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15 죄. (1) (67/128)



〈 67화 〉#15 죄. (1)

"오…."

나는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다.

"아… 금방 이러네…."

페퍼는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 금방 다시 또 될거야."

줄리는 페퍼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 * *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어쩐다는거야?"

줄리가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듯 물었다.

"음… 혹시~ 그 쪽지 때문에 그래?"

마리가 날카로운 질문을 하자, 나는 움찔했다.

"…눈치가 빠른걸?"

나는 보기보다 눈치가 빠른 마리를 흘겨보았다.

"뭐~? 나는 눈치 빠른 편이거든~?"

마리는 발끈하며 씩씩대었다.
코에서 증기가 뿜어나올 정도로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아하니, 꽤나 신경쓰고 있는 부분을 건들어 버리고 만 것 같았다.

"음… 도서관이라…."

점차 도서관이 가까워지자 페퍼는 주저했다.

"음…."

나는 의기소침해 하는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왜 그래 페퍼?"

페퍼가 조금 수상한 동태를 보이자 줄리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즈음 페퍼가 입을 열었다.

"아… 저 도서관에 스승이 있는데, 좀… 반대가 심해서 말이야."
"뭐를?"

조금은 망설이며 운을 띄는 페퍼는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녀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왕궁에서 일하는거 말이야."
"아."

페퍼의 대답에 줄리는 굳어버렸다.
어쩌면 자신이 말실수를 해버렸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한 것이다.

"아직도 망설여져?"

그녀들 보다는 조금 더 사정을 알고있는 나는 다시 한번 준비가 되었는지 물었다.
물론, 출발하기 전에도 물어보았다.
그 때의 그녀는 기운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한때는 자신감에 가득찼을지라도 코앞에 다가오면 누구나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의욕만 앞서 일을 그르치고 말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페퍼를 조금 진정시키는 것이 좋아보였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때때로 도움이 필요해 주위 사람들이 재충전을 해줄 필요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아 폭주하고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가 상처입고 되려 도움을 받아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아 폭주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 '건물이 붕괴된다.' 라고  수 있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되면 기지를 발휘해 평소보다 뛰어난 능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심리적으로 너무나도 몰려있는 사람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기 시작한다.
원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폭주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심한 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살인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뵈는게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따라서 자신을 제어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 또한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상처입게 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주는 원인이 나라면 더더욱 그랬다.

"음… 그런건 아닌데…."

조금은 힘없이 대답하는 그녀를 그대로 도서관에 데리고 가 문제에 맞닥뜨리도록 하기에는 무정한 행동이 아닐까 싶다.

"조금 숨좀 돌리고 갈까? 내가 힘들어서 그래."

나는 고개를 으쓱하며 말했다.
페퍼가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듯 했다.
도서관에 가자니 마음의 준비가 덜 되보였고, 그렇다고 숨을 돌리자니 겁쟁이 같은 자신이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손수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리며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알아채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저 그녀가 편안해졌으면 하기 때문이다.

"뭐야? 결국 네가 쉬고 싶었구만?"

줄리가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대었다.
솔직히 예상한 상황이라 한번 더 어깨를 으쓱하며 오묘하게 웃었다.

"그래… 고마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페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된건가?'

나는 애써 아픈 척을 하면서 늘 가던 과자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후후~ 페스틴이 힘들다는데 어떻게 해~"
"찌, 찌르지 마~."

마리가 조용히 웃으며 페퍼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물론, 앞을 보고 있기 때문에 뒤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페퍼의 말을 듣고 나는 그렇게 판단했을 뿐이다.

* * *


"아, 저는 커피로요."
"질리지도 않아?"
"맞아~ 새로운 것도 마셔봐~"

내가 여느 때처럼 커피를 주문하자 마리와 줄리가 쌍으로 나를 몰기 시작했다.

"충분히 맛있는 걸?"

나는 양눈썹을 치켜 올리며 나의 변함없는 생각을 드러냈다.

"마시고 싶다는데 냅둬~"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페퍼는 으스대며 말했다.
마치 자신이 허락해  것 처럼 말이다.

'…?'

기운 차렸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니면 불평해야 하나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본다.
그러자 페퍼는 싱긋 웃었다.

'…뭐, 된거겠지.'

이것보라,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우려다가 오히려 내가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잖은가?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걸 도전해 볼건데?"

우리는 늘 오던 가게이지만, 먹어보지 못한 미지의 과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금씩 시험해 보고 있다.
대부분 추천으로 고르기는 하지만, 어쩔 때는 우리가 직접 고르기도 했다.
우리는 맛있는 것을 고를 때 신중한 편이라 조금씩 고르는 것이다.
가게의 주인도 우리가 먹어본 반응을 통해 맛을 조금 다르게 한다던지, 레시피를 바꿔본다던지 하는 것 같았다.
이런  하기에는 조금 오만한 말일 수도 있다.
우리의 입은 어느 정도 맛에 길러져 있어서 우리의 평가가 그들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정 하겠다.
나는 그렇다 쳐도 그녀들의 혀는 민감하다고 할  있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숨겨진 요소도 금방 찾아버리니 말이다.

"나왔어요~"

부주방장 누나가 과자를 내려 놓고는 즐겁게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걸어갔다.

"음~ 이건 괜찮은 걸?"
"오! 그러네!  달달한걸?"

과자가 담긴 그릇을 내려놓자 마자 그녀들은 손을 뻗어 음미하기 시작했다.

'…팔자 좋구만?'

나는 천천히 하나를 집어들어 그녀들과 같이 맛을 음미했다.

'음~ 확실히, 달달하구만?'

나는 달달한 맛이 입안에 돌자 씁쓸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아… 좋다….'

차분해 지는 입속에 나의 마음도 차분해졌다.

"그러지 말고 이거랑 먹어보지 않을래?"

줄리가 자신이 마시던 음료를 나에게 밀었다.

"응?"

나는 그다지 달가워 하지 않으면서 쿠키를 한입 먹고는 그녀의 음료를 한모금 마셨다.

"오…."

나쁘지 않은 조화에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어때? 괜찮지?"
"음… 그러네, 그런데  커피가 더 좋다."

나는 그녀가 내쪽으로 밀어준 음료를 다시 밀어버렸다.

"아?"

그녀는 기껏 베푼 호의를 무시당해 빈정상한 듯 했다.

"하하하~ 줄리, 너는 페스틴의 취향을 잘 몰라~"

마리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신이 마시던 음료를 내쪽으로 밀었다.

'뭐하자는 거야?'

아까처럼 마리의 음료도 마셔서 조화를 느껴보았지만, 역시 커피가 좋았다.
다시 밀어진 자신의 음료를 내려다 보면서 한탄스러운 표정을 짓는 마리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왜 이래?'

페퍼도 보다 못해 자신의 음료를 내밀었다.

"나랑 취향도 비슷한데, 어울릴거야."

확실히, 그녀가 내밀은 음료는 커피와 비슷한 씁쓸한 맛이 있었다.
다만, 씁쓸한 맛에 더해 설탕이 들어가 달달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커피만 취급한다.
왠지 마셔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도로 밀었다.

"괜찮아, 커피가 좋아."

내가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자, 그녀들은 괜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좋아, 페스틴이 좋아할 음료를 찾아낸 사람은 오늘 돈을 안내는 걸로."

줄리가 손가락을 높이 쳐들으며 단호히 말했다.

"좋아! 해보자고~"

마리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질 수 없지!"

페퍼도 눈에 불을 태우며 열의를 보였다.

"…그렇구나, 잘 해봐."

나는 불필요하게 열을 내는 그녀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별걸로 열을 올리는 그녀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 * *


상황은 다시 처음으로.
결국 이렇게  것이었다.
벌써 스무잔을 넘어서, 가게의 주인 마저도 나를 만족시킬 만한 음료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아니, 좀 과한거 아닙니까?'

나는 그들의 노력에 불만을 토로하기에는 너무 열심히 하길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오… 좋네… 이것도."

그래서 변변찮은 리액션을 아까부터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지, 그녀들은 다시 한숨을 쉬며 다른 음료를 찾기 시작했다.

"페스틴! 걱정마 금방 찾아줄게!"

마리가 지친 눈으로 나에게 외쳤다.

"한잔만 고르니까 금방 실망해버려."

줄리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판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우와… 부담스러워라….'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은 좀 별로다.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심혈을 기울여 해준다는 것은 기쁘긴 하지만 말이다.
그들의 노력이 헛수고라는 소리가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그녀들이 자신의 행복을 뒷전으로 한다는 것이 별로라는 것이다.
과분하다.
그 말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들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에 눈길을 돌렸다.
마음의 휴식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해가 어디 즈음에 있는지 알고 싶어서다.

'…큰일 났다.'

아직은 괜찮았지만 곧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았다.
시간낭비.
물론 그녀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시간낭비까지는 아니다.
단지, 내 목표를 위한 계획이 틀어졌다는  뿐이다.

"어… 다음에 또 올까?"
"아?"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줄리가 나를 째려보았다.

"잔말 말고 앉아있어.  찾아줄테니."

반즈음 정신이 나간 것처럼 마리가 중얼거렸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페퍼…?"

나는 마지막 희망인 페퍼를 쳐다보았다.
다행이도 그녀는 제정신인 듯했다.

"어… 시간이 벌써."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시계를 들여다 보자, 나머지 두 사람도 그 때가 되서야 시계를 보았다.

"폐점 시간이네?"
"음… 아쉽다, 조금만  하면 됐는데."

두 사람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앗, 어느새 폐점!"
"으아닛! 폐점!"

 테이블에서 신메뉴를 만들던 부녀가 서로 놀라며 자리에서 박차서 일어났다.

'하하하…. 다들 열정적이시네요.'

나는 고생을 한 모두를 위해 전재산을 털었다.
이번에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왠지, 이렇게 까지 나를 위해서 누군가가 노력을 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그들이 내가 커피 이외에 좋아할 만한 음료를 찾아주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만족했다.

* * *

"그냥 늦었으니, 책만 빌리고 올게."
"엥?"

나의 말에 페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얼마 안걸려."
"그럼… 너희는 어떻게 할래?"

도서관에 들어갈 생각이 가득한 페퍼의 대답에 나는 나머지 두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피곤해~"

마리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줄리는 마리를 흘낏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마리는 한계인 것 같네, 내가 같이 갈테니까 둘은 잘 하고 와."

그녀는 휘청거리는 마리를 부축하고는 다시 왕궁으로 향했다.

"아… 그럼 가볼까?"

나는 페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페퍼를 보며 나는 안심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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