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19 짐승은 곧 숨통을 조여댄다. (3)
‘음…?’
눈을 떠보니 누군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현재 나에게 닥친 이 낯설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엘리스. 왜 그렇게 쳐다보고 있습니까?”
“오, 일어났군요.”
“다, 당연하죠….”
의연하게 말을 하는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은근히 그녀는 능글맞은 것 같았다.
“아무튼 간에 말입니다. 왜…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그녀의 태도에 방금까지 강했던 의심이 점차 사그러 들었다.
“아, 단순한 제가 최근에 즐기고 있는 취미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 아… 뭐, 뭐가 말입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았던 말이다.
취미로 빈틈 투성이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라니,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찍 일어나서 일을 다 끝내면 딱히 할일이 없더군요.”
“뭐… 그렇기는 하죠….”
‘일종의 휴식과 같은 것인가?’
어쩌면 저번의 일과도 같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할일을 위해 정신을 환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그러면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평정심이 흐트러지는 순간, 문제 해결하는 능력이 퇴화하기도 하니….
“…그러니까, 이제 아침 식사시간이라는 거죠?”
“네.”
짤막한 대답을 한 그녀는 시원스럽게 등을 돌려서 방을 나가버렸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뭔가 속고있는 듯한 기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씻으러 가자.”
나는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는 욕실로 향했다.
* * *
이즈음 되어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뜨거워 몸이 익어버릴 지경인 욕탕에 몸을 담궜다.
“하아….”
아침부터 이런 따뜻한 곳에서 몸을 쉬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뭐 어떤가?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어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서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물.
나의 주위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통을 떠 안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 그런 고통을 겪지 않을 사람도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더 특별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힘을 가졌으며, 나보다 더 세상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 일까?
그들이 말하는 ‘그분’ 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현재의 나로서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유일하게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들은 착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는 부류다.
일단, 첫 번째로 그들은 타인을 이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두 번째로, 그들이 가진 특별한 힘을 악용한다.
세 번째로, 그들은 사람의 내면을 뒤섞는다.
말로서 누군가를 상처입혀 본적이 있는가?
나는 아주 많다.
그들은 쉽게 용서를 해주었지만, 나의 실수와 실패들은 나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아 왔다.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다행이게도, 나는 '죄책감'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악인은 죄책감이라는 것이 없으며, 사람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부터 무언가를 뒤흔들고 있다.
그것은 결고 좋은 방향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무언가를 조종하는 그들의 특별한 힘은 수리하거나 고치는 용도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단지, 자신의 이익과 파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어제 잭에게 말한 나에 대한 것들, 즉 나에게 특별한 힘이라도 있었다면, 현재의 내가, 그리고 미래의 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역시, 나는 욕심이 많다.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특별한 힘을 원하는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다.
마녀.
그들은 왕궁과 아마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이드가 그랬다.
메이드 아주머니를 죽인 것은 인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을 죽인 것은 인형 따위가 아니다.
왕궁 스스로가, 결론을 번복하고 라이브에게 죄를 덮어씌웠다.
그렇다면, 조이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일까?
그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베피는 그들과 한통속 인가?
어째서 테리스는 라이브라고 하는 사람의 짓이라고 단정지었는가?
단순한 그들의 착각이었나?
아니면 그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났던 것인가?
어쩌면 페퍼를 생각해 그녀를 배려하는 행동의 결과가 그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라이브의 남편은 어떤 사람 이었는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고, 누가 누구의 편에 섰고, 배후에 있던 누군가가 말을 굴렸나?
그들의 속마음을 알고, 마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그들과 가까워질 필요가 매우 느껴진다.
이제부터 분류를 해야한다.
이익에 해당하는 사람들.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에 적합하거나, 이용하기 아주 좋은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아군에 해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사람들이다.
홀로 견디는 싸움보다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소속감을 느낀다면, 나의 사기를 더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적군에 해당하는 사람들.
전부 제거해야 하는 나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다.
“하아….”
막막한 앞길에 대해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내 자신을 잭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내비치지 않겠다.
상상한다.
꾸준히 나에 대해서 구축해가며 상상한다.
나의 말들을 추리고 추려서 나의 진영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적들과 맞서서, 그들을 모조리 구축하겠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나 힘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가능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역시 착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자존심만 챙기는 옹졸한 사람일 뿐이다
…슬슬 발빠르게 행동해야 할 때이다.
마녀.
그들은 나의 존재를 인식하며, 경계하기까지 한다.
원인은 루이스와의 접선 때, 거리의 시민들에게 둘러 쌓여져 있을 그 때, 마녀들은 나의 존재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왕궁은 나에 대해서 무엇인가 대처를 전혀 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오지도, 접근하지도 않았겠지.
“후우….”
나는 한숨을 깊게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부터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들에게 빈틈을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무해한 존재가 된 나를 상상할 것이다.
상상의 힘은 강력하며, 나의 계획의 기본이 되는 요소다.
나는 모든 것을 뒤엎고 세상을 조종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은밀하고 치밀하게 움직일 것이다.
지금부터, 모든 계획이 끝날 때 까지….
어차피,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절대 악이 되어서, 모든 악을 굴복시키고, 선한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선사하겠다.
배후에서, 그 모든 일을 계획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끝마칠 때 즈음….
나는 틀림없이 숨을 거두겠지.
…아무도 없는 욕탕에는 나의 고요한 심장소리만 들렀다.
* * *
“피곤해 보이네?”
“응?”
식당의 문을 열려는 찰나, 줄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뭔 소리야?”
나의 얼굴을 보지 않았을 터인 그녀가 그렇게 말하니, 잔뜩 긴장되어있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수상하게 느껴졌다.
“응? 아니, 걸음걸이가 말이야.”
“아… 음… 어… 맞아, 어제 잠을 잘 못잤거든.”
“…그래?”
사람의 얼굴 이외의 무언가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배제한다.
능청스럽게, 능글맞게, 자연스럽고도 예리하게 살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을 뒤로 넘긴다.
‘아직, 너의 차례는 아닌듯 하구나….’
“왜 잠을 못잤을까?”
그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덤으로 팔꿈치로 툭툭 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최근에 일이 아주 많아서 말이야.”
“일? 네가 무슨 일?”
“응? 일이라고 하면….”
나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그럼 내거도 해주라?”
“뭐냐, 내가 먼저 말했건만.”
“하아… 알았어… 원하는 디자인이나 기능 같은 걸 적어오면 정말… 좋을 거다….”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나의 기계 쇼가 마치자 마자, 페퍼와 포드가 내 양팔을 붙잡고 졸라대었다.
귀찮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축 처진 어깨를 비집고 소피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나도 신기한거 하나만…. 베피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
“하아… 알겠습니다.”
보기드문 소피의 앙탈에, 신선함을 느끼면서도 거부감이 들었다.
* * *
“초창기 때, 조이드가 말했던가? 장인들은 학자들의 무기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면서?”
“음? 아~ 그거?”
그녀는 잊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주먹을 손바닥에 내리쳤다.
“그거 주문을 받아서 말이야….”
“네가? 그럴 만한 실력이 있던가?”
“그러게 말이다~”
나는 그렇게 대충 말하고는 식당으로 향하려고 했다.
매우 허기진 상태라 빨리 맛있는 식사를 입 안으로 우겨 넣고 싶었다.
“그럼~ 나도 하나 만들어 주라?”
나는 몸을 돌려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웃음을 짓고 있어서 눈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행동으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
나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내가 눈길을 아래로 내리자, 그녀는 재빨리 손을 뒤로 뺐다.
‘음…?’
“하아… 내가 가능한 범위에서만 주문을 해주라? 원하는 디자인이나, 기능을 알려주면, 그에 따라 만들어줄게.”
딱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버겁다.' 또는 '힘겹다.' 라고 느끼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으하핫! 그래! 이 누나가 양보해 준다!”
그렇게 말한 줄리는 깔깔거리며, 식당 안쪽으로 사라졌다.
‘새치기….’
나는 그녀가 떠난 자리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석연치 않아…. 그 손에 감추고 있던건 뭐였지….’
애써 못본척을 했지만, 수상쩍은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가만보니, 아까부터 이만저만 수상한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도 동등하게 의심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설령,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언제, 어떻게 나를 시궁창으로 밀어넣을 줄을 누가 알겠는가?
줄리.
그녀는 페퍼의 신임을 받고있는… 그러니까, 라이브라는 사람처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기둥과 같은 사람이다.
이전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페퍼, 괜찮을거야.”
“으아아앙~”
페퍼는 줄리의 품에 안겨 정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단지, 자신이 선호하는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것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단골 가게가 사라졌을 뿐 아닌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면 되니 말이다.
* * *
이처럼 그녀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나, 그러니까, 상당히 많은게 결여된 내가 줄리보다 못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런 결론이 지어지자, 나의 마음은 소용돌이를 예고라도 하는 듯이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페퍼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지 걱정 된다는 것이다.
…걱정?
축 쳐진다.
기운이 빠지기 시작한다.
질투인가? 아니면, 두려움에 의한 초조함인가.
서둘러 나는 열정에 넘치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그리고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힘차게 들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