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15 죄. (6) (72/128)



〈 72화 〉#15 죄. (6)

“어…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래요?”

발개벗고 있었지만,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마음의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늘 도서관에서….”
“도서관에서?”

‘아…!’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의 표정이 일순간 변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시 원래대로의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그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무리  아저씨의 친한 친우라고 해도, 나는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잠시 동안 아무말도 없으니, 그가 조금 이상하다는 눈초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 죄송해요. 피곤해서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렸습니다.”

내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 거리며 말했다.

“뭘~ 그럴 수도 있지요~ 쉬는데 제가 방해한 것 같네요.”
“아, 아닙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자료 좀 찾느라 힘을 다썼거든요.”
“…자료?”

그는 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가 최근에 고대 언어에 흥미가 돋았거든요.”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나는 척을 하며 말했다.

“오~ 그래요~?”
“그래서 페퍼의 도움을  받았죠.”
“음… 확실히 페퍼 양이 언어쪽으로 지식이 두텁긴 하죠.”
“그런데 말이죠.”

이번엔 내가 되받아칠 시간이다.

“저희가 도서관을 나서니까, 사람들이 도서관으로 달려가던데, 무슨 일인지 아세요?”
“…? 도서관을 향해 달려갔다고요?”
“네, 저희는 그냥 돌아와서 자세한 거는 모르거든요. 혹시 그런 보고를 들으셨나요?”
“…음. 딱히 그런 보고는 없었네요.”

그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웃음도 함께였다.

“음… 아쉽네요. 궁금한 거였는데….”

내가 고개를 숙이며 아쉬워하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라도 보고가 들어오면 알려줄게요.”
“감사합니다…. 아, 그것보다 이러고 있다가는 감기에 걸릴  같네요.”

나는 필요한 정보를 얻었기에, 서둘러 나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리고 왠지, 시간을 더 길게 뺄 수록 그의 알 수 없는 미소에 홀릴 것만 같기도 했다.

“음….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몸을 헹구고 밖으로 나가는 나를 망설임 없이 보내주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직감 역시, 서둘러 도망가라고 외쳐댔다.
나의 가슴은 묘한 긴장감에 두근거렸다.

* *


조금 뜨거웠던 내 몸이 목욕에 의해 차갑게 식었다.
그래서 시원하던 밤바람이 이제는 추웠다.
서늘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만다.
나는 부드럽고 따스할 것 같은 이불로 얼른 들어가고 싶었다.
오늘은 지친 하루라 한시라도 빨리 몸을 편히 쉬게 놓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늘 문제가 생겨버리고 만다.
지금처럼 말이다.

“페스틴?”
“응?”

야밤에 누가 나를 불러세우나 하고 뒤돌아 보았다.
그곳에는 엘리스가 서있었다.

“아, 엘리스. 무슨 일이에요?”

나는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으면서 물었다.
아까 말했듯이 한시라도 빨리 눕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정신은 맑았지만, 몸은 후들거렸다.
그리고 나의 마음도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나의 정신은 굳건 하다고 자부하고는 하지만, 역시 휴식은 필요한 듯 했다.
나는 여느 다를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솔직히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늘 우리는 자신이 특별하기를 바란다.
포기를 했어도 말이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적어도 남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싸늘한 공기에 숨기라도 하듯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

“제가 복도를 걷다가 주운 것 말입니다.”

주머니에 쪽지가 없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차분히 하며 주머니를 다시 뒤적거렸다.
…쪽지는 없었다.

‘이럴 수가…!’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눈으로 훑었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페스틴?”

내가 대화에 집중하고 있지를 않자, 그녀는 내 얼굴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아, 앗… 미안해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서둘러 사과를 했다.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재 겪고 있는 것을 일단락 할 필요가 있었다.

“뭔데 그렇게 당황합니까? 잘못한 게 있습니까?”
“아… 그런 건 아닌데요. 좀 잃어버린게 있어서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휴… 역시 그랬군요. 여기 있습니다.”
“네?”
“잃어버린거, 이게 아닌가요?”

그녀가 나에게 내밀은 것은, 내가 잃어버린 꾸깃꾸깃 접어진 쪽지였다.

“아…! 맞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소리질렀다.
천만 다행이었다.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겁니까?”
“네…? 아… 제가 중요한 거를 적어 두었거든요.”

이번에는 진실을 숨겼다.

“설마, 러브레터 라든지?”

그녀는 쪽지의 내용을 맞추려는 듯이 골똘히 생각하며 물었다.

“에헤이… 그런 거는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욕탕을 사용하는 시간이 적혀 있다던지?”
“…예?”

나는 그녀의 당돌한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 아니 그런 거는 절대 아닙니다.”
“왜 그렇게 당황하죠?”
“아니, 엘리스가 당황하게 만들잖습니까?”
“아,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요?”
“아닙니다….”

나는 나를 놀릴 생각이 가득해 보이는 심술궂은 그녀의 표정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튼, 찾아줘서 고마워요.”
“뭘요.”

그녀는 싱긋 웃고는 빙글돌아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갔다.

“저… 엘리스?”
“네? 뭔가 아쉬운 거라도?”
“아, 아뇨…. 그냥 바래다 줄까 해서요.”
“흠…?”
“어둡기도 하고…. 요새 뒤숭숭하잖아요.”

메이드장인 그녀를 잃는다는 것은 상당한 큰 손실일 것이다.
물론, 왕궁 차원에서 말이다.
생각보다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겨버린다면 분명,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않는 이유를 붙여가며  속마음을 숨기기로 했다.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계산에 의한 행동이었다고 하면 분명 나에게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런 것에 조금 신경을 쓰고 만다.
딱히, 그들에게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나는 이렇게 거짓된 자신을 드러내고 만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런 쪽으로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나로서는 그런 욕망이 남들보다 크다.

“음~ 됐습니다. 당신에겐 페퍼가 있잖아요?”
“네? 아… 페퍼요?”

‘왜 갑자기 페퍼가…?’

“그럼요. 바람은 나쁜겁니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틀었다.

‘아… 그런 건가….’

생각이 짧았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왕궁은 제 안방인데 조심할게 뭐가 있습니까?”
“아하하…. 그렇네요.”

나는 별일 없기를 바라며, 멀어져 가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면식있는 사람을 차갑게 식어버린 상태로 마주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 * *


풀썩—!

내가 침대를 향해 몸을 던지자, 침대는 흔들거리며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오늘도 고생을 했다는 듯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침대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엘리스는 쪽지 안의 내용을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말하는 것을 볼  그런 느낌이 들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설마, 보고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믿고 의지해야할 터인 왕궁이 의심스러워 지니까, 무고한 사람들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 같았다.
아니, 숨기려는 사람의 심리로 생각해보자.
나는 보통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으로 덮는다는 방법을 사용한다.
덮는다는 것은   진실로 숨겨버려 숨기고자 했던 진실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것도 있기는 하지만, 연기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연기라 함은 단순하다고 하면 단순하다.
나는 바보스러운 나를 상상한다.
그걸 나에게 덮는다.
그런 내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속인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과거에 읽었던 병법에 대한 책에서는,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군까지 속이라는 말이 나와있었다.
 말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범상치 않은 사람이 여럿 존재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개인의 개성이 있고, 경험의 차이가 있다는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피차일반이다.
범상치 않은 사람들조차도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실수를 하는 것도 같다.
나의 적이 누구이든, 의도와 생각은 같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보다 더 깊이, 더 많이, 더 멀리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는 상당히 불리하다고 할  있다.
그들은 다수이며,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혼자인 나는 몸을 사리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그들이 방심하게 만들도록 속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군을 속여야 한다는 것인데….

슬슬 시작해야 했다.
정보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반절 이상이 정확한 근거가 없었다.
추측이며, 심증일 뿐인 것들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마녀라는 존재를 잘 알고있는 사람들과 접촉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 되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것들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져서 이마를 손등으로 짚었다.

“젠장….”

괴물.
그것들 또한 해결해야  숙제이다.
한마리의 개체로 보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제거할  있다고 자신한다.
문제는 그것들의 수는 많고, 더 사나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의 근원이 어디인가?
그것도 꼭 알아야 한다.
밖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면, 해답이 꼭 필요한 의문거리다.
일일이 대처 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성벽도 쌓아야 한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을 때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야할 것이다.
일단, 이것은 나혼자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둘째 치고 라이브, 그 사람이 말한 [그분]이라는 것은 대체 누구인가?
…일단, 순서를 정리하고 차근차근 해결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아… 쪽지.’

뒤늦게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찬찬히 읽어보았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고, 조금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있을 뿐이었다.
마리는 분명, 시덥잖은 내용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 본것과는 달리, 이전에 적혀있던 내용은 어디가고, 처음보는 문자 배열로 이상한 말들이 적혀있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문자라, 기계만 만지작대던 나에게 당혹감이 반겨왔다.

‘것참….’

일단, 이 쪽지의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현재 목표로 세워도 괜찮을 듯 했다.
수수께끼의 기계속에 들어있던, 수상한 쪽지.
틀림없이 나에게 어떠한 면으로든 이익이  것이라 굳게 믿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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