 갖게 하기 위한 것들은 남겨두었다.
그렇게 나는 자신을 정리하며, 깔끔해진 나를 빈민가로 이끌었다.

* * *

“아앙?”

나를 내려다 보는 덩치는 자신의 기를 내세우며 나를 위협했다.
나는 뒷세계를  모른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며,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어떨지도 말이다.
규칙도 모르고, 사람들의 행동방식과 가치관도 모른다.
흥미로웠다.
이곳은 특별한 소재들이 많았다.
툭하면 화를 내는 사람, 약에 취해 빌빌대는 사람 등 정말로 흥미가 끓어오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 덩치에게 물었다.

“…? 이 XX가 미쳤나…? 사람 말귀를 못알아 쳐 먹어!”

나는 들어오지 말라는 덩치의 말을 무시한채로 그의 등 뒤에 있는 문으로 향하려다 제지당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시비를  것은 나였다.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뜻 대로 되지 않는군요.”

나는 품에서 냉각수를 꺼내 그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이 뭐…!”

그의 육중한 몸은 허공을 휘저으며 천천히, 천천히 땅으로 꺼졌다.
나는 당당하게 문을 열었다.
이곳의 간판은 ‘제리의 무기소’ 였다.


* *

안으로 들어가보니, 험상궂을 것이라 생각한 가게의 주인은 의외로 산뜻한 외모의 사람이었다.

“여어~ 무슨 일로 왔나~?”

마치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근한 사람처럼 말하는 그는, 아마도 가게 간판에 들어있던 제리라는 사람일 것 같았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무기를 보려고 왔습니다.”
“하하~ 그렇구만~ 밖의 덩치를 쓰러 뜨리다니, 의외로 실력이 있는데?”
“…음? 그런가요?”

내 눈에는 그가 빈틈이 많은 약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하핫~ 방법은 캐묻지 않을테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물어 보아야 겠어.”

나는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갖가지 둔기류와 소형 칼들을 둘러보았다.

“돈은 충분해?”
“돈?”

‘…외상은 안되려나?’

역시, 옛 것의 나는 한번에 버리지를 못했다.
하마터면 상대방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농담을 던질 뻔 했다.
나는 나의 정신을 재정비하며 그의 말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흐음….”

나는 그의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마저 둘러보던 가게 내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외곽쪽에 주로 위치하고 있는 빈민가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저번에 괜히 헤맨 것이 아니다.
바로 오늘을 위해서 거리의 정보를 얻어  것이다.
나는 진열되어 있는 갖가지 무기들의 디자인과 용도를 파악하고는 가게의 주인에게 물었다.

“하나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혹시,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돈을 지불해야 합니까?”
“…당연하지.”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상큼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이 자도 나의 계획의 마지막 부분에 죽을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 죽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무튼, 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

나는 아무런 미련 없이 가게를 나섰다.

“…? 이상한 사람이네~”

그의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철컥!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함부로… 나다니면 안되지 샌님….”

그는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음흉한 눈빛을 띄우기 시작했다.
온다.
아까 눈여겨본 무기를 집기 위해서 지체없이 손을 뻗었다.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