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16 습격. (1)
‘음?’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서늘한 새벽에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은 개운했고, 온 몸의 뻐근함도 없었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나는 상체를 일으켜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문 옆에 걸려있는 거울에 내 얼굴을 비췄다.
새벽의 어스름한 빛에 의해, 나의 얼굴은 온전히 비춰지지 않았다.
덕분에 나의 날카로운 눈매를 직시하게 되어버렸다.
‘흠… 잘생겼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날카롭게 생긴 나의 인상은 그다지 호감형은 아니었다.
오늘의 나는 나의 얼굴에 불만을 품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 만족하며 살아야지.”
나는 개개인의 개성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생각이 비슷하더라도 남들과 똑같아 지려고는 하지 않는다.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개성이라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니, 유일하게 다른 나의, 나만의 얼굴을 만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조금은 잘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다.
‘그만하자.’
이른 아침부터 기운빠지고 싶지는 않다.
“그럼… 오래 간만에 일찍 일어났는데 뭘 해야 하려나….”
나는 일단 옷을 갈아입고 방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럼에도 딱히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아, 아까와 별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것참, 할 게 없구만.”
나는 읽다 말았던 책을 마저 읽을까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책에 대한 흥미는 이미 떨어진 뒤라, 하루 빨리 처분할 생각 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것을 담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안되지만, 그 책을 쓴 사람은 정말 기본이 안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그렇게까지 논리적이고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자신의 망상과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기술을 했다.
나는 그런 뒤죽박죽인 책을 다시는 보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흠….”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남아돌고 있었고, 지금 시간에 소란을 피우는 것은 민폐인 것 같아서, 그냥 참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은 붉다. 내가 하늘을 난다면 그들의 색깔을 확연히 알게 된다. 나 이외에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역시 차이를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이것이 반복되고 있다. 푸르게 떠오르던 하늘은 다시금 밤에 의해 침식되고 어둠에 휩싸인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해가 뜨기를 말이다. 애석하게도 내가 해가 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역시 뭔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그 부분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건너뛰었다.
[만약 당신이 하늘을 나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계속 읽어 나가길 바란다. 우선 필자인 나를 신뢰할 수 있도록 몇가지 구구절절한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하늘을 날고 싶으면 배를 타면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그 책에 딴지를 걸었다.
[첫째, 진실은 거짓이다. 대개,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것은 허구이며, 모든 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그의 힘이며 나도 그의 힘에 놀라고 말았다.]
“…?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
나는 조금 의아한 문구가 눈에 들어오자, 괜한 호기심이 생겨버렸다.
[둘째, 당신은 자신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아니면 기계인가? 누구나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에 도달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로지 당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런 책은 아마 나라에 한 두권 있을까 말까 하는 책이다.
이런 책을 들여놓은 제 5구역의 도서관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페퍼가 쓰는 이상한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모자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뭐… 지역의 특색에 따라 문화가 달라지기도 하니….
[셋째, 당신들 중에는 이질감이 있다. 하지만 당신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오로지 눈치챌 수 있는 것은 필자인 나 뿐이다.]
“뭔가….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신 분이네.”
[넷째, 여기까지 본 당신은 걸려 들었다. 당신의 의도가 어떠하든, 당신은 걸려든 것이다.]
“뭐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몇장을 넘겨버렸다.
그리고 더 읽을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더 훑어보자는 식으로 나 자신과 합의를 보았다.
[하늘을 날고 싶은가? 하지만 당신은 날 수 없다. 그 이유로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당신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뭐 어쩌라는거야?”
나는 짜증이 나서 그대로 책을 덮어버렸다.
‘별 희안한 책이 다있네….’
나는 책을 덮고 그냥 조용히 걸어나가 산책을 하고, 해가 뜨면 씻자… 라는 계획을 세웠다.
참 괜찮은 계획 아닌가?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긴장되어 있는 나를 잠시 동안 편안한 분위기를 갖게 함으로 여유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럼… 가볼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방문을 향해 가려고 하는데, 책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이 빠져 나왔다.
‘응…?’
나는 보통 책갈피를 쓰지 않는다.
보통 책을 읽을 때, 한번에 다읽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읽었던 부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이 슬슬 귀찮아지는 바람에, 얼마 안가 책갈피를 사용하게 될 것 같다.
나는 바닥에 누워버린 종이를 집어 들고는 조그마하게 쓰여진 글을 조용히 읽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은 다르군요…. …오늘 밤 차 한 잔 할까요?”
나는 정신 나간 문구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됐다…. 산책이나 가자….”
나는 그 종이를 꾸겨서 방 한쪽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종이를 봄으로써 이미 ‘그’에게 걸려든 상태인 것이었다.
* * *
“쓰으으읍! 하~”
나는 서늘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는 힘차게 내뱉었다.
시계를 보니 제 4시를 가리키고 있어서 나는 당황을 했었다.
생각보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당황한 나 자신을 진정시키며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비행장에 와있다.
해돋이 라고 하던가?
과거에는 이른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럴 여유가 어디있겠는가?
사람들은 여러 부류로 나뉘어졌다.
사력을 다해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기하고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포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악의 굴레로 스스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다.
도둑질, 도박, 살인, 상해, 위협, 사기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범죄들이 그들의 생계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몇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모두 자신의 해답을 현실로 이끌지 못했다.
단순히 그들이 의지력이 부족하다거나, 훌륭한 답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맞서는 세상은 너무나도 거대할 뿐이다.
그들도 결국은 포기를 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렀다.
책은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반의 지식은 다 책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알려 주고 있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그가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책은 좋은 것이지만, 가려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펼쳐 들은 이상한 책도 있으며, 옳지 않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포크 아저씨의 집에 있던 책장에는 이상한 표지의 책이 몇권 있었다.
그것들도 한 번 정도는 훑어 보았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몰래 들어가 읽어보고 나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 똑.”
‘…?’
나는 생각하며 걷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탓 인가…?’
“키득 키득…. 똑 똑.”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입으로 내는 이상한 노크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렀다.
나는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신경쓰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무시… 하는거야? 섭섭하네~”
쇠를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렀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색바랜 여성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하지만 내가 뒤돌은 후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세번….”
‘…?’
나는 이상한 낌세를 느껴 뒤를 돌은 후에 다시 앞을 보지 않았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나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
나는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며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뭐야!”
여기는 야외라 어디에 매달을 만한 곳은 전혀 없었다.
바닥에 놓여진 덫 또한 없었다.
나는 거꾸로 뒤집어진 세상을 바라보다가 왼쪽 발목에 차가운 촉감이 느껴져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자의 손처럼 보이는 것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
여성의 손이지만, 손목까지 밖에 모습이 없어서 순간 나는 벙찌고 말았다.
‘저게 뭐야…?’
나는 그렇게 무력하게 공중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세번… 그정도로 해야 관심을 가져주는 구나?”
어디에선가 들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는 갈라질대로 갈라져 내 귓속을 득득 긁어대었다.
“…관심이 필요하신가요…?”
나는 침착하게 그렇게 물었다.
“…그런거 좋아…. 너… 마음에 들어!”
의문의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신나게 웃어대었다.
‘설마… 아까 종이의….’
나는 아까의 종이가 생각나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다.
마녀로 추정되는 사람은 나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특이한 힘을 가진 마녀인 것 같았다.
하지만 무슨 힘을 가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젠장…. 치사한 족속들 같으니…!’
나에게도 특별한 힘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너…. 어떻게 그 애를 쓰러뜨린거야…? 궁금해 궁금해 궁금해 궁금해~!”
그 목소리는 내 귓가에 대고 중얼거렸다.
반 즈음, 아니 확실히 미친 사람인 것 같았다.
“그…애라뇨?”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매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뭘 모르고 있었다.
이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너무 많이 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가 복수를 위한 자객이라면 나를 진작에 죽였어야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힘을 너무나도 신뢰한 나머지, 나에게 기회를 줘버린 것이다.
이 곳은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사람 혼자 이곳으로 왔다면, 나는 만족한다.
나는 그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
그저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나는 확신을 갖기 위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손을 자세히 보려고 노력했다.
침착성만 유지한다면, 이딴 나를 얕보는 습격따위는 별것도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